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2화 (2/202)

2. 각성했더니 직업이 청소부.

김미소는 각성자 센터 소속의 임용 3년 차 9급 공무원이다.

인생의 로또라 불리는 신규 각성자 등록업무를 맡은 그녀는 오늘도 이름과 같이 환한 미소로 민원인들을 맞아 등록업무를 진행했다.

그런 그녀에게 진상이 찾아온 것은 퇴근 시간이 가까워진 오후 5시 30분쯤.

“161번 고객님. 등록절차 도와드리겠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미소로 고객을 맞이하던 그녀는 잠시 몸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노숙자인가?’

그도 그럴 것이 번호표를 들고 나타난 사람의 몰골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봉두난발에 가까운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여기저기 찢기고 구멍이 뚫린 옷은 넝마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상대도 그걸 느낀 걸까?

“아. 제가 일이 조금 있어서 꼴이 이렇네요. 죄송합니다.”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인 남자는 이내 김미소를 향해 검사지를 내밀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고객님. 그럼 신규 각성자 등록절차 진행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녀가 미소를 지우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일확천금 인생의 로또를 바라고 오만가지 인간군상들이 전국에서 모여드는, 각성자 테스트 부와 다르게 이곳 신규 각성자 등록부는 말 그대로 검증된 각성자들이 방문하는 곳이었으니까.

이제 상류층이나 다름없는 그들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하아. 저런 노숙자 같은 사람도 각성하는데 난….’

얼굴에 미소를 지은 채 속으로 한숨을 내쉰 김미소는 고객이 건네준 검사지를 받아 들고 등록 절차를 마무리했다.

등록 절차 완료와 함께 그녀의 모니터에 떠오르는 상대의 이름.

[이름: 강현]

“네. 강현님. 등록 절차 완료했고요. 헌터와치를 구매하셔야 할 텐데, 생각하시는 모델 있으신가요?”

“아니요. 없습니다.”

“그럼. 앞쪽에 카탈로그 보시고 결정해 주시겠어요?”

그 말과 함께 그녀는 고객이 보는 모니터에 카탈로그를 띄웠지만, 상대가 어떤 제품을 고를지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이걸로 하겠습니다.”

화면을 넘기며 한참을 고민하던 고객은 500만 원짜리 저가 모델 중 하나를 골랐다.

“어머 잘 고르셨어요. 고객님. 이 모델이 저가형이긴 한데 제품이 잘빠졌거든요.”

“아. 그런가요?”

“그럼요-. 수심 100m까지 방수되고요. 영하 100도 영상 100도의 온도에서도 작동되는 제품이거든요. 거기에 마법 코팅이 돼 있어서 웬만한 충격엔 흠집도 안 생기는 제품이에요. 이 제품으로 등록해 드릴까요?”

“네. 그걸로 해 주세요.”

그녀가 이토록 열과 성을 다해 제품을 홍보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제품 하나를 판매할 때마다 그녀에게 떨어지는 커미션 때문이었다.

500만 원짜리 저가형 와치를 팔더라도 그녀에게 떨어지는 커미션이 10%나 되니 이토록 열과 성을 다할 수밖에.

‘그동안 스토어에서 미리 사 오는 각성자들이 많아서 용돈 벌이가 힘들었는데 이런 호구라니, 감사합니다. 호갱님-!’

그녀는 전보다 밝아진 미소로 강현의 헌터 와치 등록을 마무리했다.

“헌터 와치 등록 완료되셨고요. 각성자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고객님.”

와치를 건네며 싱그러운 미소를 짓는 그녀.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와치를 착용하고 자신의 정보를 확인하던 호구가, 지랄발광하며 진상으로 흑화했으니까.

“이거 뭔가 이상한데요.”

“네? 무슨…?”

“아니…. 제 직업이 아무래도 잘못 등록된 것 같아서요.”

그렇게 말하며 헌터와치를 자신에게 들이대는 호구.

하지만 마나가 없는 일반인에 불과한 그녀로서는 와치의 정보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각성자 테스트 때 마법 스캔으로 측정된 정보를 그대로 입력하는 거라 이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호갱…. 아, 아니, 고객님.”

“그럼. 제 직업이 정말 ‘이거’라고요?”

“고객님도 아시다시피 각성자 정보 보호법으로 인해 각성자에 대한 정보는 저희가 함부로 취급하거나 수정할 수 없어요.”

