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8화
음악대상 내정자가 있다는 소문은 내 귀에 들어올 정도로 퍼져 있었다.
그런데 소문의 대상도, 소문을 낸 장본인도 있는 QBC 내부 상황은 말해 뭐 하겠어.
외주 제작사에 도는 이야기를 방송국 직원들이 모를 리가 없지.
‘그런데 지금까진 별다른 제스처가 없었는데.’
방송국이 위신을 잃으면 그곳에 속한 자신들의 이미지도 추락하니까 직원들끼리는 쉬쉬하고 있는 줄 알았다.
혹은 워낙 헛소문이 많이 도는 업계니까 이것도 그저 누군가의 추측이 사실처럼 퍼져나갔을 뿐이라 생각하고 넘어갔거나.
그러나 갑자기 QBC 내의 기류가 심상치 않게 변화했다.
우리를 배제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우리를 끌어들이려는 사람도 있었다.
‘이건…… 좋은 일인가?’
모노크롬이 박형주의 방해물이라고 여겼다는 건데.
데모곡 사건 때문일 수도 있고, 배명희의 가수 복귀에 영향을 줬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QBC 내에 안지택 PD와 박형주를 막으려 하는 사람이 많다면 우리에게 유리할 테고, 그 반대라면 불리하겠지.
이건 외부에서는 알 수 없는 정보였기에 고민하다가 임주미 PD에게 슬쩍 QBC 내부 분위기를 물었다.
‘라솔 씨라면 쉽게 연락하겠는데 임 PD님은 이런 식으로 쉽게 정보를 교환하던 사람은 아니라…….’
그러나 임주미 PD는 내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의외로 흔쾌히 내게 전화를 걸었다.
곧 나는 QBC 내의 기류 변화가 그녀의 영향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안 선배를 편애하는 부장님이 있어서, 제 방송 왜 막냐고 한번 뒤집어엎었죠.]
“방송 종영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시는 거 아니었어요?”
[결국 저보단 힘 있는 놈들이 원하는 대로 될 것 같긴 한데, 이런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상대방도 긴장하죠.]
혼자는 안 죽겠다더니……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러나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임주미 PD가 이렇게 분개할 이유가 확실히 있었다.
[<상상 카페> 포맷을 다른 사람한테 넘기려고 하잖아요? 파일럿 방송도 아니고 멀쩡히 방영하던 프로그램인데. 파일럿 방송이어도 그래요. 이렇게 홀랑 빼앗아갈 순 없거든.]
“그거 건물주가 유명한 가게 내쫓고 자기가 운영하겠다는 거랑 마찬가지잖아요.”
[네. 바로 그거예요. 제가 옆에서 버젓이 눈을 뜨고 있는데 그 꼴을 어떻게 봅니까?]
“그…… 힘드셨겠네요. 뒤집으시느라.”
[그렇죠? 역시 착하신 이사님은 절 위로해주실 줄 알았어요.]
착하다는 건 좋은 말 같은데 이 사람이 하면 왜 이렇게 놀리는 소리로 들리는지 모르겠다.
[방송 소재 쏙 빼먹으려는 상사나, 후배들 곡 따라 만드는 작곡가나. 끼리끼리 잘도 모였죠. 어쩌다 보니 피해자 모임이 됐네요. 동병상련이 느껴지시지 않나요.]
어쩐지 임주미 PD는 아까부터 내게 이해를 요구했다.
지금까지 공감해주는 사람이 없었나. 혼자만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내가 말을 들어주니 계속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
지금 우리는 똑같이 방송국에 갑질을 당하고 있는 신세니까 공감을 못 해 줄 것도 없지만.
“그, 그러네요. 이런 얘기 어디 가서 못 하니까…….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세상에 불만 있는 사람처럼 계속 투덜투덜하고 다녀야죠.]
뭔가 하겠다는 게 투덜거리는 거라고?
‘아니, 투덜거리는 것도 QBC 내에서 하면 좀 다르지.’
우리가 불만을 토로해봤자 모르는 데서 구시렁대는 사람이 될 뿐이다.
그러나 임주미 PD는 지금 화려한 퍼포먼스로 QBC 직원들 사이에서 화제의 인물이 되었겠지.
그런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내용에 이목이 모여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음악대상 내정 소문을 안 믿는 사람이 있었다면.’
내부 사람이 의미심장한 말을 흘리는 것을 듣고 ‘소문이 아니라 진짜였나?’ 하고 생각할 터.
소문을 듣고도 모른 척 넘어가려 했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음악대상 내정 건이 들키지 않으면 방송국에도, 자신에게도 아무 영향이 없다. 큰일을 만들지 않고 조용히 묻고 끝낼 수가 있다는 소리다.
그러나 뭔가 자세한 내막을 아는 듯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이 일에 매우 불만이 많아 보이며, 곧 터질 것 같은 시한폭탄처럼 군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PD님이 그렇게 움직이시면 같은 편이 생길 수도 있겠네요.”
