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청소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귀하신 헌터님들이 사냥을 끝낸 던전의 뒷정리를 맡은 헌터 협회 소속의 던전 청소부.
고귀하신 헌터님들께서 값비싼 아이템들과 마석들을 챙기고 나가시면, 그분들이 남겨두신 몬스터의 사체와 부산물들을 정리해 던전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게 던전 청소부의 역할이다.
“쿨럭-.”
빌어먹을 기침이 또 나오네.
아무래도 나는 이제 곧 죽을 모양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방금 토해낸 기침에 붉은 피와 함께 내장 조각이 섞여 나왔으니까.
지금 내 몸에 새겨진 상처가, 하나, 둘, 셋…. 하여튼 존나 많다.
그 상처들에서 흘러내린 피가 이미 내가 쓰러져있는 동굴 바닥을 질퍽하게 적시는 중이다.
왜 이 꼬락서니가 됐냐고?
고귀하신 헌터 놈들께서 사냥을 마치셨는데 미처 처리하지 못하신 고블린 한 마리를 깜짝 선물로 남겨 놓으시고 가신 덕분이다.
씨발. 생각하니까 또 열 받네.
뭔 고블린 한 마리 때문에 죽기까지 하냐고?
게임 속에서나 고블린이 허접하지, 현실에서 만나면 고블린 허접이라고 말하는 놈들 100명 중에서 99명은 오줌 지리고 뒤질 거라는 데 내 모든 걸 건다.
하여튼 나는 던전을 청소하던 중에 고블린하고 마주쳤다.
나름 먹은 던전 짬밥이 있어 오줌 지리는 일은 면했지만 평범한 고블린 한 마리도 감당하기 힘든 마당에, 놈은 심지어 특이개체였다.
피똥 싸듯 엎치락뒤치락해가며 겨우 놈을 죽이긴 죽였는데 지금, 이 상황이 된 거다.
씨발….
“쿨럭…. 쿡.”
하아…. 졸리다. 눈이 감기네.
막상 죽음이 닥쳐오니까, 이왕 죽을 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발버둥이라도 쳐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쓰러진 고블린 사체가 보였다.
나는 내장이 흘러나오는 복부를 틀어쥔 채 놈을 향해 기어갔다.
놈이 가지고 있는 거적때기 같은 가죽옷이 아니라 놈의 허리에 달랑거리는 보라색 주머니가 내 목표다.
혹시 아는가? 포션이라도 한 병 들어있어서 기적적으로 내가 살아나게 될지?
부스럭.
꽉.
겨우겨우 놈의 주머니를 움켜쥐기는 했는데….
너무 졸리다.
아무래도 나 죽는 것 같은데…. 눈앞이 캄캄해진다.
이렇게 죽기는 싫었는데….
씨발. 다시 태어나면 절대 청소부 같은 건 안 할 거다.
방 청소도 안 할 거야….
씨발…….
1. 각성?
“으음.”
정신이 몽롱하다. 뻑뻑한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자 새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살아 있는 건가….”
얼마 만에 입을 여는 건진 모르겠지만, 까슬거리는 목구멍을 통해 흘러나온 내 목소리는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흐릿했던 초점이 서서히 돌아오자 주변의 사물들이 하나둘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병원…?”
새하얀 커튼과 천장. 그리고 삐삐 소리를 내는 기계음. 익숙하지 않은 소독약 냄새가 이곳이 병원이라는 걸 내게 알려주었다.
“살았구나. 하하.”
꼼짝없이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기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입에서는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흐흐흐.”
그렇게 한참을 웃다 보니 목 한가운데서 거슬리던 느낌이 사라졌다.
하아.
‘살았다.’
고블린에게 열 군데가 넘는 칼침을 맞았음에도 나는 어찌 된 영문인지 살아서 병원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손가락, 발가락, 팔과 다리. 하나씩 조심스레 움직여보니 정신을 잃기 전 입었던 상처가 거짓말인 것처럼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렇게 내가 몸 상태를 하나하나 점검하고 있을 때였다.
촤르륵.
침대를 둘러싸고 있던 얇은 커튼이 걷히고 간호사 복장을 한 젊은 여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아! 환자분 깨어나셨나요?”
앉아있는 나를 본 간호사는 잠시 놀란 눈을 하더니 이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어떻게 여기에….”
“담당 선생님 모셔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환자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물음엔 답도 하지 않은 채 커튼을 열어젖히고 나가버렸다.
쩝.
‘대답이나 좀 해주고 가지.’
말 한마디 할 틈도 없이 사라졌던 그녀는 잠시 후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잘생긴 의사와 함께 커튼을 열고 들어섰다.
“환자분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어요?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병원인 것 같네요. 이름은 강현입니다.”
뭐가 그리 급한 걸까.
의사는 커튼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이것저것 내게 질문하더니 이내 내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이리저리 작은 플래시를 들이댔다.
“바이탈 정상이시고 동공반사도 정상이네요. 강현님 여기 왜 오게 된 건지 기억하세요?”
그리고 이어진 친절하지만, 기계적인 물음에 나는 던전에서 일어났던 일을 떠올렸다.
