4. 신아연. 그녀는 예뻤다.
강북. 각성자 스토어.
평일 오전임에도 각성자 스토어는 꽤 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이곳은 말 그대로 각성자들을 위한 아이템들을 판매하는 곳. 하지만 이곳을 찾는 이들의 절반 이상은 돈 좀 있다 하는 일반인들이었다.
각성자가 신(新)귀족이라고 불리고 있는 요즘, 일반인들은 각성자가 되기를 열망하며 그들의 문화를 추앙한다.
그리고 각성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장구류나 액세서리가 아닌 일반 아이템들은 일반인들에게도 효과가 있으니 이렇듯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것이었다.
힐링 포션 하나를 지니고 다니는 건 여벌의 목숨 하나를 지니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돈 좀 있다 하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힐링 포션을 구비해 두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고, 이 사회현상 또한 각성자 스토어에 일반인 손님이 느는 데 한 몫을 차지했다.
그렇기 때문일까?
스토어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본 사람들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네까짓 게?’
그도 그럴 것이 나름 괜찮은 옷을 입고 나온다고 나왔지만, 온갖 명품으로 도배를 한 그들의 눈에 나는 더없이 추레해 보일 테니까.
너무나도 익숙한 눈빛.
던전 청소부로 일하는 나를 바라보는 헌터들의 눈빛이 저랬다.
우월감에 사로잡힌 채 상대를 자신보다 아래로 보는 눈빛 말이다.
익숙하기 그지없는 그 눈빛들을 외면한 나는 포션을 파는 매대의 직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중급 힐링 포션 하나 주시겠어요?”
“아. 어떤 제품으로 드릴까요. 고객님?”
잠시 내 행색을 보고 얼굴이 굳었던 직원은 중급 포션을 달라는 내 말에 이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응대를 시작했다.
“어떤 제품들이 있죠? 제가 각성한 지 얼마 안 돼서 어떤 제품이 좋은지 모르겠네요. 목숨을 구해주신 분에게 선물할 거니 좋은 제품으로 추천해 주시겠어요?”
이토록 구구절절하게 포션을 구매하는 이유를 밝힌 것은 나라는 사람이 그녀가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내가 이 매대로 다가오는 동안 나를 보는 그녀의 표정은 고객을 보는 표정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각성자임을 밝히자 미소 짓고 있던 그녀의 표정이 변했다.
이전까지 짓고 있었던 미소가 서비스 정신에서 나오는 기계적인 미소였다면 지금 그녀가 짓고 있는 미소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였다.
“어머 고객님. 그럼 요번에 성삼에서 새로 나온 포션을 추천해 드려도 될까요?”
“네. 보여 주세요.”
내 말에 그녀는 매대에 진열되어있던 포션 중 성삼의 푸른색 로고가 박혀 있는 포션들을 꺼내 진열대 위로 올렸다.
“이게 요번에 출시된 성삼의 힐링 포션 라인인데요. 기본의 포션들보다 회복력이 5% 정도 향상됐고요. 회복시간도 10% 정도 단축되어서 고객님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제품이에요.”
“이게 한 세트인가요?”
나는 고급스러운 상자 안에 나란히 놓여 있는 엄지손가락 크기의 포션 다섯 개를 보며 물었다.
“아. 이건 진열하기 위해서 이렇게 배치해 놓은 거고요. 개별적으로 구매하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세요. 고객님.”
“그럼 이거 중급으로 하나 주세요.”
“잘 선택하셨어요. 고객님. 정말 받으시는 분이 만족스러워하실 거예요. 요즘 성삼이랑 GL이랑 포션 라인 경쟁 중이라 성삼이 GL 저격하려고 만든 게 이 포션이거든요. 같은 가격에 효능이 5%, 10% 차이가 나서 요즘 GL 포션은 잘 안 팔리는 추세예요. 정말 잘 선택하셨어요. 고객님.”
