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0화
대표는 주인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했다.
주인은 이사 권한이 남아 있을 때 모노크롬을 뉴마에서 내보내고자 했다.
그래야만 모노크롬에게 유리하게 계약 종료를 할 수 있다면서.
주인이 생각하는 기한은 당연히 모노크롬의 음악대상 퀘스트 종료 시점까지였다.
‘그럼 나는 언제까지 대표로 남아 있는 거지?’
대표가 한 선택은 신주인을 현실로 복귀시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연히 다른 보상인 ‘이 세계의 현실화’는 없는 일이 될 테고.
주인이 돌아가고 이 세계가 게임이 되면 자신은 다시 게임 속 플레이어 캐릭터로 돌아가는 것일까.
마이 엔터를 구동하면 나오는 그 대표 캐릭터로.
‘우리가 이곳으로 오기 전 상태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뿐이지만.’
주인에게는 이 세계의 기억이 있고, 플레이어가 운영하지 않으면 회사도 멈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게임을 놓지 못하겠지.
기껏 돌려보낸 신주인을 게임 폐인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표는 주인과 마이 엔터의 연결고리를 끊고자 했다.
‘내가 뉴마와 뉴레인의 대표가 아니면.’
대표 자리가 이 세계의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면 두 회사는 플레이어의 회사가 아니게 된다.
그러니 주인이 마이 엔터로 운영할 수 없겠지.
대표를 그만두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퀘스트 조건을 채우기 위해 뉴레인을 에이펙트 엔터에 넘기려는 계획과 일맥상통했으니까.
뉴마도 경영권을 사장에게 넘길 예정이었으니 문제없었다.
‘뉴마야 아티스트팀이 빠지면 지금까지 배우팀이 그랬던 것처럼 알아서 운영해나갈 테고. 뉴레인은…….’
자신이 대표에서 물러난 후, 누가 그 자리에 들어올지는 더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지만 에이펙트 엔터의 임원이 자리를 채울 가능성이 컸다.
어차피 자신은 손을 뗄 테고, 남은 사람들이 어련히 회사를 잘 운영해나가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주인이 이사 권한이 남아 있을 때 모노크롬의 탈뉴마를 도우려고 한 것처럼, 자신도 대표 권한이 남아 있을 때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뉴레인 소속 아티스트가 셋.’
곧 데뷔할 신인 그룹, 코드네임은 현재 에이펙트 엔터가 대표보다 더 관심을 쏟고 있으니 잘 운영해줄 터였다.
윤환은 자신이 선택해서 뉴레인에 들어왔고, 처음부터 전담팀이 있었으니 회사가 넘어가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아이리스였다.
‘최근에 전담팀이 꾸려지긴 했지만 뉴레인이랑 갈등을 빚었었지.’
아이리스에게 뉴레인은 여러모로 불편한 곳이었다.
그래서 대표는 마침 아이리스의 계약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놓아줄 생각이었다.
갈 곳이 없다면 몰라도 아이리스는 국내 활동을 재개하며 다시 성장세를 이뤘고, 회사에서 자유롭게 놓아준다면 뉴레인보다 잘 대우해줄 곳으로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에이펙트 엔터도 신인 그룹만 보고 뉴레인에 관심을 보인 것은 아니지만, 아이리스가 재계약 조율 중이고 회사를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대표는 레드에게 계속 탈뉴레인이라는 선택지를 건넸다.
그러나.
[마이 엔터: 회사의 등급이 올랐습니다. 확인해 보세요!]
“뭐야, 이게……?”
예상치 못한 알림을 본 대표는 자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는지부터 의심했다.
그다음으로는 최근 뉴레인의 업무 보고 내용을 떠올렸다. 근래 회사 등급이 오를 정도로 특별한 일은 없었다.
혹시 에이펙트 엔터가 넌지시 뉴레인을 인수한다는 분위기를 풍긴 게 아닐까.
회사 등급 상승의 이유를 헛짚기만 하던 대표는 곧이어 아이리스의 기사를 접했다.