“그…. 고블린과 싸워서….”
“다행히 기억도 정상이신 것 같네요. 던전에 쓰러져 계신 걸. 동료분들이 발견하고 외부로 옮기셨고요.”
내 말을 도중에 끊은 의사가 손에 든 차트를 보며 말을 이었다
“중급 힐링 포션을 사용해 치료했다고 적혀 있네요.”
“힐링 포션이요? 누가 저한테 포션을?”
중급 힐링 포션. 한 병에 500만 원이 넘는 비싼 물건이다. 돈 좀 있다면 일반인도 하나쯤은 지니고 다닐 수 있지만 남을 위해 선뜻 사용하기 쉽지 않은 가격인 것은 확실했다.
“아. 그 부분은 기억이 없으시구나….”
내 물음에 의사는 진료기록을 확인하더니 입을 열었다.
“저희도 자세한 기록이 없어서…. 정확한 건 회사 쪽에 문의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회사요?”
“차트상으로는 중급 힐링 포션을 사용해 외상 및 내상을 치료했다고 적혀 있거든요. 실질적으로 병원에서 한 거라고는 이거밖에 없습니다.”
의사는 그렇게 말하며 링거 줄을 톡 건드렸다.
“아. 네…. 그럼 링거 다 맞으면 퇴원해도 되는 건가요?”
“원칙상으로 하루 정도 입원해 계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이상징후가 없어서 원하신다면 퇴원하셔도 됩니다.”
의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퇴원하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말을 마친 의사는 간호사에게 몇 가지를 지시한 뒤 문을 열고 나가려다 잊고 있었던 게 생각난 듯 돌아섰다.
“아! 이건 제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퇴원하시거든 각성자 센터에 들러보시는 게 어떠실까요?”
난데없는 그의 말에 나는 어리둥절해져 그를 쳐다봤다.
“각성자 센터는 왜요?”
“강현님 몸을 보면 창상 및 자상이 열다섯 군데였는데, 이게 아무리 중급 힐링 포션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고작 반나절 만에 모두 회복될 만한 상처가 아니었거든요. 제 추측으론 강현님이 각성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각성자의 자체 회복력에 중급 힐링 포션 사용이라야 이해가 될 만한 경과라서요.”
조심스럽게 말을 마친 그는 싱그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곤 커튼 밖으로 나갔다.
‘아. 그래서 이렇게 친절했구나….’
“와-. 각성하셨다니 축하드려요!”
의사가 나간 뒤에도 남아 있던 간호사가 호들갑을 떨며 축하 인사를 건네왔다.
“아하하.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닌데요. 뭐.”
“아니에요. 오 선생님이 이런 건 정확하게 보시거든요. 오 선생님 말씀대로면 각성하신 게 확실하실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는 간호사의 눈빛이 반짝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세상에 각성자는 거의 준 귀족 대우를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 던전이 열리고 던전과 함께 각성자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80년.
처음 국민의 인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헌신했던 각성자들은 지금, 하나의 거대 권력이 되어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었고.
20년 전 처음 각성자 출신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로 20년 동안 각성자 출신의 대통령들이 연이어 당선되며 정치 권력마저 휘어잡았다.
그 후 도입된 각성자 특별법.
그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각성자는 실질적으로 일반인들의 위에 있는 귀족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최하급 F급 각성자라 해도 마찬가지.
일단 체력과 회복력부터 일반인들과 비교할 수 없이 강해지니까.
나는 부담스러운 간호사의 반짝반짝 눈빛 공격을 피하며 말했다.
“제가 조금 피곤한데….”
“어머. 내 정신 좀 봐. 좀 전에 깨어나셔서 정신이 없으셨을 텐데 제가 주책없이 떠들었네요. 죄송해요. 강현님.”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 그녀는 커튼을 열고 나가며 말을 이었다.
“한 시간 뒤에 다시 와서 바늘 빼 드릴게요. 그동안 편안히 쉬세요.”
촤라락.
그 말과 함께 커튼을 닫아주곤 사라진 그녀.
그렇게 간호사가 사라지자 주변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었어? 각성자래.”
“와-. 인생 로또를 여기서 보네.”
“등급도 모르는데 로또는 무슨….”
“F급만 돼도 어디야?”
“하긴 F급 서포터만 되도 할 일이 널려있지. 요즘같이 취업하기 힘든 시기에 그것만 해도 로또가 맞네.”
“당연하지. 최하 연봉 1억은 깔고 갈걸?”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 인생이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연봉 1억.
하루 열두 시간 주 육일을 근무하고 받는 연봉이 4천이 조금 안 되는 지금, 1억이라는 연봉은 꿈만 같은 숫자였다.
‘정말. 내가 각성을 한 건가?’
그 의사의 말대로 정말 내가 각성을 한 게 맞는다면 저 사람들의 말처럼 로또를 맞은 게 맞았다.
‘무(無)수저 인생 30년 만에 이렇게 빛이 드는 건가?’
나도 모르게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흐흐흐.”
입 밖으로 새어 나온 웃음소린 덤.
