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4화
[아 우리 몬클 편이지]
[소고기?ㅇㅋㅇㅋ]
“진짜죠?”
[우리만 믿어요]
[걱정ㄴㄴ]
너무나 확신에 차 있는 게 오히려 불안을 자극했지만…… 바로 얼마 전 팬미팅에서도 서로 감동과 기쁨을 나눴던 사이 아니던가.
이 불안한 세상. 의지가 되는 이들끼리 뭉쳐 안심감을 나누고 싶었지만.
대화가 길어질 기미가 보이자 뷰이라이브를 종료해야 투표를 진행할 수 있다는 스태프의 채팅이 올라왔다.
“저녁 되기 전에 또 뷰이라이브 할 테니까.”
해랑의 아련한 시선에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컬러즈는 모노크롬에게 보급품을 전달할 의무가 있었다.
오늘 또 볼 수 있다는 말에 컬러즈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손을 흔드는 이모티콘을 올렸다.
준해도 이모티콘에 맞춰 같이 손을 흔들었다.
“컬러즈만 믿고 있을게요!”
[이따 봐~]
[믿으면 안..도..ㅐ..]
***
배가 들어오는 3시.
민형이 배 위에서 내려오지 않은 채로 보급품을 건넸다.
모노크롬은 강아지 무늬 잠옷과 고양이 장갑, 늑대 머리띠의 동물 3종 세트를 수령했다.
쇼핑백 안을 확인한 우형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민형을 올려다봤다.
“우린 이거 말한 적도 없는데?!”
“너네가 말한 아이템으로만 투표한다고 한 적 없는데?”
공지사항은 모노크롬이 인터넷 사각지대에 있을 때 올라왔기에 멤버들은 이 정보를 몰랐다.
모노크롬이 원하는 것만 아이템 후보에 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스태프가 미리 준비한 아이템도 같이 투표 항목에 들어갔고.
“컬러즈의 선택을 받아들여.”
이것이 컬러즈가 선택한 아이템이었다.
“컬러즈으으!”
한이가 “살려주세요!”를 외치듯이 컬러즈의 이름을 외쳤다.
물론 이 외침이 컬러즈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나중에 이 장면이 편집되어서 영상으로 올라가면 그때야 닿을 터였다.
“너 소리 지르는 거 저기 섬에서도 들리더라. 파도 소리 때문에 뭐라고 하는지는 못 알아들었지만.”
“살려주세요 작전이 안 먹히다니.”
메인 보컬의 목청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한이가 미간을 짚으며 슬픈 표정을 지어냈다.
우형은 눈을 가늘게 뜨고 민형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모노크롬이 배를 탔던 작은 항구 옆, 한 건물 앞에 회사 차량이 세워져 있었다.
“스태프분들 다 저기 계셔? 저기서 우리 감시하고 있는 거 아니지?”
“수영해서 탈출하려고 하면 구조해서 돌려보내야 하잖아.”
날이 따뜻하다고는 해도 수영해서 탈출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잡아서 돌려보내겠다니. 있지도 않은 탈출 의지가 사라졌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휴양지에 있는 기분이었는데, 함정이었다는 것을 알자마자 오지에 낙오된 기분이었다.
섬에 갇힌 멤버들 앞에서 한껏 웃어주고 돌아가려는 민형. 해랑이 멤버들에게 눈짓했다.
“인질로 잡자.”
그가 잡혀 있으면 뭐라도 협상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해랑의 제안에 날쌘 제이제이가 바로 민형에게 달려들었다.
“아! 잡아당기지 마! 배 출발해 주세요! 너흰 위험하니까 떨어져.”
제이제이에게 잡힌 외투를 포기하고 민형은 매정하게 떠나버렸다.
이번에 받은 아이템은 총 다섯 개. 그리고 갈취한 민형의 외투 하나.
모노크롬이 요청한 목베개와 스피커는 들어 있지 않았지만, 모노크롬을 굶기지 않겠다는 생각인지 마시멜로는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이건 또 뭐야…….”
준해가 쇼핑백에서 마시멜로 봉지에 이어 음표 모양 악기를 꺼냈다.
재민이 생일 선물로 받았던 것과 같은 모델에 다른 색상. 악기는 자연스레 음표 연주자 재민이 건네받았다.
평소엔 귀에서 환청이 들린다며 재민의 악기 연주를 피하던 우형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래도 BGM이 있으면 덜 무서울 것 같아. 스피커 대신으로 삼자.”
스마트폰은 있지만 인터넷이 안 되니 음악을 검색해 들을 수도 없고.
