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7화
무언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끝까지 관심이 없는 법이다.
아이돌 그룹이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도, 누가 있고 몇 명인지 모른 채 그냥 덩어리로 인식하는 사람도 많았다.
바로 엄마의 경우가 그랬다.
팀이 대상을 받는 장면을 봐도 ‘와, 대단하다’ 하고 그때만 감탄할 뿐.
TV에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멤버 개개인의 얼굴은 기억에서 휘발되는 것이다!
‘하긴 10년도 활동 안 한 아이돌 그룹을 전 국민이 알기는 어렵지…….’
대상을 받아도 갈 길은 멀었…… 아니, 얼굴과 노래를 더 알릴 여지가 남아 있다고 표현하자.
“얘가 리더야. 엄마가 TV로 소감 듣고 말 예쁘게 한다고 그랬잖아…….”
나는 엄마가 했던 말을 인용하면서 모노크롬이 말을 예쁘게 하는 착한 아이들임을 어필했다.
그러나 엄마는 의심이 담긴 눈으로 오히려 나를 바라봤다. 이상한 변명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새해 첫날에 대상 가수가 집 앞으로 찾아오는 서프라이즈는 상상해본 적 없을 테니 믿기 어렵겠지. 하지만 이건 실제 상황인걸.
“저 생얼이 너무 다른가요……?”
엄마가 믿을 기미를 보이지 않자 우형은 양손으로 자기 뺨을 감싸며 제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손을 휘저었다.
“아냐. 메이크업을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시상식 의상 입고 올 걸 그랬나 보다.”
한이도 농담인지 진담인지 사복 차림을 탓했다.
그럴 필요 없어. 무슨 면접 자리도 아니고!
예쁘게 하고 올 걸 그랬다며 아쉬워하는 멤버들을 보면서 나는 엄마의 귓가에 빠르게 속삭였다.
“애들 이목구비를 봐. 일반인이랑 다르잖아!”
“그렇긴 한데…….”
다행히 엄마도 이들이 연예인이라는 것까지는 믿는 듯했다.
그러나 엄마는 이제 모노크롬이 아니라 내가 다닌 회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옛날엔 연예인 회사에서 조폭도 고용하고 그랬다던데.”
“……옛날엔 어땠는지 몰라도 요즘은 그러면 큰일 나.”
별별 사람들이 모인 업계이니 검은손이 없다고 장담은 못 하겠지만, 지금은 인터넷으로 정보 교류가 활발해진 시대가 아닌가.
팬덤이 모인 아이돌 소속사에서 그러면 인터넷이 난리 날걸.
엄마의 오해를 풀려면 꽤나 많은 대화가 필요할 듯했다.
불신에 빠진 엄마와 모노크롬을 계속 대치하게 둘 수는 없어서 나는 엄마의 어깨를 잡고 떠밀었다.
“너희 우형이네 집으로 간댔지? 핸드폰 충전해서 연락할게.”
“그럼 송 피디님한테 저희가 말씀드릴까요?”
“내가 피디님한테 연락드릴게!”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그 두목님의 정체가 바로 나라는 것까지 알려주고 나서야 엄마의 의심을 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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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새 회사로 옮기는 거 진짜 마음 편하고 좋다
사장님 애들 데뷔 때부터 프로듀서 맡아주셨던 분이면 애들이랑도 친할 테고
└ㅇㅇ이번에 회사 세우는 것부터 같이 상의한 것 같아서 안심됨ㅠㅠㅠ
└~편안~
└그럼 프로듀서분들이랑 매니저님들(우형이 사촌형님 포함) 팬매님 이렇게 그대로 가는 거?
└주인님은? 신씨라 대표 가족설 있었잖어
└대상 받은거 보면 계실듯 왜냐하면 내가 주인님한테 탈뉴마하고 대상 받게 해달라고 기도했거든
└논리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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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크롬을 만난 덕분에 기존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날 그대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아직 알아볼 것은 많았다.
일단 아티스트팀이 해체되고 배우팀만 남은 뉴마 엔터테인먼트.
현재는 ‘고운 매니지먼트’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하였다.
‘만일 배우팀이 게임 시스템에 휘말렸던 거라면 원래 이런 형태의 회사가 아니었을까…….’
게임 속에선 ‘배우’라는 존재가 나올 일이 없었다. 아직도 배우팀이 어디서 튀어나와 뉴마의 일원이 되었는지는 미스터리였다.
아무튼 그들의 바람대로 온전한 배우 회사가 되었으니 모노크롬과 엮일 일은 없겠지.
한이가 연기 활동을 계속하다 보면 고운 매니지먼트 소속의 배우와 만나게 될 수도 있지만 소속사끼리는 접점이 없을 터였다.
고운 매니지먼트는 이제 뉴마라는 과거를 완전히 지워냈다.
‘내 이름을 딴 회사였는데 이렇게 사라지는구나.’
