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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외전-1화 (401/430)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외전 1화

Bonus Stage 1.

“준해 너는 기획사 들어가 볼 생각은 전혀 없니?”

“기획사요?”

보컬 학원 선생님의 질문에 준해는 눈을 깜빡였다.

“너도 알잖아. 우리 학원에서도 아이돌 지망하던 애들은 오디션 보고 기획사 연습생으로 들어가는 거.”

미술 학원에도 입시반 학생과 취미반 학생이 따로 있듯이, 보컬 학원에도 취미로 노래를 배우는 원생과 가수를 지망하는 원생이 있었다.

길거리 캐스팅이나 기획사가 주최하는 오디션 외에도, 보컬 학원이나 댄스 학원을 연결고리 삼아 연습생으로 들어가는 것도 꽤 정석적인 루트였으니까.

그래서 준해는 취미와 가수 지망 중 어느 쪽이냐면…….

“으음. 잘 모르겠어요. 아직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딱히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오래 배웠는데 아깝지 않아? 너 중학생 되자마자 노래 배우고 싶다면서 들어왔잖아. 그런데 오디션은 굳이 안 보겠다고 하고.”

“그땐 시험 기간이기도 했고…….”

준해는 공부를 잘했고, 똑똑한 아들이 자랑스러웠던 부모님은 준해가 원하는 것을 잘 들어주는 편이었다.

보컬 학원에 등록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성적이 좋다고 하루 종일 책상에만 앉아 있으면 오히려 공부에 질려 역효과가 나니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기분 전환을 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건 건강한 일상에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아예 진로를 가수로 트는 것까지는 부모님도, 준해도 별로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

‘노래는 계속하고 싶긴 한데.’

진로는 대학 학과를 정할 때 고민하면 되리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꼭 가수가 되어야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같이 학원에 다니던 친구들이 기획사 오디션에 붙었다며 기뻐하면서 떠나가는 것을 보면 관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고민에 빠진 준해의 얼굴을 본 학원 선생님은 설명을 덧붙였다.

“이번에 연습생 모집한다고 공고를 쫙 돌렸더라고. 마침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말해 보는 거야.”

“어느 회사인데요?”

“회사 이름이 ‘null’이래.”

“널이요?”

“발음은 그게 맞는지 모르겠는데, 영어로 N-U-L-L.”

대형 아이돌 기획사인 에이펙트 엔터처럼 무슨 무슨 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이 나올 줄 알았더니 그냥 ‘null’이라니.

준해는 들어본 적 없는 회사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프로그래밍에 주로 쓰이는 단어 아닌가?’

입력창에 아무것도 입력되지 않았을 때의 ‘알 수 없는 값’ 같은…….

준해의 머릿속에는 유령 회사의 이미지부터 떠올랐다.

“……이상한 회사는 아니죠?”

“아냐, 아냐. 내가 설마 이상한 회사를 추천해 주겠니?”

학원에서 배출한 원생이 아이돌로 데뷔하면 이는 곧 학원과 선생님의 실적.

물론 처음부터 아이돌을 지망하고 들어온 원생들에게 하는 것만큼 적극적으로 준해의 등을 떠밀진 않았지만.

준해는 동글동글 귀염상에 음색이 좋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보였다. 아무 곳이나 보내버릴 마음은 없었다.

“이번에 새로 생긴 회사 같은데, 연습생 말고도 엔터 경력직 직원을 꽤 뽑는다네? 소문으로는 무슨 배우 회사 지분도 있고 해서 자금 문제가 없다나. 아이돌 그룹을 만들겠다고 준비 만반인 것 같더라고.”

“으음…….”

준해가 어느 정도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학원 선생님은 조금 더 솔직한 심정을 꺼냈다.

“아무래도 다른 애들은 이름 있는 기획사부터 노리잖아. 그런데 준해 너는 이쪽으로 나가겠다고 마음먹은 게 아니니까. 이런 회사에서 연습생을 한번 경험해보면 어떨까? 이 회사가 마침 연습생 계약 기간이 자유롭대.”

회사 이름은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졌지만, 많은 연습생을 데려오려는 노력은 느껴졌다.

게다가 안 맞으면 그만두기도 쉽다지 않은가.

선생님의 말대로 경험 삼아 연습생을 해 보기에는 이만큼 좋은 곳이 없어 보였다.

“한번…… 원서는 내 볼까요?”

“잘 생각했다. 댄스 영상도 필요하다고 하면 댄스반 선생님한테 도움받을 수 있게 부탁해 볼게.”

“우선 부모님이랑도 얘기해 보고요.”

미성년자이니 당연히 부모님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래도 준해는 이 점엔 크게 걱정이 없었다.