“이거 포장되나요?”
“물론이죠 고객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직원은 매대 밑에서 고급스러운 상자를 꺼내 들며 말했다.
“결제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고객님?”
“일시불로 해 주세요.”
“중급 힐링 포션, 오백만 원, 일시불로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끝이 미묘하게 올라가는 어투로 말하며 리더기를 내미는 그녀.
나는 헌터 와치를 리더기에 가져다 댔다.
삑.
“결제 완료되셨습니다. 고객님.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그녀가 건네주는 고급 포션을 받아들고 스토어를 빠져나왔다.
‘역시 돈이 최고구먼…. 씨발.’
직원은 친절했다.
내가 각성자인 것을 알고 난 이후엔 말이다.
일반인과 각성자 사이의 급을 나누는 것이 각성의 여부라면, 일반인들 사이에서 급을 나누는 것은 부의 크기.
자본주의 사회.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이상일 뿐 현실은 지닌 부의 크기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
이미 알고 있던 그것을 나는 오늘 또 한 번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고급스러운 포션 상자를 들고 스토어를 나서는 순간, 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이들의 시선이 달라져 있었으니까.
***
신아연은 이른 아침부터 불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 이유는 바로.
-…어제 온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의 주인공이죠. 수원의 D급 던전을 기존 기록보다 한 시간이나 앞당겨 클리어한 파티의 리더인 헌터 신유빈 씨가 다음 던전인 경기 화성의 D급 던전 또한 시간 단축을 예고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김 기자 어떻게 된 일이죠?
-네. 어제 수원 D급 던전 클리어 기록을 한 시간이나 단축한 헌터계의 떠오르는 신성, 빛의 성기사 신유빈 씨가 자신의 SNS를 통해…….
지금 TV 뉴스를 통해 흘러나오는 신유빈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잡몹이나 흘리고 다니는 주제에 빛의 성기사는 무슨….”
신아연은 선홍색 입술을 짓씹으며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TV에 나오는 신유빈의 얼굴을 노려봤다.
그녀가 이렇게 신유빈에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분명 같은 시간대에 클리어했는데.”
그녀는 어제 신유빈과 같은 던전을 비슷한 시간대에 클리어했다.
물론 신유빈의 기록보다 몇 분 늦기는 했지만, 그녀 또한 수원 D급 던전을 기존 기록보다 한 시간 빠르게 클리어한 것은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도 매스컴이 주목하는 것은 오직 신유빈이었다.
매스컴은 그가 던전을 완벽하게 클리어하지 못하고 고블린 한 마리를 남겼으며 그로 인해 사상자가 생겼음에도 그에 관한 단 한 줄의 기사도 내보내지 않고 오직 그의 기록 단축에만 초점을 맞춰 보도를 이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 이유는 그녀도 너무 잘 알았다.
“분명 공평하게 기회를 주겠다고 하셨잖아요….”
신유빈은 대한민국 10대 그룹 중 하나인 신성 그룹의 유력한 차기 후계자다.
그의 할아버지는 신성 그룹의 회장이며 그의 아버지는 신성 그룹의 후계자이자 지주회사인 신성철강의 사장이다.
그리고 그녀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이유.
“…할아버지.”
그것은 신아연이 신유빈의 사촌 동생이며 차기 후계자 자리를 놓고 신유빈과 경쟁을 하는 경쟁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신성 그룹의 독특한 후계자 결정 방식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했다.
80년 전.
신성 그룹의 모태인 신성 대장간을 운영하던 초대회장이 메이커로 각성하고 헌터들을 위한 무구들을 만들며 시작된 신성 그룹은, 초대회장의 유지에 따라 오직 각성자만이 그룹의 회장직을 물려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신성 그룹의 오너인 신씨 일가의 가법.
