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외전-30화 (430/430)

외전 30화(完)

프로그램 출연을 나 혼자 결정할 수는 없는 일.

모노크롬의 스케줄이라면 아티스트실이 결정하지만 스튜디오 어스에 들어온 섭외도 있었기에 나는 우리의 사장님, 송 피디를 찾아갔다.

“흐음, 음악 방송이요. 확실히 회사를 알리기에는 방송이 좋은 기회죠.”

“한 회사가 모든 출연진을 감당할 수는 없으니까 여러 곳을 알아볼 생각이래요. 저희는 협업하는 여러 프로듀싱 팀 중 하나가 되는 거죠.”

시간만 있다면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스튜디오 어스는 설립한 지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은 회사.

그렇지 않아도 송 피디는 회사를 더 알려서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싶어 했으니 그 목적에 부합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PD님을 안 좋아하시던 거로 기억하는데 말입니다. 뭐랬더라. 그 무슨 또라…….”

“저, 저는 그런 소리 안 했는데요?”

“이사님이 그랬다고는 안 했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라 혼자 찔린 사람처럼 반응해 버렸잖아.

송 피디는 임주미 PD와 직접 엮일 일이 없어서 잘 모르는 줄 알았는데, 회사 내에 도는 이야기로 그녀의 악명을 들은 모양이었다.

“임 PD님이 말투가 좀 그렇긴 한데…… 그거 빼고 보면 기획은 잘하시는 것 같아요. 마지막까지 책임지시고.”

“의외로 친하신가 봅니다?”

어째서인지 자꾸 임 PD와 동류로 엮이는 것 같단 말이야.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여러 사람이 모이면 그중에 이상한 사람이 일정 비율 포함되어 있다는 법칙이 있다.

만일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면 그 이상한 사람이 본인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런데 스튜디오 어스에는 딱히 이상한 분이 안 계신데…….

‘……혹시 내가?’

그래서 자꾸 임 PD와 엮이나?

왠지 내 입으로 아니라고 확언할 수가 없어서 나는 “하하…….” 하며 대충 웃어넘겼다.

다행히 송 피디는 나와 임주미 PD를 엮고 싶은 건 아니었는지 화제를 바꿨다.

“준비 과정까지 촬영하면, 우리 프로듀서들 얼굴도 나가겠죠?”

“방송에 노출되는 건 부담되실까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송 피디는 직접 보라면서 나를 프로듀서들의 작업 공간으로 데려갔다.

회사 소속 프로듀서들은 일정하게 출퇴근하지 않아서 프로듀싱룸은 자유로운 공동 작업실처럼 운영되고 있었다.

회사에 나와 있는 프로듀서들은 마침 휴게실에 모여 늦은 점심 메뉴를 고민 중이었다.

송 피디는 그들에게 다가가 대뜸 화두를 던졌다.

“누구 방송 나가고 싶은 사람?”

아니, 방송 출연 지망자를 이렇게 뽑는다고?

우형과 해랑이 곡 작업을 할 때면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듯이, 프로듀서들도 작업실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방송에 나가기 귀찮아하던 성운과 비슷한 성향인 사람이 많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자세한 설명도 듣지 않고 바로 손을 드는 사람이 있었다.

“저요! 스타 프로듀서! 되고 싶습니다!”

스튜디오 어스 소속 프로듀서들은 모노크롬의 앨범 작업에 총동원되는 경우가 많아서 나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인싸 기질이 있어서 한이와 꽤나 죽이 잘 맞던 프로듀서였는데, 그가 눈을 반짝이며 “저 방송 내보내 주시는 건가요?”라며 물었다.

송 피디는 그를 가리키며 나를 돌아봤다.

“보셨죠? 나갈 사람이야 얼마든지 있습니다.”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프로듀서 쪽은 송 피디가 직접 지휘하고 있어서 몰랐는데 스타의 꿈을 꾸는 사람이 프로듀싱 부서에도 있었다니.

하긴 평범하게 회사 다니는 일반인 중에도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가수와 자주 만나는 창작 직종 종사자가 방송 출연을 반기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

“조만간 아티스트실이 담당할 분이 많아질지도 모르겠어요.”

“그때 되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옆에 있던 프로듀서도 방송국에 놀러 가고 싶으니 자기를 매니저 삼아 달라며 웃었다.

구성원이 각자의 꿈을 꾸는 회사라니 정말 이상적이잖아.

생각지 못하게 스튜디오 어스가 조금 더 좋아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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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클이들 새 앨범 다크할 것 같지 않냐?

삘이 오는데.. 스포요정 하니 나와주세요

└우형이 솔로활동 끝나고 다음 활동은 다른 모습일 거라고 했으니까^^

└그것도 있다 저번에 준해 뷰이라이브에서 지금 작업실 지박령 해랑이라고 한 거ㅋㅋㅋ

└어? 설마 이번 타이틀곡? 김칫국 마신다??