알아서 공부 잘하고, 엇나가는 곳 없이 잘 크는 착한 아들. 부모님은 효자 준해의 결정을 항상 지지해 줬으니까.

물론, 학생 시절에 다양한 경험을 해 보고 싶다던 아들이 웬 악덕 X소 아이돌 기획사에 잘못 걸려 5년간 굴려지고도 2년을 더 고생하겠다며 재계약을 결정하면 거세게 반대할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엔 너그럽기만 한 부모님이었다.

***

“금치야. 이리로 와 봐.”

“나 금치 아니라니까.”

준해에게 다가오던 한이가 옆에 있던 시금치, 아니, 시금치 색의 교복 재킷을 걸친 재민을 같이 불렀다.

연습생들은 학교가 끝나고 바로 회사로 오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재민은 서울 밖에 살았기에 집에 들를 새도 없이 항상 교복 차림으로 등장했다.

한이는 재민의 교복만 보면 시금치, 거기에서 성을 빼서 ‘금치’라는 혼자만의 별칭으로 그를 부르곤 했다.

재민이 뚱하게 대답하면서도 순순히 다가오자 한이는 동생 둘을 데려다 놓고 목소리를 낮췄다.

“준해 너 여기 원서 낼 때 보컬로 지원했지? 금치는 댄스고.”

“응.”

“형, 금치라고 하는데 자꾸 대답하면 이 형이 계속 그렇게 불러.”

“아차. 나는 명재민이다. 명재민.”

재민이 머리에서 시금치를 몰아내기 위해 고개를 털었다.

한이는 별명을 논의하자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기에 하려던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 연습생들 트레이닝 커리큘럼 알아서 짜주잖아. 너나 나는 댄스 레슨이 많이 잡히고, 금치…….”

“명재민.”

“어, 재민이는 보컬 레슨 받고.”

아이돌이라면 춤과 노래가 필수. 래퍼를 포함한 모든 포지션이 보컬, 댄스 실력이 기본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보컬 부문으로 지원해 들어온 준해와 한이는 댄스 레슨, 댄스 부문으로 들어온 재민은 보컬 레슨 위주로 커리큘럼이 짜였다.

특이할 것도 없는 이야기여서 준해는 별생각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들어온 꼬마애 알지. 김도한.”

“응.”

준해가 보컬 학원 선생님에게 들었던 것처럼, 이 ‘null’이라는 회사는 정말로 연습생의 출입이 꽤 자유로웠다.

가끔은 말도 제대로 섞어 보지 못한 채 나가버리는 연습생들도 있었다.

그래서 모든 신입 연습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기는 어려웠는데, 도한은 꽤나 눈에 띄는 연습생이었기에 기억에 남았다.

‘성질 있는 치와와 보는 느낌…….’

준해보다 한 살 어렸지만 눈에 패기가 담겨 있어서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사교성 뛰어난 한이는 도한과도 쉽게 대화를 나눴고, 그래서 두 사람에게 이 화제를 꺼낸 것이었다.

“걔 보컬로 들어왔는데 갑자기 회사에서 랩을 배우라고 했대.”

포지션이야 최종적으론 회사가 정하는 것이고 여러 분야를 다 가르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도한처럼 보컬 부문으로 지원해서 들어온 준해와 한이는 랩을 해 보라는 요구를 들은 적이 없었다.

재민 같은 댄서도 데뷔하면 노래나 랩 중 하나는 담당해야 하는데, 회사는 재민에게도 보컬 레슨만을 권했다.

“왜지? 래퍼 연습생 부족한가?”

“수가 부족한 건 아니지 않아? 저기 해랑 형도 있고.”

준해가 고개를 빼꼼 들어 연습실 구석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는 해랑에게 시선을 보냈다.

무려 대형 아이돌 기획사인 에이펙트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출신 백해랑.

그런 그가 래퍼 포지션인데 굳이 래퍼 연습생을 늘릴 필요가 있을까.

‘……아니면 수를 좀 늘려서 경쟁을 시켜보려는 건가?’

해랑은 데뷔에 크게 의욕을 보이지 않아서 더욱 눈에 띄었다.

프로듀스팀의 팀장인 송준오 피디가 태도 불량이라며 몇 번이나 지적한 적도 있었으니.

연습생들 사이에선 아직도 에이펙트 엔터에 마음이 가 있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어쨌든 회사의 의도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하는 준해 옆에서 재민이 “아!” 소리를 냈다.

“그러고 보니 여우 형도 보컬이랑 랩 둘 다 해.”

“그 형은 처음부터 두 포지션으로 지원했을걸?”

