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79화 (379/430)

# 379화

[배명희 21년 만에 가수 복귀 초읽기…신곡 QBC ‘상상 카페’에서 첫 공개]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배명희의 신곡은 <상상 카페> 마지막 화에서 처음 공개한다.

배명희는 현재 화제의 인물이었고, 우리가 이 내용을 퍼트리려고 기를 쓰지 않아도 인터넷 언론사의 기자들은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올리며 소식을 퍼트렸다.

나는 임주미 PD와 통화 당시 이 아이디어를 꺼내며 이렇게 말했다.

“상대 측에서 기사로 선수를 쳤다면 저희도 같은 수법을 쓸 수 있잖아요. 그렇죠?”

무턱대고 들이받으려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도 명분은 있었다.

다음 편성 프로그램의 정확한 방영 일자가 기사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전에 나온 홍보 기사에는 전부 ‘12월 방송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 일자가 이번에 11월로 갑자기 앞당겨진 것이었다.

게다가 <상상 카페>와 관련된 기사도 있었다.

“기자들이 자꾸 다음 게스트를 캐내려 한다고 작가님이 자주 한탄하셨잖아요. 게스트를 먼저 알아내서 스포 하면 무슨 재미냐고요.”

[그랬죠. 저희가 누구 만나는지 방송국 안에서 지켜보는 줄 알았다니까요.]

“이번에도 누가 다음 게스트 추측 기사를 내지 않았을까요?”

임주미 PD는 잠시 작가에게 확인하는 듯하더니 기사를 찾아냈다.

[있네요. 일자도 마침 저번 게스트랑 만난 이후예요.]

이게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우리는 종영에 관해선 아무것도 모른 채로 다음 촬영을 준비 중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출연하기로 예정됐던 게스트분도 갑자기 일정이 없어져서 당황하시지 않았을까요?”

[아, 그거 말인데요. 미팅도 다 끝났는데 방송이 갑자기 없어졌다는 말 나올까 걱정했는지 벌써 다른 프로그램 게스트로 모셔갔다네요?]

뭘 자꾸 이렇게 홀랑홀랑 빼가는 거야. 소매치기야?

우리를 고꾸라트리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는 점이 더 얄밉게 느껴졌다.

‘이렇게 되면 응수는 해 줘야지.’

우리는 원래 다음 화를 촬영할 계획이었으니 예정대로 하기로 했다.

우리한테 먼저 제대로 얘기하고 정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으면 몰라. 방송이 끝날 거라고 미리 안내를 안 했잖아?

이건 정면승부였다. QBC 내 일부 세력의 변덕으로 두 프로그램이 같은 시간에 방영한다고 이야기가 나온 이상, 방송국은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

‘밀어주려는 방송과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방송.’

이건 어찌 보면 방송국의 숙명과도 같은 선택 과제가 아닐까.

자기들을 위한 방송을 내보내느냐, 시청자들을 위한 방송을 내보내느냐.

첫 화 일정이 두 번이나 어그러질 위기에 처한 다음 편성 프로그램 제작진은 앓는 소리를 낸다고 하지만, <상상 카페> 마지막 화가 예정대로 방영될 경우 여유가 생긴다.

갑자기 빨라진 방영 기간 때문에 밤샘 작업이 예정되었던 편집실 직원들은 오히려 환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 윗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아랫사람들은 자기 할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우리가 몰아붙이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큰 응원이 되었다.

이런 일은 기세를 몰아 진행해야 했기에, 마지막 화를 위한 세팅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곡 편곡 작업이 남아 있긴 하지만…….”

성운과 함께 곡을 다듬는 작업에 열중하던 우형은 내 급한 요청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완성본 음원이 필요하신 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라이브는 가능해요.”

“응. 음원을 그대로 넣을 게 아니라 꼭 촬영일까지 음원을 완성할 필요는 없고, 노래 부르는 장면을 촬영할 수 있으면 돼.”

“이 곡이 피아노 반주가 메인이라서, 라이브 느낌을 살리려면 피아노가 있으면 좋겠는데…….”

“내가 한번 문의해 볼게.”

안 되면 내가 사비로라도 구해 와야지. 이게 바로 올바른 탕진 아니겠어?