그로 인해 초대회장의 막내아들이었던 현 회장 신만철이 회장이 되어 그룹을 승계했으며 지금 신성철강의 사장 신경훈 또한 각성자이기에 후계자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신유빈은 25살에 각성을 하며 유력한 차기 후계자로 낙점되다시피 했다.
그러던 중 원래라면 후계 구도에 들지도 못했을 그녀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2년 전 이맘때 그녀가 각성하면서부터였다.
이것은 신아연에겐 기회였지만, 유력한 차기 후계자였던 신유빈으로서는 난데없이 걸림돌이 생긴 샘.
그렇게 2년 전부터 신아연과 신유빈의 차기 후계자 경쟁이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할아버지는 유빈 오빠로 마음을 굳히신 것 같은데….’
신아연은 TV를 보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할아버지인 신만철이 신유빈을 차기 후계자로 낙점한 것이 아니라면 이렇듯 매스컴의 보도가 편파적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신아연이 얼굴을 굳힌 채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꿀톡!
그녀의 손목에 채워져 있는 헌터 와치가 경쾌한 알림음을 토해 내며 메시지를 출력했다.
정중하면서도 길고 긴 장문의 메시지를.
***
생명의 은인인 신아연과 약속을 잡은 나는 일찌감치 약속 장소인 별다방에 도착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아연 씨라고 했던가?’
아무리 헌터라 해도 D급 던전에 드나드는 걸 보면 500만 원이 적은 돈은 아닐 텐데 생면부지의 남에게 선뜻 중급 힐링 포션을 사용해 준 걸 보면 마음이 참 예쁜 사람이다.
솔직히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각성 한 것도 모른 채 지금쯤 요단강을 건너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랬다면 해피니스 시스템의 사용자가 되는 일도 없었겠지.
한마디로 내가 각성을 한 것도 해피니스 시스템이라는 이상한 시스템의 사용자가 된 것도 모두 그녀 덕분인 셈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기다렸을까?
순간 주변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끊겼다.
그리고 이어지는 탄성과도 같은 중얼거림.
“와-. 대박. 연예인 아니냐?”
“몸매. 끝장나네. 완전 내 스타일. 가서 번호 물어볼까?”
“야야. 저기 봐. 존예.”
“야. 딱 보면 몰라? 저거 성형빨에 화장빨이잖아.”
“성형해서 저렇게 예뻐질 수 있으면 나도 하겠다.”
“미친년. 본판 불변의 법칙 모름? 성형도 어느 정도 본판이 돼야 예뻐지는 거지 너는 불가능함.”
“뭐래-. 지는 예쁜 줄 아나….”
“응-. 너는 다시 태어나도 안돼.”
그렇게 주변이 다시 소란스러워지고 그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탄성을 토해 내고 말았다.
“와아-.”
새하얀 피부에 조막만 한 얼굴, 도톰한 선홍빛 입술에 오뚝한 콧날, 호수를 담은 듯 깊은 두 눈이 매력적인 미녀가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든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저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구나….’
어지간한 여배우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여자였다. 마치 존재 자체가 명품인 듯한 느낌.
넋을 놓고 그 여자를 바라보던 나는 마침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그녀와 눈을 마주치곤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 너무 대놓고 쳐다봤나?’
민망함에 고개를 숙이고 자책하고 있을 무렵, 옆 테이블에서 두 남자가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
“뭐야. 우리가 말하는 거 들었나?”
“어. 저거 헌터 와치 아니냐? 각성자였네. X바 X됐다.”
“욕하지 마. 병신아. 다 들린다고. 각성자들 오감 발달한 거 몰라?”
“어어. 진짜 여기로 오는데?”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설마 하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보았다.
몸매가 드러나는 흰색 반소매셔츠에 연청색 스키니진, 허리까지 오는 검은색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내게 걸어오는 그녀를.
그리고 어느새 내 앞에 도착한 그녀가 생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강현 씨. 여기 계셨네요.”
그 순간. 5월의 햇살이 그녀의 등 뒤에서 찬란하게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