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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외전-18화 (418/430)

외전 18화

아이돌은 과연 어디까지 수용하고, 어디부터 선을 그어야 적절한가.

보현이라는 특이한 손님이 와서 신경 쓰였는지, 어느새 멤버들도 동참해서 보현의 고민을 해결해주려 했다.

“형이 리더니까 리더의 시선으로…….”

“형의 시선으로 보면 안 되지. 나는 벌칙도 아니었는데 저 형이 갑자기 불러서 떡볶이를 먹였다니까?”

준해가 리더 우형을 지목했으나, 우형표 떡볶이의 첫 희생자였던 한이가 끼어들었다.

그의 말대로 매운 음식 벌칙은 우형에겐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아무 이유 없이 동생에게 먹인 전적이 있는 우형이니까.

준해는 잠시 생각하다가 우형이 이해하기 쉬운 상황을 제시했다.

“그럼 상황을 바꿔서 생각해 봐. 회사에서 우리를 인터넷도 안 통하는 오지에 보내겠다고 해. 거기엔 밤에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나온대. 형은 리더로서 뭐라고 할 거야?”

“이미 겪어본 트라우마가…….”

“그런 일이 있었나요?”

우형이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내게 흘끗 시선을 보내자 보현도 나를 바라봤다.

귀여운 늑대와 함께하는 무인도 조난 컨텐츠는 아직 공개되기 전.

멤버들은 스포일러를 방지하느라 어디에 한탄도 못 하고, 그날의 일을 계속 마음에만 담아두고 있는 듯했다.

“그건 재밌는 일이잖아.”

무인도 서바이벌에 만족한 늑대 재민만 빼고.

재민은 조난 당시에도 내게 몰래 늑대 사냥 지령을 받고 멤버들을 전멸시키겠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멤버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우형과 재민은 이 문제에 답을 내주지 못할 것 같고…….

다른 멤버들을 바라보는데, 한이가 보현에게 맞는 해결책을 하나 꺼냈다.

“맞아. 넌 그걸 잘하잖아.”

“뭐를요?”

“연기.”

아이돌 선배로서 하는 조언이 아니라 배우 선배로서 하는 조언이었다.

“아예 과하게 연기해서 호들갑을 떨어. 먼저 시험 삼아 매운 음식을 먹어보고 눈물을 흘린다든지. 그러면 벌칙은 흐지부지 지나가도 자연스러울걸.”

요컨대 벌칙 수행자가 받을 관심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란 말이었다. 예능 컨텐츠는 어쨌든 분량만 뽑으면 만사 오케이니까!

“꽤 효과적인 방법이었어.”

“그렇죠?”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한이에 이어서, 후배의 고민을 진지하게 듣고 있던 해랑도 조언에 참여했다.

“리더가 나서야 할 상황이 생기면, 그 멤버한테 도움이 필요한지 확인하고 나서는 건 어떨까.”

“그거 정말 리더다운 대안이다.”

우선 멤버의 말을 청취하라. 리더에게 걸맞은 조언에 리더 우형이 감탄했다.

제삼자처럼 듣고 있지만 우형이 그런 리더였기에 멤버들이 이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래도 코드네임은 아직 신인이라 억지로 참으려 할 수도 있으니, 나도 한마디를 덧붙였다.

“다음 날까지 지장이 생길 것 같으면 말하고, 괜찮겠다 싶으면 넘어가.”

그렇게 해 보고 상황에 따라 조절해가면서 코드네임에 맞는 기준을 찾아가면 되겠지.

바로 적용 가능한 답변을 주자, 보현은 아까보다 명쾌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 들으니 좀 알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그래. 앞으로도 필요하면 도움은 줄 수 있지만 회사 직원분들이랑도 한번 상의해 보고.”

“넵!”

아무리 생각해도 뉴레인이 정말 이곳에 와서 고민을 해결하라고 보내준 것 같지가 않단 말이지.

보현은 꾸벅 인사하고 회사로 복귀하겠다며 떠나갔다.

‘신인은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내가 처음 만난 아이돌은 첫 만남 당시 이미 6년 차였으니. 신인의 속마음을 듣는 것은 제법 신선한 경험이었다.

“너희도 신인 때 저런 고민 하고 그랬어?”

“글쎄요. 해랑이랑 한이 싸우는 거 말리던 기억만 주로 떠오르는데…… 그건 연습생 때였나?”

과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오는 이 해랑-한이 불화설의 실체는 뭘까.

아무튼 세세한 과거가 잘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성장한 모노크롬은 후배의 고민을 해결해 준 게 뿌듯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선배의 조언을 들어서 좋았던 것은 보현도 마찬가지였는지…….

