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86화 (386/430)

# 386화

연습실이 비어가는 모습을 보다가 나는 멤버들에게 질문했다.

“너희 연습실 필요할 땐 어떻게 하기로 했어?”

“따로 대여해야죠. 새 회사 연습실은 공사 중인데 더 걸릴 것 같대요.”

물건들로 테트리스를 하듯이 박스를 채우던 준해가 허리를 펴며 대답했다.

송준오 피디가 혼자 독립해서 회사를 세웠다면 작업실과 녹음실만 있어도 되겠지만, 아이돌 그룹인 모노크롬을 데려가려면 연습실이 필요했다.

‘초기 세팅 비용은 좀 더 들겠지만 모노크롬이 활동을 시작하면 투자금은 금방 회수될 테니까.’

송준오 피디도 단순히 정 때문에 새 회사의 총대를 멘 것이 아니다.

자신만의 사업체를 만들 정도로 프로듀서로서 확실히 경력을 쌓은 김에, 좋은 독립 기회가 생겨서 모노크롬도 데려가는 거지.

새 회사 연습실 이야기가 나오자 해랑이 한이에게 시선을 보냈다.

“솔직히 새 연습실 방음벽은 네가 세워야 해.”

“왜?”

“며칠 전에 프로듀스팀분들이 여기 문이랑 벽 두께 확인하고 이것보다 더 두꺼워야 한다면서 회의하고 가셨어.”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하나 했는데 연습실 방음을 뚫는 한이의 목청 이야기였나.

같은 보컬 라인인 아이리스의 레드도 ‘괴상한 소리가 났다’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러나 한이는 해랑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코웃음을 쳤다.

“에이, 거짓말. 진짜인지 내가 송 피디님한테 물어볼 거야.”

“네가 그 말 꺼내면 말 나온 김에 너한테 돈 내라고 하실걸?”

“그럼 안 물어봐야지.”

우형이 끼어들어 송 피디의 예상 반응을 알려주자 한이는 바로 꼬리를 내리고 화제를 바꿨다.

“정 상황이 마땅치 않으면 몬클하우스로 가면 되고요.”

몬클하우스도 뉴마 명의로 계약하긴 했지만, 메인 숙소와 다르게 그곳은 원래 비어 있던 집이었다.

관리만 제대로 해준다면 바로 퇴거하지 않아도 된다는 집주인 할아버님의 배려가 있었다.

‘그리고 연예인도 귀촌 라이프를 즐기러 온다고 동네 집값이 조금 올랐다나, 뭐라나…….’

영상에서도 동네가 특정될 만한 부분은 최대한 가리는 등 신경 썼지만, 그 지역 부동산 중개인의 입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귀촌에 관심이 생겨서 찾아온 이들에게 몬클하우스는 좋은 어필 포인트가 되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컨텐츠용 임시 숙소라 보안이 걱정되면 언제든 정리해도 괜찮았으니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모노크롬만을 위한 공간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거기선 연습이 잘 돼?”

“주변에 아무것도 없으니까 집중하기엔 오히려 좋던데요? 새 회사로 들어가기 전까지 단체로 안무 연습할 일은 거의 없을 테고, 탁 트여서 노래 부르기엔 괜찮아요.”

일반 연습실은 바람도 쐴 겸 주변 편의점이나 카페로 나가고 싶어지는데, 몬클하우스는 주변에 나갈 데도 없으니 그냥 할 일에만 집중하게 된다고 한다.

“근데 형 거기서 노래 부르면 복실이가 시끄럽다고 싫어해.”

같은 강아지끼리 마음이 통하는 건지, 컬러즈의 강아지인 준해가 복실이의 심정을 대변했다.

그나저나 몬클하우스는 시끄러워도 문제없다는 게 장점이었는데.

“……한이 목소리가 이웃집에까지 들리는 건 아니지?”

“아, 아니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복실이가 형 보고 가끔 짖더라고요. 주변 산책할 때 형 목소리가 시끄러웠던 게 아닐까요.”

“형한테 순삼이 냄새 나서 그런 거 아니야?”

“아니. 복실이도 메인 보컬인 나를 본받아서 발성 연습을 하는 거지.”

