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3화
회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숨죽이고 있다가 무난하게 계약 만료를 맞이하는 것이 우리의 원래 목표였다.
거기에 과거 활동에 대한 법적 권리를 모노크롬에게 넘길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넘기는 것이 내 할 일이었고.
평범한 소속사는 회사를 나간 아티스트에게 이 정도로 모든 걸 내주지는 않는다. 그야말로 이익집단이니까.
하지만 뉴마의 배우팀은 우리가 나가면 아티스트를 더 육성하지 않고 배우 회사로 전향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회사에서 모노크롬과 아티스트팀의 흔적을 쏙 지우더라도 반발이 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만일 너무 회사에 손해인 것 같다며 태클을 걸면 대표에게 정리를 부탁하려고 했지.’
나와 모노크롬의 퀘스트가 대표의 퀘스트보다 당연히 빨리 끝날 줄 알았으니까.
그러나 대표는 예상보다 빨리 대표직을 정리하려 했고, 나도 이사직을 그만둬야 할 상황. 계약이 만료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이사의 권한을 사용해 모노크롬의 탈뉴마 계획을 처리하려면, 만료 기한이 남은 계약을 중도 해지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계획을 크게 수정해야 할 수밖에 없다.
‘회사가 납득할 만한 해지 사유가 없으면 의구심을 품겠지.’
이사가 별 이유 없이 모노크롬에게 상당한 권리를 넘기고 계약을 해지시킨 후 사직서를 낸다고 생각해 봐.
내가 모노크롬을 빼가서 따로 사업을 펼치려는 것처럼 보이겠지. ‘우리 뒤통수친 거 아니야?’ 하는 괜한 반발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잡음 없이 회사를 떠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내가 떠올린 방법은 바로, 회사 차원에서 모노크롬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이었다.
“계약 만료가 얼마 안 남았잖아. 1년도 아니고 한 달 정도 먼저 계약을 해지하는 건 회사에서도 비교적 큰 손해라고 여기지 않을 것 같거든.”
“그, 그러면 저희는 계약을 해지하느라 컴백을 미루게 되는 건가요?”
“아니, 순서가 반대야. 회사가 컴백을 임의로 미뤄서 너희에게 손해를 끼치고, 그걸 이유로 너희는 계약을 좀 더 빨리 해지하고 나가는 거지.”
지금껏 앨범을 열심히 준비해 왔는데 회사 사정으로 컴백이 미뤄진다면 멤버들은 항의할 권리가 생긴다.
배우팀은 계약 기간도 얼마 남지 않은 모노크롬과 회사의 분쟁에 엮이고 싶지 않을 테고.
그러니 회사 책임을 무마할 겸, 조기에 계약을 해지해 주기로 합의하는 거지.
“그럼 회사가 컴백을 미룰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것도 생각해 봤는데.”
히스테릭 이사 이미지를 쌓아놨으니 단순 변덕으로 넘어가 볼 생각도 했다.
그런데 너무 억지 같아 보일 수도 있고, 웬만하면 철저하게 준비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머리를 굴려봤다.
“내가 아티스트팀의 수장이잖아? 그러니까 내가 너희를 인질로 대표님께 거래를 건 것처럼 꾸미는 거야.”
모노크롬이 뉴마를 나가면 아티스트팀은 할 일이 없어지고, 회사 내에서 ‘신주인 이사’의 입지는 상당히 애매해질 터였다.
‘물론 아티스트팀은 대개 갈 곳을 이미 정해놨지만 배우팀은 아직 그걸 모르니까.’
백수가 될 위험에 처한 나는 갑자기 권력에 욕심이 생겨서 대표에게 딜을 거는 거지.
모노크롬을 뉴마에 재계약시켜서 아티스트팀을 유지한 후 나를 더 윗자리에 앉혀 달라고.
그러기 위해서 지금까지 뉴마의 돈을 들여 준비한 컴백 일정을 독단으로 미뤄버린다.
12월은 음악 방송이 많이 결방하는 시기라 앨범을 발매해도 제대로 활동할 수 없을 테니, 재계약한 후 내년 1월에 컴백시키는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악덕 이사가 어디 있어.’
아니, 별별 회사가 다 있으니 이런 임원도 어딘가엔 존재하겠지만.
아무튼 모노크롬은 이렇게 악덕 이사의 권력욕에 피해를 입고 만다.
“거기서 대표님은 ‘배우팀을 존중하니 그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라면서 거절하는 거야.”
배우팀은 아티스트팀이 권력을 잡는 미래는 원하지 않을 테니까 당연히 대표의 편을 들겠지.
