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3화
도준결이라는 가수를 처음 알게 된 건 그가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 <유어보이스>에 등장한 다음 날이었다.
그때 한이는 휴게실에서 충격받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와……. 가성을 저렇게 낸다고……?]
그런 한이의 표정은 처음 봤기에 “뭘 보고 있길래 그래?”라고 물었더니.
[어제 방송한 건데요. 재야의 고수가 나타났다고 제 친구들이 링크 공유해줬거든요.]
[친구들이라면…… 동창? 아니면 아이돌 친구들?]
[둘 다요. 장르를 떠나서 이분이 진짜 가왕이라고 난리도 아니에요.]
성악을 같이 배우던 친구들까지 주목하는 가수라니.
지금은 망해버린 마이 엔터 공식 커뮤니티의 과거 정보에 따르면, 최종 목표인 대상을 받아 명예의 전당에 오른 유저들은 하나같이 ‘대상 버프 시기’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상을 받은 아이돌은 수상 직후에 한 차례 더 능력치가 빠르게 오른다는 것.
‘아마도 많은 사람이 대상을 대단하게 여기니까 인식이 확 좋아져서 그런 게 아닐까.’
만일 지금 능력치를 확인할 수 있다면, 한이도 이미 보컬 레벨이 두 자릿수로 올랐을지도 모른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그의 보컬 레벨은 10을 앞두고 있었으니.
그런 확신의 메인보컬 한이가 다른 사람의 가창력에 이렇게 감탄할 정도면…….
‘마이 엔터로 치자면 보컬 레벨 10은 훌쩍 넘는 가수라는 뜻 아니야?’
<유어보이스>엔 천상식도 심사위원으로 출연했다. 한이를 겪어 본 게 영향을 줬는지 전보다 방송 출연이 많아진 그였다.
그리고 그 천상식마저 ‘지적할 곳이 없다’라는 평을 남긴 덕분에 그의 무대는 더욱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 전까진 무난한 시청률을 보이던 <유어보이스>는 덕분에 시청률 급상승 중. 이는 도준결의 가창력뿐만 아니라 무명 시절 서사 때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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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에 3인조 데뷔? 이게 원조 아이돌 아님?ㅋㅋㅋ
시대를 얼마나 앞서나간 거냐
└이건 0세대도 아니고 기원전1세대 급
└한국인에겐 케이팝의 피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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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의 반응처럼 그의 무대 영상 클립엔 ‘40년 경력 원조 아이돌’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그는 그 시대에 드물게 3인조 팀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옛날에 ‘무슨무슨 시스터즈’라며 자매 컨셉으로 활동하던 듀오 혹은 트리오 가수의 남성 버전이라고 보면 이해가 쉬웠다.
그러나 팀 활동은 오래가지 않았다는 듯하다.
[요즘처럼 가요가 발전했던 것도 아니고, 그때 가수 활동으로 벌어봤자 얼마나 벌었겠어요. 딴따라라고 불리면서 밤무대나 전전하고 그랬지.]
무대에 오를 기회는 많지 않았고 팀 구성원 모두가 생업을 위해 다른 직업을 얻어야 했지만, 도준결만큼은 가수 타이틀을 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트로트 모음집 테이프를 내기도 하고, 가끔은 아주 작은 지방 행사에 불려가기도 하고,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가요 교실 강사를 맡기도 하고.
놀라운 건 첫 소속사가 그의 가수 활동을 약 40년간 꾸준히 보조했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좋은 회사 같지만 40년간 수익 일부를 가져갔다고 생각하면…….’
모든 가수 활동이 계약으로 묶여 있었던 탓에 활동이 자유롭지도 못했을 테고.
그런데 무려 40년간 이어져 온 소속사 사장과 그의 인연은 어정쩡하게 마무리되었다.
[사장님은 외국으로 나가서 못 본 지도 몇십 년이 지났고, 언젠가부터는 사무실도 처분했는지 연락이 안 되지 않겠어요.]
활동이 드문드문 이어져서 회사와 연락할 일이 많지 않았는데, 40년간 쌓인 음원에서 소소하게 들어오던 수입이 한참 안 들어오기에 알아보니 회사가 말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 당시 계약서가 뭐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냥 돈 주고 가수 시켜준다니까 좋다고 도장을 찍었지.]
그의 계약서엔 계약 만료나 해지에 관한 내용이 없었다.
최근에야 회사가 정상 운영되지 않는다는 것을 법적으로 확인했고, 종신 계약에 가까웠던 그의 아티스트 전속 계약은 소멸했다.
