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9화
‘프로듀싱 회사 스튜디오 어스’를 알리려고 노력했는데 아이돌 상담소로 먼저 입소문이 날 줄이야. 아이돌 사랑방 같기도 하고.
‘사랑방 컨텐츠도 재밌겠는걸.’
아니, 컨텐츠 소재를 수집할 때가 아니지.
보현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뉴레인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 듯했지만, 나는 혹시나 해서 물었다.
“회사에서 너한테 선배 노릇을 하라거나…… 부담 주는 건 아니지?”
“그건 아니에요.”
윤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담팀 직원들은 변함없이 잘해 준다’라는 말을 꺼낸 참이었으니.
“단지…… 직속 후배가 생겼는데 제가 선배로서 하는 게 너무 없나 싶어서요.”
직속 후배가 생겼다는 말을 곱씹던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하. 윤환이는 소속사 후배가 처음이구나.’
모노크롬은 소속사 후배가 있었다. 뉴레인이 분리되기 전까지 아이리스가 뉴마에 있었으니까.
다만 윤환은 아이리스 데뷔 이후에 모노크롬에 영입되어서, 아이리스를 후배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입장이었다.
지금 소속사인 뉴레인에도 아이리스보다 늦게 들어갔으니까 말이지.
“그래도 뉴레인은 팀이 다 따로 있어서 후배들 마주칠 일이 별로 없지 않아?”
아이리스가 뉴마에 있던 시절을 떠올렸는지 우형이 물었다.
해랑이 데뷔 4년 차 레드의 본명을 모를 정도로 교류가 없었으니. 뉴레인은 아예 팀이 달라서 더 교류하기 힘들 터였다.
“그렇긴 한데. 에이펙트 엔터는 선후배끼리 교류가 꽤 있는 모양이더라고. 그래서 그런지 코드네임 애들도 나랑 좀 더 대화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에이펙트 엔터에는 SPID를 비롯하여 선배가 많지만 뉴레인에는 남자 선배가 윤환뿐.
데뷔 서바이벌 때도 에이펙트 엔터는 SPID를 내보내고 뉴레인은 모노크롬을 불렀다.
‘그러니까 지금 윤환이는 그런 기분인 거지.’
화목한 옆집 가정을 바라보는 기분.
옆집 막내는 형들한테 사랑받고 지내는데, 우리 집 막내는 형과 사이가 서먹서먹하면…… 괜히 미안해지고 챙겨주고 싶기 마련이다.
들어 보니 윤환이 이런 고민을 품은 것이 이해되었다.
“같이 놀아주면 되지 않나?”
친구의 고민을 들은 재민이 어려울 게 뭐 있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다만 지금 윤환에겐 걸맞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그건 친구 사이에선 좋겠지만 선후배 관계에선 글쎄…….”
연예계는 특히나 선후배 관계가 확실한 편. 후배에겐 선배가 상사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상사가 주말에 같이 놀자고 해 봐.’
물론 윤환의 말을 들어보면 코드네임은 윤환과 더 친해지고 싶은 듯하니 부담을 느끼진 않겠지만.
선배로서 후배에게 조언해주려면 어느 정도 거리가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딱히 ‘선배다운 모습’을 의식하지 않는 재민은 고개를 기울였다.
“후배들이 저한테 꼬박꼬박 선배라고 해 주고 먼저 인사해 주는데요. 같이 놀면서 친해져서 그런 줄 알았는데.”
“후배들도 놀았다고 생각할까……?”
혹독한 트레이닝으로 극한까지 몰아붙였다가, 끝나면 상냥하게 대해줬다가.
황태처럼 얼었다 녹았다 하는 과정에서 ‘재민의 말을 거스르지 말자’라는 관념이 본능에 새겨진 게 아닐지…….
‘뭐, 끝이 좋으면 좋은 거라고.’
험난한 과정과는 별개로 후배들이 재민을 좋아하는 건 맞으니까 상관없나.
어쨌거나 이건 메인 댄서만이 쓸 수 있는 기술이라 윤환이 써먹기는 힘들 듯했다.
조금 전에도 후배들의 고민을 해결해 준 우형이라면 알기 쉬운 방법을 추천해 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담아 우형을 바라보니…….
“너도 벌점제를 도입해.”
“그냥 내가 애들이랑 한번 잘 얘기해 볼게.”
준해의 벌점제를 경험해 본 윤환이 단박에 거부했다.
아이돌 상담소의 첫 번째 고민 해결 실패.
역시 다음 컨텐츠 소재는 아이돌 상담소보다는 아이돌 사랑방이 나을 듯했다.