“리더로서 멤버들을 잘 통솔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코드네임과 데뷔 서바이벌을 함께한 에이펙트 엔터테인먼트의 신인, Z-side의 리더와 함께 스튜디오 어스를 다시 찾아왔다.

두 사람이 모노크롬의 리더 우형을 붙잡고 조언을 구하고 있길래 나는 슬그머니 다가가 물었다.

“너희 회사 허락받고 온 거 맞지?”

“그럼요.”

보현은 여전히 아무 거리낌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뉴레인은 현재 에이펙트 엔터의 사옥을 함께 사용 중. 두 사람은 회사에서 같이 고민을 나누다가 이곳으로 온 듯했다.

뉴레인은 그렇다 치고 에이펙트 엔터테인먼트도 스튜디오 어스 방문을 허락해 줬단 말이지…….

‘사실 우리한테 육아 맡기고 있는 거 아니야, 이거?!’

직원들은 아이돌 리더 경험이 없으니 추상적인 해결책밖에 주지 못할 테고.

선배 아이돌 그룹의 조언을 받으라고 하기에는…… 아이리스는 레드와 오렌지가 리더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지라 코드네임과 분위기가 다르다.

Z-side의 직속 선배인 SPID는 멤버들이 리더의 말을 잘 안 듣는 것으로 안다.

소속사에 대대로 내려오는 분위기가 있는지, 현재 Z-side도 SPID와 팀 분위기가 비슷한 듯했다. 이런 고민을 들고 오는 거 보면 말이지.

‘그래서 해답을 줄 만한 선배한테 조언을 구하러 간다니까 직원들도 ‘옳거니!’ 한 거 아닐까?’

모노크롬은 뉴레인, 에이펙트 엔터와도 나름 친밀한 관계를 유지 중이니까.

전부 추측일 뿐이지만 생각하다 보니 그럴싸한 이유가 점점 늘어갔다.

‘아니지. 설마 다른 회사를 어린이집으로 삼으려 하겠어.’

신셋을 프로듀싱할 때 각 소속사가 멤버들을 뉴마로 보내며 어린이집 같은 상황이 펼쳐지긴 했지만…….

나는 머릿속에서 애써 의심을 지우고 이들의 상담 현장을 지켜보았다.

‘멤버들을 잘 통솔하는 방법이라.’

모노크롬은 장난칠 때 외엔 멤버들이 리더를 잘 따르는 타입.

하지만 전부 시련을 딛고 신뢰를 쌓았기에 가능한 건데 신인들이 따라 할 수 있을까?

아기 리더들을 마주한 리더 우형은 곰곰이 고민하다가…….

“벌점제를 도입해.”

저만의 방식을 신인들에게 추천했다.

“벌점제가 뭔가요?”

“리더 말을 안 듣는 멤버한테 벌점을 주고 갚으라고 하는 거지.”

“오호.”

리더에겐 솔깃할 만한 이야기. 후배들은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애들이 지금 제 말을 잘 안 듣는데 그게 통할까요?”

“……그게 맹점이긴 한데.”

“맹점이 아니라 제일 중요한 점 아니야?”

내 지적에 우형의 표정이 씁쓸해졌다.

요즘도 모노크롬 전용 PC엔 우형만 보는 벌점 데이터가 쌓여가는 중이다. 벌점제가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건 그가 가장 잘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형은 자신의 방식이 아니라 준해의 방식을 추천했다.

“벌점 정산 기한을 정해두고 그때까지 착한 일로 못 갚으면 벌금을 내라고 하는 거야. 팬들이 증인이 돼 주면 다들 무시 못 할걸.”

우형의 말대로였다. 준해의 폭군 리더 시기에 컬러즈의 최대 관심사는 벌점 청산이었다.

컬러즈가 관심을 보이니 리더 말을 제일 안 듣던 한이도 마냥 뻗댈 수가 없었고.

하다 보면 장난으로라도 리더를 따르는 자가 생기기도 한다. 준해의 간신이 되었던 해랑처럼…….

“그리고 그걸 촬영하면 더 재밌을 거야.”

이건 내가 컨텐츠 중독자로서 해주는 조언이었다.

어느새 벌점제는 리더의 권위부터 컨텐츠 공급까지 책임지는 만능 해결책이 되었다.

“역시. 선배님들하고 얘기하면 길이 뚫린다더니.”

Z-side의 리더가 보현을 보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지금 해랑교가 몬클교로 발전해가는 상황을 보고 있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모노크롬을 찬양하는 후배들과 찬양받는 우형을 구경하고 있는데, 스튜디오 어스에 손님이 한 명 더 찾아왔다.

