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95화 (395/430)

# 395화

데엥- 데엥-…

느릿하고 낮은 종소리가 반복해서 들려왔다.

제야의 종소리다.

‘여기…… 어디지?’

잠이 들었던 기억은 없는데 내 의식은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

귀가 열리듯 소리부터 들리더니, 곧이어 피부에 닿는 감각이 전해져왔다.

‘침대는 아니고…… 소파?’

내가 어딘가에 누워있다는 것을 자각하자 의식이 빠르게 돌아왔다.

나는 비몽사몽 떠지지 않는 눈을 뜨려고 애를 썼다.

눈꺼풀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치렁치렁한 무언가가 시야에 걸렸다.

그리고 그 뒤로는…… 평소 보던 것보다 작은 TV.

“너는 항상 여기서 잠이 들더라.”

잔소리지만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흐린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시야가 또렷해지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눈앞에 거치적거리던 것은 내 머리카락이었다.

“엄마……?”

“왜. 너도 과일 깎아줘?”

포크로 과일을 찍어 먹던 엄마가 주방으로 들어가려 해서 나는 황급히 엄마의 팔을 붙잡았다.

“엄마.”

“안 좋은 꿈이라도 꿨어? 그러게 잘 거면 방으로 들어가서 자라니까, 꼭 불편하게.”

안 좋은 꿈?

타종행사를 중계하는 TV 화면에, 테이블에 놓인 과일 접시, 편한 티셔츠를 입고 소파에서 잠들어 있던 나.

이 풍경의 모든 것이 기억 속에 있었다.

‘내가 잠들었다가 깬 건가?’

아니, 내가 타종행사를 보다가 잠든 건 재작년이잖아.

분명 나는 2년 동안 모노크롬과 퀘스트를 수행했고, 대표의 퀘스트가 끝나서 보상을…….

‘현실 복귀?’

퀘스트 보상이었던 ‘신주인의 현실 복귀’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난 분명 모노크롬이 있는 세계의 현실화를 선택했는데, 뭔가 잘못되어서 내가 다시 과거로 돌아온 걸까? 아니면 이게 꿈인가?

내 기억이 꿈인지, 지금 이게 꿈인지 구별이 되지 않아서 나는 엄마를 꽉 끌어안았다.

“애가 왜 이렇게 애교가 많아졌어?”

엄마는 이상하다는 듯이 말하면서도 나보다 더 센 힘으로 나를 안아줬다.

“엄마, 숨 막혀…….”

“네가 어제 새해가 되면 이렇게 꽉 안아달라며.”

“내가?”

“응. 어제 다녀왔다면서 처음 한 말이 그거였으면서. 갑자기 와서 깜짝 놀랐지 뭐니.”

……대표다.

그제야 재작년의 내 머리카락이 이렇게 길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이건 꿈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대표가 어제 집으로 돌아왔고, 대표의 퀘스트 보상을 받았던 내가 여기서 눈을 떴다는 건데…….’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다시 찾은 이 안정감을 놓칠 수가 없어서 여전히 엄마에게 매달려 있는데, 엄마가 내 팔을 찰싹찰싹 때렸다.

“TV는 안 봐? 저것도 꼭 봐야 한다고 틀어놓으라며?”

“응?”

고개를 들어보니 엄마는 TV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엄마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쟤가, 지금, 저기서 왜 나와?’

역시 꿈인가?

TV 화면 속에선 모노크롬이 무대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저 의상. 어딘가 낯이 익은데…….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한 장면도 놓치지 않기 위해 TV를 계속 바라봤다.

본무대 옆에 선 사회자가 이 상황을 멘트로 중계했다.

[작년 음악대상 수상자이신 천상식 씨가 트로피를 전달해주고 계십니다.]

전년도 음악대상 수상자가 다음 해 대상 시상자를 맡는 것이 <음악대상>의 전통.

우형이 천상식에게서 트로피를 받고, 그 뒤에 있던 한이가 꽃다발을 받았다.

그 짧은 순간에 한이가 천상식을 보며 씩 웃었고, 천상식은 그 웃음을 외면하며 수상자에게 자리를 내주고 빠르게 뒤로 사라졌다.

‘……꿈이라기엔 너무 디테일하지 않나?’

그러나 나는 아직도 내가 집에 와 있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멍하니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할 뿐이었다.

잠시 트로피를 바라보던 우형이 스탠딩마이크 앞에 서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희에겐 이 자리가 정말 많은 의미가 담긴 곳인데, 이곳까지 올라오는 데에 큰 도움을 주신 분들, 팬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첫 1위의 순간처럼 그렁그렁한 눈이었지만, 우형은 오늘도 리드 래퍼답게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소감을 이어나갔다.