그러나 내가 탕진을 할 필요는 없었다.

방송이 갑자기 엎어진 탓에 원래 배정되어 있던 제작비가 아직 남아 있다며 임주미 PD가 설명했다.

“시청자들이 주목한다는 건 광고주들도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저희 마지막 화 앞뒤로 광고 넣고 싶어 하는 회사가 많다나, 뭐라나.”

원래라면 방송이 엎어졌을 때 제작비도 같이 없어져야 맞지만, 우리도 마지막 화를 만들 명분이 없는 게 아니라서 방송국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

그러나 의견이 나뉜다는 건 우리가 <상상 카페> 마지막 화 촬영을 강행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는 뜻.

우리는 마치 쫓기듯이, 방해할 사람이 적은 야간에 촬영지로 모였다.

“이렇게 모이고 보니까 몰래 나쁜 짓 하는 것 같네요…….”

“나쁜 짓은 몰라도 몰래 하는 건 맞죠. 아마 저 징계 받을 거예요.”

“네?!”

나는 놀라서 임주미 PD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내가 처음 아이디어를 꺼냈을 때부터 촬영하러 모인 지금까지 가볍게 대답하기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진행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이미 전에 부장실에서 난리 친 것 때문에 징계는 확정이었거든요. 조금 더 늘어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죠.”

그러면서 “상대 측이 곤란해하는 얼굴 볼 생각 하니까 즐거운데요.” 하며 웃는 모습이란.

그녀의 비범함은 나 같은 범인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 <상상 카페> 제작진이 PD님 혼자만은 아니잖아요.”

방송국을 거스르는 일이어서일까, 오늘은 평소 촬영보다 스태프 인원이 적었다.

이런 상황에 촬영하러 모인 사람이 대단한 거지, 몸을 사린다고 탓할 이유는 없었다.

“쫄리면 마지막 화 스태프 롤에선 빼준다고 했어요. 아니면 저한테 협박당해서 끌려 나온 거라고 하거나.”

“그렇게 PD님이 다 책임을 지신다고요……?”

“여전히 걱정이 많으시다니까요. 저 갈 곳은 많습니다.”

이미 그녀는 다른 제작사나 케이블 채널에서 스카우트를 받았다고 한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 정도까지는 아닌가 봐.’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임주미 PD의 성향상 그쪽이 더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했다.

공중파 방송국은 제한이 많을 수밖에 없으니 더 자유로운 환경에 풀어주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PD로 일하면서 이 정도로 화제성 끌어모을 기회는 다시 없을 것 같거든요. 가수가 21년 만에 복귀하는 자리? 죽더라도 제가 먹고 죽어야지 남이 가져가는 꼴은 못 보죠.”

……역시 공중파 방송국이 담지 못할 그릇이었다.

임주미 PD는 책임에서 완전히 빠져나가기 어려워 보이는 메인 작가에게 말을 걸었다.

“김 작가도 눈치 보이면 내가 가는 곳에 잘 말해볼 테니까 같이 가는 건 어때.”

“PD님 옆에 있으면 조마조마한데요. 전 가늘고 긴 게 좋아요.”

작가는 금방 주의를 돌려 피아노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피아노 옮길 때 최대한 바닥에 안 끌리게 부탁드릴게요.”

그 뒤에 ‘바닥 수리하려면 퇴직금 까야 하니까’라는 말이 작게 들린 것 같은데. 정말 카페 인수를 노리고 있는 걸까.

어려운 상황인 걸 알면서도 모인 사람들이다.

방송이란 건 많은 스태프의 생각과 노고가 모인 결과물이라는 것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이번 촬영 하고 나면 또 기사로 공세해야겠어요. 촬영본이 아예 없는 거랑, 촬영본이 있는데 방송이 안 되는 건 천지 차이니까요.”

“저도 그 생각 했는데. 역시 이사님이랑은 꽤 잘 맞는 것 같아요.”

‘대체 어디가요?’라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이런 무모한 일을 먼저 제안한 게 나였기에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마지막 촬영인데도 멤버들은 카페 주방 안에 있었다.

“주인 님, 이거 드실래요? 처음 만든 건데.”