[네. 솔직히 조작 사건이 일어나는 것보다는 안 일어나는 게 모두에게 좋잖아요?]
“그렇죠.”
자신의 막 나가는 성격을 이용해서 방송국 전체를 술렁이게 만들다니. 세상엔 다양한 해결법이 있구나.
내심 감탄하고 있는데 임주미 PD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반대급부로 배명희 선생님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질 거예요. 내부 여론이 기울어질수록 그쪽에선 점점 더 눈치가 보이겠죠.]
그녀에게 보이진 않겠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배명희를 찾는 제작진이 많아졌다고 들었다.
현재 배명희가 라솔의 회사에 소속된 것은 아니지만, 신곡을 같이 작업한다는 소문 때문인지 라솔의 회사로 배명희의 스케줄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라솔도 ‘잔상입니다만?’ 계획도 끝이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었지. 배명희는 잔상이 아니니까.
‘결국 배명희-박형주 양강 구도로 가는 건가…….’
그럼 지금 모노크롬은 뭐야.
고래 사이에 낀 새우? 최우수상 가능성은 있는 대단한 새우…….
급격히 우울해졌지만 통화 중이어서 멘탈이 심연으로 빠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아, 손영식 PD님은 혹시 어느 쪽인지 아세요? 프로그램 섭외가 들어왔거든요.”
기대감을 줬다가 더 큰 실망을 안기기 위한 무서운 계획일 수도 있잖아?
결과적으로 손영식 PD에게도 여러 도움을 받긴 했지만 뒤통수 전문이란 이미지는 가시지 않았다.
내 질문에 임주미 PD는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손 선배요? 그 선배는 좀 특이해서, 어느 쪽이라기보다는…….]
임주미 PD가 인정한 막가파라니.
긴장된 기분으로 그녀의 말에 집중하고 있자.
[그냥 방송에 필요해서 부른 것 같은데요?]
“…….”
나 혼자서 의미 부여한 거야?
<아이돌부 방학캠프>는 몇 달 전부터 섭외 얘기가 오갔던 데다가 <최고의 팀메이트>도 우리에게 연락한 이유가 납득이 가긴 했는데.
혼란한 시기이다 보니 머리를 굴리다가 나 혼자 뒤통수 전개에 빠져 버렸다.
[PD니까 PD 일을 묵묵히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 저 지금 방송국인데 너무 살판난 듯이 하하 호호 하는 것 같아서 이만.]
“네. 들어가세요.”
말하는 사람의 어투만 빼면 통화 내용은 꽤나 심각했는데, 임주미 PD는 즐겁게 수다를 떠는 것 같다며 통화를 종료했다.
그래도 덕분에 머릿속이 많이 정리되었다.
손영식 PD와 관련해서 헛발을 짚은 것 외에, ‘내부 파벌이 갈라지고 있다’는 추측은 맞았으니까.
‘여기도 완전 콩가루 집안이네.’
어쨌든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면 멤버들한테 <최고의 팀메이트> 섭외가 들어온 사실을 알려줘도 되겠지.
나는 출연 요청을 받은 해랑을 찾아 연습실로 내려갔다.
오늘도 멤버들이 다 같이 모여 있는 걸 보니, 준비 중인 미니 앨범 타이틀곡의 안무와 더클랜의 신곡 안무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해랑아. 방송 출연 요청이 와서 조만간 미팅에 다녀와야 할 것 같은데.”
“무슨 방송이요?”
“<최고의 팀메이트>.”
이 말에 옆에 있던 재민이 “오!” 하며 대신 반응했다.
“<최고의 팀메이트> 재밌어.”
“그런데 이번엔 네가 촬영했던 형식이랑 달라. 특집이거든.”
“무슨 특집인데요?”
“절친 특집.”
<최고의 팀메이트>는 일견 연관이 없어 보이는 출연자들을 모아두고 촬영하는 프로그램. 그러나 가끔 연관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 특집을 만들기도 했다.
이름이 같은 연예인을 모은 동명이인 특집이나, 이번에 해랑이 섭외된 절친 특집 같은 것들.
“저도 나가서 윤환이랑 절친 됐어요.”
“아니, 절친을 만들어주는 특집이 아니라 이미 절친인 사람들이 같은 팀으로 나오는 거야.”
<최고의 팀메이트>는 같은 회차에 출연하는 사람들을 촬영 전에 미리 알려주지 않지만, 절친 특집은 다르다.
그리고 해랑의 공식 절친이라면 딱 떠오르는 사람이 있지.
“하범이랑도 조율해보고 있다는데 같이 나가는 거 괜찮을 것 같아.”
“네. 저도 이하범이랑 연락해 볼게요.”
해랑도 혼자보다는 둘이 나은지 상세 사항을 듣고 한결 표정이 편안해졌다.
