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7화
“형이 메인 보컬은 이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고 해서요. 저는 잘 모르겠지만…….”
“야. 그래도 해 보니까 좋았잖아?”
[신고식을 노래방에서ㅋㅋㅋㅋㅋ]
[다들 노래방 가면 무슨 노래 불러요?]
윤환이 모노크롬의 ‘새 멤버’가 아니라 ‘그냥 멤버’로서 자리 잡았을 때.
윤환은 뷰이라이브에서 한이와 단둘이 노래방을 간 이야기를 컬러즈에게 전해 주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 윤환에게 호감이 있던 팬층도 지금은 많이 컬러즈가 된 상태.
모노크롬은 팬들과 자주 소통하는 편이었고, 데뷔 전까진 일반인이라 조심스럽던 윤환도 아이돌 스타일의 소통을 하게 되니 만족하는 팬들이 꽤 있었다.
폐업 직전 분위기다가 예상치 않게 유입이 생긴 컬러즈도 조금 활기를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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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뉴마는 여전히 앨범에 신경을 안 쓰네
데뷔 초에 다양하게 해 봤잖아. 왜 할 줄 아는데 안 해?
└윤환입덕팬 나도 몬클 다른 컨셉 보고 싶다..^_ㅠ
└ㅌㄷㅌㄷ
└미안하다 윤환아 우리가 뉴마를 막지 못해서
└저러다가 뉴마 또 다른 늦바람 불지도 모름
└뭐든 좋으니 변화 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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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뉴마의 악동 중독 증세는 멤버 개편 이후로도 고쳐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노래방에서 쉴 틈 없이 여섯 시간은 좀 힘들지 않아요? 그것도 부르기 어려운 노래들로 꽉 채워서.”
“그것도 다 메인 보컬의 지구력을 위한 훈련이야.”
“노래방에서 나오는데, 콘서트 끝난 기분이었어…….”
[그럼 우리 콘서트 6시간씩 하나여?]
[콘서트ㅅㅊㅅㅊ]
한이가 노래방 대결을 요청한 이유는 ‘너도 나보다 잘하는 게 있을 테고, 나도 너보다 잘하는 게 있으니까 일단 실력을 뽐내 보고 서로 인정하자’.
두 사람은 서로의 보컬 스타일이 뇌리에 각인될 정도로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처음엔 약 두 시간만 있을 생각이었으나, 노래방 사장님이 열정 넘치는 청년 둘에게 감동하여 보너스 시간을 네 시간이나 준 덕에 여섯 시간을 꽉 채웠다.
윤환이 먼저 항복했고, 한이는 기어코 자신이 지구력이 더 세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래서 제가 메보 원, 윤환이가 메보 투 하기로 했어요.”
나이 순이든 데뷔 순이든 어련히 한이가 ‘원’일 텐데 한이는 제 능력으로 첫 번째가 되길 원했다.
이렇게 마음을 터놓고 대화한 덕분에 윤환은 빠르게 모노크롬의 멤버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새로운 멤버와는 새로운 케미가 생겨났다.
작곡을 배우기 시작한 우형은 싱어송라이터를 꿈꿨다는 윤환과 대화하며 꿈이 생기기도 했다.
“언젠가 우리 앨범에 자작곡 넣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치?”
작업실을 하나 배정받은 우형이 가이드 작업을 도와주러 온 윤환을 보며 말했다.
래퍼인 해랑에게 가이드 보컬을 부탁하기는 어려웠고, 준해는 학교에 갔고, 한이는 이미 많이 부려 먹힌 탓에 도망가 버렸고.
윤환도 도와주러 왔다기보다는 우형에게 붙잡혀 왔다고 보는 게 정확했다.
눈꼬리가 올라간 점 덕분에 언뜻 인상이 비슷하여 ‘여우 콤비’로 불리는 두 사람이었다.
여우 동생이 된 윤환은 우형과 비슷한 미래를 상상하고 미소 지었다.
“처음 들어가는 곡은 밝은 곡이었으면 좋겠어. 팬송 같은 거 있잖아.”
“나도 그 생각 했어.”
컬러즈가 비슷한 곡 스타일에 질려 고통받는 것은 멤버들도 잘 알고 있었다.
아직은 힘이 없지만 조금 더 자리 잡으면 팬송을 비롯해서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다림의 끝보다는 설렘의 시작에 가까웠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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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클래니인데 모노크롬 소속사 선배같다
이번에 우리 애들 팬미 초대도 받았더라ㅋㅋㅋㅋ
└클래니가 더클랜 팬덤인가?
└ㅇㅇ
└선배님들이 소속사 선배였으면 맘고생 이정도론 안 했을듯
└우리도 탈소속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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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만 들으면 몬클 후배 엄청 많아보임
엔피버 파는데 몬클 아주 친근해ㅎ
└이코드가 원조 몬클라인 아니었음?
