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2화
주인이 그랬듯이 대표도 이 세계에 오자마자 전 회사의 정보가 인터넷에 뜨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실명을 사용하는 SNS를 검색해 봐도 친구나 동창 등 주인과 관련된 인물들은 뜨지 않았다.
‘그런데 이 타이밍에…….’
마주하기 싫었던 현실이 눈앞에 닥치자 머릿속에 브레이크가 걸려 버렸다.
신주인의 말대로 엄마와 나눈 메시지를 곱씹으며 계속 소원을 빌어도 모자랄 판인데.
이 현상을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조금 필요할 듯하여 대표는 스마트폰을 뒤집어 손에서 떨어트려 놓았다.
대표의 머릿속에 주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보상은 퀘스트를 수행해가는 과정 중에 서서히 이뤄지는 것 같다고.
그런데 현실 복귀는 이뤄질 기미가 하나도 안 보여서 퀘스트가 제대로 진행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내 퀘스트의 보상이 택1이어서 그랬던 건가?’
대표의 퀘스트 보상으로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신주인이 원래 살던 현실로 돌아간다, 혹은 안 돌아간다.
소원의 힘이 필요한 것과 별개로, 상충하는 보상이 공존하는 상태였기에 서서히 이뤄질 수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대표의 퀘스트가 끝나자 갑자기 현실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음악대상 퀘스트에 성공했을 때 기다리는 결말은 하나인 거야.’
결국 이 세계는 두 현실을 하나로 모을 생각인 듯했다.
게임 시스템은 신주인이 사랑하는 이 세계에 엄마만이 넘어온다는, 원하는 것만 취사 선택하는 편의주의적인 전개는 허용하지 않았다.
2년 동안 딸을 만나지 못한 엄마에게 딸을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앞서서 미처 깨닫지 못했다.
엄마만을 이 세계로 데려오지 않는 이상, 엄마를 만나기 위해선 마주하기 싫은 현실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신주인은 그런 세계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이곳이 불안 요소로부터 안전하게 격리된 세계였기에 정을 붙이고 살 수 있었을 텐데.
비유하자면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사파리 버스의 문이 뜯긴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방심하고 있었기에 아무 대비책도 없이 위험을 마주한 기분.
‘……아니, 실패하지 않은 신주인이라면 괜찮으려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대표는 이 2년 동안 주인과 자신이 아주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같은 신주인이지만 앞으로 신주인이 어떻게 살아갈지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 메시지는 퀘스트가 제대로 진행되어 간다는 증거였다.
퀘스트가 성공하면 엄마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생겼다.
그러나 대표에게 원래 세계는 돌아가기 싫은 곳이었고, 지금은 신주인이 아니라 자신이 돌아갈 용기를 내야 했다.
머리가 복잡하여 눈을 감고 가만히 혼자 남은 집의 고요를 느끼고 있을 때.
‘메시지?’
작아서 들릴 듯 말 듯 한 알림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방금 테이블에 엎어놓은 주인의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어딘가 구석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작은 소리였다.
대표는 자신이 사용하던 업무용 핸드폰의 존재를 깨닫고 방으로 들어가 서랍을 열었다.
대표로서 사용하던 것들이 전부 그 핸드폰에 담겨 있어서 잠시 더 사용하다가, 이제는 필요가 없을 듯하여 서랍에 넣어둔 것이었다.
화면을 켜 보니 아직도 배터리가 간당간당하게 남아 있었다.
대표 신분을 정리하며 깔끔하게 번호 해지까지 해 놓았으나,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메신저 어플은 아직도 구동되는 듯했다.
자신이 알림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인지 메시지는 몇 통이나 쌓여 있었다.
[대표님… 혹시 이사님 댁에 계세요?]
이 핸드폰의 알림을 울린 것은 대표의 연락처가 주인의 연락처로 바뀐 줄 모르는 레드였다.
***
레드는 대표와 개인 대 개인으로 대화한 유일한 타인이었다.
하지만 대표는 ‘미안’이라는 말만 남기고 레드와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았다.
