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6화
내 핸드폰 아닌가? 맞는데.
핸드폰을 이리저리 살펴봤으나 분명 내 핸드폰이 맞았다. 케이스에 흠집이 난 것까지 내 기억과 똑같았으니까.
최단우라는 사람은 내 번호를 잘못 추가했는지 주기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최단우: 대표님?]
[최단우: 대표님. 오늘 출근은 어떻게 하십니까?]
대표님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그의 소재를 찾는 정체불명의 인물.
이 정도면 대표란 사람, 잠적한 거 아니야?
부하 직원의 간절함이 느껴져서 ‘번호 잘못 저장하신 것 같아요’라고 대답해 주려고 메시지 알림을 눌렀는데.
“어……?”
메신저 화면이 켜지자 알림창에 보이지 않던 그의 프로필 사진이 보였다.
이 프로필 사진. 본 적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아주 낯이 익다.
잠시 행동이 멈춰버린 내게 상황을 파악할 시간도 주지 않고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최단우: 대표님. 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역시 뭔가 이상하다.
난 거실 창문으로 밖을 살폈다. 주변은 일반 거주지였고, 여긴 호텔이 아니라 누군가의 집이었다.
핸드폰의 연락처는 텅 비어 있었고 메신저의 기존 대화 상대는 전부 (알 수 없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최단우라는 사람 빼고.
얼마 전에 퇴사한 회사 이름을 검색해 봐도 검색 결과 없음.
그걸 보고 나는 불안과 동시에……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내가, 그 회사에서 완전히 벗어났구나.’
전 회사 동료도, 상사도, 전부 이곳에선 알 수 없는 사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지?’ 하는 머리와, ‘원하던 대로 된 거 아닌가?’ 하는 마음이 충돌했으나.
나는 쉽게 마음이 이끄는 대로 기울었다. 무기력하던 정신에 활력이 도는 듯도 했다.
그와 동시에.
[<퀘스트 발생!>]
내가 이 세계를 인지한 것에 보상이라도 주듯이 스마트폰 화면에 알림이 떠올랐다.
‘내가 여기서 할 일이 있는 거야.’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려는데, 불시에 들려온 초인종 소리에 나는 금방 다시 움츠러들었다.
“대표님?”
반응이 없자 문을 콩콩 두드리기까지.
나는 경계하며 조심스레 현관문 앞으로 다가갔다.
“……누구세요?”
“…….”
한참 들려오는 소리가 없길래 날 찾아온 게 아닌가 하고 뒤돌아서려는데.
“……대표님?”
역시 그 비서 캐릭터가 찾아온 건가.
나는 그의 프로필 사진을 알고, 그는 대표를 알고 있다.
한 번쯤은 마주쳐야 할 사람이란 생각에 나는 안전고리를 열고 현관문을 살짝 열었다.
혹여나 홀로그램으로 구성된 사이버 인간이라도 나타날까 봐 긴장했는데, 문밖에는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서 있었다.
“대표님.”
그가 찾는 ‘대표님’은 내가 맞았다.
그러니까 나는 게임 속의 대표 그 자체가 되었단 말이지.
‘……좋지 않은데.’
순간 내 머릿속에는 마이 엔터 공식 커뮤니티의 유저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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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들어본 아이돌인데 어떤가요?
그룹 이름은 20x20이고 20살 연습생 20명 모아서 만든 그룹입니다.
21살 되면 그룹명이랑 안 맞으니까 해체예요.
└또 신박한 대표님 등장
└아니 저 여섯번째 멤버는 연습생 기간만 10년인데 데뷔해서 1년 시한부 활동ㄷㄷ
└사탄: 울고갑니다
└올해의 청춘낭비상 후보
└멤버 스무명이나 되면 해체 후에 한명쯤은 칼들고 찾아올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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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생과 아이돌을 얼마나 잘 착취하는지 뽐내던 그들.
사람들은 [현실이었으면 아찔하네요]라며 게임이 진짜가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물론 자신이 만든 그룹을 어화둥둥 하며 키우는 유저들도 많았지만, 그것도 대표 입장에서나 어화둥둥이지, 아이돌에겐 어떨지 모른단 말이지.