그러나 반대로 해랑을 과보호하는 성향이 있는 멤버들은 조금 불안해 보였다.
“형 나가도 괜찮아?”
“못 나갈 게 뭐 있어.”
“아니, 방송이 괜찮겠냐고. 방송 노잼 되면 안 되잖아.”
불안한 게 아니라 놀리고 싶은 건가.
해랑은 말없이 자신을 놀리는 한이를 붙잡으려고 손을 뻗었고, 한이는 팔로 그 손을 막아냈다.
“아냐. 해랑이 요즘 컬러즈한테 웃수저 소리도 들어.”
내가 해랑을 변호하자 준해는 바로 웃음을 터트렸다.
“형이요? 푸핫. 형 웃수저야?”
그 옆에서 우형은 “준해 웃는 거 보니까 웃수저 맞나 보다.” 하며 바로 ‘해랑 웃수저 설’을 수긍했다.
‘이것 봐. 해랑이 얘기엔 다들 쉽게 웃잖아.’
어쩌면 비주얼 덕분에 마음의 허들이 낮아져서 웃음이 쉽게 나오는 걸지도 모르지.
나는 해랑의 예능 레벨이 오른 것을 확인했기에 단독 예능 출연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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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팀메 피디 인터뷰 봤는데 하반기에 절친특집 또 준비중인가봄ㅋㅋㅋㅋㅋㅋ
└그거 우정파괴 특집으로 유명하잖아
└절친특집x 절교특집o
└재작년 절친특집 나간 사람 촬영 끝나고 한 달 연락 안했다며
└솔직히 화해특집도 만들어줘야 함
└사이 잘랐다가 붙였다가 공예하냨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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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 특집은 이렇게 커뮤니티에서도 ‘우정 파괴 특집’으로 유명했다.
“절친으로 나온 두 사람 경쟁심을 많이 부추긴대. 그건 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친구랑 사이 틀어질 필요는 없잖아.”
“이하범은 기 쓸수록 저 못 이겨서 괜찮아요.”
“그, 그렇구나.”
애초에 경쟁이 되지 않으니 경쟁심을 부추기는 건 상관없다고 한다.
‘하범이가 들으면 경쟁심을 더 불태우겠는걸.’
반쯤 농담이겠지만 ‘저 래퍼라서’ 만큼이나 신뢰가 가는 말이었기에 나도 마음을 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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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상상카페 곧 끝남?
호감배우 예능 나간대서 기사 봤는데 상상카페 시간대에 한다는데?
└시간대 옮기나?
└원래 짧을거라곤 했는데 끝나는 거 맞으면 얼마 안 남았네
└그런가 화제성 있었던 것치고 칼같이 끝나네 아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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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됐던 <상상 카페> 촬영 일정이 갑자기 붕 떠버렸다.
이 사실을, 정식으로 전해 들은 게 아니라 기사를 보고 알았다.
‘이렇게 내쫓는 것처럼 끝내버린다고?’
기사 내용에 따르면 <상상 카페> 다음 타자로 편성된 프로그램의 첫 화 방영 일자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전주에 <상상 카페>는 끝나야 한다는 거고, 계산해 보니 이미 촬영을 끝낸 분량이 마지막 화가 되어 버렸다.
임주미 PD도 이 내용을 알고 있었다면 내게 알려줬을 텐데, 연락이 없었던 것을 보면 그녀도 나처럼 기사로 이 소식을 접한 게 아닐까.
예상이 맞았는지 임주미 PD는 첫 기사가 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바로 연락했다.
[결국 이렇게 나오네요.]
“이렇게 윗사람들끼리 사사롭게 처리해도 괜찮은 거예요? 방송도 시청자들과의 약속인데.”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어요. 방송 일 하다 보면 갑자기 일정이 엎어지는 일이 부지기수라 대응책도 마련되어 있거든요. 이번엔 다음 프로그램이 첫 촬영을 마친 상태라 그쪽이 부담을 지게 되었지만.]
다음 프로그램 제작진도 갑자기 방영 시기가 빨라지는 바람에 다음 촬영 일정을 급하게 잡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이럴 거면 그냥 <상상 카페>가 예정대로 끝나게 두면 되잖아.
나는 입술을 깨물다가, 혹시나 가능할까 해서 도박을 걸었다.
“……딱 한 회차만 더 벌 수 없을까요? 제대로 된 마지막 화를 만들면 좋겠어요.”
[시청자들과 인사라도 하시게요? 아마 그렇게 안 놔둘 텐데.]
“그것도 있지만…… 저희도 그 퍼포먼스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데요.”
나는 떠오른 아이디어를 그녀에게 전했다.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들은 임주미 PD는 아하하 웃더니 높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사님도 재밌는 발상을 하시네요? 좋아요. 최대한 협조해 보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상 카페> 측에서도 맞대응하듯이 기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