김미소는 그때까지만 해도 미소를 잃지 않고 호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설명이 호구의 발작 버튼을 누를 것일까?

“이런 씨발!!”

그녀의 앞에 있던 호구는 갑자기 얼굴이 시뻘게지며 온갖 쌍욕을 내뱉기 시작했다.

“으아아!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그의 외침에 가드가 달려오고 주변의 모든 시선이 호구를 향할 때까지만 해도 김미소는 얼굴을 굳힌 채 멍하니 호구를 바라볼 뿐이었다.

“큭. 크큭.”

그때였다.

“키킥.”

욕설을 내뱉으며 지랄발광을 하는 호구를 제압하던 가드 둘이 피식거리며 웃음을 토해내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으아아!!!”

바닥에 쓰러져 제압당한 채로 괴성을 질러대는 호구와 그를 제압한 채 피식피식 웃음을 터트리는 가드들.

그들을 바라보던 주변의 시선이 궁금증으로 물들어갈 때쯤. 한 가드의 입을 통해 그 이유가 밝혀졌다.

“크큭. 직업이…. 쿡. 청소부…….”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얼굴에 실소가 맺혔다.

“쿠쿡. 킥.”

“킥킥킥.”

그렇게 가드들에 의해 제압당한 호구가 각성자 등록실 밖으로 끌려나가고.

“푸하하하하!”

“하하하!”

“대체 무슨 짓을 해야 직업이 청소부가 되는 거야? 크크큭.”

“몰라-. 생긴 거 답지 않게 존나 깔끔한가 보지. 키킥.”

각성자 등록 실내에선 때아닌 웃음 폭탄이 터졌다.

***

“씨발.”

가드들에 이끌려 각성자 센터 밖으로 끌려 나온 나는 한동안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아.

“인생 좆같네. 진짜.”

들어가는 건 산소요. 나오는 건 한숨이라.

각성자의 직업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 한 것 아닌가?

던전 청소부 생활 10년.

각성했는데 직업이 청소부란다.

이건 누굴 원망해야 하는 걸까?

하늘을 보던 눈을 내려 다시 헌터와치에 떠오른 내 정보를 노려봤다.

[이름: 강현]

[등급: F]

[나이: 30]

[직업: 청소부]

…….

그 뒤로 이어진 스탯이라든가 연동된 계좌의 잔액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직업: 청소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오직 청소부라는 직업.

한참을 헌터와치를 노려보던 나는 기운 없이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내 각성자 등록을 도와줬던 담당자의 말처럼 각성자 테스트가 잘못될 리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는 내 눈에 옥외 전광판에서 흘러나오는 인터뷰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헌터계의 신성!

수원의 D급 던전 클리어 타임을 1시간이나 단축한 기린아.

수많은 수식어가 자막으로 도배되고 그 위로 떠오르는 날카로운 눈매의 미남자.

오늘 아침, 내가 청소를 하러 갔던 수원 정자동 D급 던전을 클리어했던 파티의 리더이자 빛의 성기사라는 직업을 가진 D급 헌터 신유빈이었다.

그의 얼굴과 함께 인터뷰 내용이 자막으로 띄워졌지만, 그 어디에도 오늘 아침 일어났던 사고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XX놈. 누군 뒤질 뻔했는데. 기록 세웠다고 쳐 웃고 있네.”

나도 모르게 불퉁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의 눈이 내게로 모였다가 흩어졌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옥외 전광판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늘 하나 없이 환하게 웃는 얼굴.

“더럽게 잘생겼네. 시발.”

아마도 저 남자에겐 고블린 한 마리 놓친 것 정도는 작은 헤프닝으로도 기억되지 않으리라.

누군 목숨이 오락가락했는데 말이지.

“하아. 일진 진짜 뭣 같네.”

나는 멈췄던 발걸음을 옮겨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피곤하지만, 택시를 탈 엄두는 내지 못했다.

오늘 하루 너무 많은 돈을 썼으니까.

***

다음날.

집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져 잠들었던 나는 이른 새벽 눈을 떴다.

새벽 다섯 시.

헌터 와치로 시간을 확인한 나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딴 게 500만 원이나 한다니….’

물론 센터 외부에 있는 각성자 상점에서 산다 해도 10여만 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청소부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고 보니 그 돈이 아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 인벤토리가 생겼으니 서포터라도 하면 그게 어디냐.’

최하 연봉 1억.

각성자 중 잡부로 취급받는 F급 서포터의 연봉이다.