[재작년만 해도 저는 이 <음악대상>을 시청하는 입장이었는데요. 저 무대에 오르면 저희 팀도 더 불안해하지 않고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어려운 시기가 있었는데…….]

이건 내가 모노크롬을 만나기 전의 이야기였다.

그 ‘어려운 시기’의 모노크롬이 어땠는지 아는 나는 금방 그의 말에 몰입할 수 있었다.

[나중엔 그때를 웃으며 추억할 수 있을 만큼 앞으로 저희와 동료들에게 행복한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새해 소원을 빌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 바람이…… 오늘 이렇게 이뤄졌네요.]

그 말대로 과거의 일은 이제 그에겐 아무 장벽도 되지 않는지, 우형은 카메라를 보며 웃었다.

‘……그게 우형이 소원이었구나.’

그리고 우형이 소원을 빌었던 그 시각에, 다른 차원의 나도 같은 소원을 빌었다.

이 소감을 듣고 나서야 나는 음악대상 퀘스트가 발생한 이유를 조금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소감은 우형과 해랑이 대표로 말하기로 했는지, 곧이어 해랑이 스탠딩마이크 앞으로 자리를 옮겨 컬러즈를 비롯하여 감사한 분들의 이름을 읊었다.

대부분 모노크롬과 함께하기로 한 전담팀 직원들의 이름이었다.

[정말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기에 저희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앞으로도 저희와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노크롬이 수상 소감을 마치고 내려가기 전, 우형은 마지막으로 다시 마이크 앞에 서서 새해 인사를 덧붙였다.

[그리고 제가 1월 1일이 생일이라, 작년에 <음악대상> 대기실에서 케이크 촛불을 불면서 모두의 소원이 이뤄지기를 기도했는데요. 올해도 같은 소원을 빌겠습니다. 소원이 이뤄지는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멘트를 끝으로 모노크롬 멤버들은 박수를 받으며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내 옆에 앉은 엄마가 포크로 사과를 하나 더 콕 집으며 말했다.

“쟤는 말을 참 이쁘게 잘한다.”

“으, 으응…….”

우형이 말 이쁘게 하지……. 그렇긴 한데.

엄마가 TV로 우형을 보며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아직도 얼떨떨한 기분으로 엄마가 주는 사과를 받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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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이라이브 지연 공지 떴다

아니 나도 눈물 좔좔 쏟고 있는데 애들 사진은 또 왤케 귀엽냐

└안 그래도 눈물 그렁그렁하더니 대기실 들어가서 다들 한 덩어리로 엎어졌냐구ㅜㅜㅜ

└나 울면서 웃고있어

└애들 지금까지 고생한 거 생각나서 슬픈데 행복한 게 더 크다ㅠㅠㅠ

└아 지연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지 축제야 지금

└대상아이돌 팬덤은 잠을 자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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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러 간다는 엄마를 붙잡고 옆에 있어 달라고 투정을 부리며 걱정시킬 수는 없었기에 나도 방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돌아온 내 방은 말끔했고, 방구석에는 눈에 띄는 캐리어가 세워져 있었다.

‘이거 LA 출장 때 산 거잖아!’

나는 방에 놓인 거울을 봤다. 이 장발은 분명 ‘신주인 이사’의 것은 아니었다.

정황상 대표가 어제 캐리어를 끌고 집에 왔고 자정이 되자마자 스위치 되듯이 내가 눈을 뜬 것 같은데.

‘아마도 그 이유는 모노크롬이 음악대상을 받아서…….’

어제의 대표는 엄마에게 오늘의 나를 안아달라고 부탁했다.

대표는 이걸 전부 예상했다는 뜻이다.

‘대표는 엄마와 인사하고 퀘스트 보상으로 나를 불러낸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런 생각을 했다가 이내 내가 했던 선택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표는……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한 거겠지.

신주인은 신주인. 그 말이 꼭 맞았다. 대표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것 같다는 게 문제였다.

원래 신주인은 한 사람이었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허한지는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이 한 달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내가 탈뉴마 계획을 수정하며 모노크롬의 대상 목표도 틀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 밤중에 내가 정보를 얻을 곳은 역시 데이터와 인터넷 세상뿐이었다.

‘퀘스트 보상을 받은 거라면 핸드폰이 있을 텐데.’

예상대로 내 핸드폰이 거실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내가 퀘스트 보상을 받기 전에 대표에게 건넸던, 원래 내가 쓰던 그 핸드폰이었다.