└스튜디오어스 요식업으로 업종 변경해야돼 김칫국 맛집이야 미슐랭

└하.. 나 어둠의 자식이라 주기적으로 다크 충전해줘야 함

└재미니가 퍼뜨린 게임 다들 너무 열심히 하길래 난 또 게임 컨셉인 줄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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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그 식스라는 후배, <뮤직더라이브>에서 한 번 더 만났거든요.”

임주미 PD의 기획과 첫 출연진 예정 라인업을 모노크롬에게 말해 주자 우형이 반가운 이름이라도 들은 듯이 대답했다.

우형과 활동이 겹친 트웬티스퀘어는 출연한 음악 방송이 <뮤직더라이브>뿐이었다.

‘<뮤직더라이브>가 방송 시간이 가장 길어서 출연 허들이 낮은 편이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우형의 눈썹 끝이 점점 내려가는 걸 보니, 아무래도 솔로 활동을 종료한 이후에도 계속 마음에 담고 있었나 보다.

“최근 1년간 1위 후보에 못 들어본 그룹을 우선한다니까, 방송이 시작하면 그쪽에도 출연 요청이 갈 것 같아.”

“그럼 또 만날 수 있겠네요.”

나갈지 말지 멤버들끼리 토론할 필요도 없이 출연은 당연하게 정해졌다.

첫 1위를 달성하기도 전부터 후배들을 도와주려고 애썼던 모노크롬다운 결정이었다.

그런데 준해는 출연보다 다른 게 걱정인 듯했다.

“사실 임주미 PD님은 잘 모르겠어요. 배명희 선배님이 저희한테 임 PD님 가까이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거든요……. 그런데 이런 기획 만드시는 거 보면 나쁜 분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후배한테 그런 조언을 몰래 해 주셨다니.

적의 적은 같은 편이라고, 우리는 임주미 PD와 같은 편을 맺은 적이 있었지만. 배명희만큼은 임주미 PD에게 절대 곁을 내주지 않았다.

<상상 카페>도 임 PD 때문에 계속 거절하다가 모노크롬을 보고 출연을 결정했으니까 말이지.

임주미 PD의 성격을 아는 다른 멤버들도 준해의 혼란스러운 심정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한이가 뭔가 떠오른 듯이 입을 열었다.

“<상상 카페> 김 작가님이 임 PD님이랑 계속 같이 일하신다면서요. 알고 보면 김 작가님이 실세인 거 아닐까요?”

“……일리 있는데?”

상상 카페를 인수하려는 것 같더니 결국 임주미 PD와 함께 케이블 방송사로 이적한 것도 그렇고.

임주미 PD의 삐죽삐죽한 소재를 아름답게 완성하는 건 사실 김 작가가 아니었을까.

새로 만들 음악 방송에서도 페어로 일한다고 하니, 만일 임주미 PD가 감당이 안 되어도 김 작가의 뒤에 숨으면 어떻게든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안무까지 수정할 일은 많지 않을 것 같긴 한데, 필요하다면 팀 미로한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건 재민이 네가 단장님들한테 어떤지 물어봐 줄래?”

우형의 솔로곡이 댄스곡이 아니어서 불만이 쌓여있던 재민은 댄스 얘기에 반가운 얼굴이 되었다.

“재주회 회원이 더 늘어날 수도 있겠네요.”

“재주회가 뭐야?”

“재민 주식회사요.”

그건 송 피디가 스튜디오 어스의 회사명을 공모할 때 재민이 냈다가 바로 탈락한 안이잖아.

그 이름이 갑자기 왜 나오나 했더니 옆에서 해랑이 “재민이 댄스 크루요.” 하고 설명을 해 줬다.

‘팀 미로의 ‘미로’도 민후 씨, 로아 씨 이름을 섞은 거라고 들었는데.’

그걸 보고 재민도 제 이름을 넣어 크루명을 지은 건가.

재민 주식회사 회장이 된 재민은 여기에 다른 뜻까지 붙였다.

“재주가 뛰어난 사람들이란 뜻이에요. 재주회.”

“주식이랑은 상관이 없는 거지?”

“진짜 주식은 아니고, 활동 열심히 하는 회원한테 새 회원 추천권을 한 장씩 주려고요.”

그건 다단계 아니야……?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나 재민이 즐거워 보여서 그 표현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기로 했다.

세계 최초 다단계 댄스 크루도 나쁘지 않지.

“아무튼 임 PD님도 아직 기획 단계라 시간이 필요하고, 우리도 앨범 준비가 우선이니까 나중에 더 자세히 얘기 나누기로 했어.”

오늘도 섭외 사실을 전달하려고 모인 게 아니라, 모노크롬의 새 앨범 기획 때문에 모인 것이었다.

우형이 솔로로 활동하느라 바쁠 때 멤버들은 차근차근 컴백을 준비했다.

‘예전 같았으면 우형이가 타이틀곡 작곡에 전념하느라 솔로 활동 이후에 쉬지도 못했을 테지만.’

이번 앨범엔 기념할 만한 일이 있다.

앨범 기획 회의로 들어가자 해랑이 바로 주 발표자로 나섰다.

“저번에 들려드린 데모 중에 세 번째가 괜찮은 것 같아서 더 이어 봤는데…….”