그나마 우형이 작곡한 곡은 파일로 저장되어 있어서 스피커로 들으려 했는데 스피커를 얻지 못했다.
음악이 필요하면 재민에게 맡기면 될 듯했다.
첫 번째 보급품을 들고 별장으로 돌아온 멤버들은 작전 회의에 나섰다.
“컬러즈는…… 재미를 원한다는 거잖아?”
자신들만 믿으라던 컬러즈가 모노크롬을 배신했다.
아니, 중간중간 ‘정말 믿어도 될까?’라는 솔직한 채팅도 있었으나 장난인 줄 알았다.
지금 컬러즈가 준 휴식 아이템으로 할 수 있는 거라곤, 늑대 귀 머리띠를 쓰고 바다 늑대가 되어 음표 악기의 구슬픈 노랫소리를 듣는 것뿐이었다.
“우리 저녁 이걸로 끝나는 건 아니겠지?”
화로에 마시멜로를 굽던 재민이 부정적인 미래를 그렸다. 소고기를 보내주겠다던 말도 이제 믿을 수가 없었다.
한이는 팔짱을 끼고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빠져 있다가…….
“모노크롬의 브레인. 어떻게 해야 좋을 것 같아?”
생각나는 게 없는지 준해에게 판단을 미뤘다.
컬러즈 vs 모노크롬 같은 상황은 8년 차가 된 지금 처음 겪는 일.
목장갑 대신 고양이 장갑을 끼고 불타오르는 마시멜로를 구출해내던 준해가 고개를 들었다.
“협상을 잘 해봐야지.”
무인도에 있는 그들이 협상 카드로 무엇을 낼 수 있을까.
모노크롬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
분명 외투를 걸치고 나갔던 민형이 반소매 티셔츠 차림으로 나타났다.
날씨는 화창했지만 배 위에서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맞아 체온이 떨어졌는지 민형은 “으으.” 하며 팔을 쓰다듬었다.
“옷은 어디 두고 오셨어요?”
“애들한테 강탈당했어요. 인질로 잡겠다고 달려들어서.”
착한 모노크롬도 위기 상황에는 강탈이라는 수단을 취할 줄 아는 모양이었다.
“인질로 잡혔어도 재밌었겠네요.”
“진심이세요?”
“이사님이 극단적인 재미주의자시잖아요.”
대화를 듣던 윤희가 한마디를 얹었다.
재미를 추구하긴 했지만 극단적이진 않았는데. 직원을 기꺼이 인질로 보낼 마음이 있는 건 극단적이라고도 할 수 있나……?
무어라 반박할 말이 없어서 나는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컬러즈는 뭐라고 해요?”
오늘은 컬러즈와 소통이 많기에 윤희가 할 일도 많았다.
인터넷이 통하는 컬러즈와 인터넷이 끊긴 모노크롬. 그 사이에서 컨텐츠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조율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었다.
“애들 굶으면 안 된다고, 투표 제대로 하자고 의기투합하고 있어요.”
그녀의 말대로 컬러즈는 어떻게 해야 멤버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지 상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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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면 밥은 제대로 먹여야지
약속이다 컬러즈들아 과자 이런 거 안 돼
└한국인이면 김치는?
└인간적으로 소고기랑 김치는 줍시다
└애들이 과자 먹고 싶다고 하면 어떡하지
└ㄴㄴ과자 말고 밥 먹으라고 해야함
└난 제일 비싼 걸로 투표할게
└뭐 걸릴지 모르니까 일단 맛은 포기하더라도 영양소 위주로 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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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즈는 투표만 할 수 있지, 투표 결과를 확인할 수 없었다.
실시간 추이를 보며 원하는 후보에게 몰표를 줘서 순위권으로 올릴 수가 없기에 미리 작전을 짜고 있었다.
배고프거나 영양이 모자라 힘 빠지게 만들 일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맛은 좀 덜하더라도 건강식을 추구하는 우형이가 떠올라…….’
한이가 좋아하는 디저트류는 투표 순위 저 아래로 내려가겠지.
아무래도 모노크롬의 저녁 디저트는 아까 휴식 아이템으로 얻은 마시멜로가 끝일 듯했다.
***
“컬러즈…….”
[저녁 먹자]
[소고기 투표하기로 다 얘기해놧어요]
모노크롬이 다시 뷰이라이브를 켜자 컬러즈는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다.
그러나 모노크롬은 이미 컬러즈에게 배신을 당한 상태. 한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을 힐긋 바라봤다.
“아까 믿으라고 한 사람 누구야. 나와 봐.”
