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2화
내가 갑자기 우형을 찾자 민형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전화해 볼까요? 전화하셨는데 걔가 안 받아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나는 이 문구를 발견했을 때를 떠올리며 변명할 말을 찾았다.
퀘스트 종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건 몇 시간 고민한다고 답이 바로 나오는 문제가 아니었다.
시간이 촉박하더라도 조용히 고민해 볼 시간이 필요했던 나는 오늘도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생각에 빠져 있을 예정이었다.
영원히 밤이 이어질 것만 같은 막막한 기분이었는데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지났고, 멀쩡히 해가 뜨고, 사람들이 움직였다.
‘이런 세계가 다시 게임으로…….’
게다가 플레이어였던 나와 완전히 연결고리가 끊길 거라니.
싱숭생숭한 마음에 마이 엔터 화면을 만지작거리던 때였다.
우연히 들어간 멤버 관리창에서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문구를 생각지도 않게 마주쳤다.
“……상태 이상?”
우형에게 별다른 일이 생겼다는 연락은 오지 않았다.
게다가 재민이 다쳤을 때처럼 상태 이상 문구가 계속 떠 있는 것이 아니라 깜빡거리고 있었다.
‘부상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몸이 안 좋은 상태라는 것 같은데.’
멤버들은 우형과 숙소에 함께 있을 터였다.
우형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다면 모노크롬 전담팀 단체 메시지방에 내용을 남겼을 것이다.
아티스트의 건강 케어도 소속사가 할 일이니,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알리도록 단단히 일러두었으니까.
그러나 직원들이 출근한 시간까지 별다른 전언이 없었고, 다들 우형의 상태를 정확히 모르는 듯해서 내가 직접 상태를 확인하기로 했다.
‘우형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해서 말을 안 했을 수도 있어.’
출근하여 연습실로 와 보니 우형은 없었다. 약 한 시간 전까지는 숙소에 같이 있었을 멤버들도 ‘우형이 피곤해 보였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이 일련의 상황을, 마이 엔터 요소를 빼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전에 봤을 때 안색이 안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요새 신경 쓸 일이 많았으니까 컨디션이 쉽게 망가지겠다 싶어서요. 대충, 뭐 그래요.”
말하는 나조차도 횡설수설하는 것 같다고 느껴졌지만, 지금은 우형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내가 숙소에 있다는 우형을 콕 집어 얘기하자 멤버들도 단순한 우려가 아니라고 느꼈는지 하던 일을 멈추고 모여들었다.
마침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있던 한이는 확인차 바로 우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형 일어났어? 계속 피곤해?”
우리의 시선을 받은 한이는 금방 통화를 끊고 우형의 말을 전해줬다.
“지금 어머님이랑 통화하려던 중이었다고 이따가 전화할 테니까 끊으라는데요? 목소리는 아직도 잠겨 있고.”
“너무 뭔가 숨기고 있는 사람 같은데?”
준해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곧이어 해랑이 “아.” 하고 뭔가가 떠오른 듯이 입을 벌렸다.
“신경성 위염 도졌나 보다.”
“아아.”
그 말에 한이와 준해도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우형이 위가 약하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이런 일이 전에도 있었어?”
“예전에 몇 번 그랬어요. 평소보다 못 일어나서 물어보면 괜찮다고 하고. 아픈 티를 내기 싫은지 약도 가방에 숨겨두고 먹고.”
해랑은 재작년까지 계속 우형과 방을 함께 썼기에 그런 모습을 종종 봐왔다고 한다.
스트레스성이라 그때그때 약을 먹는 것 말고 별다른 방도도 없었다고.
멤버들은 다 같은 기억을 떠올리는 듯했는데, 재민만이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여우 형이 가끔 그랬어? 왜 난 몰랐지…….”
“그게…… 네가 있을 땐 괜찮았어.”
한이가 말을 고르며 그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재민이가 있을 땐 괜찮았다는 건…….’
재민이 회사를 나가고 모노크롬이 방치되었을 때 얻은 증상이라는 거잖아.
가끔 우형이 위가 약해서 매운 음식은 안 먹는다거나, 밥을 죽으로 만들어놓는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사소한 일을 많이 신경 쓰는 우형의 기질 때문인 줄 알고 잘 챙겨줘야겠다는 생각만 했는데.
‘그게 전부 뉴마 때문에 얻은 증상이었던 거야?’