그가 노트북으로 힙합 비트가 가미된 데모곡 파일을 재생시켰다.

기념할 일이란 것은 바로, 해랑의 타이틀곡 작곡가 데뷔!

해랑도 만들어내는 곡의 범위가 넓어졌고, 모노크롬의 위치를 생각하면 마이너한 감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을 내놓든 대중들은 모노크롬의 색으로 받아들일 테니까.

그래서 안심하고 타이틀곡을 맡겼는데, 해랑은 기대 이상의 결과를 뽑아냈다.

“흑화한 악동. 딱 그 느낌이야.”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이전 회의에서 나온 결론이 바로 이것이었다.

데뷔곡인 이 몇 년이 지나 시퀄로 이어졌듯이, 악동 컨셉도 요즘 모노크롬의 개성을 가미해서 다시 살려보자.

유행은 돌고 돈다고, 예전에 알았던 맛을 요즘 다시 접하면 신선하게 다가올 때가 많단 말이지. 아는 맛이니까 거부감도 없고.

일렉 기타 사운드로 시작하는 해랑의 데모곡은 컨셉을 확실히 나타내고 있었다.

“저는 좋은데, 컬러즈가 정말 악동을 좋아할까요?”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까딱까딱하며 데모곡을 듣던 우형이 내 얼굴을 보며 질문했다.

내가 악동을 은근슬쩍 거부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은 모양이었다.

“저번에 미니크롬 패션쇼 멤버전 할 때도 악동 의상이 1위 했었잖아.”

그래서 패션쇼 시상식 영상 촬영일에 악동 스타일 의상을 입혔는데, 컬러즈의 반응은 생각보다 더 뜨거웠다.

[와. 내가 몇 년 전으로 회귀한 줄.]이라며 놀라는 반응이 먼저 나왔다가 이내 [악동의 완성은 모노크롬]이라며 즐기던 그들.

그리고 당시에 밝혀진 사실인데 악동 미니크롬을 구현한 건 이번 타이틀곡 작곡가인 해랑이었다.

‘악동을 대놓고 꺼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의외로 악동 장인이었어…….’

어떻게 보면 악동 컨셉의 가장 큰 피해자가 해랑이었다. 새빨간 염색모에 미모가 묻힐 정도였으니.

원래 무슨 일이든 당한 사람만 못 잊고 마음에 담고 있다던데.

‘해랑이도 그래서 항상 악동을 생각해왔던 건 아닐까…….’

아니, 악동을 꺼내놓기로 한 시점에 이런 생각은 그만하고.

악동이 모노크롬의 주요 키워드라 악동이라고 표현했지만, 모노크롬은 계속 아이로 있기에는 너무나 많은 성장을 거쳐왔다.

그러니 이번 컨셉은 악동이 아닌 악당.

‘매력 있는 빌런이 기억에 더 오래 남는 법이니까.’

모노크롬 착한 줄 알았는데. 이제는 악당도 소화할 연차가 되었다.

다만 이건 비주얼 컨셉에 관한 이야기고, 곡의 내용은 이전의 악동을 따라가지 않았다.

“이사님이 가끔 하셨던 말이 생각나서.”

“내가? 무슨 말을 했더라.”

“모노크롬은 태풍의 눈 같다고요.”

그중에서도 해랑이 특히 조용히 사건을 몰고 다니는 느낌이라 그렇게 말했던 것을 기억한 모양이었다.

모노크롬의 기획 담당 준해가 해랑의 말을 이어받았다.

“그래서 제목도 그쪽으로 잡아봤는데요.”

“태풍이나 폭풍전야 같은 거?”

어느 쪽이든 컨셉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제목이 모노크롬의 머릿속에 있었다.

“<블랙홀>이에요.”

“블랙홀이 태풍의 눈을 닮았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해랑이 종이에 블랙홀의 형태를 그렸다.

모노크롬의 블랙, 거기에 모노크롬이 자주 차용하던 우주 소재까지.

이보다 더 모노크롬다울 수는 없었다.

“그럼 안무에 윈드밀 들어가?”

“재주회 회장님. 잠시 진정 좀.”

한 점을 축으로 주변이 회전하는 블랙홀 형태를 보더니 재민은 바로 춤 동작을 떠올렸다.

한이가 의욕에 앞선 재민의 어깨를 붙잡았다.

솔로 2집에 제이제이의 댄스 교실이 예약된 우형도 불안한 눈빛이었다.

각 잡고 댄스곡을 준비한다고 하면 어디까지 시킬지 모르니.

아무튼 나는 이 블랙홀이란 컨셉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쭉 그래왔어.’

돌고 돌아서 악동으로.

돌고 돌아서 결국은 다시 마이 엔터로.

내외부의 여러 풍파 속에서도 모노크롬은 그 중심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물 들어올 때 후룸라이드를 즐기자는 속담처럼, 주변에 휘몰아치기 시작한 새 태풍도 놀이기구 타듯이 즐겨보면 어떨까.

우리는 기꺼이 태풍의 눈이 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외전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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