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3화 (3/202)

3. 해피니스 시스템.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하아…. 이제 뭘 해야 하나.”

각성한 마당에 청소부 일을 길게 할 생각은 없었지만, 계획에도 없이 갑작스럽게 백수가 된 된 까닭에 갑자기 앞이 깜깜해진 기분이었다.

“서포터 자리부터 알아봐야 하나?”

이대로면 던전 잡부라 불리는 서포터라도 해야 할 판이다.

고작 청소부라는 직업을 가진 나를 헌터로 대접해 줄 파티는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하아.

10년이라는 시간을 일요일을 제외하곤 매일같이 기계적으로 출근을 하고 일했던 내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여유는 너무나도 낯선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돈이 급한 것은 아니라는 점일까?

낡은 빌라이긴 하지만 전세로 들어와 걱정은 없었고, 통장에 모아 둔 돈 역시 아직 여유가 있었으니까.

“일단 밥이나 먹고 생각하자.”

아직 식당이 문을 열기엔 이른 8시. 나는 슬리퍼를 신고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 도시락과 콜라를 구매한 나는 실외 테이블에 앉아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 홀로 앉아 밥을 먹고 있자니 무인도에 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와…. 내가 이렇게까지 여유가 없이 살았나?”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등교하는 학생들. 그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이 들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젓가락을 놀려 식사를 마친 나는 집으로 돌아와 와치를 조작했다.

헌터 와치에 깔린 수많은 각성자 전용 앱의 아이콘들.

그중 구인 구직 앱인 프리몬을 실행한 나는 홀로그램을 터치하며 서포터를 구하는 공고들을 검색했다.

[구인: 강북 창동역 A급 던전 숙련 서폿 괌.]

[구인: 강남 C급 던전 노련한 서폿 구합니다. 보수 협의 가능.]

[구인: 노원 불암산 F급 던전 서폿 구해요.]

[…….]

그 이후로도 이어지는 수많은 구인공고. 그중 대부분은 숙련된 서폿을 구하는 공고였다.

그렇게 초보 서폿인 내가 갈 수 있을 만한 F급 공고를 하나하나 체크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응? 이건 뭐지?”

갑작스럽게 눈에 들어온 붉은색 점.

“씨바. 이거 불량품 아니야?”

마치 바늘로 콕 찍어놓은 것처럼 작은 그 점은 신호등처럼 점멸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뜩이나 직업이 엿 같은 것도 기분 나쁜데 불량품을 팔아?!”

나는 페이지를 넘기며 홀로그램을 주시했다. 혹시나 페이지 오류일 수도 있다는 일말의 기대감은 그 손짓 한 번에 산산이 부서졌다.

수십 번 페이지를 넘겼음에도 붉은 점은 여전히 오른쪽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던 것.

하아-.

오백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구매한 헌터 와치가 불량품이라니.

나는 터져 나오는 한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홀로그램의 붉은 점을 손가락으로 문질렀을 때였다.

띠링.

맑은 종소리와 함께 헌터 와치가 만들어 낸 홀로그램을 뒤덮은 푸른색 홀로그램이 내 시야를 가렸다.

“이건 또 뭐야? 블루스크린이냐?”

내 시야를 가득 채운 푸른 화면에 나도 모르게 투덜거렸지만, 그 투덜거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블루스크린이 알지도 못하는 문자를 나열하는 것과 다르게 이것은 내가 읽을 수 있는 한글로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으니까.

-해피니스 시스템의 사용자로 선택되신 강현님 축하드립니다. 본 시스템은 ‘회사’ 해피니스에 의해 제공되는 시스템이며 사용자의 행복을 위해 서비스가 제공됩니다.

“이게…. 뭐야?”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문지른 뒤 다시 눈을 떴다.

여전히 내 눈에 보이는 푸른색의 홀로그램.

혹시 헌터 와치가 에러난 건 아닌가 싶어 왼쪽 손목을 바라보던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푸른색의 홀로그램은 헌터 와치와는 별개로 내 시선을 따라 이동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까 이게 해피니스 시스템인가?”

조심스럽게 해피니스 시스템의 화면을 만지자 딱딱한 태블릿을 만지는 듯한 매끄러운 질감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홀로그램이 아니야? 이게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지?”