금지옥엽으로 키우던 아이돌이 체력이 떨어져 힘들어하자 푹 쉬라며 몇 년을 쉬게 만드는 유저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어땠더라.’
다행히 내가 아이리스를 착취하진 않았지만, 예쁘게만 키우려다가 놓친 부분이 있지 않았나.
원하는 의상 아이템을 사려고 휴식 기간을 얼마 두지 않고 바로 다음 앨범을 제작하거나, 스타일링에 심취하여 한참을 옷만 갈아입히며 놀았던 기억도 있다.
‘게임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회사라면 직원들도 있을 텐데.’
그들이 앞에선 살살 웃으며 뒤에선 수군거리기라도 한다면. 그게 내가 대표로서 잘못 행동했기 때문이라면.
기껏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났는데 또 다른 시선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춤하자, 비서 캐릭터는 현관문이 닫히지 않게 반대편 문고리를 잡았다.
“괜찮으십니까?”
이 사람도 걱정하는 얼굴로 찾아왔지만 실제로 날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날 알아?”
차라리 모른다고, 대표를 찾아왔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있기에 혹시나 해서 불러봤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안면이 없는 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거라면 그나마 마음이 편할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는 내 기대와는 반대되는 말을 꺼냈다.
“무슨 이유에서든 지금 혼란스러우신 상황이라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몇 년 동안 대표님을 보좌해 왔습니다. 대표님이 하시는 일은 전부 제가 처리했고요.”
그는 내 간절한 시선을 다르게 해석했는지 ‘자신이 얼마나 대표를 잘 알고 있는지’를 설명하려 애썼다.
그리고 그가 알고 있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당신이 대표님……의 일을 하시던 분이 맞으시다면.”
“…….”
“주제넘을지도 모르지만, 당신에 관해서도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아이리스와 옷에 관심이 많으신 점이나, 언젠가 회사 일은 신경도 못 쓸 만큼 다른 일에 몰두하신 적이 있으시다거나. 아마도…… 지치는 일이 있으셔서.”
어떻게 그걸 알고 있어?
비서 캐릭터는 방금까지 덤덤했으면서, 지금은 마치 동정이라도 하는 듯한 눈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체 뭐야.
“기분 나빠…….”
***
낯선 천장……일 리가 없지. 나는 내 방에서 일어났다.
옛날 일이라기엔 초면이고, 꿈이라기에는 생생한 기억을 헤매다가 나는 눈을 떴다.
부스스 몸을 일으키자 방구석에 놓인, 대표가 가져왔던 캐리어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대표의 기억인가?’
최근 나는 가 본 적 없는 외국에 있는 꿈을 자주 꾸곤 했다. 상상으로 만들어냈다기에는 너무나도 구체적인 꿈.
그래서 대표의 기억이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긴 했는데.
‘이렇게 생생한 꿈을 꾼 건 또 처음이야…….’
잠을 푹 잔 기분은 아니라 비척비척 일어나 세수를 하고, 멍한 표정으로 식탁 앞에 앉자 커피를 마시던 엄마가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표정이 왜 그러니? 찝찝한 일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평일엔 회사가 가까운 자취방에서 지내지만 주말엔 최대한 본가로 와서 자는 편이다.
그래서 이렇게 일어나자마자 엄마와 수다를 떨 수 있었다.
“내가 일하는 걸 많이 도와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한테 몹쓸 말을 하는 꿈을 꿨어…….”
“꿈인데 뭐 어때.”
그렇지. 꿈이라면 걸릴 거 없지.
하지만 그 ‘기분 나빠 사건’만큼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런데 내가 무심결에 진짜로 그 말을 했을지도 몰라.”
나도 모르는 새에 내 분신이 말했다는 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 대충 얼버무렸다.
엄마는 잠시 생각하더니, 연륜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꺼냈다.
“계속 마음에 걸릴 만한 일이면, 내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냐고 먼저 물어봐. 그랬다고 하면 미안하다 하고. 의외로 말 한마디가 가슴에 사무치는 법이야.”
“으응. 그렇지…….”
전에 대표를 만나고 나서 해명하긴 했는데 미안하다고 사과한 적은 없었지……?