[이젠 사장님 얼굴도 가물가물하지만 고마운 기억은 있어요. 노래를 잘한다고, 제대로 배워보라고 끊임없이 지원을 해주셨거든요. 돈을 떠나서 건강하셨으면 좋겠네요.]
어떻게 보면 젊은 시절부터 이어져 온 긴 인연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끊겼다는 아련한 사연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젊은이들을 종신 계약으로 묶어둔 블랙 회사가 입 싹 닫고 날았다는 고발 같기도 하고…….
시청자들도 이 이야기를 듣고 ‘그래서 그 사장은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하면서 무척이나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나 나는 방송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다른 방면으로 혼란스러웠다.
‘40년 동안 한 회사에 소속돼서 노래를 배운 원조 아이돌…….’
미친 보컬 장인이 키우던 보컬 레벨 18의 아이돌이 현실로 나온다면 딱 저럴 것 같지 않은가.
이름부터가 마이 엔터의 연습생 이름으로 나올 법한 요즘 이름이었다.
비교적 최근에 회사가 사라졌다는 부분도 마이 엔터가 망한 것과 연관이 있을 것만 같고.
‘하지만 마이 엔터가 관련되어 있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의 아이돌도 현실로 나와야 하지 않아?’
다른 플레이어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봐도 마이 엔터 플레이 기억을 가진 전 유저들을 쉽게 볼 수 있으니까.
아니면 도준결의 40년간 이어져 온 가수의 꿈이 모노크롬의 퀘스트처럼 초현실적인 힘을 발휘한 걸까.
그 ‘사장’이라는 사람이 사라진 지금, 이 의심이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
확실한 건 그가 지금 FA 시장에 나와 있다는 것뿐.
“<유어보이스>가 끝날 때까진 전 출연진이 방송국과 전속 계약 상태거든요. 방영 중에 소속사를 구하면 방송에 개입한다고 시끄러워지니까요. 미리 접촉하는 것도 단속하고 있다나 봐요.”
라솔은 그래서 방송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다른 회사들도 마찬가지일 테고.
“혹시 이사님, 주인 씨도 눈독 들이고 있으면 양보해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죠.”
“저희는 아직 거기까지 확장할 단계가 아니어서요. 우선 우형이 솔로 데뷔부터 시켜야 하고.”
아이돌 기획만 하다가 갑자기 트로트와 발라드 전반을 아우르는 수십 년 경력의 선배 가수를 모시기는 어려웠다.
라솔의 회사는 여러 러브콜을 받던 배명희가 선택한 곳이니, 40년 전속 계약을 마친 그에게도 좋은 회사가 될 수 있겠지.
“저는 뒤에서 응원할게요. 성공적인 계약을 위해서.”
“만일 들어오시면 듀엣곡을 내봐도 좋을 것 같아. 나도 옛날 사람 감성이라 그런지 심금을 울리더라니까.”
“계약과 별개로 회사 아티스트 콜라보 앨범 좋은데요? 은아가 요즘 또 곡 달라고 성운이 조르던데. 이런 기획으로 진행해도 되겠어요.”
회사 막내로 있으면서 사랑과 일감을 함께 받는 성운이었다.
‘스튜디오 어스에 오면 편히 있게 웬만하면 안 건드려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배려는 이 정도뿐이니까.
즐거운 대화를 마친 나는 [주인 씨는 거짓말쟁이가 아니에요]라는 멘트가 적힌 배명희의 사인을 들고 귀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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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형이 솔로 앨범 컨셉이 신인가수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스흡 진짜 소소한데 덕심을 울리네 몬주알지
└ㅇㅈ 몬클 리더 여우형? 든든함. 날 맡기고 싶음. 신인 가수 여우형? 귀여움. 맡아서 키워주고 싶음.
└대상 아이돌 리더인 내가 눈 떠보니 신인 가수?!
└앨범 발매 전날까지는 스튜디어스 연습생 신분이라는 거 왜케 웃김
└멤버들이 후배라고 놀릴 거 눈에 선하다ㅋㅋㅋㅋㅋㅋ
└나 6년차 1기 늦덕 컬러즈 신인 덕질은 처음이라 좀 떨린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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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형의 솔로 앨범엔 스토리가 있었다.
집의 창고로 쓰이는 다락방에서 어머니의 젊을 적 컬렉션을 발견한 한 남자아이.
한 밴드의 공연 모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와 사진, 사인이 있는 낡은 기타까지.