‘정규 앨범이 나올 때까지 회사랑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건 줄 알았는데, 이 정도로 마음이 확고했다고?’
주인이 ‘이 세계는 의외로 아이돌 친화적인 세계관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대표는 그 말의 뜻을 이번 일로 확실히 실감하게 되었다.
뉴레인은 아이리스의 2년을 얻음으로써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걸그룹의 전원 재계약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달성한 것도 회사의 이미지 상승에 큰 도움을 줬을 것이다.
대표는 평범한 마이 엔터 플레이어처럼 돈을 벌 방법을 강구했으나 그건 틀린 공략법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일 내가 아이리스의 퀘스트를 무시하지 않았으면…….’
아이리스가 회사를 신뢰하고 더 일찍 재계약 의사를 밝혔다면 퀘스트도 더 빨리 성공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뒤늦게야 들었다.
회사 대표인 자신이 기사로 아이리스의 재계약 의사를 알게 된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생각해 보면 레드는 계속 뉴레인과 아이리스의 미래를 대표에게 말해왔다.
대표는 그게 진심인 것을 알지 못했다. 아니, 알 수도 있었으나 일부러 외면해왔다.
아이리스가 뉴레인과 함께하기로 한 것도, 레드가 감사하다고 했던 말도 전부 진심이라면.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해요. 하지만 이렇게라도 저희 의지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레드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에이펙트 엔터와 조건을 조율 중이란 사실은 외부에는 아직 비밀이었지만 내부에선 아니었다. 아이리스도 이야기를 들었을 터였다.
하지만 대표가 대표직을 내려놓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대표가 없어도 아이리스는 뉴레인을 택했을까?
[난 회사 운영에서 물러날 거야.]
에이펙트 엔터가 갑자기 마음이 바뀔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기에 조금 더 확실해진 후에 이야기하려 했던 사항이었다.
레드는 의외로 덤덤하게 대답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단순히 익숙한 뉴레인에 남고 싶어서 재계약 이야기를 꺼낸 걸까?
대표는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레드가 연달아 보내는 메시지를 계속 확인했다.
[뉴레인이 불편할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지만 아이리스는 모여 있으면 어디에서든 잘 해낼 거예요.]
[그래서 대표님이 만들어주신 환경에 남기로 했어요. 그냥 어디서든 계속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계속 지켜봐달라는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정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대표는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라고 느꼈다.
[미안.]
대표는 결국 아이리스가 있는 세계를 선택해 주지 못했다.
그 점은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었다.
***
내가 아이리스의 재계약 예정 기사를 본 것은 출근한 직후, 이사실에서였다.
“가, 갑자기?”
재계약이란 건 계약 만료 며칠 전에 ‘자, 이제 이야기해 봅시다.’ 하고 뚝딱 정하는 게 아니었다.
물론 과거의 뉴마 같은 회사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몇 달은 기본이고 1년도 더 전부터 미리 회사와 이야기하는 게 일반적이다.
‘대표가 별다른 얘기를 안 해서 시간이 더 걸릴 줄 알았는데 그새 이야기가 잘된 건가?’
그뿐인가. 대표는 아이리스가 뉴레인을 떠나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긴 대표만 탈뉴레인을 입에 담았지, 아이리스는 뉴레인의 문제가 해결된 후엔 안정된 환경이 꾸준히 유지되길 바랐다.
아이리스가 뉴레인에 남기로 했다는 것. 이 선택은 아이리스와 대표에게 둘 다 좋은 일이 아닐까.
회사가 크려면 소속 아티스트가 적은 것보단 많은 게 나으니까, 대표도 퀘스트 수행이 덜 부담스러워질 테고.
‘이렇게 또 신경 쓰이는 문제 하나가 해결되었나 보네.’
퀘스트 종료 시기를 앞두고 마음에 걸렸던 문제들이 하나하나 해결되어갔다.
안도되는 한편, 내 주위의 것들이 조금씩 마무리되어가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누군가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미래의 성장을 도모하고.
다들 스스로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으니, 이제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너 어디야? 지금 퇴근하면 안 돼?]