이게 무슨 대화람.

아무튼 복실이의 불만만 제외하면 연습실 문제는 없다는 모양이다.

그렇게 새 회사 이야기를 나누다가, 회사명에 관한 화제도 나왔다.

“송 피디님이 저희한테도 회사 이름 뭐로 할지 의견 묻고 가셨어요.”

“그래? 너도 의견 냈어?”

“네. 재민 주식회사.”

한이가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시 말하지만 네가 송 피디님 아들이 아니면 그건 안 된다니까.”

“그래서 송 피디님도 안 적어 가시더라고.”

나도 저 말을 들었을 송 피디의 마음에 공감하며 다른 멤버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른 후보는 없었어?”

“저도 의견 냈는데. 저희가 힘을 합쳐서 주체적으로 만든 회사니까…….”

우형이 괜찮은 의견을 냈는지 작게 손을 들었다.

‘뉴마’나 ‘재민 주식회사’보다는 훨씬 좋은 이름이 나올 듯해서 기대하며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는데…….

“‘마이 엔터테인먼트’라고-”

“안 돼!”

내 격한 반응에 깜짝 놀란 우형은 이내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아……. 너무 별로인가요?”

“아니, 네 네이밍 센스를 탓하는 게 아니라.”

마이 엔터테인먼트라니. 마이 엔터 그 자체잖아!

어감이나 의미는 매우 좋았다. 하지만 상당히 불길한 이름이다.

아티스트를 착취하거나, 불통의 끝판왕 운영을 보여주는 미래만 떠올랐다.

‘물론 송 피디님은 안 그러겠지만!’

돌고 돌아서 모노크롬의 새 보금자리가 마이 엔터가 되는 것만큼은 막고 싶었다.

“그…… 지금도 남아있는진 모르겠는데 외국에 그런 이름의 회사가 있었어. 그럼 나중에 해외 쪽이랑 작업하게 되면 혼란이 생길 수도 있잖아. 상표명이 막 겹치면 안 되니까.”

“아, 흔히 쓰이는 영어라 그럴 수도 있겠네요.”

다행히 우형은 내 설명을 듣고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니까 절대 안 된다고 말씀드려야겠어.”

“그, 그렇게까지요?”

새 보금자리엔 내가 함께 가지 않기에 관여할 권한이 없지만, 이건 긴급상황이었다.

나는 눈을 끔뻑거리는 멤버들을 두고 송 피디를 찾아 서둘러 연습실을 떠났다.

***

[이 싸움은 저희가 이겼어요. 이사님도 기쁘시죠?]

“이제 결정이 난 거예요?”

[네. 어차피 이렇게 될 거 빨리빨리 좀 정하지. 상대 쪽도 최대한 방해해보려고 한 것 같은데, 오히려 방송일 싸움 때문에 화제가 돼서 배명희 선생님을 띄워주는 꼴이 됐다니까요.]

임주미 PD가 전화를 걸어 <상상 카페> 마지막 화가 예정대로 방영된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징계를 앞둔 사람의 목소리가 이렇게 밝을 일인가.

그녀는 이미 QBC에 미련이 없는 모양이었다.

“잘됐네요. 배명희 선생님께 정말 중요한 의미가 담긴 자리였는데.”

[네. 덕분에 음악대상 준비하는 쪽에서도 바쁜 것 같던데요. 꼭 모셔야 한다고.]

“유력한 대상 후보로 밀고 싶다는 거겠죠?”

[후보로 모시는 것 말고도 20여 년 만에 컴백한 대가수의 특별 무대를 빼놓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튼 빨리 이 좋은 소식을 배명희 선생님께도 말씀드려야겠네요.]

배명희도 <상상 카페> 방영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했으나 임주미 PD에게 직접 연락이 오는 건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은데…….

두 사람은 프로그램 하나를 같이 하고도 사이가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임주미 PD가 배명희에게 시청률이니 뭐니 하며 이상한 소리를 할까 봐 나는 서둘러 그녀를 말렸다.

“선생님께는 제가 대신 말씀드릴게요.”

[네. 사실 이사님이 연락해보시라고 말 꺼낸 겁니다.]