아이는 어느새 이 컬렉션에 푹 빠져 음악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다.
‘그리고 뮤비로 이 장면을 촬영하면서 고민 하나가 해결됐지.’
뮤직비디오에서 우형의 아역을 맡은 것은, 바로 모노크롬이 되고 싶다던 아역 배우 주원이었다.
짧은 장면이지만 멤버들과 친분이 있으니 촬영이 수월할 것 같기도 하고, 회사를 통해 물어보니 마침 좋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그리고 촬영 당일, 나는 촬영장에 온 주원에게 슬쩍 물었다.
[전에 모노크롬 되고 싶다고 했잖아. 아직 꿈이 변하진 않았어?]
만일 모노크롬이 된다는 꿈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면 ‘우형의 아역이니까 모노크롬 멤버가 되어본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는 말을 해 줄 예정이었다.
주원의 촬영 장면도 마침 아이가 가수의 꿈을 꾸는 장면이어서, 아이의 꿈을 짓밟지 않는 선에서 준비한 답변이었는데.
[아뇨. 저 이제 다른 거 하고 싶어요.]
[그, 그래?]
아이의 꿈은 원래 자주 바뀌는 법이니까…….
모노크롬이 되고 싶다는 꿈도 원래 유니온맥스가 되고 싶다고 했다가 바뀐 거였으니.
그러나 꿈이 바뀌었다고 하니 괜히 서운해지는 건 뭘까. 이 갈대 같은 마음…….
[지금 꿈은 뭔데?]
[에메랄드 엔터테인먼트 부사장이요.]
시연에게 팀장 자리를 제안받은 주원이었다.
부사장 자리는 이미 다른 친구가 가져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주원은 그 자리를 탐냈다.
‘벌써 흥미진진한 권력 구도가 생겨났는걸.’
아무튼, 주원이 맡은 뮤직비디오 속 아이는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고, 주인공의 얼굴이 우형으로 바뀌며 노래의 인트로가 시작된다.
어릴 적부터 이어져 온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화려하고 복잡한 도시로 올라온 그.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수는 어머니의 팬 컬렉션 속 몇십 년 전의 밴드 보컬이었고, 자연스레 그의 스타일을 닮은 주인공은 세련되지 못하다며 무시를 당한다.
하지만 그것도 노래를 들어보기 전의 평가일 뿐.
(메마른 렌즈 속에 나의 tone을 덧그려, 한 번도 보지 못한 세상이 펼쳐질 거야)
이런 가사가 담긴 우형의 타이틀곡 제목은 .
어설프다는 편견 위에 우형만의 톤, 음색을 덧입혀 조화롭고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낸다는 컨셉이었다.
뮤직비디오 말미엔 영화처럼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그 옆의 쿠키 영상으로는 사실 어머니의 덕질 컬렉션 속 밴드 보컬이 주인공의 아버지였다는 비하인드까지!
연예인과 팬의 사랑 이야기는 팬의 존재가 작위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 실제 아이돌 팬들에게 웃음과 닭살을 유발하기 쉽다.
그래서 뮤직비디오의 배경을 일부러 과거로 설정하여 레트로 분위기를 첨가하는 동시에 ‘현실의 팬’이 생각나지 않도록 거리감을 둘 수 있었다.
대신 이런 컬러즈가 속출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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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뮤비 내용 어디서 본 것 같음
나랑 우형이의 미래 이야기 같은데
└나 아래 글쓴이인데 너 왜 나랑 똑같은 소리함
└지금 게시판에 똑같은 기억 조작 증세 보이는 사람 수십명이라고ㅋㅋㅋㅋㅋㅋㅋ
└나도 방에 몬클 앨범 저만큼 있는데 저런 아들 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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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들을 아들 삼고 싶어 하는 컬러즈가 꾸준히 있단 말이야.’
효자를 알아보는 건가. 멤버들 같은 아들…… 있으면 좋겠지.
아무튼 이 스토리는 뮤직비디오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형은 모노크롬 리더가 아니라, 연예계에 처음 입성한 신인 가수로서 활동할 예정이었다.
연예계에도 부캐라는 개념이 꽤 스테디하게 자리 잡았으니까!
그래서 모노크롬 우형의 부캐, 신인 가수 우형의 솔로 앨범 티저는…….
“안녕하세요. 스튜디오 어스 소속 연습생, 여우형입니다.”
특이하게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했다.
가수가 되고 싶어서 상경한 여우형의 데뷔 다큐멘터리. 거기에 페이크가 조금…… 많이 섞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