└거긴 몬클라인이라기보단 공식 컬러즈가 있는 거ㅋㅋㅋ
└신셋도 있자너
└신셋은 선후배관계를 넘어서 거의 부자관계
└따지자면 코드네임이 찐후배에 가깝지 않나? 회사도 같은 계열이었고 얘네 데뷔서바에 몬클도 나와서
└너네 잊은거냐 진짜 후배였던거 아이리스 하나라고ㅋㅋㅋㅋㅋㅋ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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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크롬이 대상을 받은 후, 출연 요청이 늘어난 것 외에도 체감되는 변화가 있었다.
다른 연예인들이 전보다 더 거리낌 없이 다가오는 느낌.
‘특히 모노크롬 라인이 그래.’
친분 과시를 꺼리는 이 판에서도 예외적으로 친하게 지내던 그들이지만, ‘잘 아는 선배가 대상 연예인’이라 하면 또 느낌이 달랐다.
우리의 힙합인 도한은 모노크롬의 활동 시 사전 녹화 신청까지 하겠다는 것을 내가 말렸다.
아이돌 멤버 개인의 핸드폰 번호 뒷자리가 다른 아이돌 사녹 참여 명단에서 유출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하니까.
컨텐츠로 필요하다면 협조해주겠다고는 했지만, 다른 그룹의 사녹 현장에 가는 것보다는 이코드가 활동할 때 일일 팬 매니저 체험 컨텐츠를 찍는 게 더 낫겠다고 조언도 해 줬다.
‘과유불급이라고, 아무리 좋은 선후배 관계여도 과하면 안 좋지.’
도한의 급발진은 제동 또한 빨라서 다행이었다. 말 잘 듣는 도한은 사전 녹화 현장 대신, <뮤직더라이브>의 MC로서 모노크롬 대기실에 정식으로 찾아왔다.
말을 빠르게 잘하는 그는 명MC의 자질이 있었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다가오는 이들뿐만 아니라, 적당히 친근하면서도 사업적인 태도로 다가오는 이들도 있었다.
이전에 우형에게 곡을 받은 적 있던 엔피버가 그런 경우였다.
“송 피디님이 뭐라셔?”
“제가 엔피버랑 작업한 적이 있으니까, 자신이 있으면 들어오라고 하시던데요…….”
엔피버의 소속사인 온세계 엔터테인먼트는 우리에게 또 곡을 의뢰했다.
그것도 우형이 아니라 스튜디오 어스에게.
‘프로듀싱 회사란 점을 인식하고 의뢰해 주니 고마운 일이지.’
타 아이돌의 소속사라서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데 개의치 않는다는 거니까.
그래서, 엔피버와 작업해 본 적 있는 우형이 프로듀서로서 참가하는 게 좋을지 송준오 피디와 논의하러 갔었는데.
‘자신이 있으면 참여해라’라는 대담한 답변을 들은 모양이었다.
“네 생각은 어떤데? 자신 있어?”
“자신…… 있다고 하면 좀 건방질까요? 그래도 해 보고 싶어요.”
이전에 엔피버에게 라는 곡을 선물하면서 자신의 작곡 능력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그였다. 그리고 직후에 작곡 레벨이 올랐었지.
그런 우형의 입에서 ‘건방진 것 같지만 자신 있다’ 같은 소리가 나오다니. 새삼스레 많이 달라진 게 느껴졌다.
“네가 같이 작업하면 엔피버 멤버들도 더 좋아할 것 같긴 해. 엔피버 리더가 너한테 감명받아서 작곡까지 배운다며.”
“기대가 크면 조금 긴장되지만…… 열심히 해 볼게요.”
든든한 선배이자 믿을 수 있는 프로듀서로 나아가고 있는 우형은 의지를 불태웠다.
‘앞으로도 이렇게 안정적이고 화목하게 갔으면 좋겠어.’
……이런 내 바람이 플래그를 세웠던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잔잔한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는 멘토스가 나타났다.
***
멘토스, 아니, 뉴레인의 신인 보이그룹 ‘코드네임’의 리더 한보현.
그의 방문 의사를 처음 알려준 것은 해랑이었다.
“이사님. 보현이가 와도 되냐고 하는데…….”
해랑은 데뷔 서바이벌 이후로 코드네임 몇 멤버들과 연락처를 교환했다.
엔피버가 우형의 병아리들이라면, 코드네임은 해랑의 신도들.
모노크롬과 컬러즈가 ‘공기가 정화된다, 일이 잘 풀린다’라면서 해랑의 사진을 장식해 둘 때, 코드네임은 ‘해랑과 대화하면 실력이 일취월장한다, 그의 조언은 데뷔로 이어지는 계시’ 수준으로 해랑을 떠받드는 경향이 있었다.