“실례합니다…….”

“어! 채윤환!”

입구 로비 근처에서 절친을 반기는 재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여기서 다 같이 모이기로 했어?”

“아뇨. 윤환이가 애들 데리러 온다고, 그때까지 잠깐 봐 달라고 해서요.”

윤환은 미리 우형에게 연락한 모양이었다.

우형도 엄연한 스튜디오 어스의 일원이니 일일이 허락받지 않더라도 누구든 초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설명이 너무…… 퇴근하고 어린이집에 아이 데리러 오는 보호자 같은데.’

윤환은 우리가 모여 있는 휴게 공간으로 오더니 내게 꾸벅 인사했다.

“실례했습니다. 저희 애들이 신세를…….”

“아냐. 재밌는 얘기 중이었어. 그런데 왜 네가 데리러 와?”

“그게, 나름대로 고민을 해결해보겠다고 나갔는데 돌아오라고 닦달하는 것도 좀 그렇고, 직원분들이 직접 데려오려니 다른 회사라 격식을 차려야 될 것 같다고 해서요. 제가 모노크롬이랑 친하니까 대신…….”

다행히 스튜디오 어스를 어린이집으로 여기고 신인 후배들을 일부러 보낸 건 아닌가 봐.

뉴레인과 에이펙트 엔터의 직원들은 보현을 미처 막지 못한 모양이었다.

자꾸 다른 회사에 드나드는 이 아이들을 데려오긴 해야 하는데, 적임자가 윤환밖에 없었던 거지.

‘모노크롬이랑 친한 SPID도 있지만…… SPID가 회사 말을 잘 듣는 이미지는 아니니까.’

실제 성격으로 따지면 모노크롬보다 더 악동에 가까운 그들이었다.

마침 후배들의 고민 상담도 끝난 참. 진짜 어린이도 아니고 성인이니까 둘이 알아서 택시를 타고 에이펙트 엔터 사옥으로 복귀하게 놔두고.

대신 윤환은 입구에서부터 졸졸 따라온 재민에게 붙잡혔다.

“처음 놀러 왔는데 구경하다가 가. 미니크롬 제단 보여줄게. 아니면 내 악기 컬렉션 구경할래?”

“놀러 온 건 아닌데.”

“그래도 시간 있으니까 왔을 거 아냐.”

그 말도 맞지. 뉴레인이 후배들을 데려오라며 바쁜 윤환을 보내진 않았을 테니까.

윤환의 전담팀 직원들은 저번에 싱가포르에서도 윤환과 모노크롬이 따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배려해줬다고 들었다.

‘오늘도 좀 쉬고 오라는 의미로 직원 대신 윤환이를 보낸 게 아닐까?’

나도 얼마든지 있어도 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형도 윤환을 바로 보내기엔 아쉬운지 재민의 편을 들었다.

“맞아. 나중에 또 올 수도 있잖아. 익숙해지면 편하고 좋지.”

그러고 보니 우형이 예전에 곡을 주고 싶은 가수가 있다고 했는데.

“전에 우형이 네가 말한 가수가 윤환이야?”

윤환이 우형과 곡 작업을 하러 또 올 수도 있다는 의미인가?

내가 우형에게 묻자 윤환도 우형을 바라봤다.

“전에 뭐라고 했는데?”

“내 부하가 한 명 더 있다고 했어.”

우형은 전에 말한 가수의 정체를 비밀로 남겨두고 싶은지 장난스레 넘겼다.

윤환도 나름 모노크롬의 벌점 대상이니까, 우형의 부하라는 것도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윤환이 준해에게 받은 벌점 5만 점은 아직도 청산이 안 된 상태였다.

우형과 재민의 설득이 통했는지, 복도와 휴게실 중간의 어정쩡한 위치에 서 있던 윤환은 한 발짝 더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며 자리를 권했다.

“보현이 얘기 들으니까 뉴레인도 꽤 정신없어 보이던데. 너희 팀은 어때?”

“저희 전담팀분들은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하면 되니까요. 다른 팀들도 바빠서 그렇지,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전에 뉴레인의 기획실과 잠깐 갈등이 있기도 했고, 뉴마의 잔재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문제없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자 윤환은 갑자기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사실 마음에 담아둔 고민거리가 있는 걸까?

우형과 재민도 조용히 윤환의 말에 귀 기울였다.

“모노크롬을 만나면 꼭 묻고 싶었던 건데. 선배로서 내가 후배들한테 뭐라고 해 줘야 좋을까?”

……스튜디오 어스가 언제부터 아이돌 상담소가 된 거지?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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