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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외전-27화 (427/430)

외전 27화

“다시 뵙게 된 분들도 많은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최 비서…… 이제 최 팀장이 된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온화하기만 한 표정이었다.

‘불과 그저께 만나서 다른 회사에 취직한 것처럼 말해놓고는!’

스카우트했다던 사람이 우리 사장님이었다는 이야기를 쏙 빼놓다니!

물론 송준오 피디가 최 비서에게 이직 의사를 물어봤다는 이야기는 듣긴 했지만!

거절했다고 들었는데, 아예 가능성을 차단한 게 아니라 보류였나. 이렇게 시간차 공격이 들어올 줄이야.

상상도 못 한 새 직장 동료의 등장에 멍하니 서 있는 사이, 송준오 피디와 그는 다른 팀에 인사하러 떠났다.

“오, 최 비서님까지. 이사님이 데려오셨어요?”

“아니요…….”

민형은 내가 자신을 매니저로 스카우트한 것처럼 최 비서도 데려왔다고 생각한 모양.

하지만 이번엔 내가 최 비서를 회사에 꽂아 넣은 게 아니었다.

‘물론 실장 낙하산보다는 사장 낙하산이 낫긴 하지.’

최 비서를 스카우트한 송 피디. 송 피디를 스카우트했던 나. 나를 스카우트한 모노크롬. 스카우트로 돌고 도는 스튜디오 어스.

이쯤 되면 누가 누굴 데려오든 크게 상관없는 듯도 했다.

“이사님이랑 팀이 갈리는 건 의외네요. 맨날 붙어 계셨잖아요.”

“그런데 사실 아티스트 관련 업무는 비서 통하지 않고 제가 직접 나설 일이 많았으니까……. 최 비서가 하던 일은 경영팀에 가까운 것 같긴 해요.”

“하긴.”

민형은 팀 배치가 이해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관해서는 내가 잘 알리라고 생각했는지 대화를 듣고 있던 윤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사님도 최 비서님이 들어오시는 건 모르고 계셨어요?”

“네. 심지어 얼마 전에 만날 일이 있었는데 정말 한마디도 안 했거든요.”

“이사님 모르게 입사한 거라면…….”

윤희는 뭔가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송 피디님이 일부러 경영팀에 배치하신 거 아닐까요?”

“일부러요?”

“이사님 성향을 아니까.”

내 성향?

그 성향이 뭔지, 그게 경영팀 팀장과 무슨 상관인지 짐작이 가지 않아서 눈만 깜빡이자.

“아티스트실에서 낸 예산안, 경영팀 거쳐서 승인되잖아요.”

“아. 일리 있네.”

민형도 이해했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내 탕진 성향을 말하는 거야?!

“예전엔 그럴 일이 있어서 손이 좀 컸던 거지, 여기서는 막 탕진하고 낭비하고 그러지 않는데요?!”

“그런데 사장님 입장은 또 어떨지 모르죠.”

윤희는 단순한 농담이었는지 웃었지만, 나는 왠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마 시절에 내가 예산을 마구 높여 부르면 그걸 정갈하게 정리했던 게 최 비서였으니까!

돈 남으면 다른 데 더 쓰면 된다거나, 필요 없어도 일단 많이 불러놔야 다음에도 많이 쓸 수 있다거나…….

2년 동안 그런 내 주장을 들어왔던 최 비서.

나의 과도한 지출 계획을 단속하기에 그보다 더 적임인 인재는 없었다.

‘사장님……. 탕진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셨잖아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전처럼 회삿돈을 펑펑 써먹고 있는 건 아니지만!

아마 그건 송 피디도, 직원들도 알고 있기에 윤희도 이렇게 농담 삼아 얘기하는 거겠지만!

최 비서와 2년이나 같이 일했지만, 중요한 비밀을 털어놓기 전까지는 1년 넘게 묘한 거리감이 있었다.

누구 편인지 알 수 없어서 오히려 거리가 멀어진 적도 있었고…….

그리고 오늘 말없이 이런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펼치는 그를 보니, 나름 잘 안다고 자부했던 내 생각을 조금 고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

“저기……요, 최 팀장님.”

최 비서, 아니, 최 팀장은 입사 첫날부터 업무를 파악하느라 바빠서 따로 대화할 시간이 없었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나는 최 팀장과 독대할 수 있었다.