“그래? 그럼 말고.”

이야기가 옆길을 빙빙 돌았으나, 한이가 꺼내려던 본론은 이제부터였다.

“어쩌다 주워들었는데, 여기 대표님이 보기만 해도 연습생들의 능력치를 꿰뚫어 본다는 얘기가 있어. 도한이 걔한텐 래퍼의 싹수가 보였던 거지.”

“에이, 만화도 아니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황당해하는 준해와 달리 재민은 재밌어하며 눈가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거잖아. 이렇게, 눈에 대면 상대방 전투력 보이는 거.”

“연예기획사의 스카우터가 그런 스카우터는 아닐 텐데.”

직원이나 연습생을 스카우트해오는 건 맞지만 능력이 수치로 표시되는 스카우터를 착용하진 않을 터였다.

이 모든 이야기를 농담으로 치부하는 준해에게 한이는 더 자세한 근거를 꺼내놓았다.

“그것뿐만이 아냐. 누가 어쩌다 사무실 책상에서 자기 평가지를 봤는데, 자기는 랩을 해 본 적도 없는데 랩 수준이 적혀 있었대!”

한이가 연기력을 섞어 괴담처럼 썰을 풀자 재민은 완전히 몰입했다.

“꿰뚫어 보는 눈? 그런 걸 갖고 계시나?”

“그 정도면…… 신내림 받아야 하는 거 아냐?”

대표는 연습생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여전히 정체불명이었다.

준해의 머릿속에 ‘이 회사 정말 괜찮나’ 하는 걱정이 떠올랐을 때.

“그러니까 다른 애들도 그렇고, 나도 보컬이 아니라 다른 거로 뽑혔을지도 모른단 소리지.”

“형은 확신의 보컬이라며.”

“아니. 나는…… 비주얼로 뽑힌 것 같아.”

결국 이 소리를 하려고 비장한 표정으로 불러 모은 건가.

힘 빠지는 이야기 전개에 재민과 준해는 급격히 흥미를 잃었다.

“아니지. 비주얼로 뽑혔다면…….”

준해는 아까 잠시 향했던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아직도 주변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하듯이 이어폰을 꽂고 앉은 해랑이 있었다.

아이돌 연습생인 것치고 활력이 넘치기는커녕 음침한 분위기를 풍겼으나 그게 또 느낌은 있었다.

지금도 눈에 띄지만 몇 년이 더 지나 어른스러움이 더해지면 한층 더 완성될 듯한, 기대가 생기게 하는 얼굴이었다.

자기는 비주얼 전형으로 들어왔다고 당당하게 얘기하던 한이도 같은 곳을 바라보더니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내가 봤을 땐 저 형, 랩 하는 영상이 아니라 증명사진만 보내고 들어왔어. 한번 물어볼까?”

“또 시비 걸려고…… 아, 형!”

준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이는 “형, 형!” 하며 성큼성큼 걸어가 해랑의 앞에 섰다.

“형, 물어볼 게 있는데 여기 들어올 때…… 아니, 사람이 말하려는데 이어폰 좀 빼고.”

한이가 해랑의 이어폰 한쪽을 빼버리자 해랑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제야 한이와 시선을 맞췄다.

“뭐.”

“형 얼굴로 지원해서 들어온 거지? 랩 말고.”

세 사람이 방금 대화한 내용을 들었다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 맥락을 알았겠지만.

방금까지 청각을 차단하고 있던 해랑에게는 그냥 ‘실력 없이 얼굴 하나만 믿고 들어온 게 아니냐’ 하는 시비로 들렸다.

“싸우자고?”

해랑의 얼굴이 비딱해지자, 한이의 뒤에 서 있던 재민이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제삼자’를 몸으로 표현하며 허공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충돌은 이제 일상과도 같아서 말리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꿋꿋이 자신의 할 일을 하는 사람은 남아 있었다.

“제발 하루만이라도 조용히 지나가면 안 될까. 내 소원이다…….”

맏형이라고 자연스레 연습생 리더가 된 우형이었다.

그는 충돌이 일어날 낌새를 느꼈는지 어디에선가 바로 나타나, 시선으로 스파크를 튀기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니이. 난 그냥 얘기 좀 하자는데 저 형이 먼저 싸우자고 하는 걸 어째? 동생은 그냥 굽신굽신해요? 늦게 태어난 사람은 억울해서, 나 참.”

“내가 보기엔 너도 말을 좀 조심할 필요가 있어. 앞뒤 맥락 자르지 말고.”

우형이 자신을 타이르자 한이는 한층 더 반항적인 얼굴이 되었다.

“누구 편드는 거예요? 이 형이에요, 나예요?!”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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