퀘스트 종료를 앞둔 이 시점에 또 발굴된 업보에 나는 이마를 짚을 뻔했다.
나도 회사에 다니며 스트레스로 위통을 느낀 적은 많았기에, 지금 우형이 어떤 상태인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속이 쓰려서 어기적거리는 정도면 상태 이상이 깜빡거리는 것으로 표시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요즘은 안 그래서 괜찮아진 줄 알았지.”
준해의 말을 들어보니 나와 재민이 몰랐던 것은 근 2년 동안은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인 듯했다.
그런데 지금은 예전만큼의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생겼다는 거고.
“우형이한테 별다른 일이 생긴 건 아니지?”
“그건 아니에요.”
그러면 작업 때문에 피로가 쌓인 건가. <상상 카페>가 갑자기 종영하는 등 상황이 급변한 것 때문일 수도 있고.
어쨌든 우형의 상태는 대략 파악했으니 나는 다시 민형에게로 몸을 돌렸다.
“민형 씨가 숙소로 가서 챙겨주세요.”
“네.”
그렇지 않아도 민형은 바로 출발할 생각이었는지 팔에 들고 있던 외투를 챙겨 입고 있었다.
민형이 후다닥 떠나고, 나는 계속 붙잡고 있던 연습실 문을 닫으려다가 멤버들과 눈이 마주쳤다.
“…….”
이틀 만에 갑자기 나타나 방금까지 숙소에 멤버들과 함께 있었던 우형의 몸이 안 좋은 것 같다며 확인해 달라고 한 상황.
그러나 우형의 건강 확인이 먼저였으니 어쩔 수 없다.
간밤에 꿈이 뒤숭숭했다는 등 변명을 해봤자 더 이상하게 들릴 뿐이겠지.
대충 넘어가려고 눈치를 보며 슬슬 문을 닫으려는데, 준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사님 진짜 신이에요?”
“뭐?”
무슨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지만 지금 내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긴 했다.
혹시 신내림이라도 받았냐는 질문을 하고 싶었던 걸까? 임원에게 그대로 묻기엔 무례하다고 생각해서 순화했을지도 모르지.
‘아니, 생각해 보니 준해가 이전에도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어.’
누가 자신들을 지켜보는 것 같다고 했지.
해랑과 한이는 나를 바라보던 시선을 준해에게로 돌렸다.
그 옆에서 재민은 어떤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주인 님 성의 신이…… 그 신이었어요?”
“아, 아닌데?”
내가 내 성씨의 ‘신’을 그 신이란 뜻으로 받아들였으면 이 회사 이름이 뉴마가 아니라 갓마가 되었겠지.
아무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준해가 날 수상하게 보고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냥 내가 가끔 주변 사람들 상황에 예민해. 감이 좋은 건지.”
“그런데 항상 타이밍 좋게 나타나셨잖아요. 저희뿐만 아니라 윤환이 형도 그렇게 느꼈다는 거 듣고, 뭔가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레드도 이전에 내게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플레이어로서 마이 엔터에 따라 움직이는 한, 어떻게 해도 이상한 느낌은 지울 수 없는 모양이다.
세계의 미래를 선택해야 하는 이 시점에 멤버들이 납득하도록 변명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내가 신은 아니지만 다른 차원의 존재라고 설명해봤자 혼란만 주게 될 텐데.
“그냥…… 그렇게 믿고 싶어서 한번 여쭤본 거예요.”
“믿고 싶어?”
어떤 대답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준해는 나를 추궁하고 싶지는 않다는 듯이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게 해서 저희를 도와주는 분이 계신다는 건데 나쁜 일일 리가 없잖아요. 만일 그런 분이 계신다면…… 계속 저희를 지켜봐 주시는지가 궁금했어요.”
“…….”
“왜 저희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리고 또 도와주셔서 감사하기도 하고.”
즉흥적으로 꺼낸 말이어서인지 준해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혹시 제가 데뷔한 것도 그게 연관돼 있을까 싶기도 하고…….”
“데뷔는 왜……?”
“저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에 데뷔조로 발탁돼서 기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아.”
이 세계에 와서 초반에 업보가 휘몰아치던 때가 생각났다. 그중에서도 도한과 처음 만났을 때.
마이 엔터를 처음 플레이하며 모노크롬 멤버를 정할 때 내가 막내 라인을 두고 연습생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고민했었지.