그 와중에 모노크롬은 회사에 불만을 제기하며 재계약을 거부하고.
그러면 대표와 배우팀은 나와 모노크롬을 포함한 아티스트팀을 통째로 들어내는 게 가장 무난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할 터.
대표는 사장에게 경영권을 넘기기로 이야기가 된 듯하니 이참에 그것을 빨리 처리해 버리고, 아티스트팀은 해산시킨다.
“이렇게 하면 아티스트팀의 탈뉴마 계획을 뒤탈 없이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신주인 주연의 사내 권력 다툼 막장 스토리.
우형은 급전개를 따라가려 노력하는 건지 연신 고개를 작게 끄덕이다가, 무언가 마음에 걸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대표님이 말을 맞춰주셔야 가능할 것 같은데, 협조해 주실까요?”
“응. 그건 이야기 끝내놨어.”
내가 대표의 동의를 이미 구해놨다고 하자 우형은 의외라는 듯이 눈을 깜빡였다.
“대표님과 얘기가 잘 안 되셔서 회사를 나가신다는 줄 알았어요…….”
아, 모노크롬 계약 해지 계획을 전하기에 급급해서 내가 회사를 일찍 그만둬야 할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구나.
그러고 보니 모노크롬은 내가 대표와 갈등이 있는 줄 아는 것 같던데.
대표가 뉴레인을 키우다 보니 아이리스와는 대표 이야기를 가끔 했는데, 모노크롬과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전에 내가 돌아갈 방법을 찾는다고 했던 거. 정확히 말하자면 대표님이 날 방해해서 그런 건 아니었거든. 좀 더 큰 장벽이 있었는데…… 지금은 대표님도 날 도와주려고 해.”
“그럼 원래 계시던 곳으로 돌아가시게 된 거예요?”
계약 해지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마음을 먹자마자 빠르게 전한 건데, 우형은 오히려 나의 거취를 더 궁금해했다.
내가 전한 계획은 분명 모노크롬에게 부담이 가는 일일 텐데 당연히 따르겠다는 듯이.
여전한 그 모습에 나는 미소를 흘렸다.
“내가 원하는 결말에 가까워진 것 같아. 그러니까 너는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
“좀 더 도움을 드리고 싶었는데…….”
“윤희 씨나 민형 씨, 송 피디 님…… 라솔 씨나 다른 분들도 다 많은 도움을 줬지만, 내가 중요한 선택을 하는 데에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역시 너희였어.”
이런 추상적인 얘기로도 나의 진심은 어느 정도 전달되었는지 시무룩해 보이던 우형도 얼굴이 조금 폈다.
“그러면 이번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게 열심히 해 볼게요. 피해자 역할……을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오기 전까지 모노크롬은 항상 피해자였으니 어려울 것 같지는 않은데…….
아니, 모노크롬이 그때를 떠올리며 몰입하면 안 되지.
“계획은 간단히 설명했지만 이밖에도 신경 쓸 일이 많아질 거야. 그래도 잘해 보자.”
“네!”
우형은 목표가 정해지자 흔들림 없는 얼굴이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물어도 어물거렸던 그는 이제 어려운 일도 열심히 해보겠다고 한다.
모노크롬은 항상 이랬지. 초라하게 방치되었던 그들을 내가 구제하는 역할인 것 같지만, 실은 모노크롬이 있었기에 나는 내 발로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세계를 완전히 버릴 수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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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카페 마지막화 어케 되는 거임?
나오는 기사마다 말이 다른데 그래서 뭘 방송한다는 거임
└뭐 하나가 정보가 틀렸으면 정정 기사를 낼 텐데 아닌거 보니까 지들끼리 내부에서 기싸움하는가 봄;
└qbc 진짜 개에바
└상상카페 왜? 시청률 잘 나오는데 빨리 끝내려고 하는 이유가 있나
└연예대상에서 프로그램상 안 주고 싶어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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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카페> 마지막 화와 다음 편성 프로그램이 차지하기 위해 다투고 있는 방영일은 11월 20일.
‘다행히 퀘스트가 끝나는 날 전이라 마지막 화가 어떻게 될지는 볼 수 있겠어.’
다만 방송국에서 <상상 카페>를 택해 준다면 마음 편히 기다릴 수 있을 텐데, QBC는 아직 이렇다 할 뚜렷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도 QBC의 방영일 다툼을 인지했고, 다음 편성 프로그램을 연예대상에서 밀어주기 위함이 아니냐며 추측했다.
‘그럴싸한 추측이지만 사실 중요한 건 연예대상이 아니라 음악대상인데.’