“뭔데? 그냥 커피랑 다른 거야?”

“피커피.”

재민이 건넨 잔을 들고 향을 음미하던 나는 음료의 이름을 듣고 멈칫했다.

메뉴 선정 때 잠깐 언급되었다가 지나간 뱀파이어 커피를 만든 건 아니겠지?

더 마셔도 되나 고민하는 내 표정을 봤는지 준해가 대신 설명을 덧붙였다.

“피베리라고 완두콩처럼 생긴 원두가 따로 있대요.”

예전엔 잘못 자란 것으로 보고 불량품 취급을 받던 원두였으나, 향이 진하고 좋아서 요즘은 오히려 희소가치가 생겼다고 한다.

어쩐지 사회의 많은 부분이 함축적으로 담긴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 그냥 피베리 커피라고 부르면 되는 거 아니야……?”

“줄여서 피커피.”

재민은 ‘피커피’라는 이름을 버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아아로 줄여 부르는 세상인데 피베리 커피라고 못 줄일 건 없지…….

<상상 카페>는 커피차도 따로 필요 없었다. 모노크롬은 스태프들에게 직접 피커피를 내려 나눠줬다.

마침 밤이고, 스태프도 평소보다 적은 데다가 촬영지 주변은 조용해서 뱀파이어 집단이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뱀파이어 사장님…… 아니, 배명희가 내게 다가왔다.

“방송이 이렇게 끝나네요.”

“반대로 선생님 가수 생활은 다시 시작이잖아요. 왠지 마무리하는 기분은 아니에요.”

“그러게요. 데뷔 무대를 이렇게 할 줄은 몰랐는데.”

“데뷔 무대가 조금 조촐한가요……?”

상상 카페 홀의 테이블을 치우고 피아노가 한 대.

배명희는 고개를 돌려 카페를 천천히 둘러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요. 아주 마음에 들어.”

배명희는 악수하듯이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카페란 이름에 걸맞게 원두 향이 가득한 현장에서, <상상 카페> 마지막 화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

[계약이 끝난 뒤에 회사를 떠나고 싶으면 너희가 유리한 쪽으로 나갈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줄게. 아무 조건도 없어. 그냥 너희한테 선택지를 주는 거야.]

레드는 스마트폰 화면 속 대표의 메시지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선택지를 준다는 것치고 대표는 아이리스의 등을 떠밀듯이 말했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의 등을 밀어주는 것은 도움이지만, 가만히 있는 사람의 등을 떠미는 것은 독촉이다.

아이리스는 당연히 뉴레인을 미워할 테고 그러니 재계약 없이 회사를 나가리라고 믿는 어투였다.

대표가 아이리스의 계약 해지를 입에 담기 시작한 것은 하필이면 레드가 ‘대표를 떠올리게 하는 여성’을 만난 이후부터였다.

‘내가 뭔가 잘못한 건가……?’

대표의 측근을 만나려고 몰래 현장에 잠복하긴 했지만 그게 계약 종료 이야기로 이어질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무엇이 문제냐고 물어봐도 대표는 아이리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주인에게도 이런 대표의 변화에 관해 문의해봤지만 주인도 ‘요즘 대표님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다.’라는 대답을 남겼다.

적어도 아이리스가 싫어져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과 함께.

[대표님이 저희 잘 활동하라고 팀도 꾸려주셨잖아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레드는 자신들의 신뢰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대표는 독불장군이었다.

[저희는…]

대표가 쳐놓은 굳건한 벽 앞에서 레드는 타이핑하던 손을 멈췄다.

메시지보다 확실하게 본인의 의지를 보여줄 방법이 있을 것이다.

예전부터 멤버들과 이야기해온 내용이었고, 밝힐 시기가 언제가 되든 상관없다고 느꼈다.

얼마 후, 아이리스의 말을 실은 기사가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이리스 7인 전원 재계약 논의 중, “멤버들과 오랜 시간 얘기해”]

이 내용은 무지개뿐만 아니라 수많은 커뮤니티, 입과 입을 통해 전달되었고 대표에게도 도달했다.

“뭐야, 이게……?”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달리, 대표가 이 소식을 접한 경로는 기사가 아닌 마이 엔터 알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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