컬러즈도 배우팀엔 관심이 없었고, 배우 팬들은 ‘내 배우’가 작품만 멀쩡히 들어간다면 소속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뉴마가 언급될 일은 컬러즈가 ‘예전에 어떤 거지 같은 회사가 있었지…….’라며 아름답지 않은 추억을 돌아볼 때 정도?
회사 자체에 애착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2년 동안 집만큼이나 붙어 있던 곳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은 묘한 느낌이었다.
‘뭐, 계속 엮이는 것보다야 서로 갈 길 가는 게 훨씬 낫지.’
대표가 운영하던 뉴레인도 이제는 에이펙트 엔터테인먼트의 레이블로 들어갔으니 게임과는 무관해졌다.
이렇게 ‘그 세계가 게임이었던 흔적’은 사라졌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신경 쓰이는 것은 남아 있었다.
‘일단 이 캐리어!’
대표가 가져온 캐리어. 분명 그 세계가 ‘마이 엔터 속 세계’일 때 내가 샀던 거란 말이지.
모노크롬과 동료들이 연예계에 멀쩡히 있는 모습을 보면 두 세계가 잘 융화되었다는 건 알겠는데 이런 물질적인 것도 같이 넘어온 건가?
그런 생각에 나는 포털 검색창에 아는 사람들 이름을 하나하나 넣는 것을 잠시 멈추고 핸드폰을 뒤졌다.
그리고 발견했다. 내가 ‘신주인 이사’일 때 썼던 그 계좌를!
‘……대표가 사치하지 말고 돈을 아껴 쓰라고 할 때 새겨들었어야 했나?’
대표도 한 달간 신주인으로 살았지만 돈 쓸 일이 많지 않았는지 잔고는 내가 기억하던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2년간 쉬지도 않고, 그것도 임원으로 일한 것치고는 그리 많지 않은 금액.
내가 이전 회사에 다니며 모아뒀던 돈도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 적자는 아니지만…… 낭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내 돈이란 생각이 안 들어서 마음껏 썼던 건데.’
내가 힘들여 취직한 것도 아니라서 더욱 그런 기분이 강했다.
컬러즈의 말대로 사이버 머니를 받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버 머니가 이렇게 현금으로 돌아올 줄이야.
아예 없으면 ‘깔끔하게 정리되었구나’ 하고 넘어갔을 텐데 애매하게 남아 있으니 ‘이게 내 노동의 가치였나’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
작년까지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을 살았지만, 이제부턴 내 앞가림하면서 착실히 살아야 하니 현실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으니 괜히 아쉬워하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큰 보상이 하나 남아 있었다.
‘집이…… 남아 있잖아?!’
대표가 캐리어 가방에 옷이랑 짐 몇 개만 넣어서 본가로 왔길래 집은 정리했거나 없어진 줄 알았는데!
궁금해서 주소를 검색해 보니 내가 기억하는 건물이 멀쩡히 있었고, 인터넷으로 내 재산 정보를 확인해 보니 ‘신주인 이사’로 살던 집이 내 명의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 할 듯하여 나는 본가에서 내 자취 집이라는 생소한 경로를 따라 찾아갔고.
“……집 꼴이 이게 뭐지?”
나는 아이리스에 미친 덕후의 집을 목도했다.
뭘 했는지 테이블마다 아이리스 사진과 포스터가 펼쳐져 있고 소파에도 아이리스 앨범이 몇 개씩 놓여 있었다.
대표도 설마 집이 그대로 남을 줄은 생각 못 했던 건가? 그렇다고 집을 이 꼴로 만들어 놓다니…….
내 소유의 집이고 신주인이 벌여놓은 것들이니까 이걸 정리할 사람도 나뿐이었다.
‘얘는 한 달 동안 아이리스 덕질을 신나게 했나……?’
이유를 알지 못해 의아해하던 나는 침실 테이블 서랍에서 종이 몇 장을 발견했다.
휘갈겨 쓴 메모와 낙서…… 아니, 이건 낙서가 아니라 의상 자료였다.
아이리스의 의상을 연구한 건가?
‘그런데 이거 이번 <음악대상> 무대 의상이랑 비슷하지 않아?’
모노크롬과 아이리스를 포함하여 아는 가수들의 <음악대상> 무대는 인터넷으로 전부 봤다.
특히 아이리스는 무대를 선보였기에 내가 안 볼 수가 없었다.
‘레드한테 물어볼까.’
대표의 퀘스트 보상을 받기 전에 지인들에겐 당분간 자리를 비운다고 전해놨던 터라, 지금 내게 먼저 연락하는 사람들은 모노크롬과 전담팀뿐.
아직은 정신이 없어서 조금씩 연락을 재개하는 중이었다.
아이리스는 정규 앨범 준비로 한창 바쁠 것 같아서 용건이 있지 않으면 조금 여유를 두고 연락하려고 했는데.
