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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외전-2화 (402/430)

외전 2화

고등학생인 한이에겐 아직 청소년 특유의 유치함이 남아 있었다.

일부러 꼬장을 부리려고 더 물고 늘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둘 다 똑같이 귀여운 동생들인데 누구 편을 들어. 그냥 사이좋게 지내자는 거지.”

“헹. 이런 귀여움이라곤 하나도 없는 형 뭐가 예쁘다고!”

해랑이 예쁘냐, 아니냐 하면…… ‘미남’이든 ‘미인’이든 ‘아름다울 미’가 붙는 타입이 확실하긴 한데.

듣던 이들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으나 모두 눈치가 있었기에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내가 보기엔 둘이 스타일이 안 맞을 뿐이니까 비꼬아서 듣거나 바로 발끈하지 마.”

“근데 왜 저만 보고 말해요?”

“그야 항상 네가 먼저 해랑이를 건들잖아…….”

해랑이 예민하긴 해도 만인에게 까칠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동생들에겐 상냥한 편이었다. 물론 그의 기본 성격이 어디 가는 건 아니고, 상대적으로 온순하게 대한다는 뜻이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까칠하게 대하는 동생이 한이였고, 한이도 해랑에겐 유독 큰소리를 많이 냈다.

한이가 계속 세모눈을 뜨고 있자 맏형의 위엄이 안 통한다고 판단한 우형은 다른 권력자의 이름을 꺼냈다.

“송 피디님이 너희 계속 싸우면 앞으론 아예 떨어트려 놓을 거래.”

아이돌 연습생 둘을 떨어트려 놓겠다는 건, 두 사람을 같은 데뷔조에 넣지 않겠다는 소리로도 들렸다.

물론 송 피디는 앞에 ‘더 심해져서 주먹다짐까지 하면’이라는 조건을 붙였지만. ‘저렇게라도 대화하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하고’라는 말도 덧붙었고.

우형은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고자 그 내용을 적절히 생략했다.

한이는 할 말이 남은 듯이 볼륨을 낮춰 꿍얼거렸다.

“그렇게 편들어줘도 저 형은 형 이름도 모를걸요?”

“…….”

한이를 향해 서 있던 우형이 이번엔 슬쩍 몸을 틀어 해랑을 바라봤다.

해랑은 우형의 시선을 받고 찔렸는지 입을 작게 뻐끔뻐끔했다.

“여우…….”

“……까지만 기억하는 거야?”

재민이 ‘여우 형’이라고 부른 건 기억하는 걸까. 그 자체가 풀네임인데.

그냥 여우가 되어버린 우형은 한숨을 푹 쉬었다.

“내 이름이 뭐가 중요하겠냐.”

“전엔 형보고 우엉이라고 한 거 알아요?”

“……너 다음 평가에서 어려운 곡 할 거라며. 연습하러 가.”

“네에.”

해랑의 기억력을 지적한 것으로 나름 만족했는지 한이는 순순히 물러났다.

그리고 이번엔 재민이 한이와 교대하듯이 해랑에게 다가갔다.

“내 이름은 명재민이야. 금치 같은 거 아니고.”

“…….”

자신의 이름도 모를까 봐 대뜸 자기소개를 하는 재민.

해랑은 할 말을 잃고 바라보다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멀리선 한이가 이터널의 최신 타이틀곡 고음 파트를 내지르는 소리가 벽을 뚫고 들려왔다.

얼마 후에 이 잘나가던 선배 그룹이 박도박 사건으로 풍비박산 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하던 어느 날의 일상이었다.

***

‘null’에서의 연습생 생활은 좋게 말하자면 여유롭고, 나쁘게 말하자면 ‘뭔가 진행되고 있긴 한 건가?’라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데뷔조 선정이 지지부진하다고 생각하며 다른 소속사를 찾아 나가는 연습생들이 많았고, 회사는 그만큼 또 새로운 연습생들을 받아들였다.

그래도 영원히 이 상태를 유지할 생각은 아니었는지, 시간이 지나자 이 회사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위에 사무실 꾸미고 있더라?”

여기저기서 소문을 물고 오는 한이가 또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들고 준해에게 다가왔다.

“진짜 배우 회사랑 합치는 거야?”

“그런가 보지. 우리야 잘 모르겠지만.”

직원들은 연습생들에게 회사 내부 사정을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도 평소보다 분주하게 사람이 오가서 ‘뭔가 있나 보다’ 싶더니, 회사가 개편되려는 듯했다.

“나 사실 여기 건물이 반쯤 비어 있길래 진짜 유령 회사 같다고 생각했거든.”

준해가 ‘null’이라는 회사명을 듣고 처음 떠올린 것도 유령 회사의 이미지였다. 그리고 처음 직접 발을 들였을 때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좋은 형들을 만나서 금세 정을 붙이고 이제는 익숙한 공간이 되었지만.