QBC에선 자기네들이 원하는 대로 밀고 나가고 싶은지, 배명희에게 신곡을 공개하는 자리를 따로 마련해주겠다며 은근슬쩍 접촉해왔다고 한다.
배명희가 만일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임주미 PD, 그리고 QBC의 섭외가 취소되기도 했던 모노크롬만 불이익을 받고 끝날 상황.
하지만 배명희는 굳건한 태도를 고수했다.
‘역시…… 연차는 무시 못 하지.’
방송국에서도 쉽게 어쩌지 못하는 대가수가 우리 편이란 게 이렇게 든든할 줄이야.
배명희가 이전에 ‘후배들에게 선배가 부족한 것 같다’라고 한 말의 참뜻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녀와 같은 선배 연예인이 부당한 상황에 처한 이들의 편에 서주니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커리어를 걸고 도움을 주고 있는데, 모노크롬과 뉴마의 다툼이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겠지……?
그게 걱정되어서 나는 새로운 탈뉴마 계획이 정해지자마자 임주미 PD에게 연락했다.
“조만간 모노크롬이 회사 문제로 어수선해질 듯한데…… 방송하는 데에 지장을 줄 만한 문제는 아니니까 <상상 카페> 마지막 화는 그대로 잘 밀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녀에게 ‘모노크롬이 회사를 나가게 될지도 모른다. 회사의 과실로 인한 것이니 모노크롬에겐 문제가 없다’라는 내용을 전했다.
시청자들도 문제가 있는 아티스트가 나오는 방송은 보고 싶지 않을 테니 모노크롬의 과실이 없다는 점은 확실히 해야 했다.
“그런데 이사님이 그 회사의 임원이시잖아요?”
“그게…… 이것도 퍼포먼스 같은 거예요. 모노크롬 계약 해지 시기를 앞당기려고 제가 문제를 크게 만들 거라서요.”
임주미 PD는 <상상 카페> 때문에 징계도 받고 퇴사까지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 일로 방송에 문제가 생기면 정말 그녀를 볼 면목이 없다.
그래서 공유한 내용인데, 임주미 PD는 오히려 목소리가 밝아졌다.
“그 퍼포먼스가 언제죠?”
“방송 전 주에는 기사가 뜰 거예요. 회사와 분쟁 중이라고.”
“좋은데요. 시청률 장난 아니겠어요. 분쟁은 방송일까지 끌어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면 사람들이 궁금해하면서 TV를 켤 거 아니에요. 저 방송에 나오는 모노크롬은 어떻게 되나 하고.”
방송에 영향을 줄까 봐 걱정돼서 물어보는 줄 알았는데, 시청률 끌어올 생각이었냐고.
아니, 임주미 PD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지금은 오히려 이런 사람인 게 안심이 된다.
“최대한 빠르게 처리할 예정이라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참고는 할게요.”
“기왕 터트릴 거 화끈하게 터트려 주세요. 제가 지뢰라면…… 이사님은 폭죽처럼?”
나도 임주미 PD랑 같은 폭발물로 엮이는 거야……?
기분은 이상했지만 폭죽이란 비유는 나쁘지 않았다.
화려하게 터트려서 이목을 모으고, 목표만 달성한 후 빠르게 사그라지는 거지.
그럼 방송은 문제없겠다, 다음은 우리인데…….
“어떡하죠? 컬러즈한테 약간 컴백하는 티를 냈는데.”
스포 요정이 되어버린 한이가 갑자기 변경된 탈뉴마 계획을 걱정하며 자진신고했다.
“뭐라고 티 냈는데?”
“무슨 스케줄 있었냐고 해서 ‘그런 게 있어요.’라고 대답했는데 채팅창에서 다 컴백하냐고…….”
원래 컴백은 숨기기 어렵다. 공개되는 게 없는데 멤버들이 계속 바쁘면 팬들은 컴백부터 기대하곤 하니까.
스포일러를 막겠다고 앨범 준비 시기에 소통을 완전히 끊을 수도 없고. 게다가 적당히 기대를 불러일으키면 팬 활동에도 활기가 생긴다.
‘그럼 컬러즈는 지금 컴백을 기다리고 있다는 거지…….’
그런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모노크롬의 분쟁과 계약 해지 소식.
컬러즈의 속이 타는 일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모노크롬의 계획을 컬러즈에게 발설할 수는 없다.
‘비밀’이라고 하면 열심히 숨겨주는 그들이지만…… 이전과 다르게 모노크롬을 주목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으니 비밀이 유지될 리가 없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뉴마를 엄청나게 욕하게 만들자.”
세상에서 뉴마 욕을 가장 잘하는 집단, 컬러즈의 재능이 꽃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