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6화
Bonus Stage 4.
재민이 사라지고 혼란스러운 시기.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멤버들과 다르게 회사는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재민의 전속 계약을 해지하고, 그 자리를 채우듯이 윤환의 연습생 계약을 아티스트 전속 계약으로 전환했다.
4인조가 된 모노크롬과 한창 잘나가는 아이리스, 뉴마의 새 아티스트가 된 윤환.
직원들이 윤환에게 관심이 많은 것은 멤버들도 알고 있었고, 그들이 예상하던 것처럼 윤환을 솔로 가수로 데뷔시키리라 생각했으나.
“모노크롬에…… 새 멤버로 들어온단 말이지.”
이미 결정된 사안인지 대표의 비서는 멤버들을 찾아와 전달사항만 전하고 떠났다.
데뷔 때부터 멤버들의 의견을 들어준 적은 없지만 이런 일까지 그래야 했을까. 중요한 일을 통보받은 멤버들은 착잡한 표정이 되었다.
그래도 회사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회사는 그룹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거잖아.”
조용한 연습실의 천장을 바라보던 준해가 말했다.
팀이 와해되는 것까지 생각했는데, 멤버 영입이라면 희망적이었다.
해랑도 영입 자체는 나쁘지 않게 받아들였다.
“방송 경험도 있으니까 신경 써 주신 걸지도 모르지.”
솔로로 데뷔시켜도 될 정도로 실력과 인지도가 있는 새 멤버. 어쩌면 반등의 기회가 될지도 몰랐다.
멤버들은 재민이 말없이 사라진 이유를 몰랐고, 그가 자의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다.
어차피 예전처럼 돌아가지 못한다면 앞일만 생각하는 것이 나았다.
연예계는 슬퍼할 여유가 없는 치열한 곳이었다.
“그런데…….”
가장 말 많은 타입이면서 어쩐지 계속 입을 닫고 생각에 빠져있던 한이가 입을 열었다.
한이는 멤버 영입에 부정적인 걸까. 멤버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메보려나?”
“으음…….”
우형이 무어라 대답하지 못하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 질문 하나로 멤버들은 한이가 말이 없던 이유를 깨달았다.
솔로로 데뷔시켜도 될 정도로 실력 있는 보컬리스트 영입. 모노크롬의 메인 보컬 자리가 깨질 수도 있었다.
***
윤환의 포지션은 메인 보컬. 한이와 윤환이 같이 메인 보컬 포지션을 맡게 되었다.
“투 메보로 간다고요…….”
메인 보컬 자리를 빼앗기는 결과는 아니기에 다행이었지만, 한이는 여전히 표정이 개운치 않아 보였다.
모노크롬을 계속 지켜봐 온 송준오 프로듀서가 그런 한이의 얼굴을 보고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유한이가 보컬로는 자부심이 강하던 녀석인데.’
유한이는 모노크롬의 메인 보컬. 모노크롬의 메인 보컬은 유한이였다.
그런데 이제는 모노크롬의 메인 보컬이 유한이가 아닐 수도 있게 되었다.
연습생 시절부터 ‘누구보다 뒤떨어지지 않는 것’을 신경 썼고, 그래서 메인 보컬 자리에 무척이나 만족했던 한이였다.
한이의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잘 아는 우형이 걱정스럽게 말을 얹었다.
“지금 보컬 파트 주로 맡는 게 너랑 준해인데, 네가 후렴 대부분을 감당하면 목에 무리가 가기 쉬우니까…….”
“알아.”
메인 댄서였던 재민은 서브 보컬이기도 했다. 4인조 활동을 이어나갈 때도 재민의 파트는 한이와 준해가 주로 담당했다.
보컬 멤버가 한 명 줄어든 만큼 메인 보컬의 부담이 커지는 것은 당연했다.
“팀 안에서 개인플레이나 경쟁 하려는 거 아니고. 그냥 그렇게 됐구나 하고 잠깐 생각한 것뿐이야.”
한이가 그렇게 말하는데 우형이 ‘너 괜찮지 않은 것 같아’라면서 이 화제를 더 이어나갈 순 없었다.
회사의 결정대로 한이와 윤환이 모노크롬의 메인 보컬 포지션을 맡는다. 그렇게 이야기는 정리되었다.