“슬슬 데뷔조도 정하는 거 아냐?”

“그런데 보이그룹이 될지 걸그룹이 될지 모른다며.”

아이돌 그룹을 만들겠다고 회사를 세운 건 알겠는데, 그 이상은 아직 정해진 게 없었다. 연습생들도 양쪽 성별이 다 있었고.

그러나 한이가 자신의 가슴을 툭툭 치며 웃었다.

“이 내가 있는데 보이그룹을 안 만든다고?”

여전히 힘 빠지게 만드는 한이의 대화법에 준해도 “흐흥.” 하고 힘 빠지는 웃음을 내뱉었다.

기대하는 한이와 다르게 준해는 심경이 복잡해졌다.

준해의 부모님은 이 회사를 보컬 학원의 진화판 정도로 여기는 듯했다. 실제로도 보컬과 댄스 레슨, 연습생 평가 외에 별다른 활동이 없었으니.

그러나 준해도 이제 고등학생. 부모님은 넌지시 “거긴 언제까지 있을 거니?” 하고 물어보곤 했다.

아직은 고1이지만 슬슬 입시도 신경 써야 할 터였다.

성적이 뛰어난 준해였기에 부모님은 학업 쪽으로 더욱 기대를 보였다.

‘꼭 한쪽을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부모님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부모님의 우려 때문에 연습생을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준해를 가장 심란하게 만드는 것은, 곧 데뷔조와 나머지 연습생으로 나뉠지도 모른다는 현실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처럼 한 울타리 안에서 지내는 이 상황에 안주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바람과 다르게 유유자적하던 사내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다.

그 시작은 ‘null’이 갑자기 사명을 ‘뉴마 엔터테인먼트’로 바꾸면서부터였다.

“뉴마 엔터의 첫 번째 그룹은…… 보이그룹으로 정해졌다. 5인조로 예상하고.”

드디어 신인 런칭의 가닥이 잡혔는지 송준오 피디가 연습생들에게 그렇게 전했다.

얼마 후 첫 번째 데뷔조 멤버로 발탁된 것은.

“……말이 씨가 됐나 봐.”

정말로 한이였다.

마치 정체를 알 수 없는 최종 결정권자가 ‘아이돌은 가수니까 당연히 노래 잘하는 애가 있어야지.’라면서 고른 듯한 첫 번째 멤버.

자신감을 보였던 그는 실제로 데뷔조가 되어버리자 준해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는지 머쓱하게 웃었다.

첫 번째 데뷔조 멤버가 정해지자 연습생들 사이엔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데뷔하거나, 몇 년을 연습생 신분으로 더 기다리거나, 회사를 나가거나. 연습생 모두가 분기점에 서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뽑힌 멤버는.

“백해랑.”

그의 태도를 자주 지적하던 송준오 피디가 복잡한 표정으로 해랑의 어깨를 두드렸다.

정식으로 계약하면 싫어도 몇 년은 함께해야 하는데, 순탄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따라와 주면 좋겠는데.’

해랑을 챙기던 우형이나, 그나마 친하게 지내던 다른 연습생들이 함께 데뷔한다면 희망적인 미래를 그려볼 수도 있겠지만.

하필 지금 정해진 멤버는 해랑과 가장 충돌이 잦았던 한이뿐이었다.

어쩌겠는가. 비서의 말로는 대표가 랩 실력이 가장 좋은 연습생을 뽑았다는데.

성격이 문제긴 하지만, 랩뿐만 아니라 댄스 실력도 괜찮았기에 송준오 피디도 토를 달진 않았다.

차원 너머의 누군가가 ‘역시 아이돌 그룹엔 래퍼가 있어야지.’ 하면서 다른 요소를 다 차치하고 고른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다행히도 다음으로 뽑힌 멤버는 송준오 피디에겐 안심되는 인물이었다.

“헙. 저 열심히 할게요.”

역시나 ‘춤…… 추는 애 있어야지.’라는 생각으로 뽑힌 듯한 세 번째 멤버.

모두와 두루두루 잘 지냈고 열의 넘치는 재민이었다.

지금까지 뽑힌 이들은 다들 보컬과 랩, 댄스 부문에서 가장 우수하게 평가된 연습생들이었다.

셋만으로도 메인 포지션은 거의 결정.

이제부터는 포지션이 아니라 그룹의 방향성과 멤버 간 밸런스를 고려해서 나머지 멤버를 뽑을 터.

“한마디로…… 기준을 알 수 없으니까 운명에 맡겨야지.”

선택을 기다리는 처지가 된 우형이 작게 웃으며 준해 옆에 걸터앉았다.

애써 괜찮은 척하지만 내쉬려던 한숨을 삼키는 것이 준해 눈에도 확실히 보였다.