잠금을 풀어 애플리케이션 목록을 확인해 보니 마이 엔터는 없었다.

‘대표가 지웠나?’

이 세계에는 엄마도 있고 모노크롬도 있다. 그 말인즉 두 세계가 합쳐졌다는 건데.

신주인이 게임 속 세계로 넘어가며 그곳의 과거가 바뀌었던 것처럼, 이곳의 과거도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

마이 엔터란 게 처음부터 없었던 세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인터넷 브라우저로 검색해 보니 의외로 마이 엔터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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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마이 엔터란 게임 있었는데 망했나요?

└네 망함

└과금 유도 심해져서 유저들 다 떠나갔죠

└대상이 최종 달성 과제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걸 과금으로 뚫게 만들어서 난이도 똥망 만들어놓고 몇달 업뎃도 없이 잠수타더니 결국 섭종튀ㅋㅋ

└마이엔터ㅋㅋ 능력치 좋은 멤버만 센터로 잘 키우고 나머지 멤버 상태이상 걸리면 새로 영입해서 땜빵 세우고 하다가 50인조도 만들어본 적 있었는데 추억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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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반인륜적인 잔혹한 플레이 방식에 침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런 플레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지……. 게임 속 아이돌의 심정도 모르고!

그나저나 과금으로 대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니,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대상을 받으려던 누군가가 떠오르는 듯했다.

‘아무튼 게임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건…….’

곧이어 나도 한때 자주 들여다봤던 마이 엔터 공식 유저 커뮤니티를 찾았다.

운영이 아예 멈췄는지 읽기 권한이 막혀 있어서 내용은 보지 못했지만 게시글 제목들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곳은 가상의 소속사 대표들의 마지막 건의들로 채워져 있었다.

[제 글은 왜 삭제하시나요?]

[내 아이돌 돌려줘~~~ㅠㅠㅠㅠ]

[환불 공지 없으면 소보원에 신고하겠습니다.]

[돈에 미친 회사XX]

그나마 최신 글이 올라온 것은 몇 달 전. 그것도 게임과는 전혀 상관없는 광고 글이었다.

‘망한 게임의 흔한 말로잖아…….’

이 폐허를 바라보다 보니 이들이 키우던 아이돌 그룹들은 어떻게 되었을지가 궁금해졌다.

모노크롬이 있던 세계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는 세계라서 모든 요소가 현실처럼 작동했던 듯한데…….

이 사람들의 아이돌이 있는 세계는 그냥 데이터로 남았을까? 혹은 악덕 플레이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을까?

답을 찾을 수 없는 상상을 하며 나는 침대에 기대앉아 핸드폰으로 아는 이름들을 검색했다.

그러다 자연스레 잠이 들었는지 눈을 떠보니 늦은 아침이었다.

잠이 부족했던 것도 아닌데 집이 주는 안정감은 남다른지 나는 정말 푹 자고 일어났다.

‘이게 일상이구나.’

할 일도, 아무 걱정도 없는 상태.

모든 퀘스트가 끝났고 엄마는 내 옆에 있다.

그야말로 백수 상태였으나 이전에 회사를 박차고 나왔을 때와는 매우 다른 기분이었다.

왠지 어색한 긴 머리카락을 대충 묶으며 거실로 나오니 엄마는 외출 준비 중이었다.

“엄마, 어디 가?”

“저기 슈퍼 옆에 미용실 하는 아영이 엄마 알지? 만두를 많이 빚었다고 좀 가져가라네. 다녀올게.”

오늘의 점심 메뉴는 떡만둣국인 모양이었다.

떡만둣국을 먹지 못하던 쉰셋의 리더를 둔 모 그룹이 떠올랐다.

기억에 한 달가량의 공백이 생겨서, 내 기억 속에 있는 이들의 근황이 어떤지 알아보려면 한참 더 걸릴 듯했다.

영문은 잘 모르겠지만 집의 아늑함을 만끽하며 간단하게 씻고 나오니 엄마가 금세 돌아왔다.

“어휴. 새해부터 원.”

“왜? 무슨 일 있었어?”

“어두울 때 돌아다니는 거 조심해. 큰길가로 다니고.”

뭔가 좋지 않은 것을 목격하고 온 듯해서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없는 사이에 동네 치안이 안 좋아졌나?’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불안한 눈으로 창밖을 힐끗거렸다.

“시커멓고 덩치 큰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더라. 두목님 어쩌고 하면서……. 어디서 싸움 나는 거 아닌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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