멤버 중 한 명만 본가에서 출퇴근하는 것도 그림이 이상했기에, 윤환은 바로 모노크롬의 숙소에 입주했다.
“어, 어서 와.”
“안녕하세요.”
윤환도 그냥 시키는 대로 온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회사와 전속 계약을 맺자마자 3년 차 그룹의 새 멤버로 영입되더니 별다른 데뷔 절차도 없이 아이돌이 되었으니.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희귀한 경우였고, 그래서 멤버들과 윤환은 서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몰랐다.
“방은…… 이쪽 방 비어 있는데 괜찮아?”
“네.”
윤환은 멤버들의 “이렇게 할래?”, “괜찮아?” 등의 질문에 “네.” 혹은 끄덕거림으로 대답했다.
윤환이 아무리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방송 경험이 있다 해도 낯을 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3년간 똑같은 반으로 진학한 클래스메이트 사이에 새로 들어온 전학생의 기분일 터.
거기에 그나마 가장 사교성이 좋은 한이가 평소보다 말이 적은 탓에 다른 멤버들은 대화를 이어나가는 데에 더욱 진땀을 뺐다.
이렇게 새로운 5인조가 된 모노크롬은 어색한 동거를 시작했다.
***
“나 본가 좀 다녀올게.”
“지금?”
“‘지금?’이 아니지. 전부터 본가 잠깐 다녀올 거라고 말했잖아.”
“아, 그랬지.”
동생들에겐 그나마 상냥한 해랑은 윤환과 부엌에서 소소한 대화 중이었다.
그러다 한이가 밖으로 나가려 하자 이렇게 허둥지둥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옆에 있는 윤환을 의식한 듯했다.
‘피하는 거 아닌데 괜히 피하는 기분이잖아.’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꼭 ‘유일한 메인 보컬’을 고집했던 것도 아니니 괜찮다고 했는데도, 멤버들은 자신과 윤환의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자신 또한 멤버들의 눈치를 보느라 계속 숙소에 붙어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어차피 계속 보게 될 사이. 서로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있으니 둘의 사이는 시간이 해결해 줄 터였다.
하지만 한이 개인의 기분은 조금 별개였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결과를 보여주겠다더니, 그래서 대체 뭘 보여주겠다는 거냐?”
아버지의 말에 한이는 속이 턱 막히며 답답해졌다.
그나마 조금씩 모노크롬의 성적이 좋아질 땐 두고 보라면서 한 귀로 흘려들었는데.
점점 아버지의 말이 맞는 것처럼 상황이 돌아가니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고분고분하게 잔소리를 듣고만 있을 한이는 아니었다.
“여기가 그렇게 빵 뜨고 빵 지는 판이 아니라고요. 아버지는 뭐 태어나자마자 교수셨어요? 다 토대를 쌓고 시간 들여서 한 거 아니에요.”
“허. 그러면 몇 년을 더 기다리란 소리야? 말 들어서 성악과로 진학했으면 벌써 졸업을 앞두고 뭐라도 했을 나이야.”
“실음과나 성악과나 둘 다 자음은 똑같은데 비슷비슷한 거 아닌가요?”
아들의 억지에 아버지는 미간을 짚었다.
“네 친구들을 봐라. 누구는 콩쿠르에서 수상했다, 누구는 유학을 한다, 착실하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데. 네 형도…….”
“여보.”
아들끼리 비교는 선을 넘었는지 조용히 차를 마시던 한이의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아버지는 헛기침하고는 다른 화제로 잔소리를 이어나갔다.
안 그래도 형에게 밀려 피아니스트의 꿈을 포기했던 한이였다.
그런데 메인 보컬 자리마저 휘청여서 예민하던 차였는데 아버지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휴. 꼬장꼬장…….”
“유한이, 아버지가 말씀하시는데 말버릇이 그게 뭐야?”
“어이쿠. 꼬장꼬장이란 말을 제가 입 밖으로 냈나요? 실음과밖에 안 되는 제가 어떻게 지엄하신 성악과 교수님께 꼬장꼬장이란 말을 할 수가. 성악과를 갔으면 말도 소프라노 톤으로 이쁘게 했을 텐데, 그쵸? 어휴. 어떻게 꼬장꼬장이란 말을 그렇게 크게……. 다음부턴 작게 말해야지.”
“한이야.”
한이의 말이 길어지자 어머니가 또 끼어들었다.