헌터 와치와는 다른 시스템 창에 놀란 내가 중얼거리자 푸른색 시스템 창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튜토리얼을 시작하시겠습니까?

-Y/N.

튜토리얼이라.

하긴 뭣도 모르는 시스템을 던져 주고 메뉴얼도 없이 사용하라면 누가 사용할 수 있을까?

나는 손가락으로 Y 버튼을 가볍게 눌렀다.

-튜토리얼을 진행합니다.

-우측 상단의 첫 번째 아이콘을 클릭해 주세요.

시스템의 말에 따라 시선을 돌리니 사람 모양을 본뜬 아이콘이 반짝이며 빛을 내고 있었다.

클릭.

-이 기능은 사용자의 현재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상태창입니다.

이름: 강현

종족: 인간

레벨: 1

힘:1 민첩:1 체력:1

마력:1 내구:1 지혜:1

보유 스텟 포인트: 0

특성: 아공간 청소부 F (LV1)

스킬: 버려진 아공간 찾기 F (LV1)

그 뒤로도 시스템은 메시지를 토해 내며 상태창의 기능을 설명했지만 나는 그 메시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아공간 청소부? 버려진 아공간 찾기? 이건 뭐지?”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수많은 물음표.

다른 것보다 유독 특성과 스킬이 눈에 들어왔다.

아공간 청소부라는 특성과 버려진 아공간 찾기라는 스킬.

랭크와 레벨이 표시된 거로 봐서는 레벨업이 가능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식으로 레벨업을 할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두 번째 아이콘을 클릭해 주십시오.

시스템은 상태창에 대한 설명을 마쳤는지 두 번째 아이콘을 클릭하기를 종용하고 있었다.

클릭.

반짝이며 빛을 내는 집 모양의 아이콘을 클릭하자 화면에 나타난 것은.

“상점?”

[상점 등급: F]

[검색: ]

[구매] [판매]

[보유 포인트:0]

검색창과 구매와 판매 버튼 그리고 내가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를 보여 주는 아주 심플한 디자인의 상점창이었다.

“빌어먹을 죄다 F등급이구먼. 내 인생이 에프냐?!”

상점 등급을 확인한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소리쳤다. 하지만 시스템은 내 말은 안중에도 없는지 상점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포인트는 시스템이 부여하는 퀘스트를 클리어할 시 획득할 수 있으며 해당 퀘스트의 등급에 따라 차등 지급되오니 유념하시기를 바랍니다.

“퀘스트?”

-이어서 퀘스트 창에 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측 상단 세 번째 아이콘을 클릭해 주십시오.

나는 시스템의 지시에 따라 반짝이고 있는 물음표 모양을 클릭했다.

띠링.

그리고 맑은 알림음이 울리며 메시지를 출력했다.

-튜토리얼 퀘스트 ‘시스템에 대해 알아보자’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으로 1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퀘스트 창.

[튜토리얼 퀘스트: 시스템에 대해 알아보자]

[등급: F]

[내용: 시스템의 지시를 따라 시스템을 파악해보자.]

[진행상태: 완료.]

[보상: 포인트 10.]

-이상으로 튜토리얼을 마칩니다.

-해피니스 시스템의 사용자 강현님. ‘회사’ 해피니스는 강현님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인생의 모든 행복과 불행은 당신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시스템 메시지는 사라졌다.

“설마 이걸로 끝이라고? 이봐 시스템 정말로 이게 끝이야?”

나는 그 메시지를 읽으며 어이가 없었다.

하다못해 레벨업 방법이라던가 스킬이나 특성의 레벨을 올리는 방법, 또 퀘스트를 얻는 방법 정도는 소개해 줘야 할 것 아닌가.

“어이. 시스템 대답해봐-.”

하지만 시스템은 더는 어떤 메시지도 출력하지 않았다.

“염병. 모바일 게임 튜토리얼도 이것보단 길겠다.”

나는 눈앞에 떠 있는 퀘스트 창을 치우고 상점창을 띄웠다.

10포인트를 얻었으니 어떤 것들을 구매할 수 있는지 구경이나 해볼 요량이었다.

[검색: ]

하지만 나는 검색어를 입력하지 못했다. 상점창 어디에도 검색어를 입력할 자판 같은 건 보이지 않았으니까.