물론 경력이 쌓인 서포터는 그 연봉도 늘어나지만, 최대치래 봐야 2억 안팎.

일 년에 수십억을 버는 헌터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S급 던전을 공략하는 S급 이상의 헌터들의 경우 일 년에 수백억에서 수천억까지도 번다고 하니 그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고 말이다.

“어째 각성을 해도 밑바닥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냐….”

일반인일 땐 인생의 막장이라는 던전 청소부로 일했고 각성을 하고 나니 직업이 청소부란다.

답답해지는 가슴으로 출근을 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머리에 털이라곤 하나도 없는 대머리 족제비였다.

“음. 강현 씨 출근했어요? 몸은 좀 어때요?”

사무실로 들어서는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남자의 이름은 이기적. 내가 소속된 헌터 협회 던전 클리닝 1팀의 1백 명에 달하는 청소부들을 관리하는 팀장이다.

한마디로 내 직속 상관인 셈.

머리숱 하나 없는 대머리에 쫙 째진 눈이 족제비를 닮아 대머리 족제비라는 별명으로 불리지만, 보이는 것과 다르게 대인배이며 내가 만난 사람 중 몇 안 되는 좋은 사람이기도 했다.

“어제 연락받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다행히 다음 순번을 기다리고 있던 헌터님이 힐링 포션을 사용해 주셨다고 하던데, 보니까 회복은 잘 된 것 같네요.”

눈앞에서 자신을 대머리 족제비라고 불러도 허허 웃고 마는 이 남자의 단점이라면 말이 많다는 것이다.

“아 참. 축하 인사를 깜빡했네요. 강현 씨 각성하셨다면서요. 축하드려요. 10년 동안 그렇게 고생하더니 강현 씨 인생에도 이제 빛이 드나 보네요. 정말 잘됐어요. 어제저녁에 전산으로 온 통지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예전엔 던전 청소부 중에 각성하는 사람이 많았다던데 요즘엔 드물었거든요. 저도 제 눈으로 본건 강현 씨가 처음이니까요.”

입에 모터라도 단것처럼 말을 쏟아내는 팀장을 따라 의자에 앉은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낼 때였다.

“저…. 그래서 말인데….”

“아 참. 강현 씨 아직 커피 안 마셨죠? 조금만 기다려요. 내가 커피 타 올게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서 탕비실로 간 그는 이내 뜨끈한 김이 올라오는 종이컵 두 개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잔을 내게 건넨 그는 내가 채 한 모금을 마시기 전에 다시 입을 열었다.

“강현 씨에겐 미안하지만, 헌터 협회 내규상 각성자는 던전 청소부 일을 할 수 없어요. 아시죠?”

“아. 네….”

조심스러운 그의 물음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협회 내규.

20년 전 각성자 특별법이 생겨나며 함께 생겨난 이 내규는 각성자가 던전 청소부 일을 하는 것을 전면 금지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이제 상류층으로 분류되는 각성자의 품위를 깎아내린다는 것이었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잡템과 부속물의 도난.

당시 헌터 협회 소속의 각성자 던전 청소부가 잡템과 부속물을 빼돌려 장물 거래를 하다가 경찰의 단속에 걸린 것이었다.

막 각성자 특별법이 발의된 상태라 협회에선 흐지부지 넘기긴 했지만, 그 이후 각성자는 던전 청소부로 일할 수 없다는 내규가 생겼다.

물론 그동안 던전 청소부로 일하던 다른 각성자들도 모조리 명퇴당했다.

“월급은 요번 달 말까지 근무한 거로 해서 지급될 거에요. 퇴직금도 마찬가지고요. 미안합니다. 강현 씨. 내규가 이렇네요.”

급격하게 굳어진 내 얼굴을 본 것일까?

나를 달래듯이 말을 하는 팀장.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알고 있었던 사실이니까요. 오늘은 짐 정리하려고 온 겁니다.”

그렇게 나는 맘에도 없는 말을 하며 커피를 홀짝였다.

나보다 15살은 많고 근무경력도 10년 이상 길면서, 내가 처음 입사한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욕설이나 반말 같은 건,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팀장.

그는 내게 본받을만한 어른이란 게 어떤 건지 처음 가르쳐준 사람이기도 했다.

어찌됐든 그런 팀장이었기에 다른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당장의 수입이 문제일 뿐, 자리만 구해진다면 지금보다 벌이는 좋아질 테니까.

그렇게 나는 백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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