티 내지는 않아도 마음고생이 심한지 우형은 점점 시들시들해졌다.

조금 뻗친 머리 스타일조차 축 처질 정도였다. 결코 좋은 상태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내가 회사 사람이면 형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할 텐데. 계속 리더였잖아.”

“에이. 리더란 타이틀은 거창하고 그냥 맏형이었지.”

연습생 리더 경력을 참작하여 데뷔조 리더로 뽑아주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맏형이란 점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었다.

한 살 아래인 해랑이 있긴 하지만, 재민에 이어서 더 어린 연습생들까지 데뷔조로 언급되는 중.

나이가 위로 올라갈수록 회사에서도 고려할 사항이 많아진다.

“원하는 대로 되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인생 끝나는 거 아니잖아. 마음 편하게 먹으라고.”

같은 처지끼리 무어라 격려하기도 힘든 상황에 표정이 안 좋은 동생을 챙겨주겠다고 다가온 모양이었다. 본인이 더 심란할 텐데도.

우형은 이번 기회가 지나가 버리면 다음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각오하고 있는 듯했다.

준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마음은 수선스러웠다.

‘그럼 나는 어떡하지……?’

안일한 마음으로 연습생을 한번 경험해보겠다고 들어온 주제에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욕심났다. 정말로.

그리고 얼마 후, 우형이 네 번째 데뷔조 멤버로 결정되었다.

데뷔조 멤버들은 남은 연습생들을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개중엔 당연히 준해도 있었다.

이제 남은 한 자리에는 누가 들어갈 것이냐.

직원을 포함하여 회사 내 모든 이의 화젯거리는 이것이었고 가끔은 근거 없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아무래도 보컬 포지션이 탄탄한 게 그룹에 좋으니까. 위쪽에선 너를 눈여겨보시는 것 같던데.”

“정말요?”

지나가는 직원의 이야기에 희망을 품었더니.

“아, 아니었나 보네. 미안.”

어제는 준해, 오늘은 도한. 마지막 멤버로 언급되는 연습생이 매일같이 달라졌다.

마지막 멤버 선정은 무척이나 오래 걸렸다. 시간상으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체감상으로는 기다림이 매우 길었다.

회사는 마치 간을 보듯이 계속 말을 번복했고, 희망을 줬다 뺏는 그 과정에서 준해는 초조함과 간절함만 커졌다.

누군 인생을 걸고 도전하는 판에 안일한 생각으로 발을 들인 벌을 받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 말 잘 듣고 열심히 할게요. 제발 한 번만 뽑아주세요. 제발, 제발!’

준해는 종교도 없으면서 아무 신이나 들어주길 바라며 한참을 기도했다.

***

뉴마에선 연습실이 모노크롬의 안방이었다.

따로 볼일이 있지 않으면 멤버들도 사무실이 있는 층까지는 잘 올라오지 않았다.

‘그땐 불편해서 그런 게 맞았나 봐.’

스튜디오 어스로 소속이 바뀐 모노크롬은 확실히 행동 범위가 넓어졌다.

뉴마 시절엔 내가 멤버들을 찾아 연습실로 내려갔다면, 요즘은 어디서든 멤버들을 곧잘 마주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모노크롬이 이곳을 본인들의 홈그라운드로 여기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멤버들은 연습실, 혹은 그 옆 휴게실에 있는 경우가 가장 많긴 했다. 그들이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사무 작업을 하지는 않으니까.

‘……PPT 제작 능력을 생각하면 그래선 안 될 것 같고.’

아무튼, 멤버들을 찾아 내려온 연습실 옆 휴게실.

들어오자마자 보인 것은 준해가 손거울을 들고 눈가를 살펴보는 모습이었다.

“다래끼라도 났어?”

“아뇨. 오늘 자면서 계속 찌푸리고 있었나 봐요. 혹시 충혈됐나 해서 봤는데 괜찮네요.”

“악몽 꾼 거 아냐?”

“악몽인가?”

손거울을 내려놓은 준해가 고개를 갸웃했다.

“옛날 꿈이었어요. 데뷔하기 전이었는데.”

“연습생 시절?”

내가 모르는 시절의 이야기다.

흥미로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준해가 기억나는 꿈의 내용을 설명해줬다.

“제가 그때 데뷔하고 싶어서 엄청 기도했거든요. 그게 꿈에 나오더라고요.”

연습생의 소원은 퀘스트로도 대표에게 전달되지 않았을 텐데.

업보 어택 같기도 하고 아닌 듯도 한 애매한 대미지가 전해져왔다.

“그래서, 꿈에서도 데뷔했어?”

“으음. 꿈 내용이 흐릿해져서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저 말고 우엉이랑 시금치가 뽑혔던 것 같아요.”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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