그래서 결국 도한은 데뷔조 희망 고문만 겪은 연습생으로 남았고, 준해는 모노크롬의 막내로 데뷔했다.
‘그 일 때문에 특히, 데뷔 이후로 이상한 우연이 계속 반복됐다고 생각했나?’
작사와 기획에 재능을 보일 정도로 창의성이 뛰어난 준해여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 그냥 그렇다고요.”
준해는 말을 꺼내놓고 보니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몰려있어 뒤늦게 쑥스러워졌는지 바닥을 내려다봤다.
그게 플레이어인 줄은 몰랐겠지만, 마이 엔터 세계 속의 아이돌도 플레이어의 존재를 느꼈다는 사실에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다.
“……그런 사람을 보게 되면 네 말 전달해줄게.”
“네에…….”
나는 그런 이상한 대화를 나누고 이사실로 올라왔다.
***
우형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이사실로 찾아왔다.
“죄송합니다……. 원래 하루 이틀이면 괜찮아져서 조금만 쉬려고 했는데…….”
“몸은 이제 괜찮아?”
“네. 어제 민형 형이 약 타와서 입에 쑤셔 넣, 아니, 잘 챙겨줬어요.”
표정을 보니 아픈 걸 숨겼다고 등짝이라도 한 대 맞은 모양이었다.
‘그건 등짝 맞을 일이 맞긴 해.’
혼자 끙끙대면 본인도 힘들고 주변인들도 뒤늦게 알아채서 미안해지잖아. 물론 우형은 들키지 않을 생각이었기에 숨겼겠지만.
민형이 우형의 사촌이라 다행이었다. 이럴 땐 매니저가 아니라 형으로서 아닌 건 아니라고 따끔하게 혼내줄 수 있으니까.
“그, 이사님이 형 보내주셨다면서요. 감사합니다…….”
멤버들이 내가 이상하게 굴었다는 이야기를 했을 것 같은데, 우형은 그 점은 건드리지 않았다.
“요즘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
“아뇨, 괜찮…….”
또 괜찮다고 넘어가려던 우형은 내 시선을 받고 눈동자를 굴리더니 다시 고쳐 말했다.
“이제 뭔가를 이뤄야 할 때인데 앞에 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대상 때문에?”
“네. 그것도 있고, 어떻게 해도 제가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우형은 자신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막막함을 느낀 듯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해왔는데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한다니.’
결과보다는 들인 노력과 과정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결과로 확인받지 못하면 자신감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은 음악대상보다 다른 게 급하게 되었다.
음악대상 때문에 연말 실적 압박을 받는 우형을 구제하려면 어서 이 일을 전해줘야 할 듯했다.
“사실 나도 할 말이 있는데…… 티저 공개하려던 걸 미뤄야 할 것 같아. 정확히 말하자면 미니 앨범 발매 자체를.”
“아, 혹시 저 때문이라면…… 신경 안 쓰셔도 괜찮은데.”
“아니, 네 탓이 아니라.”
땅굴을 파고 들어가려는 우형을 보니 뉴마에 온 첫날 그를 따로 불러왔을 때가 떠올랐다.
자작곡을 내고 싶다면서 수록곡도, 단순 음원 발매도, 그냥 라이브 영상도 괜찮다면서 점점 목표가 작아지던 그때.
그때와 많이 바뀐 것 같으면서도 변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었다.
“갑작스럽게 들리겠지만 내가 회사에 얼마 못 있게 됐어. 생각보다 빠르게 이사직을 관두게 될 것 같아.”
“네?”
“계속 준비하던 앨범을 미루게 된 건 미안하지만, 이번 앨범은 뉴마가 아니라 너희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내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해.”
뉴마에 소속된 상태로 앨범을 내면 뉴마 또한 권리자가 된다.
나중에 정산이나 이런저런 일들이 복잡해진단 말이지.
게다가 지금 이 상황에선 앨범을 낸다고 해도 제대로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시간이 많이 없어서 여러 가지를 좀 졸속으로 처리해야 할 것 같거든?”
끝은 다가오는데 시간은 없고.
어차피 제대로 처리하기 글렀다면 차라리 될 대로 되라 식으로 막 나가는 게 나았다.
“내가 뒤엎을 테니까 너희는 피해자인 척해.”
“네……?”
우형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딸꾹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