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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96화 (396/430)

# 396화

덩치 큰 남자들? 두목님……?

“몇 명이나 몰려다니는데……?”

“대여섯 명은 되던 것 같던데.”

엄마는 불량배라고 여기는 것 같지만, 그 불량배…… 혹시 내가 아는 사람들이 아닐까?

다들 180cm 전후. 거기에 겨울이니 두꺼운 외투를 입을 테고. 충분히 덩치가 커 보이지 않을까.

시커멓다는 건 아마도 검은 롱패딩을 말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으면 더 수상해 보일 수도…….

‘아니,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내가 사는 곳을 알겠어.’

일부러 숨긴 건 아니지만 나는 이 2년간 집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극히 최소한으로 했다. 그땐 별로 꺼내고 싶은 화제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최근 한 달은 내가 아니라 대표가 활동하지 않았던가.

내가 잠들기 전 찾아본 이 세계의 정보들은 검색해서 나오는 것들뿐.

대표와 모노크롬이 만났는지, 대화는 해 봤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없는 사이에 대표가 뭔가를 이야기했을 수도 있다.

이런저런 가능성을 떠올려보자면 끝이 없었다.

‘그렇다고 쳐도 설마 새해 첫날 아침부터 사람을 찾으러 올까……?’

아마도 엄마가 창밖을 흘끗거리던 방향에 그 남자들이 있는 듯해서 나도 창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봤다.

“밖에 눈 오네?”

“응. 아까부터 조금씩 내리더라.”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화이트 뉴이어였다.

하얀 눈에 대비되면 검은 옷이 더 잘 보일 텐데, 이미 지나갔는지 무리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눈 마주칠라. 거기서 그러지 말고 소파에 앉아서 TV나 틀어 봐. 떡국 끓여줄 테니까.”

“으응…….”

에이. 설마 아니겠지.

겨울에 검은 롱패딩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한둘인가. 그리고 친구 대여섯 명이 몰려다니는 거야 평범한 일이지.

두목님……도 그냥 별명일 수도 있고. 혹은 엄마가 걱정하는 것처럼 정말 불량배일 수도 있고.

하지만 어수선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 나는 방으로 들어왔다.

“아, 충전!”

핸드폰은 내가 새벽 늦게까지 붙잡고 있느라 방전된 상태였다.

업무용으로, 그리고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한다고 온종일 들여다보던 핸드폰이었다.

거기에 아이리스 퀘스트 이후로 마이 엔터가 동기화되어서 새 기기로 바꾸지도 못하고 근 2년을 썼더니 배터리가 꽤나 빨리 닳던 참이었다.

분명 잠들기 전에 충전 케이블을 꽂을 생각이었는데 잠들어버렸고, 아침엔 일어나자마자 엄마를 보겠다고 거실로 나오느라 잊었다.

‘혹시…… 누가 연락을 했다면?’

새벽이라면 몰라도 아침이라면 이 번호를 아는 사람이 연락했을 수도 있잖아.

나는 핸드폰에 충전 케이블을 꽂았다가 10초도 되지 않아서 외투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엄마. 나 잠깐 밖에 다녀올게.”

“지금? 밖에 이상한 사람들 돌아다닌다니까.”

“그게, 잠깐만…….”

“밥 다 돼 가. 밥이라도 먹고 나가.”

엄마는 내 외출을 웬만하면 말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엄마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과 확인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어정쩡하게 서 있자 엄마는 이상함을 느꼈는지 나를 바라봤다.

“……혹시 아는 사람들이야?”

“으응? 그게, 아닐 수도 있고. 아니, 그냥 편의점에 좀 다녀올게.”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 횡설수설하자 엄마의 미간이 더 좁혀졌다.

“내가 굳이 묻지는 않으려고 했는데.”

엄마는 요리하겠다고 들고 있던 숟가락을 도마 위에 탁 내려놓고 진지하게 말했다.

“너 이상한 데 손댄 거 아니지?”

“이, 이상한 데라니?”

“약간 안 좋은 사업이나 불법적인…….”

“아냐. 아냐, 엄마!”

설마 그런 걸 의심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의심하는 것도 당연한 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2년 동안이나 전혀 말을 안 했었지. 어느 땐 갑자기 연락이 안 되기도 했고.

엄마는 남에게 말 못 하는 사기, 도박, 불법 조직 같은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날 믿는다고 아무것도 안 묻고 기다렸던 거야?’

어머니의 위대함이란……이라고 감탄할 때가 아니지!

“나 멀쩡하게 회사 다니면서 월급 받았어. 그런데 좀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엄마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려면 길어질 듯했다.

이제 엄마는 옆에 있으니까, 일단 밖에 있을지 모르는 이들이 사라지기 전에 확인하는 것이 먼저였다.