채팅창은 눈에 띄는 게 좋아서 반사적으로 [저요] 하며 손드는 컬러즈와 [저는 아님] 하면서 시치미를 떼는 컬러즈로 나뉘었다.
“마시멜로만 오고 아무것도 안 왔잖아요……. 컬러즈도 모르는 일이라고요?”
[몰라ㅠㅠ]
[그거 하나 받음???]
[헉 왜 안 갔지ㅜㅜㅜ]
정말로 모른다며 어리둥절해하는 컬러즈를 보고, 우형은 설마 회사가 재미를 위해 아이템을 바꿔치기한 게 아닌지 긴가민가했다.
그러나 채팅창의 분위기를 보던 해랑이 냉철하게 범인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늑대 머리띠, 고양이 장갑, 강아지 잠옷에 투표한 사람 손.”
[아 그거 순위권 올라갔구낰ㅋㅋㅋㅋ]
[옛날이라 기억이 잘 안 나네..]
[죄성함니다 손이 미끄러져서]
거짓말은 못하는 범인들이 속속들이 손바닥 이모티콘을 올렸다.
모른다는 말도 틀리진 않았다. 투표 결과를 못 봐서 멤버들이 뭘 받았는지 몰랐으니까. 투표한 건 컬러즈가 맞았다.
[고양이손 보여주세요]
“보여달라고요? 그냥 보여줄 수는 없고!”
말 잘하는 한이가 자신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며 손가락을 까딱까딱했다.
오기 전에 멤버들끼리 미리 짠 작전이 있었다.
컬러즈에게 원하는 것을 받아내려면 컬러즈가 원하는 것을 줘야 한다. 컬러즈가 원하고 모노크롬이 당장 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우리 요구를 들어주면 해랑이 형 고양이 손 셀카를 드리겠습니다.”
“뭔데.”
작전을 짤 때만 해도 셀카 이야기는 했지만 누구의 셀카라고는 얘기하지 않았다. 한이가 무단으로 자신의 셀카를 풀어버리자 해랑은 황당해했다.
하지만 해랑의 사진은 음이온이 나오고 공기 정화 능력이 있으므로 컬러즈가 환영할 만했다.
처음부터 저녁은 멤버들이 원하는 대로 해 줄 생각이던 컬러즈는 모노크롬이 먼저 협상 조건을 내걸자 이것저것 요청했다.
“각자 셀카 한 장씩? 그래요, 그럼.”
“아니, 두 장씩?”
“열 장? 백 장?”
밑도 끝도 없이 늘어나는 요구에 멤버들은 잠시 협상을 멈추고 정리했다.
“일단! 이따 소고기가 제대로 오는지 보고 나서 얘기해요.”
“저는 짜장라면이요, 컬러즈.”
멤버들의 요청을 접수한 컬러즈는 또 [ㅇㅋㅇㅋ] 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
컬러즈가 투표를 마치고 순위권에 든 식재료는 마트에서 바로 공수하여 배편으로 배달했다.
자신들만 믿으라는 컬러즈의 말대로, 재민이 요청한 소고기와 준해의 짜장라면도 빠지지 않았다.
“겉옷 다시 찾아오셨네요?”
“에너지바랑 따로 교환했어요.”
모노크롬은 민형의 겉옷을 인질로 잡은 덕분에 번외로 간식도 획득할 수 있었다.
저녁을 배불리 차려 먹은 멤버들은 컬러즈에게 경계심을 풀겠지.
“컬러즈가 지금은 뭐래요?”
“멤버들 제대로 밥 먹고 있는지 궁금해하네요.”
어떤 식재료가 전달되었는지 아직 모르는 컬러즈는 한국인답게 식사 걱정 중이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고…….’
모노크롬도 바깥 상황을 알 수 없지만, 우리도 모노크롬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 수 없었다.
섬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서 인터넷이 통하는 해변으로 내려왔을 땐 맨눈으로 볼 수 있지만, 별장은 나무로 가려져 있어서 뭘 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혹시라도 가스레인지가 작동이 안 되는 등 문제가 생겨서 SOS를 요청할까 봐 우리는 핸드폰을 꺼내놓고 대기 중이었다.
창문으로 무인도 쪽을 바라보며 멤버들이 다시 해변으로 내려오지 않는지 확인하는 스태프도 있었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가둬놓고 감시하는 것 같아…….’
멸종위기 야생동물 서식지를 관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야생동물…… 꼭 없으리란 법은 없지.’
나는 아직 저물지 않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파란 하늘에도 벌써 하얗게 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늘의 달은 보름달. 늑대가 깨어나기 좋은 날이었다.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