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화
연습실로 함께 이동하던 우형과 한이가 그 말을 듣고 멈춰 섰다.
“해랑이가…… 귀여워서 좋아?”
형으로서 해랑을 귀여워할 수 있는 우형도 이런 대답은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모노크롬을 귀여워하는 컬러즈도 해랑에겐 주로 ‘감탄스럽다’에 치중된 주접을 늘어놓던데.
멤버들이 다 같이 있을 땐 단체로 귀엽다고 하고. 해랑이 단독으로 귀여울 땐…… 주방에서 오징어와 사투를 벌일 때 정도?
‘물론 해랑이가 귀여워서 좋다는 컬러즈도 많겠지만.’
가장 해랑을 귀여워하지 않을 것 같은 어린아이의 입에서 이런 대답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 어느 점이 귀여웠는데……?”
“우으응. 그냥요.”
그냥이라니. 이유 없는 호감이야말로 순수한 애정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해랑까지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보자 나윤은 말을 더 이어나갔다.
“예전에 놀러 갔을 때도 오빠가 계속 옆에서 이렇게 이렇게 했어요.”
나윤은 배 앞에 양손 주먹을 꼭 쥐고 발을 동동거렸다.
아마도 어린아이 다루는 법을 잘 몰라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표현한 듯한데.
해랑의 어색한 행동이 아역배우 특유의 재연을 거치자 아주 귀여운 행동으로 변모했다.
“잘 보이려고 뒤에서 몰래 애교 부리고 그런 거야?! 치사한 형이네, 완전.”
“나 안 그랬는데.”
다리가 이메다라 성큼성큼 걷는 해랑이 아역들의 속도에 맞춰 종종걸음으로 걸었던 것도 나윤에겐 재밌게 느껴졌다는 듯하다.
요컨대, 첫인상과 실제 겪은 성격의 갭 때문에 오히려 호감이 배로 늘어난 건가.
한이네 집 강아지인 맥스도 처음엔 해랑을 무서워하다가 결국 마음을 열고 붙어 있지 않았던가.
‘진심은 통한다 이거지.’
상대의 마음을 여는 데에 필요한 매력과, 마음이 열린 후에 작용하는 매력은 다른 모양이었다.
나윤은 해랑이 귀여워서 좋고, 시연은 준해가 잘생겨서 좋다는 상황.
‘왠지 반대인 것 같기도 한데…… 귀엽고 잘생긴 게 틀린 것도 아니고 개인 취향이니까.’
아이들의 시선을 어른들이 어떻게 완벽히 이해하겠어.
그리고 우리야 매일 보니 잘 자각하지 못하지만, 해랑의 차가워 보이던 첫인상이 순화된 것일 수도 있다. 그것도 귀여워 보일 정도로.
우리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연습실.
그곳에는, 트윙클 챌린지의 창시자가 트윙클을 소개해 준 아역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잘 따라 하면 선물이 있어!”
“와아아!”
그래서 아까 준해가 젤리를 챙겨뒀던 건가.
이미 재민에게 물든 준해도 댄스 시범에 동참한 상태였다.
“회사 투어가 제이제이 댄스 교실이 되어 버렸는데?”
어디서 솟아나는지 모를 아이들의 체력을 적당히 소진한 후 꿀 같은 휴식 시간을 가질 심산이었는데.
신나는 활동에 상품까지 걸리자 아역 손님들은 더욱 흥이 올랐다.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우형이 작은 목소리로 우려를 표했다.
“조심해, 얘들아. 재민이가 아이돌 댄스팀으로 잡아간다.”
“재민이가 망태기 할아버지도 아니고.”
망태기는 컬러즈가 멤버들을 넣는 도구잖아. 재민이가 댄서들을 납치할 때 쓰는 게 아니라.
아이들은 제이제이가 가르쳐주는 간단한 동작을 잘 따라 했다.
재민이 흡족하게 웃는 것을 보니 우형의 말이 조금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그러고 보니 주원이도 아이돌이 되고 싶어 했잖아.’
정확히는 모노크롬이 되고 싶어 했었지.
좋아한다던 꼬마 컬러즈 친구와는 사이가 나쁘지 않은 듯한데, 아직도 모노크롬이 되고 싶다는 꿈은 유효할까?
그때 한이가 ‘10살쯤 돼서 더 잘생겨지면 들어올 수 있다’ 같은 말로 시간을 벌었는데.
주원은 지금 9살. 10살에 근접해가고 있었다.
‘만일 물어보면 송 피디님한테 미뤄야지. 난 사장 아니니까.’
그래도 아이의 순수한 눈을 외면하는 건 마음 아픈 일이다.
나는 주원과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슬쩍 고개를 돌렸다.
***
모노크롬 숙소에 있던 장식장은 회사로 옮겨왔다.
