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4화
팬 생활을 하면서 좋은 소식만 접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힘들게 팬질을 해야 하나’라고 느낄 만한 일은 웬만하면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우리의 탈뉴마 계획이 시작되면 컬러즈는 굉장히 피로해지겠지.
“그러니까 너희가 컬러즈한테 신뢰를 주는 게 중요해. 너희는 그룹을 유지할 마음이 확고한데 뉴마만 말썽인 거야.”
나는 멤버들을 회의실에 모아놓고 중요한 포인트를 짚었다.
“물론 너희가 흔들리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고. 아마 회사랑 분쟁 중이란 소문이 퍼지면 별별 소리가 다 나올 거야. 그룹 존폐 같은 얘기들.”
“그건…… 저희도 겪어봐서 괜찮아요.”
마음의 준비도 없이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상처를 받을까 봐 미리 말한 것이었는데, 해랑이 그건 문제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그렇지. 모노크롬은 위기가 꽤 여러 번 있었지.’
재민이 나가며 크게 휘청하고, 재계약 땐 대표로 인해 해체될 뻔했고, 윤환이 탈퇴하며 또 해체설이 돌았고…….
이전부터 모노크롬을 응원해왔던 컬러즈는 해체설이라면 이골이 났을 것이다.
이런 일에 익숙한 게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대처할지를 미리 알고 있으면 상당히 도움이 된다.
최근에 입덕한 신입 컬러즈는 이런 상황에 면역이 없더라도 기존 컬러즈의 분위기를 잘 따르고 있으니 무사히 극복해주겠지.
지금은 멤버들만큼이나 컬러즈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웬만하면 외부에는 다 같이 있는 모습 보여주고.”
“원래도 지긋지긋하게 붙어 다니니까 그건 문제없죠.”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멈추지 말고 그대로 진행하면 될 것 같아.”
프로듀싱 프로젝트도 뜻밖에 도움이 되었다.
모노크롬이 갑작스럽게 소속을 잃고 불안정한 상황에 빠져도, 모노크롬으로서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컬러즈에게 큰 위안이 될 테니까.
‘문제는 더클랜 팬들도 같이 불안해진다는 점이지만.’
더클랜은 모노크롬이 프로듀싱한 곡으로 짧게나마 활동할 예정이었다.
이담이 참여한 신셋 앨범과 프로듀싱 앨범에 크게 만족했던 더클랜의 팬들은 이번에도 기대하고 있던데.
안무도 거의 완성되었으니 이제는 더클랜 멤버들끼리 알아서 연습하면 되지만, 모노크롬에게 문제가 생기면 더클랜이나 팬들이나 신경이 쓰일 터였다.
“더클랜 애들한테도 미리 잘 얘기해둬야겠네요.”
“응. 너희가 잘 말해 줘.”
이렇게 멤버들은 내 말을 새겨들으며 자신들이 할 일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해나갔다.
“그리고 너희 숙소도…… 예정보다 빠르게 정리해야 할 것 같아.”
“아, 숙소…….”
모노크롬의 현재 숙소는 뉴마 명의로 임대 계약이 되어 있다.
모노크롬의 계약이 만료되면 퇴거해야 한다는 사실은 멤버들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획이 바뀌면서 숙소를 한 달 빠르게 정리해야 했다.
‘도의적으로도 당장 방을 빼라고는 안 할 테지만 오래 있을 순 없지.’
데뷔 때부터 지내왔던 공간. 멤버들에겐 특히 정든 곳인데 이제는 떠날 시간이 왔다.
뉴마와의 관계를 청산하는 것은 담담하게 받아들이던 멤버들도 숙소 이야기가 나오자 싱숭생숭해진 표정이었다.
그 마음을 대변하듯이 준해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진짜 회사를 나가는 게 실감이 되네요…….”
나도 멤버들의 마음에 진심으로 공감했다.
‘나도 항상 마지막을 생각해왔는데도 대표의 퀘스트 성공을 본 후에야 ‘정말 때가 왔구나’ 하고 실감이 됐으니.’
편하고 익숙한 생활이 계속되면 좋겠지만, 살다 보면 익숙해진 환경을 떠나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준비가 완벽히 되지 않아도 다가오는 미래를 어떻게든 받아들여야 하는 게 인생이다.
“너흰 어딜 가서든 잘하니까 새로운 환경에도 곧 익숙해질 거야. 전담팀도 같이 갈 거니까.”