***
짧은 상담을 마치고 윤환은 스튜디오 어스 구경차 연습실로 안내받았다.
마침 다른 멤버들도 회사에 나와 있었다. 왔는데 인사도 안 하고 가면 섭섭하지.
“어? 윤환이 형 언제 왔어?”
준해가 먼저 윤환을 알아보고, 이어서 해랑이 손을 들어 인사했다.
그 옆에서 한이는 자전거 안장 위에 앉아 손을 까딱이며 윤환을 반겼다.
“여어, 채윤환.”
실내 사이클도 아니고 그냥 일반 자전거. 웬만하면 실내에선 보기 힘든 모습에 윤환은 눈을 의심했다.
“뭐 하는 거야?”
“드라마 배역 연구.”
“한이 배역이 오토바이를 타는 캐릭터라.”
아직 드라마 정보가 자세히 풀리기 전이라 내가 말해도 되는 범위 내에서 설명했다.
이번에 한이가 맡은 캐릭터는 조금 불량하지만 순정이 있는 연하의 서브 남주.
그래서 지금 한이는…… 오토바이를 멋있게 타는 법을 연구 중이었다.
고속으로 주행하는 신은 대역 배우가 맡는다고 하고, 그 외의 장면에서 카메라에 멋있게 비쳐야 한다면서.
“준해가 자전거를 잘 타잖아.”
차 운전은 못 해도 자전거는 잘 탄다며 준해를 자주 칭찬하듯 디스하던 해랑이 설명을 덧붙였다.
준해에게선 바이크의 중심 잡기 기술을 배우고, 해랑에게서 비주얼 기술을 배우겠다며 한이가 둘을 선생으로 데려다 놓은 것이었다.
‘바이크 잘 타기’가 아니라 ‘화면에 잘생기게 나오기’가 목적이라 굳이 실외로 나갈 필요가 없었다.
연습실 바닥이 상하지 않게 매트까지 깔아놓는 섬세함도 잊지 않았다.
남들이라면 깜짝 카메라인가 의심할 만한 모습에도 윤환은 덤덤하게 반응했다.
“그렇구나.”
“너도 자전거 좀 타? 아니, 말하지 마. 나보다 잘 타면 질투 날 것 같으니까.”
한이가 윤환에게 경쟁의식을 불태우며 페달 위에 발을 올렸다.
해랑의 옆에서 ‘내가 비주얼 멤버다’라는 말을 꾸준히 하는 것도 그렇고, 욕심나는 분야에선 남들보다 앞서야 만족하는 그였다.
‘그나저나 윤환이도 ‘그렇구나’ 한마디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다니.’
지금 보니 윤환은 납득을 잘하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3년 차 아이돌 그룹에 영입된다는 특이한 데뷔 방식도 받아들였던 게 아닐까.
아니면…… 그냥 모노크롬에 익숙해졌을 수도 있고.
“핸들에 이렇게 기대면 어때. 턱선이 좀 사나?”
“드라마 스포만 아니면 컬러즈한테 물어보는 게 제일 좋은데.”
“아니. 컬러즈는 다 잘생겼다고 한단 말야.”
어느새 다 같이 자전거 주위로 모여 배역 연구에 동참했다.
내 손으로 뽑았던 모노크롬 멤버들이 전부 모여 있는 신선한 그림이었다.
작년에 싱가포르에서도 만났다고 하는데, 나는 그때 한국에서 뉴레인을 정리하느라 바빠서 못 봤으니.
‘멤버 변동이 있던 그룹의 가장 좋은 형태 아닐까.’
무엇보다 본인들이 편해 보이니까 다행이지.
“네가 보기에도 이 표정이 웃겨?”
“응. 조금.”
“형, 채윤환한테도 벌점 2천 점.”
대체 이 벌점제는 언제까지 뻗어 나가는지 의문이지만…….
쌓여가는 벌점 청산을 위해서라도, 앞으로도 자주 이 모습을 볼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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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 또 드릉드릉하네ㅎ
각설이냐 죽지도 않고 또 오게
└작년에 조용하다 싶더니 소설가 등단 도전했다가 실패하셨나봄..
└울 빨강이한테 관심 좀 꺼 이 XX들아~~
└ㅈ망토픽 폐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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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레인이 에이펙트 엔터에 흡수된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보이그룹과 스캔들이 자주 났던 걸그룹 멤버 레드가 에이펙트의 산하로 들어가자 괜히 예전 스캔들 이야기를 꺼내는 이들이 있었다.
‘해명이 됐다고는 해도 한번 각인된 이미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으니까…….’
그래서 근거 없는 논란 기사가 더 괘씸한 거지.
레드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는데, 기자는 그들의 심리를 자극했다.