아티스트실이 지금 어떤 일들을 진행 중인지 알려주는 게 내 일이었으니.

내가 말끝에 ‘요’를 붙이자 그는 업무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내 얼굴을 봤다.

“편하게 말씀하시죠.”

“아니, 그래도, 요.”

화면 속 캐릭터로만 보던 그와 모노크롬이 진짜 사람인지 가상 캐릭터인지 구별이 안 되던 시기.

플레이어의 자아에서 자연스레 튀어나온 반말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런데 이제 내 비서도 아니고.’

이 세상이 게임을 벗어난 것처럼, 그도 튜토리얼 비서 캐릭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그러니까 다 떠나서, 전 직장 동료를 새 직장에서 만났을 때 가장 적절한 말투가 무엇일까.

사내 방침이 정해져 있다면 그대로 따르면 되겠지만, 스튜디오 어스는 창작자가 많아서 일반 회사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오래 같이 일한 프로듀서들끼리는 말을 놓는 것도 일상.

그래서 하루 동안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은 ‘일단은 ‘요’를 붙이는 게 낫겠다’.

“아무래도 여긴 뉴마가 아니니까……요.”

나도 이제 대표의 힘을 숨긴 이사가 아니고.

최 팀장은 내 말투 변화에 잠시 생각하는 얼굴이더니, 결론을 냈는지 입을 열었다.

“뉴마에서 온 직원분들이 많은데, 갑자기 말을 높이시면 아티스트실과 경영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돌지도 모릅니다.”

듣고 보면 일리 있는 말이었다.

뉴마 시절보다 회사 분위기는 느슨해졌는데 나만 갑자기 격식을 차리면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지.

“그, 그럼 일단 상황을 보고……?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일하다 보면 거리가 필요할 수도 있고…….”

“그러지 않길 바라겠습니다.”

가볍게 대꾸한 최 팀장은 다시 책상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런데 하필 그의 시선 끝에 있는 건 아티스트실의 지출 관련 서류.

거리가 멀어질지 말지는 내 업무 처리 현황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것 같잖아.

“송 피디님이 모노크롬은 회사의 기둥이니까 어느 정도 탕진은 괜찮다고 하셨는데…….”

“그렇습니까?”

“그렇다고 회삿돈을 아무 데나 막 펑펑 썼다는 건 아니고.”

최 팀장이 별말 없이 조용해서, 나는 괜히 혼자 찔린 사람처럼 주절주절했다.

일반 직장인도 감사팀에서 사람이 나오면 잘못도 없는데 괜히 긴장하게 되잖아? 그런 기분이란 말이지.

내가 방어적인 멘트를 한 다섯 가지 정도 중얼거렸을 때, 서류를 보던 최 팀장이 고개를 들었다.

“저는 이사님 업무를 평가할 입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사님께 회사에 관해 배우는 중이죠.”

“그래도 최 팀장 눈에 차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지금 내가 하는 일의 기초를 알려준 게 바로 최 팀장이어서, 숙제를 검사받는 기분이 되는 바람에 그만.

하지만 입사 첫날부터 선생님처럼 여기면서 부담을 주면 안 되겠지.

“쓸데없는 말이 좀 많았나. 조용히 있을, 아니, 집중하고 일 얘기 할게.”

최 팀장은 그런 내가 이상했는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이사님은 회사에선 일 얘기만 하는 게 편하십니까?”

“으응? 아니. 예전처럼 이 얘기, 저 얘기 꺼내면 최 팀장이 정신 사나울까 봐.”

“왜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지금은 상사랑 비서 관계가 아니니까……?”

캐주얼한 차림의 직원들 사이에서 변함없이 직장인다운 셔츠 차림을 고집하는 그는 내 기억 속에 있는 최 비서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가 지금 내 비서가 아니니까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게, 그에겐 이상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스튜디오 어스에 들어온다고 나한테 말 안 한 것도 업무에 친분이 엮이면 좀 그래서, 회사에선 완전히 비즈니스적으로 대하려고 그런가 했지…….”

“아닙니다.”

내가 그의 입사에 관해 혼자 생각한 점을 이야기하자 최 팀장은 정말 생각도 안 했다는 듯한 눈이 되었다.