어차피 모든 것이 게임으로 돌아갈 텐데 계속 대화를 나누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이 세계는 현실이 되었고 자신이 남아 버렸다.
‘……현실의 레드를 어떻게 대해야 하지?’
고민된다고 메시지를 그냥 무시하기에는, 대표는 레드의 집념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아이리스가 있는 세계를 선택해 주지 못하여 미안한 마음도 계속 남아 있었다.
그래서 답장을 남겼더니, 레드가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것이 아닌가.
[집 주소를 알아?]
[전에 이사님이 집으로 부르신 적이 있어서요.]
대표는 주인이 누군가를 이 집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 놀랐다.
가장 사적인 공간에 들일 정도로 친했던 걸까.
그만큼 주인과 가까웠고, 지금도 주인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대화를 나눠보는 게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그런 마음에 대표는 직접 찾아오겠다는 레드를 말리지 않았다.
“대표……님.”
레드는 문을 열어주는 대표를 보고 바로 ‘대표님’이라 불렀다.
얼마 전에 처음 만났을 때도 대표를 어렴풋이 알아챘던 레드였으니 새삼스레 놀랄 일은 아니었다.
이미 모노크롬에게도 대표라고 밝힌 판에 레드에게 숨길 이유가 없었다.
“……무슨 일이야?”
“이사님은 어디 가셨다고 하고……. 그런데 대표님이 계시다고 하길래요.”
아이리스 전담팀 직원 중에서도 뉴마 시절부터 일한 사람들이 많았기에, 해체된 뉴마의 아티스트팀에 관한 소식은 아이리스의 귀에도 들어왔다.
게다가 아이리스 매니저인 공다혜는 최 비서와도 연락이 닿았다.
레드가 대표나 주인에 관해 궁금해한다면 얼마든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사님을 데려올 거라고 하셨다면서요. 그럼 대표님이 어디론가 떠나실 것 같아서, 다시 한번 뵙고 싶었어요.”
레드는 무척이나 감이 좋았다.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잠적했으니 마지막 인사처럼 들렸을 수도 있고.’
대표는 대표로 살아왔고, 사라진 주인을 신주인으로 여겼다.
퀘스트 보상으로 ‘신주인’이 다시 돌아오게 되었을 때, 두 현실이 합쳐지는 것처럼 자신과 주인의 기억도 합쳐지는 게 아닐까 생각했으나.
자신은 주인이 아닌 대표로 살아와서 ‘신주인’이라는 자각이 옅은 데다가, 동시에 겪은 두 가지의 기억을 인간의 뇌가 버틸 수 있을지도 불분명했다.
‘하나를 선택하자면 단연 내가 아니라 사라진 신주인이지.’
조금 더 나은 주인만을 남기고 싶은 욕심일지도 몰랐다.
대표는 주인에게 모든 것을 넘긴다고 해도 아무 미련이 없었다.
그러나 대표를 똑바로 봐 주는 레드에게는 역시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대표는 대표로서 레드를 만나는 것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회사에서 너희를 내버려 뒀던 건 내가 잠깐 정신이 나가서 그런 거지, 너희가 미워서 괴롭히려고 한 건 아니었어.”
아이돌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만큼이나 미움도 받는 직업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아이돌이 미움받는 데에 익숙해지거나 아무 상처도 입지 않는 초인이 되는 건 아닐 터.
그런데 아이리스를 맡은 소속사의 대표가 자신들을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말았다.
이건 꼭 해명해야 할 듯해서 말을 꺼내자 레드가 작게 웃었다.
“저 오늘 그 말을 듣고 싶어서 왔나 봐요.”
“미워할 수 없지. 난 너희한테 많은 위로를 받았거든.”
“저희한테요?”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지 레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표는 전 회사에서 고립되어 있었고, 간접적으로나마 아이리스의 성취를 보며 대리만족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마 레드가 아는 대표의 정보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텐데도, 어렵게 꺼낸 말이라는 걸 아는지 레드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잘못을 했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거예요?”