이렇게 제멋대로 구는 대표는 아직도 걱정이긴 하지만…….
<상상 카페> 마지막 화 촬영이 끝났기에 촬영지로 나갈 일은 없었다. 내가 있을 곳은 뉴마, 아니면 몬클하우스뿐이다.
가끔 라솔의 회사로 찾아가긴 하지만 잠깐 있다가 다시 복귀하니까.
[회사긴 한데 왜?]
[중요한 얘기가 있어.]
[아이리스가 재계약하려는 거? 나도 기사 봤어.]
[아니. 그거 말고.]
재계약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
딱히 짐작 가는 게 없어서 중요도가 와닿지 않았다.
[나 방금 출근했는데? 밖에 나갈 일은 없어도 회사 일은 해야지.]
[아무튼 최대한 빨리 와.]
급한 일이면 메시지로 말했을 텐데 대표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겠다는 소리만 했다.
‘뭐야? 대단한 선물이라도 준비해놓은 사람처럼.’
특별한 날인가 해서 달력도 확인했지만 그냥 평범한 날이었다. 아이리스가 재계약 의사를 밝힌 것 외에는.
그리 중대한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 나는 퇴근 시간에 보자고 했고, 대표도 꼭 당장 전할 이야기는 아니었는지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퇴근하니 예상대로 집에 대표가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너 돌아가.”
“회사로 돌아가라고?”
빨리 오라고 해서 칼퇴근했는데.
이런 농담을 하려고 부른 건가? 마치 불 꺼달라고 동생을 급히 부르는 얄미운 언니처럼.
의도를 파악할 수가 없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봤으나, 대표의 표정은 농담하는 사람 같지 않았다.
“아니. 집으로 돌아가.”
이곳이 지금 내 집인데 집으로 돌아가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대표는 내게 다가와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재작년, 나는 자취방을 정리하고 본가로 들어가면서 스마트폰을 새로 구매했다.
그 전에 이 세계로 온 대표는 내가 이전에 사용하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내게는 대표가 보여주는 화면의 레이아웃이 아주 익숙했다.
“마이 엔터는 왜…….”
대표가 대답 대신 스마트폰 화면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고, 멍하니 고개를 들어 대표의 얼굴을 바라봤다.
“퀘스트가…… 끝났어?”
그러면 이 세계는 현실이 된 건가?
현실이 되어도 모노크롬의 퀘스트는 시간이 남았으니 계속 유지되는 거겠지?
대표가 신주인이 되면 지금 나는…….
‘아니, 대표는 아직 퀘스트 보상을 받지 않았어.’
보상을 받는 문제 때문에 빨리 오라고 한 건가?
아직 대표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나는 눈빛으로 대표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대표는 내 손 위에 자신의 스마트폰을 올렸다.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있어.”
나는 다시 고개를 내려 마이 엔터 화면을 확인했다.
대표가 말하는 대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날은 정해져 있었다. 11월 24일.
“내 생일이잖아……?”
생일에 이 세계에 온 대표, 그리고 퀘스트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날도 내 생일.
무언가 연관된 것 같은데 머리가 복잡하여 무엇부터 생각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대표는 손가락을 움직여 화면을 아래로 내렸다.
그곳엔 이 세계의 현실화 외에도, 선택할 수 있는 보상이 하나 더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신주인.”
[신주인]의 현실 복귀.
신주인이 바라던 것이 그곳에 적혀 있었다.
***
다음 날, 평일이지만 주인은 출근하지 않았다.
주인이 뉴마에 부임한 후 자의로 휴가를 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텅 빈 이사실 앞을 지키는 최 비서는 재민의 ‘왜요?’ 공격을 받고 있었다.
“몸이 안 좋으시대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어제도 괜찮으셨고요.”
“그럼 왜 안 나오셨는데요?”
“개인적인 일로…….”
“무슨 일이신데요?”
“생각할 게 있으시다고…….”
임직원이 며칠 자리를 비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한 번도 쉬려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휴가계를 내면 그만큼 큰일이 있나 걱정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재민의 물음에 대답하는 최 비서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