“네에. 실음과는 조용히 있을게요.”
할 말이 없으면…… 그냥 뻔뻔하게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원래부터 충돌이 잦은 부자였다. 데뷔 초엔 바빠서 본가에 자주 못 들렀지만, 이때부터 한이는 시간이 있어도 가족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잔소리만 잔뜩 들은 한이는 손으로 귀를 털어내며 현관문을 나섰다.
“멍!”
한이를 발견했는지 마당 한구석에 엎드려있던 강아지가 뛰어왔다. 아직 한 살밖에 안 된 강아지 맥스였다.
본가에 오랜만에 오긴 했는지 맥스는 한이가 기억하는 것보다 1.5배는 커진 상태였다.
“이 집 둘째 아들보다 네가 더 속 안 썩이고 잘 크는 것 같다.”
한이가 머리를 쓰다듬자 놀아주는 줄 알았는지 맥스는 펄쩍펄쩍 뛰었다.
그렇지 않아도 에너지 넘치는 보더콜리인데 청소년기에 들어서서 더욱 힘이 넘쳤다.
한이는 맥스와 놀아주다가, 테라스 창 안쪽에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아버지를 흘깃 노려봤다.
“맥스야, 물어!”
“아울울울!”
“아니, 울라는 게 아니라.”
습격 명령을 못 알아듣는 이 착한 강아지는 헥헥 웃으며 더 놀자고 상체를 낮췄다.
“그래. 너도 날 닮아서 목청은 크다.”
“멍!”
숙소로 복귀하겠다고 현관문을 나서긴 했지만 어쨌든 이곳도 한이의 집.
한이는 바로 돌아가지 않고 한참을 마당에서 맥스와 놀았다.
같이 뛰어다니다 보니 아버지의 잔소리는 저절로 기억 속에서 흐릿해졌다. 대신 다른 생각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내가 진짜로 윤환이를 피하고 있는 건가?’
숙소를 나설 때 멤버들이 눈치 보던 것을 뻔히 알면서, 지금 이렇게 강아지 한 마리에 정신이 팔려 돌아갈 생각을 안 하고 있다니.
한이는 가족은 물론이고 멤버들에게도 꺼내기 힘들었던 질문을 맥스에게 건넸다.
“네 생각엔 내가 채윤환을 안 좋아하는 것 같아?”
맥스는 ‘안 좋아’를 ‘앉아’로 들었는지 한이의 앞에 풀썩 앉았다.
귀여운 소통 오류에 한이는 피식 웃으며 맥스의 목덜미를 마구 긁어주었다.
“그래. 네가 뭘 알겠냐.”
강아지를 쓰다듬고 있으니 애니멀 테라피 효과인지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앉아’ 하면 앉고, ‘손’ 하면 손을 주고.
원하는 것을 말하면 강아지와도 이렇게 소통이 되는데, 하물며 사람과도 말로 소통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맥스가 어느 정도 체력이 소진되었는지 뛰어다니는 것보다 엎드려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한이도 계단에 둔 가방을 다시 들었다.
전전긍긍하는 건 유한이답지 않다. 한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맥스에게 인사했다.
“형이 끝장을 내고 올게.”
“멍!”
숙소로 돌아오니 윤환과 다른 멤버들은 둘러앉아 대화 중이었다.
서로 관심은 있는데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아무 말이나 꺼내는 게 데뷔 초 팬 사인회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작곡에도 관심 있어? 나도 요즘 우리 회사 송 피디님한테 작곡을 조금씩 배우고 있는데…….”
“내가 기타를 치는데 조금씩…….”
그런 대화를 나누다가 한이가 돌아오니 다들 반가워하면서도 어색한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어, 유한이 왔…….”
한이도 대화에 참여시키려던 우형은 한이가 인사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자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나 한이는 가방만 두고 바로 다시 거실로 나왔다.
“채윤환. 잠깐 따라와.”
한이의 말에 윤환을 포함하여 멤버들 전원이 조용해졌다.
준해가 두려운 얼굴로 한이와 윤환을 번갈아 봤다.
“옥상으로……?”
대체 뭘 상상한 걸까. 준해의 걱정처럼 옥상에서 치고받고 하며 한판 뜨려는 것이 아니었다.
보컬리스트에겐 보컬리스트만의 전투장이 있으니까.
“아니. 노래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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