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5화
모노크롬에게 태풍의 눈 특성이 있어서 그런가?
태풍처럼 몰아치는 사람들이 잘 붙는 느낌이었다.
‘……가장 큰 태풍이 나였던 건 아니겠지?’
아니. 아닐 거야.
아무튼 찝찝하게 만드는 섭외 외에도, 최대한 맞춰주겠다는 연락도 많았다. 이젠 정말로 방송을 골라서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감개무량하네요……. 모노크롬을 찾는 연락이 쏟아져서 바쁘다는 게.”
“이사님이 출근 첫날에 저한테 하셨던 말씀 기억하세요?”
윤희가 갑자기 약 2년 전의 일을 입에 올렸다.
출근 첫날. 사직서를 내는 윤희를 붙잡으며 도와달라고 했다. 모노크롬이 유의미한 성취를 이룰 때까지 전폭 지원할 거고, 윤희가 필요하다고.
그리고 지금 윤희는 게임의 엔딩이라도 본 듯한 온화한 표정이었다. 실제로 게임을 끝낸 건 나인데.
‘잠깐. 윤희 씨가 그때 내 말을 듣고 뭐라고 답했었지?’
남겠다고 대답한 건 기억나는데.
‘앞으로 계속 지켜보죠.’라는 기한이 없는 대답이었던가, 아니면 ‘그때까진 있어 보죠.’라는 기한이 있는 대답이었던가?
설마 ‘이제 이룰 건 다 이뤘으니…….’ 하면서 품속에 고이 간직하던 사직서를 꺼내려는 건 아니겠지?
지금 이 평화로운 분위기와 조명, 날씨까지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혹시 지금 중요한 말을 꺼낼 거라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다음은…… 역시 세계 무대일까요?”
“……세계 무대요?”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윤희는 음악대상이 아니라 더 먼 목표를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행이다. 사직서를 가슴에 품은 건 아니어서.
말이 동시에 나간 덕분에 윤희는 내가 뭐라고 했는지 못 들은 듯했다. 떠날 마음도 없는 사람에게 질척거릴 뻔했어.
‘그나저나 다음 목표라.’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지난 2년간은 음악대상만을 노리고 움직였는데, 그 목표를 달성했으니까.
그렇다면 그다음은…….
“세계 말고도 국내에서도 할 게 많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다른 대상 트로피를 더 모은다거나?”
“오.”
윤희가 생각해도 괜찮은 목표였는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노크롬은 음악대상 외의 다른 시상식 참여 경험이 극히 적었다.
재민만 대타로 출연했던 레몬 어워드처럼, 국내만 해도 많은 시상식이 있는데 말이다.
그것도 음악대상처럼 모든 음악인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대중가수, 특히나 아이돌 위주인 시상식들이.
‘저번 연말연시엔 소속 공백기 때문에 조율이 어려워서 참가를 못 했으니까…….’
세상에는 다양한 대상이 있고, 모노크롬은 앞으로도 더 많은 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세계로, 우주로 나가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못 해본 게 좀 많아야지.
그리고 국내에서 잘한다고 세계 시장이 따돌리겠어? 우리가 잘하면야 둘 다 잡을 수도 있는 일이다.
‘대상 트로피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기쁜데, 두 개, 세 개면 얼마나 기쁘겠어.’
트로피 장식장을 주문할 때의 바람처럼, 장식장을 상으로 꽉 채우고 더 큰 장식장을 주문하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얼마 후, 윤희가 장식장 앞에서 멤버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모노크롬이 이 장식장에 상을 꽉 채울 때까지 쉬지 않고 일해야 한대.”
“헉.”
미니크롬 제단을 꾸미고 있던 재민이 윤희의 말을 듣고 숨을 들이켰다.
재민은 날이 따뜻해졌다고 미니크롬에게 하와이안 셔츠를 입히던 중이었다.
옆에 있던 준해가 눈을 깜빡이더니 물었다.
“누가 그랬는데? 송 피디님이?”
“이사님이.”
그런 노예 계약을 제안한 적은 없는데…….
모노크롬이 스튜디오 어스와 새로 계약할 때 나는 없었는데!
윤희가 사직서를 품을까 봐 “그때까지, 아니, 그 후로도 같이 열심히 일해봐요.”라고 말했을 뿐인데, 어째서인지 일하는 대상이 모노크롬으로 왜곡되어 있었다.
나는 오해를 풀기 위해 다급히 그들의 옆으로 다가갔다.
“다 같이 열심히 하자는 의미였지, 너희를 여기 묶어두고…… 그런다는 건 아니었어.”
“묶어두는 게 더 무서운데요. 진짜 두목님 같고.”
“그러니까 안 그런다고.”
왜 멤버를 묶지 않는다고 해명해야 하는 거야.
우형이 아직은 듬성듬성 차 있는 장식장을 흘끗거리며 말했다.
“그러면 장식장을 다 채우면 목표 달성인가요……?”
“아니. 새 장식장을 짜야지.”
“그러니까 다 채우긴 해야 하네요.”
“안 채우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상이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게 당연히 좋잖아.
내 말에 딱히 반박할 수도, 반박할 생각도 없었는지 멤버들은 납득한 표정이었다.
왠지 등 떠밀듯이 대화가 정리되었지만 가장 열심히 하고 싶은 건 모노크롬 아닐까.
결국 나는 돌고 돌아 악덕 임원이 된 기분이지만 말이다.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