세계가 바뀌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내 핸드폰에선 바로 어제까지 작동했던 마이 엔터도 이 세계에선 망한 지 오래되었다고 하니까.

마이 엔터 속 세계에 있던 모노크롬이 나를 어떻게 인식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만일 내가 아는 사람이라면 착한 애들이야. 맞는지 확인만 하고 올게!”

나는 그렇게 말하고 후다닥 외투를 걸쳐 입고 밖으로 나왔다.

약속을 잡은 것도 아니고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이 동네라면 내가 잘 아니까 내가 찾아야지.

대충 엄마가 왔던 경로를 뒤져 보면…….

“어? 대표님이다.”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와 나는 곧바로 뒤를 돌았다.

“아니네. 주인 님이네.”

“두목님이네.”

펭귄처럼 패딩 모자까지 푹 눌러쓴 모노크롬이 서 있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았는지 준해의 두꺼운 뿔테 안경까지 등판했다.

나는 빠르게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어?”

“저희가 몰래 알아보고 그런 게 아니라…….”

내 질문에 우형이 손을 내저으며 변명부터 했다.

“아니. 의심하는 게 아니라 정말 어떻게 찾아왔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대표님이 알려주셨어요.”

“네. 대충 동네까지만 오면 아마 두목님이 나와주실 거라고. 안 그러면 며칠은 집에 틀어박혀 있을 거라고 하셨던가?”

……대표는 날 너무나 잘 알았다.

잘 아는 게 당연하지만 자기 자신을 이렇게 잘 파악하고 있었다니.

‘내가 마이 엔터 속 세계로 들어갔을 때도 그랬지.’

최 비서가 먼저 연락해오지 않았으면 집에 며칠이나 틀어박혀서 상황을 파악하느라 혼자 애썼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계속 핸드폰으로 이 세계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기만 할 예정이었는데.

“그래서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와서 주변만 돌아다닌 거야?”

눈도 내리고 날도 추운데 가수들이 감기 조심하지 않고.

그런데 준해가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들어 보이며 머쓱하게 말했다.

“대표님이 이사님 번호로 연락하면 와주실 거라고 했는데 연락이 안 되셔서…….”

“……아. 내가 정신이 없어서 핸드폰 충전을 안 하고 잠들어 버렸어.”

내 잘못이었구나. 시간이 되면 핸드폰부터 배터리 짱짱한 모델로 바꿔야겠어.

내가 핸드폰을 충전했다면 부재중 연락 알림을 보고 오후쯤엔 연락이 닿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렇게 우연히 재회했다.

“다들 밥은…… 먹었고?”

어떻게 인사해야 할까. 고민하던 내 입에선 지극히 한국인다운 인사가 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새해 아침 댓바람부터 이렇게 밖을 돌아다니는데 굶고 다니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 게 당연하잖아.

“아침에 떡국 먹고 이따가 점심엔 여우 형 집에 미역국 먹으러 가요.”

다행히도 멤버들이 몰려다니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이 일정을 마치면 다 같이 우형의 본가로 갈 예정이었다는 듯했다.

우형이 이 타이밍이라는 듯이 바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희가 찾아온 것도, 제 생일이라.”

“생일이라?”

그가 오늘 생일이라는 건 당연히 나도 안다. 바로 몇 시간 전에 우형의 소감으로 생일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그러나 이곳까지 찾아온 것과 생일의 연관 관계는 짐작할 수가 없었다.

“생일이라, 소원이 이뤄질 것 같아서요.”

“소원?”

나는 계속 되묻기만 했고, 해랑이 설명을 덧붙였다.

“저희가 숙소 정리하다가 별똥별을 봤어요. 그래서 소원을 빌었는데.”

그런 흔치 않은 이벤트가 있었다고?

밤하늘을 자주 올려다본다는 해랑이어서 별똥별을 목격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 말을 들으니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맞아. 퀘스트!’

내가 대표의 퀘스트 보상을 받을 때, 분명 <퀘스트 발생!>이란 문구가 떴다.

너무 찰나의 시간이라 결국 그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는데.

“함께했던 사람들이랑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소원이요.”

“그래서 소원, 이루러 왔어요. 저희 전담팀 총괄 자리가 비어 있어서요……!”

그런 중요한 자리는 보통 있는 사람들끼리 먼저 채워두지 않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눈동자를 굴리고 있자 우형은 기도하듯이 양손을 맞잡았다.

‘주인 님, 1위 하게 해 주세요’의 그 포즈였다.

“그래서, 이사님을 스카우트하고 싶어서요.”

아. 우형이 예전에 했던 이야기다.

당시는 내가 대표의 퀘스트 보상을 정확히 알기 전이었다.

그 세계가 게임으로 남을 가능성이 있는지 모르고, 만일 내가 현실로 돌아가더라도 만날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해서 다시 만나면 이야기해달라고 했는데.