“…….”

뒷부분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괜히 조종당하는 기분이잖아.

들리지 않게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임주미 PD가 “아!” 하고 뭔가 떠오른 듯이 물었다.

[편집실에서 자막에 모노크롬이라고 써도 되냐고 묻던데요. 계약 해지하면 상표권 문제 생기는 거 아니냐고.]

“그룹명은 문제없을 거니까 쓰셔도 돼요.”

[흐음. 그래서 그쪽 상황은 어때요? 방송국 내부에서도 의견이 다양하거든요. 어디로 옮겨간다느니, 뿔뿔이 흩어지는 거 아니냐느니.]

방송국도 온라인 커뮤니티 못지않구나.

계약 해지 이야기가 나온 지 좀 되었는데 이후 거취에 관해선 밝혀진 게 없으니 다들 여러 가능성에 문을 열고 어떻게 될지를 궁금해했다.

활동을 중단했던 배명희가 컴백하고, 컴백을 준비하던 모노크롬이 활동 중지 상태가 되면서 서로 상황이 반대가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직은 이런저런 권리 양도가 마무리되지 않아서…… 시간이 지나면 활동 재개도 윤곽이 잡힐 거예요.”

[어쨌든 방송 전까지는 불확실하다는 거네요?]

“……시청률 때문에 궁금해하시는 거라면, 네…….”

[그럼 됐어요. 바쁘실 텐데 수고하세요.]

잘 풀릴 거라고 믿는 거야, 아니면 시청률만 뽑을 수 있으면 자기랑은 상관없다는 거야?

즐거운 통화로 끝낼 수 있었는데 그녀가 덧붙인 말 탓에 괜히 기분이 미묘해졌다.

‘……어쨌든 우리가 밀어붙인 게 통한 건 좋은 소식이니까 넘어가자.’

나는 어이없게 통화가 종료된 스마트폰 화면을 멍하니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연락처 목록을 뒤졌다.

임주미 PD 대신 이 소식을 배명희에게 전할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내 전화를 받은 배명희는.

[바쁘지 않으면 와서 같이 볼래요?]

다시 한번 나를 집에 초대했다.

***

11월 20일. <상상 카페>의 마지막 화가 방영하는 날.

방송 시간은 밤이었고 나는 이른 저녁에 배명희의 자택으로 향했다.

“이사님이 쉴 새 없이 달리시는 것 같아서, 좀 쉬엄쉬엄하시라고 초대했어요.”

내가 너무 일에 파묻혀 있는 티를 냈나.

라솔도 그랬는데 배명희도 내가 과로에 시달릴까 봐 걱정된 모양이었다.

“저희 일로 좀 신경 쓰이시죠……. 제대로 가수 복귀하시려면 정신없으실 텐데.”

“아니요. 후배들 덕분에 내가 가수 하기로 마음먹은 건데.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죠.”

그렇게 말하며 배명희는 나를 안쪽으로 이끌었다.

항상 내게 커피를 내려주던 그녀는 마침 식사 시간이라 잘되었다며 저녁을 대접해주었다.

‘임 PD님이 배명희 선생님 요리 솜씨가 좋다고 칭찬했었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식사도 대접받았냐며 황당해했었지. 하지만 확실히 기억에 남을 만한 요리 솜씨였다.

식사 후, 본방송 시간 전까지 나는 배명희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다.

“임 PD님 말씀으로는 음악대상 무대에 선생님을 모시려고 곧 연락이 갈 것 같다던데.”

“어유. 아직 그런 큰 무대에 설 생각은 안 해 봤는데.”

“무대뿐만 아니라…… 큰 상을 받게 되실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당사자 앞이라서 대상이라고 확정지어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그녀는 정말로 올해의 음악인으로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다.

올해는 한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사이에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겠지. 그 시작이 오늘 방영할 <상상 카페>이고.

내가 시상식 이야기를 꺼내자 배명희는 자신과는 먼 이야기 같다며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그렇게 큰 상을 받을 만한 사람 같아요?”

“그럼요. 올해의 가수로 딱 어울리시잖아요.”