내가 한 말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 정도로 지나갔던 건데, 꿈으로 당시의 일을 경험하고 나니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 왜 내 앞에 나타났냐는 듯 원망스러운 투로 말했다니…….’
이게 정말 대표의 기억인지, 혹은 내가 들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재구성된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만날 일이 있으니까 얘기해봐야겠다.’
오늘 꿈에 나온 것도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랜만에 일 약속이 아닌, 개인적인 약속을 위해 외출 준비를 했다.
***
“이제 여행은 끝난 거야?”
통유리창에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주말의 한 카페.
내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최 비서, 그러니까 지금은 무직 상태인 구 최 비서였다.
“네. 이 정도면 더 돌아다닐 곳도 없습니다.”
“그 정도로 많이 여행했으면 그렇긴 하지…….”
최 비서와는 가끔 연락하긴 했다.
그때마다 그는 외국에 있거나, 출국일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렇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내가 회사에 가둬놨어…….’
여행에 한이 맺힌 사람처럼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던 그는 이제야 긴 여행을 끝내고 쉴 모양이었다.
‘기분 나빠 사건’ 외에도 사과할 일이 더 있는 게 아닐까. 마음 놓고 휴가를 가지도 못하게 만든 것 외에 내가 알아채지 못한 무언가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
죄인 같은 기분에 빠지려는데 그가 내 앞에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건 뭐야?”
“기념품이요.”
투명한 케이스 안에 든 건 열쇠고리였다.
내 박 인쇄 취향을 고려해서 골라온 것인지 열쇠고리는 햇빛을 받아 무척이나 반짝거렸다.
‘내가 예전에 재민이한테 기념품은 작은 게 좋다고 한 말을 기억한 건가?’
모노크롬이 싱가포르로 떠날 때였으니…… 거의 1년은 다 되어가는 것 같은데.
그런 사소한 정보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비서가 괜히 비서가 아니구나.
‘그러면…… 또 어딘가 다른 회사에 비서로 들어가려나?’
꼭 비서 업무뿐만 아니라 뭐든 잘하는 사람이니 다른 직무를 맡을 수도 있겠지만.
이 나이에 사람을 만나면 보통 하는 이야기가 ‘일은 어떠냐, 다닐 만하냐, 이직 준비는 어떠냐’였고, 나도 자연스레 그의 다음 계획을 물었다.
“그러면 다시 직장 구하는 거야?”
무직 상태에서도 뛰어난 업무 능력을 보여줄 정도면 금방 좋은 회사에 들어가겠지.
“네. 그런데 구한다기보다는 이미 정해졌습니다.”
“벌써?”
취직 걱정은 없겠다 싶었는데 벌써 직장을 구했다고?
이런 부분에서까지 뛰어날 필요가 있나.
내심 스튜디오 어스도 고려해주지 않을까 생각했던 게 머쓱해졌다.
“들어오지 않겠냐고 말해주신 분이 계셔서요. 마침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나도 스카우트하지 못한 사람을 누가 먼저!
하지만 그를 몇 년이나 알뜰살뜰 굴려 먹었던 나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그, 그렇구나. 최 비서는 어딜 가든 잘할 것 같아. 진짜 이상한 상사 옆에서 오랫동안 일해 왔으니까…….”
아니, 재취업을 축하해 줄 상황에 갑자기 내가 자책 모드로 들어가면 안 되지.
나는 아쉬움을 삼키며 열쇠고리를 만지작거렸다.
“이사님은 요새 어떠십니까? 일하시는 거요.”
“나야 뭐…… 환경이 바뀌어서 초반에만 조금 헤맸지, 지금은 적응돼서 괜찮은 것 같아.”
최 비서는 없지만 나름대로 할 일 미루지 않으며 잘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필요할 때 많이 도와주니까. 다들 자기 일에 적극적이고.”
“좋은 곳 같습니다.”
그렇지. 그 좋은 회사에는 왜 안 오는 건데.
나는 내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기 위해 빨대로 입을 막아야만 했다.
그리고 주말이 지난 월요일.
“이쪽은……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최단우 씨. 경영팀 팀장으로 같이 일하게 됐습니다.”
우리의 사장님, 송준오 피디가 새로 온 경력직 팀장을 소개했다.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