요즘은 멤버들만큼이나 직원들도 바빴다.
모노크롬 전담팀 전체가 독립을 준비 중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다른 소속사로 팀 전체가 옮겨가는 방안도 선택지에 있었지만, 어딘가에 속하면 그만큼 제약이 생기기 때문에 완전 독립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모노크롬의 단독 소속사를 세우는 것은 아니고, 현재 프로듀스팀을 총괄하는 송준오 피디가 프로듀싱 회사를 세우고 첫 소속 아티스트가 모노크롬이 되는 형식이었다.
‘프로듀스팀 직원들의 거취는 이걸로 대부분 해결됐지.’
모노크롬도 자체 프로듀싱에 다른 그룹 프로듀싱 경력까지 있으니 프로듀싱 회사라는 형태가 잘 어울렸다.
컴백이 밀린 탓에 예정에 없던 여유 시간이 생겼으니 송 피디를 주축으로 한 직원들은 새 사업장을 정비하는 데에 집중하고 멤버들은 민형과 함께 정해둔 새 숙소 후보들을 돌아다녀야 할 것이다.
‘정 시간이 부족하면 다들 잠시 본가로 흩어지는 방법도 있으니까. 다행히 다들 본가가 멀지 않고.’
뉴마 내부의 일은 대표라는 치트키가 있으니까 크게 신경 쓸 일 없을 테고.
한 회사에서 약 2년을 함께 일했더니 회사를 나갈 때쯤엔 분업이 수월하게 이뤄졌다.
음악대상 이후는 미지의 세계였는데 새 회사의 스케치가 어느 정도 잡힌 덕분에, 이제는 모노크롬의 내년 모습을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주인 님은 언제 와요?”
“나?”
한이가 재민의 옆구리를 꾹 찌르고 다 들리게 속삭였다.
“두목님은 세계 제패하고 오신다잖아.”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는데.”
전에 내가 뉴마를 그만두면 미국을 가냐느니, 우주를 가냐느니 물어보더니 저들 사이에서 말이 이상하게 와전된 모양이었다.
“전에 한번 송 피디님한테 여쭤봤는데…… 회사에 탕진할 사람이 한 명쯤 필요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우형까지 이상한 소리를 하고 나섰다.
언제든 꼭 놀러 오라는 소리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나중에 신주인을 만나면 그때 물어봐.”
나는 머릿속으로 모노크롬이 있는 미래에 신주인의 모습을 끼워 넣어 보았다.
역시, 이 세계의 신주인도 모노크롬을 만나면 감겨들 수밖에 없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안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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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정에 뭐 뜰까? 자지 말고 기다려?
└일단 존버
└존버2222
└몬클이들 부담주기는 싫은데.. 작년에 4컴백을 봤더니 욕심이 나네ㅎㅎ..
└12시!
└아니었다. 해산!
└내일 보자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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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즈는 요즘 자정마다 모였다가 해산하기를 반복했다.
원래라면 올라와야 할 컴백 티저가 안 올라오고 있으니.
매일 솜사탕 씻은 너구리가 되어 해산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려니 양심의 가책이 몰려오지만 어쩌겠어.
‘그야말로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인데.’
이 과정을 거쳐야만 모노크롬은 자유로운 환경을 쟁취할 수가 있다.
곧 다가올 혼란의 시기를 컬러즈가 잘 넘어가 주길 바랄 뿐이다.
예고라도 해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자세한 사정을 알려줄 수가 없는 모노크롬은 어떻게든 컬러즈를 안심시키고자 노력했다.
어느 날의 뷰이라이브. 겨울 바다를 주제로 컬러즈와 대화를 나누던 준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어떤 파도가 몰려와도 저희는 꿋꿋이 서 있을 테니까 휩쓸릴 것 같으면 저희를 붙잡고 버텨 주세요.”
[손 잡아도 돼요?]
[괜찮아 우리 튼튼해 우리가 다 막아]
[코어 운동 간다]
[겨울바다 추우니까 안아주자ㅎ]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였지만 컬러즈는 멤버들이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컬러즈가 정체도 모를 파도에 대비하여 파도타기를 준비하고 있을 때, 뉴마에 관한 기사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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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마 또 뭔짓 저지름???
└응? 뭔데?ㅠㅠ
└잉 탈뉴마..를 지금?
└찌라시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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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크롬이 7년 차였으니 슬슬 재계약에 관한 기사가 나올 법도 했다.