“그건 그냥…… 재미있는 일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물론 좋아하긴 하지만…….”

윤희가 나를 극단적인 재미주의자라고 평했던 게 생각났다.

하지만 내가 재미를 추구하는 건 주로 모노크롬에게서 컨텐츠를 뽑아낼 때였지.

‘……그러니까 본인은 서프라이즈 입사가 재밌었다는 거야?’

설마 내 반응을 재미 컨텐츠로 삼는 사람이 나타날 줄은.

같이 일한 지도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알아갈 게 많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

“한이 형 불쌍해.”

“내가 왜 불쌍해?”

“형 차이고 있잖아.”

휴게실에서 이런 얘기가 들려오길래 무슨 소린가 했더니.

‘드라마 얘기였군.’

불쌍하다는 건 한이가 아니라 한이가 연기한 캐릭터였다.

준해가 핸드폰으로 한이의 드라마를 보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감상을 전해주고 있었다.

한이의 드라마도 후반부에 돌입했다.

로맨스 드라마의 후반부는 메인 커플에 집중되어야 하니 서브 남주 역할인 한이는 슬슬 퇴장할 시기였고.

그에 따라서 촬영 스케줄이 줄어든 한이는 이렇게 회사에 나와 있었다.

“걘 자기가 불쌍하다고 생각 안 해. 아는 동생으로 지내는 게 최선이라는 걸 옛날부터 알고 있었거든. 그러니까 최선의 결말로 가고 있는 거지.”

그 누구보다 배역을 잘 파악하고 있는 한이는 마치 친한 친구의 이야기를 해주듯이 캐릭터의 심정을 대변했다.

준해는 그런 한이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정신을 차렸다.

“……와. 나 순간 과몰입할 뻔.”

스릴러 드라마에서도 활약했던 한이의 멜로 눈빛은 멤버들에게 통하지 않았는데.

지금 준해의 반응을 보니 한이의 눈빛이 한 단계 레벨업한 듯했다.

‘역시 보컬 레벨이랑 같이 연기 레벨도 오른 게 아닐…… 아니, 레벨 생각 그만!’

그냥 조연도 아니고 서브 남주.

최근 방영분에서는 서브 남주의 서사가 절정에 이르러서 서브병을 호소하는 시청자들이 속출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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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백퍼 눈치 깠음

저 눈을 보면 자기 좋아하는 거 몰랐을리X

└ㄹㅇ로 그런 것 같아서 더 짠내나ㅠㅠㅠㅠㅠ

└눈빛이 고백이나 마찬가지인데요..

└메인커플 확실한 건 알겠는데 제발 행복하게 해줘

└서브는 서브라서 완성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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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즈는 드라마를 보다가 너무 슬프면 한이 본체의 예능 컨텐츠 영상을 번갈아 보며 마음을 치유하고 있었다.

한이 본체에 관심을 보이는 시청자들도 모노크롬 채널로 모이는 중이고.

그럼 회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오늘 올라갈 거야. 전에 찍은 커버 영상.”

“아아, 그것도 있었죠. 드라마 촬영 들어가기 전에 찍어서 깜빡 잊고 있었네.”

“가장 효과적인 업로드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이게 그건가요. 두목님의 속담 사전. 물 들어올 때 후룸라이드를 즐기자.”

역시 내가 키운……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을 봐와서 잘 아는구나.

한이의 연기력은 의심할 것도 없었으니 시청자들의 반응을 당연히 끌어낼 줄 알고 커버 영상을 미리 찍어놨다.

한이가 연기한 서브 남주에 이입해서 들으면 더 아련한 사랑 노래로.

일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어가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 나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드라마 얘기 중인 둘 옆에서 내내 조용히 있던 재민이었다.

“재민이 너도 한이 드라마 봐?”

“아뇨. 저는 어제 본방 봤어요.”

취미가 드라마, 영화 감상인 재민이 드라마 얘기엔 참여 안 하고 다른 데 집중하고 있다니.

의외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가 보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뭐 하는데?”

“요즘 컬러즈가 한다고 알려준 게임인데요.”

재민은 그렇게 말하며 내게 화면이 보이도록 스마트폰을 들었다.

“아이돌을 키우는 게임이라길래 저도 한번…….”

“……안 돼!”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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