나는 레드의 연락처를 찾으려고 핸드폰을 뒤지다가 [QBC 임주미 PD님]으로 저장되어 있던 이름이 [QBC 임주미 PD님(위험인물)]로 바뀌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표는 정말 한 달 동안 뭘 한 거지?’
아무튼 레드에게 가벼운 안부 메시지를 보내자 그녀는 반갑게 답장했다.
[이사님! 안 그래도 돌아오셨는지 궁금했어요. 댁에 계세요?]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연락을 재개할 때마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이들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지금은 본가에서 지내지만 잠시 집에 와 있다는 내용을 전하자 레드는 직접 찾아와도 되냐며 물었다.
[네가 바쁘지 않으면야. 주소 다시 알려줄까?]
[아뇨. 두 번 가 봐서 알아요.]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의문이 들었으나 나는 레드를 기다리기로 했다.
어차피 집 청소를 좀 더 해야 할 듯하고.
‘엄마한테 ‘갑자기 집이 생겼다’라고 해야 할지, ‘집을 구했다’라고 해야 할지 고민도 해 봐야 하니까.’
본가도 서울, 이 집도 서울인 탓에 2년간 본가로 돌아가지 못한 것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 ‘여기가 내가 지내던 집이야’라면서 이 생활감 넘치는 공간을 보여준다고 생각해 봐.
엄마는 ‘딸이 걸그룹 덕질에 미쳐서 가출하고는 2년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게임 속 걸그룹에 빠졌다가 그 세계까지 들어갔다 왔으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도 같고…….’
사기에 걸린 건 아닌지, 누군가에게 명의를 빌려주진 않았는지 아직도 틈날 때마다 질문하는 엄마에게 또 걱정을 얹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꼴을 보여주면 어디로 나갈 때마다 ‘걸그룹 보러 가니?’ 하고 물어볼지도 모른다.
얼마 후부터는 아침마다 보이그룹은 보러 가겠지만.
‘그래도 누가 키운 애들인지 예쁘긴 예뻐.’
뉴마는 모노크롬과 아이리스를 연달아 배출하고도 중소를 넘어 X소 소리를 들은 걸 반성해야 한다.
그런 뻘한 생각을 하며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으니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이사님!”
“오랜만이다. 앨범 준비 중이라 바쁘지 않아?”
“새해라 잠깐 휴가예요. 이제 정규 활동 끝날 때까지 못 쉬니까.”
레드는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카락을 바라봤다.
“아, 머리가 갑자기 길어졌지……?”
머리를 감거나 빗을 때마다 단발이 아니란 점이 어색해서 자를까 했는데, 아직은 자르기가 아까워서 나는 긴 머리카락을 유지 중이었다.
“대표님이 가신 거네요.”
“……대표랑 만났어?”
“네. 집에도 초대해 주셨는데요.”
내가 없는 사이에 대표가 사람들과 주고받은 메시지는 전부 저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중에 레드와 나눈 대화는 없었다.
그래서 아이리스와는 딱히 대화를 안 한 줄 알았는데.
‘대표가 쓰던 핸드폰으로 연락했나? 하긴 레드가 그쪽으로 자주 연락했었으니까…….’
내가 레드한테 그 번호를 알려줬었지.
그렇게 레드의 연락을 피하던 애가 집까지 초대했다니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그나저나 모노크롬도 대표를 대표라고 인식하던데. 게임과 관련된 인물들은 어째서인지 대표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레드는 내 머리카락을 보고 어떻게 대표가 없다는 걸 바로 알았지?
그런 의문을 떠올리려던 참에 레드는 밝은 목소리로 화제를 돌렸다.
“이사님도 저희 무대 보셨어요? 대표님이 저희 의상도 정해 주셨는데.”
“아. 그래서…….”
집에 깔려 있던 건 덕질의 흔적이 아니라 시상식 의상을 준비한 흔적이었던 모양이다.
“……대표가 이상한 소리 하진 않았지?”
“저희 예쁘다고 해 주셨어요.”
웬일이람. 아이리스는 자기를 미워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애가.
“그리고 저희한테 고맙다고도 하셨어요.”
“어떤 게?”
존재해줘서……?
이런 팬들의 주접 멘트만 떠올라 고개를 기울이자 레드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사님도 아실 것 같지만 비밀로 할래요.”
뭔진 잘 모르겠지만 대표와 레드, 둘만의 비밀이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모르는 신주인의 비밀이라니 좀 이상했지만 ‘신주인 이사’가 아닌 대표를 기억해주려는 것 같아서 고마워졌다.
“그리고 이사님도 누가 귀찮게 하면 쳐내세요. 괜찮으시면 저도 상담해 드릴게요.”
“으응? 그, 그래.”
이땐 이게 무슨 말인지 몰랐으나 며칠 후.
내가 3년 전 생일에 집에 틀어박힌 원인이었던 그 동기가 연말에 내게 메시지를 보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표가 거기에 [꺼져]라는 답장을 보낸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