“무슨 일로 온다는데? 가호라도 받고 싶대?”
“네?”
나는 해랑이 코드네임 멤버들의 이마에 손을 대고 가호를 내려주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아니, 해랑이도 일반인이지. 토템과 태풍의 눈 특성이 조금 있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젓자 해랑은 자기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사님과 약속한 게 있다는데요……?”
“응? 나랑?”
“네. 보현이 말로는.”
약속? 내가 보현이랑 무슨 약속을 했던가?
데뷔 서바이벌은 잘 끝났고. 데뷔도 무사히 마쳤고.
보현이 코드네임의 리더가 되었단 소식 외에는 별다른 내용을 전달받은 적도 없었는데.
‘아이리스랑 다르게 내가 만든 그룹이 아니니까…….’
보현과 내가 엮일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런데 오겠다는 사람을 오지 말라고 막을 수도 없고.
어쩌면 내가 ‘언제 한번 놀러 와’라는 말을 지나가듯이 했을지도 모른다.
“회사랑 얘기해 보고 괜찮으면 와도 된다고 답장해 줘.”
소속 아티스트가 다른 소속사에 개인적으로 방문한다고 하면 ‘대체 왜?’라는 소리가 나올 테니까.
얼마 후, 보현은 뉴레인에 허락을 받았는지 스튜디오 어스로 찾아왔다.
놀러 오는 줄 알았는데 고민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무슨 일 있으면 말하라고 하셨잖아요.”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네. 전에 뉴레인 대표실에 계실 때.”
“…….”
……이 말을 들으니 정확히 기억났다. 나는 분명 그런 말을 했었다.
‘하지만 그건 뉴레인 정리할 때 말하는 거였잖아!’
아이리스 전담팀을 만들며 잠시 회사가 어수선할 텐데 걱정하지 말라고, 혹시나 직원들에게서 이상한 소리를 듣거나 무슨 일이 있으면 말하라고.
코드네임의 리더가 된 보현을 따로 불러서 한 이야기였다.
당연히 ‘뉴레인 정리가 끝나면 이 약속도 끝’이라고 기한을 안 정해두긴 했는데.
그 말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지키러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 그걸 말하러 회사에 허락까지 받고 온 거야?’
뉴레인은 또 이걸 허락해 줬고?
뉴레인 직원도 보현의 ‘상대를 당황하게 만드는 대화법’에 휘말려서 저도 모르게 허락해 준 건 아닐까.
어쨌든 찾아온 사람을 내쫓을 수는 없고, 나는 보현과의 대화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 그래서 무슨 일로 왔는데? 뉴레인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걱정되긴 하는데 내가 들어도 괜찮은 이야기인가? 난 지금 뉴레인과는 전혀 관련 없는 제삼자인데.
다행히 보현도 회사의 기밀 사항을 유출하러 온 것은 아니었는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고…….”
보현의 고민은 회사와 관련된 것은 맞으나 개인적인 사항이었다.
“회사에선 리더인 제가 말을 잘해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예를 들면?”
“컨텐츠 촬영 중에 매운 걸 못 먹는 멤버가 벌칙으로 매운 음식을 먹어야 할 때요. 저는 회사 편을 들어야 하나요, 멤버 편을 들어야 하나요?”
“으음…….”
더 자세한 사정은 이러했다.
보현은 매운 음식 벌칙에 걸린 멤버를 위해 “이 형이 위장약을 먹고 있는데 이거 먹고 병원 실려 가면 어쩌죠?”라며 벌칙 변경을 요청했다.
이유가 명확하니 융통성 있게 벌칙 내용을 바꾸더라도 시청자들은 이해하겠지만.
회사는 ‘아티스트 케어 안 하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가 아프냐, 그것도 모르고 매운 걸 준비한 거냐’라며 욕먹기 딱 좋은 상황.
‘역시 편 나누기에 약간 재능이 있어…….’
보현 본인은 그럴 의도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뉴레인도 ‘그렇게 말하지 말라’라고 하면 보현이 극단적으로 해석할까 봐 무어라 지적하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어서 휴게 공간에 앉아 대화 중이었는데, 지나가다가 관심을 보인 재민이 끼어들었다.
“난 여우 형 떡볶이 먹었는데.”
“너는 벌칙으로 먹은 거 아니고 나서서 먹은 거였잖아…….”
한이가 먹지 말라고 말렸는데도 말이지.
‘그러고 보면 팬들은 가끔 아이돌이 우는 것도 좋아하던데…….’
한이와 재민이 우형의 떡볶이를 먹고 눈물 흘리던 모습은 지금도 캡처 이미지로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매운 걸 먹이는 게 과연 나쁘기만 한 일인가?
가끔은 고통받는 모습도 보여줘야 하는 아이돌의 딜레마였다.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