어른들은 스튜디오 어스에 방문하면 대상 트로피부터 눈에 담던데, 아이들은 미니크롬 제단에 관심을 보였다.
“인형들은 모여서 뭐 하는 거예요?”
“이렇게 오망성을 그려서…… 트로피를 소환하는 거야.”
재민의 설명은 비과학적이었으나 아이들은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순수한 이들끼리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시연은 본인부터 시작하여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세며 손가락을 접었다.
“우리는 네 명이라 이거 못 하는데.”
“네 동생 불러오면 다섯 명이야.”
수민이 소환 의식을 위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시연의 동생, 시우까지 에메랄드 엔터에 합류하면…… 가족 회사잖아?
구멍가게 가족 회사냐며 욕먹던 뉴마가 잠시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자꾸 뉴마에 대입하지 말자.’
뉴마는 슬슬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가고 있는데 나만 아직도 매여 있는 기분이야.
아역들이 몬클하우스에 방문했을 때 시우와 종일 붙어 있던 우형이 “앗, 시우 보고 싶다…….” 하고 중얼거렸다.
앞으로도 에메랄드 엔터 새싹들이 자주 놀러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스튜디오 어스의 사옥은 작은 편이라 전체를 둘러보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역들은 디저트과 함께하는 휴식 시간을 가지고 직업 체험을 종료했다.
카메라도 끄고, 보호자들이 데리러 올 때까지 멤버들과 노닥거리는 시간.
“형도 드라마 찍어요?”
“응. 당장은 아니고…… 공연 끝나고 나서?”
“나도 대본 받았는데!”
“같은 드라마 들어가는 거 아냐? 귓속말로 형한테만 알려줘 봐.”
“기사 나오기 전까지는 비밀이랬어요.”
역시 배우는 배우끼리 통하는 게 있나 보군.
한이는 연기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멤버들도 아이들의 질문을 받아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상 받을 땐 어땠어요?”
모노크롬이 대상 아이돌 타이틀을 얻고 나서 자주 받는 질문이었다.
트로피보다 미니크롬에 먼저 시선을 빼앗긴 아이들이었지만 대상도 역시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정신없고 그런데, 너무 기뻐서 눈물 나올 것 같았어…….”
“진짜로? 오빠도 울었어요?”
준해의 답을 듣고 나윤이 해랑에게도 질문했다. 귀여워 보여도 눈물은 없어 보였던 걸까.
모노크롬이 대상을 받고 나서 한 덩어리로 엎어져 통곡한 사실은 모르는 듯했다.
‘……나도 직접 본 건 아니지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나중에 컬러즈의 반응으로 전해 듣기만 했지.
“사람들이 쳐다보는데 눈물 안 멈추면 어떡해?”
“나는 안 울 수 있어.”
아이들은 시상식에서 울면 참을 수 있을지 토론하기 시작했다. 배우 시상식에는 아역배우상도 있으니까.
눈물 조절은 자신 있다는 현역 배우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시연아.”
나는 시연의 옆으로 다가가 소곤소곤 말했다.
예전에 방송 대기실에서 단둘이 대화했을 때, 내 감정을 예민하게 알아채던 시연이다.
내 상황이 어땠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직 내가 슬퍼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니까.
“전에 엄마 보고 싶을 때 어떻게 하냐고 물어봤던 거 있잖아. 사실 내가 엄마랑 헤어져 있다가 얼마 전에 다시 만났거든.”
“이사님 울었어요?”
“아니. 꽉 안아줬어.”
시연은 내 대답을 듣고 자기 일이라도 되는 듯이 환하게 웃었다.
시연이는 천사야. 아기 천사…….
“엄마가 그러는데 만나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 꼭 만나게 된대요. 그러니까 막 급하게 안 해도 된다구.”
시연의 어머니도 천사야. 천사 모녀…….
나도 아이에게 좋은 말만 듣고 있을 수는 없어서 덕담 하나를 해 주기로 했다.
“비슷한 이야기인데, 나도 최근에 확실하게 깨달은 게 있거든.”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허황된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직접 겪어보고 믿게 된 것이었다.
“진심으로 바라는 건 어떻게든 이루어지는 것 같아.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나고, 하고 싶은 일도 하고. 그러니까 시연이도 나중에 꼭 훌륭한 사장님 될 거야. 다른 소원도 이뤄지고.”
“다른 소원이요?”
“응. 또 하고 싶은 거 있어?”
“으음. 그럼 전 연기대상 받고 싶어요!”
역시 우리에겐 대상을 불러 모으는 기운이 있는 걸까?
나는 미래의 연기대상감 배우를 오래오래 응원하기로 했다.
***
‘정신없다…….’
스튜디오 어스는 신생 회사.