“아마도. 아무렇지 않게 내 이름을 부르면서 메시지를 보내더라고.”
주인이 있을 때도 그랬듯이, 한번 말문이 터지니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방금까지만 해도 세상에 다시 혼자 뚝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작년에 저도 비슷한 상황일 때 이사님이 도와주신 적 있었어요.”
“신주인이?”
“네. 워낙 소문이 많은 업계라, 방송국에서 누가 제 얘기 하는 걸 듣게 됐는데…….”
그때 주인이 나타나 구석에서 나오지 못하던 레드를 대기실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대표는 주인이 망설이지 않고 다른 사람을 감쌀 용기를 냈다는 점에 놀랐다.
‘신주인은 그런 사람이었구나.’
대표도 주인을 보며 ‘내가 저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지만, 타인에게서 듣는 신주인의 이야기는 또 느낌이 달랐다.
레드는 자신도 그때의 주인처럼 남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대표님은 그 메시지에 답장하셨어요?”
“음…… 아니.”
대표는 여전히 테이블에 엎어져 있는 스마트폰을 흘끗 보고 작게 대답했다.
“꺼지라고 해요.”
“뭐?”
걸그룹 멤버의 입에서 나올 줄 몰랐던 말에 대표는 눈을 크게 떴다.
흥분해서 말이 튀어나왔는지 레드는 자신의 입을 양손으로 가렸다.
“물론 저는 아이돌이니까 말조심해야 하지만…….”
레드도 가끔 자신이 아이돌이 아니었다면 소문만 듣고 자신을 욕하는 사람들에게 시원하게 한 방 날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이미지를 생각해서 아직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대표님은 아이돌이 아니잖아요. 누가 뭐라 해요? 물론 그 사람들이야 뭐라 한다고 쳐도…… 대표님이 아무 말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뒤에서 또 숙덕거릴걸요. 그럴 바엔 속이라도 시원해지는 게 낫잖아요. 덤으로 조용해지면 좋고.”
그렇게 간단한 일이었던가.
마치 경험해 본 것처럼 말하는 레드의 눈에선 신뢰가 느껴졌다.
‘마, 말 못 할 이유는 없긴 하지.’
방금까지 이 세계가 퀘스트를 방해하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게 거짓말처럼, 과거의 망령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대표는 누군가 옆에 서서 편을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힘을 주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요.”
라솔이 밝은 얼굴로 배명희와 손을 맞잡았다.
배명희는 라솔의 회사와 전속 계약을 맺게 되었다.
친한 후배인 예란의 소속사에서도 관심을 보였고, 기존 인맥을 활용해 회사를 고를 수도 있었지만, 배명희는 새로 시작하는 느낌을 내고 싶다며 복귀곡을 담당해 준 라솔의 회사에 계약 의사를 내비쳤다.
아직은 알아갈 시간이 필요했고 스타일이 맞지 않을 수도 있기에 계약 기간을 조금 짧게 잡긴 했으나 서로에게 괜찮은 조건이었다.
“이사님도 아시면 기뻐하실걸요. 사실 제가 선배님 모셔오고 싶다고 상담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래요? 어디 먼 곳으로 간다고 하던데 언제 돌아오시려나.”
“연락이 아예 안 되진 않는 것 같던걸요?”
주인은 11월 25일부터 연락이 잘 안 될 것이라고 지인들에게 미리 전해두었다.
여행이라면 자정이 되자마자 연락이 끊기는 게 아니라 조금은 여유 시간이 있으리라 생각한 라솔은 ‘조심히 다녀오라’라는 인사를 25일에 보냈다.
시간이 지나자 그 메시지에 ‘읽음’ 표시가 떴다.
대표가 주인의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라솔은 ‘인터넷은 통하는 곳에 계신가 보다’ 하고 생각하며 또 메시지를 보냈다.
거기엔 당분간 답장이 없더니 어느 날은 주인의 연락처로부터 먼저 메시지가 왔다.
[음악대상은 어떻게 받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