그는 그 말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나는 눈이 내리는 하늘을 잠깐 올려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내려 우형을 바라봤다.

“너 정말 신선이니?”

“네?”

내가 대답 대신 이런 소리를 꺼내자, 우형은 양손을 맞잡은 포즈 그대로 당황한 듯 눈을 깜빡거렸다.

“전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까 정말 그런 것 같아. 이것 봐. 비도 내리잖아.”

“어! 그러네. 기상 예보에 눈 표시 없었는데. 눈은 비가 얼어서 내리는 거잖아!”

우형 신선설을 밀던 준해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여우비, 아니, 여우눈까지. 우형의 능력이 풀개방되고 있었다.

‘거기에 우형이가 빌었던 소원들이 전부 다 이뤄졌잖아.’

우형은 모르겠지만 그와 같은 시각에 내가 빌었던 소원까지 말이다.

“그, 그러면 방금 제가 말씀드린 건…….”

그러니까 이번에도 우형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나는…… 당연히 좋지.”

“하아. 다행이다…….”

옆에 있던 멤버들까지 긴장이 탁 풀린 듯 어깨가 한층 내려갔다.

“그런데 송 피디님은 괜찮으시대? 그, 이전 회사에선 내가 이사였고 내가 송 피디님을 스카우트했던 입장이라.”

쉽게 말하자면 내가 상사였지.

그런데 이제는 송 피디가 사장이고 내가 부하직원이 되는 것 아닌가.

내 물음에 한이가 별문제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네. 피디님은 막 대표, 사장이라고 위세 부리고 다니고 싶진 않다고, 호칭도 그냥 피디님이라고 해달라시던데요. 저희 팀도 저희가 원하는 대로 하라면서.”

대표의 운영이 마음에 들지 않아 뉴마와 뉴레인을 옮겨 다녔던 송 피디인데, 대표가 반면교사가 된 건가……?

그리고 우형이 말을 더 덧붙였다.

“그리고 송 피디님도 저희 총괄은 웬만하면 맡던 분이 계속 맡아 주시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아무래도 당분간 저도 리더 자리를 비우게 되고…….”

“……왜 어디 가는 것처럼 얘기해? 너 어디 가?”

우형이 또 눈을 깜빡거리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군대…… 가야죠.”

“…….”

아.

모노크롬에게도 보이그룹의 숙명, 군대와 공백기를 합친, 이른바 ‘군백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팀 활동이 아예 멈추는 것은 아니지만, ‘완전체 활동’은 공백기이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아, 아니. 모노크롬이랑 일하면서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긴 한데 지금 여기서 들을 줄은 몰랐어!’

최대한 미룰 수 있는 시기가 법으로 정해져 있었고, 슬슬 그 기한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들이 그냥 정 때문에 나를 스카우트하겠다는 게 아니라, 모노크롬 전담팀에는 정말로 서포트할 사람이 더 필요했다!

물론 모노크롬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군백기 같은 건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도록 단단해지기 위한 여정이었지만!

컬러즈, 그리고 모노크롬과 비슷한 연차인 아이돌의 팬덤은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겠지만……!

내가 당황하고 있는데 뒤에서 또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아?”

“어, 엄마?”

횡설수설하며 나갔던 딸이 돌아오질 않으니, 걱정되어서 직접 나온 모양이었다.

“그, 어, 그게, 우리 엄마야…….”

2년간 가족 얘기를 극도로 하지 않던 나는 갑자기 멤버들에게 엄마를 직접 소개하게 되었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다들 허둥지둥 패딩 모자를 벗고 “안녕하십니까!” 하고 허리 숙여 인사했다.

‘덩치 크고 시커먼 남자들’이 우르르 인사하니까 놀랐는지, 엄마가 내 뒤에서 주춤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이번엔 엄마를 보고 모노크롬 멤버들을 소개했다.

“나랑 같이 일하던 애들이야.”

“누군지는 몰라도 이렇게 이른 시간에 집 앞까지 찾아오나?”

“아니,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엄마가 모노크롬을 수상한 사람들 취급하자 재민이 조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주인 님도 저희 숙소 많이 찾아왔는데.”

“그건 몬클하우스잖아…….”

“하우스?”

“이상한 하우스가 아니라…….”

도박 하우스 같은 게 아니야!

엄마는 아직도 내가 이상한 사업에 손을 댄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게다가 눈치를 보니 앞에 있는 사람들이 아이돌인지 모르는 게 분명했다.

세계가 합쳐졌다고 해도 아이돌이라고는 털끝만큼도 관심 없던 엄마라면 그럴 법하지만, 밤에 TV로 같이 보지 않았던가!

“엄마, 밤에 대상 받는 거 봤잖아. 그 애들이야.”

“뭐?”

엄마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멤버들을 훑어봤다.

멤버들은 스캔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여기 올 리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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