‘기자 본인이 레드를 안 좋아하는 거 아니야?’
이런 의심이 드는 것도 당연한 게, 이 기사를 낸 곳이 재작년 레드의 스캔들을 터트린 스타토픽이었다.
[소위 ‘대형 기획사’로 불리는 A사는 최근 B사 인수에 나서며 사업 확장을 도모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과정에 소속 아티스트의 입김이 닿았다는 후문이다. A사 소속 연예인 C씨와 B사 소속 연예인 D씨의 인연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인이었던 D씨는 음악 방송의 MC로….]
A, B, C, D…… 아이들 영어 교재처럼 늘어나는 알파벳들.
아무리 봐도 대형 기획사인 A사는 에이펙트 엔터고, A사가 인수했다는 B사는 뉴레인이었다.
거기에 4년 전 신인이었던 뉴레인 소속 아티스트는 아이리스뿐. 그중에서도 그때 음악 방송 MC를 맡았던 멤버는 레드 한 명뿐이었다.
이름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관심을 두고 찾아보면 누구나 추측할 수 있는 정보들이었다.
그리고 같이 언급된 에이펙트 소속의 연예인 C씨가 누구냐면, SPID의 리더였다.
레드는 음악 방송 MC를 꽤 오래 맡았는데 SPID의 리더와 함께 MC를 맡은 시기도 있었다.
‘신인 때 일을 지금 이렇게 발굴한다고?’
고고학자야, 뭐야.
안 그래도 자잘한 활동이 많아 바쁜 신인이 4년 후에 회사가 인수될 걸 예상하고 친분을 쌓았겠냐고.
게다가 SPID가 회사 내에서 발언권이 셀 수는 있지만 인수에 말을 얹는 것까지는 좀 많이 나가지 않았나.
이 기사가 열애설을 퍼트린 건 아니었다.
다만, 보이그룹 멤버와 걸그룹 멤버의 친분을 부각하는 내용이었기에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뭐가 있긴 한 거임?’이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딱 좋았다.
회사로 출근해 보니 윤희가 바로 이 화제를 꺼냈다.
“이사님도 보셨죠? 기사.”
내가 아이리스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는 걸 알고 있으니.
당연히 신경 쓰리라 생각하고 먼저 이야기를 꺼낸 듯했다.
“작년엔 조용하길래 레드 건드리는 건 그만둔 줄 알았어요.”
“이런 기사 쓰면서 먹고사는 애들인데 본성이 어디 가겠어요?”
“그리고 또 이런 기사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만두지도 않는 거겠죠…….”
루머 생성하는 채널이 괜히 흥하겠어. 보는 사람이 있으니까 흥하겠지.
사람들의 관심이 모여들면 돈도 모여든다. 사람들의 악의를 먹고 사는 경제 구조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내가 한숨을 푹 쉬자 윤희도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싫어하는 사람도 많죠. 작년에도 이사님이 물꼬를 트니까 다 들고 일어났잖아요. 지금은 시간이 지나서 약발이 떨어졌나 봐요.”
“……아니면 에이펙트 엔터의 경쟁사 주식이라도 산 걸까요?”
“그런 것치고는 여전히 광범위하게 들쑤시고 다니던데요.”
그렇지. 스타토픽이 주기적으로 레드를 물고 늘어지긴 했으나 레드만 건드리는 건 아니었다.
‘연예면 기사가 반응이 뜨겁고 클릭 수가 많으니까 연예계를 집중적으로 포격하는 것까진 알겠어.’
그러나 기사를 잘 보면 표현만 정제되었을 뿐, 커뮤니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헤이터들의 글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오죽하면 사람들도 ‘연예인한테 돈 떼먹혔나’라며 댓글을 달 정도.
이들의 최종 목표는 한국의 엔터 사업이 부흥해서 저들도 달달하게 클릭 수를 뽑아내는 것일 텐데, 연예계가 망하길 바라는 것처럼 군다는 게 아이러니한 점이었다.
재작년에도 나는 그런 의문을 담아 기사에 반박했었다.
[외국의 황색언론을 떠올리게 만드는 기사를 한국에서 접하게 되다니 관계자로서 참담한 심정입니다. 나날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 케이팝 문화의 발전을 저해하며 연예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제 순환을 막으려는 모종의 계획이 있는 게 아닌지 괜한 의심까지 들 정도입니다.]
대뜸 우리는 한국 편, 케이팝 욕하면 외국 편이라며 편 가르기.
나의 느닷없는 의문 제기에 당시 스타토픽은 외국 자본이 들어간 게 아니냐는 짙은 의심도 받았더란다.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