“이사님이 맡으신 모노크롬은 어떻고요? 제가 보기엔 후배들도 올해의 가수로 어울리는데.”

“모노크롬은…….”

우리도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했지만 현실의 벽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대상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 연말에 한 번 더 컴백할 생각이었는데 퀘스트 문제로 그것도 무산되었지.

같이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는데 내 사정으로 인해 도중에 멈추게 만든 점에는 미안함이 크다.

“앞으로 기회가 아주 많을 테니까요. 내년에는 좀 기대해봐도 괜찮을까요?”

“후배들이 지금 같은 모습이라면 내년이든, 언제든. 중간에 많이 쉬긴 했어도 나도 가수 생활을 꽤 오래 해 왔는데, 후배들 같은 가수는 처음 봤거든요.”

배명희는 그녀의 임시 아르바이트생들을 떠올리는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아이돌 친구들은 잘 모르지만, 젊은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이거 했다가, 저거 했다가 하면서 바쁘게 움직이는데. 처음엔 아이돌이 가수가 아니라 만능 엔터테이너인 줄 알았어요.”

“아이돌이 하는 게 좀 많긴 하죠…….”

“그런데 결국 그 경험들을 살려서 노래로 소통하잖아요. 이게 가수가 아니면 뭐냐 싶은 거지. 닫혀 있던 눈이 번뜩 뜨였다니까요. 그리고 이제는 뭘 하고 어떤 모습을 더 보여줄지 궁금해지는 거죠.”

나도 그녀의 말에 공감했다.

아이돌이라서 한계에 부딪힐 때도 있지만 아이돌이라서 가능한 일도 많았다.

임주미 PD는 모노크롬이 아이돌이라 대상 후보가 되기엔 부족하다고 했지만, 아이돌 타이틀은 우리에겐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니 모노크롬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유지한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다시 생기겠지.

이곳이 데이터로 이루어진, 게임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게임 속 세계가 아니라면 말이야.

“저번에 저희 어머니 얘기를 한 적 있었는데…….”

나는 미지근해진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운을 뗐다.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 중, 이런 것을 물어볼 상대는 배명희뿐이었다.

“딸이 이기적이고 무모한 선택을 하더라도 어머니는 이해해 주실까요?”

“얼마나 무모한 일이길래요?”

“자식의 생일은 어머니한테도 중요한 날이잖아요.”

내 생일은 단순히 내가 태어난 날이 아니다. 나와 엄마가 처음 만난 날이지.

아마 대표가 나를 엄마에게로 돌려보내려고 한 이유 중에는, 보상을 받는 날이 내 생일이란 점도 있을 터였다.

생일에 엄마와 인사도 하지 못하고 이 세계로 떨어지고 만 대표니까.

“오랜만에 그날에 맞춰서 어머니랑 만날 수 있게 되었는데, 제가 제 할 일이 먼저라고 기약 없이 미루게 됐어요. 너무 불효녀 같죠……?”

배명희도 어머니 입장에 이입해서, 내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며 실망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배명희는 정말 진지하게, 내 상담에 응해주려는 듯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게 꼭 필요한 시간이라면 충분히 기다려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럴까요?”

“네. 그리고 자식들은 원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거든.”

부모 입장이 되어본 배명희가 재밌는 이야기를 하듯이 웃으며 말해서 나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기왕 자기 마음대로 할 거면 후회 없는 선택이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죠.”

“후회 없는 선택…….”

생각에 빠진 것도 잠시, <상상 카페> 마지막 화 방영이 시작되었다.

대체 편집을 어떻게 했는지, 사장 배명희와 아르바이트생 모노크롬은 악덕 건물주에게 쫓겨나는 바람에 급하게 카페를 폐업하는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QBC를 향해 날리는 임주미 PD의 마지막 복수가 아닐까.

TV 화면 속 배명희와 모노크롬은 피커피를 마시며 손님으로 왔던 게스트들의 근황을 알리는 메시지를 읽고, 본인들이 가수로서 걸어온 길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배명희와 모노크롬이 함께한 신곡 <지금>.

이로써 가수 생활을 새롭게 시작한 배명희에게 배턴을 넘기듯이 <상상 카페>는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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