그러나 컬러즈가 접한 것은 계약 해지 논의 중이라는 기사였다.
이런 기사는 사람들의 시선을 금방 끌어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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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크롬 그럼 뉴마 나가서 뉴레인으로 가는 거임?
왜 굳이 2년 더 뉴마에 남아있다가?
└뉴레인은 에이펙트에 인수된단 얘기 있던데
└아 인수 시기 맞춰서 뉴레인으로 옮겨가려고 계약 조기 해지 논의중이라는 건가?
└ㄴㄴ수사중이란 소리 있음
└뭐 멤병크 터짐?
└괴도라 절도죄로
└아 ㅅX 괴도스탈린
└괴도컨셉은 에이펙트 신인이 하잖ㅋㅋ
└몬클 에이펙트 신인으로 데뷔한다고?
└상상카페 인수한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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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했지만 별별 뜬소문이 다 생기는구나.’
이 외에도 은퇴하고 귀농을 하는데 몬클하우스가 그 빌드업이었다, 뉴마도 창사 7년이 넘었으니 올드마로 사명을 변경한다 등 황당한 소리가 끊임없이 생성되었다.
가장 자극적이면서 현실적인 그룹 해체설은 오히려 이 드립의 현장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다 뉴마 내부 관계자의 고발이 터져 나왔다.
‘사실 그 내부 관계자가 나지만.’
가끔 내부 관계자에게서 입수한 정보라며 근거도 없는 이야기가 돌면 그렇게 성가실 수가 없었는데, 이렇게 활용할 땐 또 유용하다니까.
내용은 이러했다. 뉴마는 아티스트 사업을 완전히 접기 위해 뉴레인도 에이펙트에 넘기려는 것이고, 뉴마에 남아 있던 모노크롬은 알아서 살길을 찾으라며 내쫓으려 한다고.
그 때문에 컴백 준비 중이던 모노크롬은 영문도 모르고 휘말려서 당장 활동이 불투명해졌다고 말이다.
‘그 원인이 낙하산 이사라는 건 비밀로 하고.’
내가 나서서 신주인을 욕먹게 할 필요는 없지.
내가 짠 사내 권력 다툼 스토리는 대표와 나의 은밀한 거래, 그리고 경영권 승계를 바탕으로 한 대표와 사장의 긴밀한 커넥션이 엮여 있으므로 소수의 임원만이 아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조만간 모노크롬이 더 좋은 환경을 찾아가면 컬러즈도 ‘빨리 탈뉴마 하기를 잘했다’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때까지만 뉴마가 내 방패막이가 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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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럴 줄 알았다
그간 조용해서 방심했네 그 뉴마 어디 안 갔네ㅎ
└정신차렸나 했더니 회광반조였나?
└어쩐지 애들 아무리 봐도 컴백 준비중이었는데 티저가 안 뜬다 했음
└일 똑바로 안 하냐 월급 압수해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이 꾸준한 소속사 1위 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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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목표했던 대로 컬러즈는 불안해하기보다는 뉴마로 타깃을 올바르게 고정하여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뉴마 직원들은 월급을 사이버머니로 받아야 한다던 그 컬러즈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티스트팀이야 뉴마를 떠나면 끝이지만, 뉴마에 계속 남아 있을 배우팀은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겠지.
이제 그들이 모노크롬의 탈뉴마에 협조해 주기만 하면 된다.
“컬러즈가 평소엔 순한 맛이다가도 할 말은 다 하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아군으로 이렇게 든든한 타입은 없죠.”
우리 애들은 어떻게 되느냐며 전전긍긍하는 것보다는 이 모습이 훨씬 보기가 좋았다.
내가 컬러즈의 반응을 보며 흐뭇해하자 같이 팬들의 반응을 살피던 윤희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사님도 많이 진화하신 것 같아요. 커뮤니티에서 욕먹어도 타격 없이 넘어가는 사람은 봤는데 좋아하는 사람은 못 봤거든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변태 같잖아요.”
변태냐고 욕먹었던 주인님 사건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걸.
이렇게 분노와 기세로 잘 버티고 있는 컬러즈와 달리,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벅차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선배님들은…… 저희 도와주려고 하셨는데, 이렇게 힘든 상황에도…….]
모노크롬 멤버들에게 안심하라고 미리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텐데도, 눈물 많은 이담이 더클랜의 뷰이라이브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