“이걸 어떻게 검색하는 거지?”

그리고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검색: 이걸 어떻게 검색하는 거지.]

[해당 제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검색창에 내 말이 그대로 입력되는 것을 보며 사용 방법을 알게 되었다.

‘정말 불친절한 시스템이구먼.’

사용 방법은 알아서 찾으라는 건가? 무슨 제품이 있는 줄 알고 검색어를 입력하라는 건지.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 최근 내 목숨을 살려 준 아이템인 포션을 검색해 보기로 했다.

“포션 검색.”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다면 하나 구매해 나를 위해 포션을 사용해 준 헌터에게 고마움의 인사와 함께 갚을 요량이었다.

‘여기에 없으면 각성자 스토어 가서 한 병 사서 갚아야지. 그래도 목숨을 빚졌는데 입 닦으면 인간이 아닌 거지.’

그렇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포션을 검색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이 변환되며 그 결과물을 토해 냈다.

[2,548,736,975,514,796건의 포션이 검색되었습니다.]

그리고 최상단에 떠오른 포션.

고급스러워 보이는 디자인의 용기에 담긴 영롱한 보라색 빛을 내뿜는 포션의 이름은 ‘창조주의 엘릭서’였다.

그리고 그 가격은 무려.

“일, 십, 백, 천, 만…조, 1조 포인트?!”

무려 1조 포인트였다.

내가 가진 포인트가 고작 10포인트인데 포션 한 병이 1조 포인트라니 억 소리가 아니라 조 소리가 날 만큼 놀라운 가격이 아닐 수 없었다.

“대체 엘릭서라는 게 뭐기에 이렇게 비싼 거야?”

호기심이 생긴 나는 홀린 것처럼 손가락으로 엘릭서를 터치했다.

[아이템: 창조주의 엘릭서]

[등급: 신(神)급]

[설명: 전(全) 우주를 창조한 창조주가 만들어낸 엘릭서. 필멸자가 복용 시 불로불사, 무병장수, 만독불침, 한서불침, 금강불괴, 천무지체, 무한의 마나홀의 특성을 모두 얻을 수 있다. 격(格)을 갖춘 존재가 복용 시 신성(神聖)을 얻을 수 있다.]

엘릭서의 설명을 모두 읽은 나는 그제야 이게 왜 1조 포인트나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진시황이 보면 땅을 치고 통곡하겠네. 뭐. 어차피 지금은 나에게도 그림의 떡이지만….”

지금 지닌 게 고작 10포인트에 불과한 나에게 엘릭서는 찔러볼 수도 없는 감이나 다름이 없었다.

“검색설정. 1에서 10포인트.”

혹시나 하는 생각에 검색설정을 변경하자 영롱하게 빛을 발하던 엘릭서가 사라지며 상점창에는 1에서 10포인트의 가격대에 있는 포션들이 정렬됐다.

“이건 또 뭐야?”

그중 내 눈을 잡아끈 것은 손바닥만 한 작은 호리병 모양의 포션 병이었다.

[아이템: 쿤타우리족의 발모제]

[등급: F급]

[설명: 고대로부터 쿤타우리족은 온몸에 털이 무성한 것을 미의 척도로 여겼다. 그런 쿤타우리족이 수만 년간 축적한 지식으로 만들어낸 발모제. 원하는 곳에 도포 시 털이 자라난다.]

[주의사항: 피부에 접촉 시 즉각 반응하므로 털이 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면 반드시 보호장구를 착용해 주세요.]

이 아이템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엔 대머리 족제비 이 팀장님이 떠올랐다.

본인은 자의적 대머리라고 늘 말했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가 20대 초반부터 일어난 급격한 탈모로 인해 자의적 대머리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는걸.

“이거 어쩌면 좋은 사업 아이템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는걸?”

현재 대한민국 인구 1억2천만. 그중 천만이 대머리이거나 예비 대머리라는 건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확실하게 머리가 자라나기만 한다면 몇백, 몇천이고 지불할 잠재고객이 천만이나 된다는 소리.

“포인트만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은혜를 갚기 위해 포션을 검색했던 상점에서 의외의 사업 아이템을 찾게 됐다.

‘기다려요. 대머리 족제비. 좋은 거 가져갈게요.’

물론 그전에 임상 시험은 해 봐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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