주변에서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자기들이 뭐 어쩌겠는가.
‘부러우면 니들도 각성하던가!’
***
링거를 다 맞고 퇴원 절차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새 오후 4시.
병원비는 회사에서 지급해 주었기에 나는 아무런 부담 없이 퇴원 절차를 마칠 수 있었다.
“씁. 시간이 애매한데.”
각성자 센터는 신규 각성자 등록 및 각성자 관리를 전담하는 국가 기관이다.
그러다 보니 오후 여섯 시면 정확하게 문을 닫는다.
큰 길가로 나오자 정차한 채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이 보였다.
‘택시를 타?’
평소라면 택시비 한 푼에 손이 벌벌 떨렸겠지만, 각성했다고 생각하니 택시비도 그리 겁나지 않았다.
‘아니야. 이왕 타는 거 차라리 드론을 타자.’
생각을 마친 나는 택시들을 일별하고 드론 정류소로 걸음을 옮겼다.
핸드폰으로 평생 쓸 일이 없을 것 같았던 드론 콜링 앱을 실행하고 목적지를 입력했다. 드론을 부른지 1분여가 지나자 핸드폰에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내가 부른 드론이 1분 뒤에 도착한다는 알람이었다.
그렇게 1분 정도 기다리자 타원형의 날렵한 동체를 자랑하는 새하얀 드론 한 대가 내가 기다리고 있는 정류소로 내려앉았다.
휘이잉-! 푸쉭. 후웅-!
기체를 뿜어 내며 버티컬 랜딩을 완료한 매끈하고 하얀 동체의 드론은 3m 정도의 길이에 1.5m 정도의 폭을 가졌다. 정식명칭은 MTC(Magic Technology Car). 마법과 과학 기술을 합쳐 만들어낸 마도 과학의 결정체다.
뉴스에서 들은 바로는 10년 전 이 드론을 만들어낸 메이커는 지금 세계 10대 부자 중 한 명이 되었다고 한다.
그때 내가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내가 각성만 하게 된다면 이런 거 저런 거 만들어내 저 사람처럼 부자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하고 말이다.
-탑승해 주십시오. 고객님.
내가 드론의 외관을 보며 감탄을 하고 있을 무렵. 드론의 옆구리 부분이 스르륵 사라지며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선으로 비스듬하게 뉘어있는 좌석을 제외하면 일체의 내장을 찾아볼 수 없는 깔끔한 하얀색 내부 디자인.
나는 대충 흙이 묻은 발을 털고 들론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운행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기계음이 석인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드론은 허공으로 떠올랐다.
“와-아-!”
그리고 그 순간 내 입 밖으론 탄성이 터져 나왔다.
드론이 하늘로 떠오르고 결벽증이 생각날 정도로 새하얗던 내부가 투명해지며 도시가 내 발아래 펼쳐진 것.
푸른 하늘과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5월의 태양.
높이 솟은 빌딩 숲 사이를 비행하던 드론은 이내 고도를 더 높였다.
-장거리 운행 모드로 전환합니다.
***
5분.
수원에 있던 새한병원에서 서울 강남의 각성자 센터까지 도착하는데 걸린 시간이다.
택시를 타고 아무리 빨리 쏴도 1시간은 걸릴 거리를 드론은 불과 5분 만에 주파했다.
말 그대로 과학력이 아닌 마도 과학의 승리였다.
“이래서 다들 드론. 드론. 하는구나.”
끝내주는 경치는 옵션이고 말이다.
-요금이 자동 정산되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물론 그만큼 비싸기는 했지만 말이다.
“와-씨. 오십만 팔천이백삼십 원…. 실화냐?”
아무리 연료로 마나석을 소모한다지만 어마어마한 금액이 아닐 수 없었다.
택시요금에 비하면 무려 열 배 가까이 비싼 금액이었으니까.
“그 사람이 10대 부자가 된 이유가 있었네.”
그렇게 알림 문자를 보고 탄식을 터트리던 나는 이내 몸을 돌려 하늘을 뚫을 듯이 높게 솟은 빌딩을 바라봤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843m의 높이를 자랑하는 각성자 센터였다.
건물만 보더라도 현재 각성자들의 위상이 어느 정도 인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더럽게 높네.”
드론을 타고 오면서도 보고 놀랐다.
건물꼭대기가 하늘을 나는 드론보다 위에 있어서.
일반인들인 이 각성자 센터를 바벨탑이라 불렀다. 하늘에 닿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담았다면서.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나도 그 일반인 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상관이 없었다.
이제 나도 하늘에 닿고자 하는 인간 중 하나가 될 테니까.
그렇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다독이며 나는 각성자 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두 시간 후.
센터를 나온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손목에 찬 헌터 와치(hunter watch)를 노려봤다.
[이름: 강현]
[등급: F]
[나이: 30]
세상에 나같이 복 없는 놈이 또 있을까.
헌터 협회에 소속돼 던전 청소부로 일한 지 10년.
드디어 나도 각성을 했다.
빌어먹을.
각성하긴 했는데.
인생 씨발…직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