회사 규모가 작아졌고, 뉴마에서처럼 다른 팀과 조율하는 등의 일은 줄어들었지만 새로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절대적인 일의 양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사소한 부분에서 최 비서의 부재를 느끼고 있었다.
‘옆에 전담으로 보조해 주는 사람이 있을 때랑 없을 때가 이렇게 다르구나.’
그가 없어도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휴가를 종용하곤 했는데.
정말로 비서가 없으니까 눈치채지 못하는 부분에도 그의 손이 닿아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소하게는 펜이 어디 책상 구석에 굴러다니지 않고 멀쩡히 펜꽂이에 들어가 있는 것까지!
‘일반 사원이던 시절이 더 길었는데 임원 생활에 적응되어 버렸어…….’
그래도 이전 회사와 뉴마보다는 이곳이 훨씬 더 안정감이 들었다.
멤버들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편하게, 진심으로 일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게 바로 주인 의식이라는 걸까.
‘나는 이름이 주인이니까 항상 주인 의식이긴 한가?’
……아무튼, 일이 바쁜 데에는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모노크롬을 여기에 부르는 건…… 너무 염치가 없는데요?”
윤희가 한 방송 섭외 건을 두고 헛웃음을 지었다.
대상을 받은 후로 모노크롬이 바빠졌으니 내 일도 바빠질 수밖에.
모노크롬을 부르는 곳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이전엔 애매한 위치의 아이돌이란 인상이 강했는데, 대상감이라는 게 증명되니까 이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이.
그리고 이번에 섭외가 들어온 방송은 무려, <상상 카페> 마지막 화와 방송 시간을 두고 갈등이 있었던 그 프로그램이었다.
“그쵸. QBC랑 사이가 나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거잖아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의도가 너무나 선명히 보였다.
사적인 감정으로 판단하고 싶지 않지만, 약간 감정 상하게 만드는 건 변함이 없었다.
찜찜한 건 이뿐만이 아니었는데, 윤희가 그 점을 콕 집어냈다.
“저희 팬미팅 일정을 고려했으면 이때 부르진 않았을 텐데.”
“그러게요…….”
앨범이 나오거나 공연 일정이 잡히면 홍보차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지만.
이건 공연 일자랑 너무 가깝잖아!
‘아이돌이라고 이러는 건가.’
방송가에는 아이돌을 시청률 자판기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부르면 당연히 나와서 관심을 끌어주리라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데 라솔 씨나 천상식 씨한테는 안 이럴 거 아니야. 우리도 대상 아티스트라고.
“이날 댄스팀까지 다 모아서 연습하는 날인데. 아쉬운 건 그쪽이니까 시간 안 되겠다고 하죠. 저희도 조율할 만한 날에 불러달라고요.”
대상 아티스트를 부르고 싶으면 우리한테 일정 맞추라고 할 게 아니라 그쪽에서 맞춰야지.
아이돌은 이렇게 인식 면에서 불리하지만, 또 유리하기도 했다.
‘요즘은 꼭 방송만이 답이 아니거든.’
모노크롬이 노출될 기회는 방송 외에도 얼마든지 있다. 우리 자체 채널도 가지고 있고.
그리고 아이돌 팬층은 온라인 컨텐츠 이용에 빠삭하지.
이제 공중파 방송이라고 굽신굽신할 필요 없다 이 말이야! 우리도 맞는 방송 골라서 나갈 거야!
대상을 받고 변심했다며 아니꼽게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대상 아이돌이 주체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다른 아이돌은 어떤 취급을 받겠어.
특히 의지하는 후배들이 많은 카피바라 모노크롬이니까 책임감을 느끼고 중심을 잡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모노크롬 부르는 방송이 한두 개도 아니고.’
얼마 전엔 임주미 PD……가 아니라, 임주미 PD의 대변인 역할을 맡은 전 <상상 카페> 작가가 연락해 왔다.
[호스트? 게스트? PD님이 뭐든 맞춰주겠다고, 시간 되면 만나고 싶다고 하시네요.]
그녀는 임 PD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아니면 본인 의지인지, 임 PD와 함께 케이블 채널로 이직했다.
임주미 PD가 직접 연락하지 않고 작가를 통해 제안한 점에서 배려가 느껴졌다. 본인 말투가 곱지 않다는 걸 자각하고 있단 거니까.
내 스마트폰에 아직도 그녀는 [임주미 PD님(위험인물)]로 저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뿐만 아니라 손영식 PD도 <최고의 팀메이트> 출연 금지 게스트 특집을 하게 되면 나와달라고 했고.
‘그런데 어째 모노크롬한테 호의적인 PD들이 조금…….’
또, 로 시작하는 세 글자의 이미지가 강한데. 괜찮은 거 맞겠지?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