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4화
멀리 갈 것도 없이 모노크롬에 있었다.
어두운 곡을 많이 작업하는 전 메인 댄서이자 현 메인 래퍼.
다크와 퍼포먼스, 힙합의 조합체가.
“이거…… 완전히 해랑이 전문 아니야?”
“해랑이요?”
몬클하우스 2층의 간이 작업실에 있던 우형이 더클랜 멤버들이 도착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아래로 내려왔다.
“응. 더클랜한테 줄 곡 말이야. 물어보니까 기존 컨셉을 어느 정도 살리는 게 좋겠다고 해서. 더클랜이 힙합 느낌이 세잖아.”
“아, 힙합이라면 확실히 해랑이 스타일이네요.”
우형도 모노크롬의 리드 래퍼지만, 그가 작업하는 곡은 힙합 스타일은 아니었다.
어두운 컨셉이라면 해랑이 더 잘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완전히 모험은 아닌 게, 이미 해랑이가 작곡에 참여한 곡들이 있었잖아.”
믹스테이프를 제외하고도 <달의 뒷면>이 있지.
그리고 저번 프로듀싱 앨범에 들어간 해랑과 하범의 곡도 해랑이 작곡으로 참여했다.
하범의 팬들이 신선하다며, 무대로 한번 보고 싶다고 했던 것을 보면 해랑의 강점은 그런 게 아닐까.
우형과 성운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만든다면, 해랑은 무대가 보고 싶은 노래를 만드는 거지.
‘마니악한 느낌은 있지만 덕후 취향은 저격하는 느낌?’
알앤비나 발라드 가수라면 몰라도 아이돌이라면 그런 컨셉도 나쁘지 않다.
왜냐하면 아이돌 팬은 대다수가 덕후거든.
‘그리고…… 더클랜의 저번 컴백 곡이 평소보다 밝은 곡이었어.’
이담의 신셋 활동이 마무리된 후, 3년 차인 더클랜은 올해 한 번의 컴백을 했다.
다른 신셋 멤버들의 그룹이 바쁜 한 해를 보냈던 것과는 다른 행보였다.
그리고 아우름 컴퍼니가 신셋의 인기를 활용하고 싶었는지, 더클랜의 최신곡은 기존의 센 컨셉이 아니라 신셋의 컨셉에 더 가까웠다.
‘우리가 이번에 생각했던 밝은 컨셉은 악동이 아니라 청량 쪽이지만…….’
저번 활동의 성적이 어땠고, 어떤 반응을 받았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때 반응이 괜찮았으면 더클랜 멤버들이 기존의 어두운 느낌을 고수하고 싶어 하지는 않았겠지.
게다가 더클랜도 한 번 정도는 더 활동이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알 수 없는 회사의 사정으로 일정이 밀리던 중이라고 했다.
저번 활동이 만족스러웠으면 회사가 이렇게 공백기를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클랜은 절반이 래퍼 멤버. 밝은 컨셉은 아직 멤버들이 소화하기 어려운 듯했다.
“으음. 너희가 원하는 건 이해했어. 그러면 해랑이랑도 한번 얘기해 봐야겠다.”
더 나눌 이야기가 있으면 메시지나 전화로 하면 되니까 막간 회의는 이 정도면 될 듯했다.
대화를 마무리하고 컨텐츠 촬영에 들어가려고 하자 한이가 동영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오늘 오징어 볶음을 맛있게 해서 뇌물로 가져가는 거야.”
“해랑이 오징어 좋아해?”
“오징어도 단백질이잖아요.”
“아, 영양 쪽으로.”
한이의 머릿속에서 해랑은 ‘겁쟁이 운동맨’ 정도의 이미지인 걸까.
뇌물로 하자는 소리에 동영도 기합이 바짝 들어가서 조리대 앞에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오늘의 모노크롬은 오징어 앞에선 의지 되는 선배였다.
***
우리가 모노크롬 프로듀싱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덩달아 바빠진 사람들이 있었다.
모노크롬이 앨범을 준비할 때마다 바빠지는 사람들, 프로듀스팀의 송준오 피디나 팀 미로 단장인 민후 등이 그러했다.
‘모노크롬이 모든 걸 다 맡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효율적이지가 못하지…….’
그들이 모노크롬 팀으로서 도움을 주는 덕분에 우리도 흔쾌히 이런 일을 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성운이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아. 저는 빠지는 건가요?”
“이번은 작곡팀의 프로듀싱 앨범이 아니라 모노크롬이 후배들을 도와주는 프로젝트여서요. 물론 도움을 주신다면야 저희는 냉큼 받겠지만…….”
‘잔상입니다만?’ 계획 때문에 나는 라솔의 회사를 자주 찾았다.
그래서 성운과 마주칠 일도 많았는데, 그는 저런 예상 밖의 질문을 하더니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니요. 꼭 제가 필요할 것 같지는 않고…… 또 다른 그룹을 맡는다길래 저도 같이 하는 줄 알았네요.”
자신이 빠지게 되어서 실망이라거나 다행이라는 표정이 아니라, 단순히 몰랐던 사실을 깨달았다는 표정이었다.
‘왜…… 윤규가 떠오르지?’
SPID의 메인 댄서 윤규는 어느샌가 재민에게 물들어 버렸다.
요즘은 트윙클 챌린지 성공자들을 모아 아이돌 댄스 크루를 만들자는 얘기까지 나눈다나.
윤규처럼 성운도 어느샌가 우형에게 물들어서 자신을 바쁜 일정으로 몰아넣는 데에 익숙해진 듯했다.
처음 우형과 성운이 만났을 땐 두 사람의 성향이 매우 달라서 가까워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모노크롬의 카피바라 능력 때문일까, 아니면 성운도 열일 유전자가 본능에 숨어 있었던 걸까.
첫인상이 집돌이였던 것을 생각하면 대단히 큰 변화였다.
“성운이 한가한가 보네?”
“아니요.”
그러나 성운의 열일 유전자는 같은 소속사인 한은아가 나타나자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시간이 남으면 자기 곡을 내놓으라는 한은아의 장난스러운 요구에 항상 시달리고 있는 듯했다.
‘다르게 보자면 이런 성운 씨가 우리와는 자발적으로 일해준다는 거니까.’
라솔과 한은아, 주서림이라는 센 누나들 사이에서 기를 못 펴고 사는 탓에 상대적으로 우형과의 협업이 편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아니, 혹시 일부러 성운을 밖으로 나돌게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콕콕 쪼아 대는 게 아닐까……?
실상이 어쨌건 우리에겐 감사한 일이었다.
이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통화하러 잠시 자리를 비웠던 라솔이 돌아와서, 나는 그녀와 미팅룸에 마주 앉았다.
“배명희 선배님한테 말씀하셨어요? 저희 회사 얘기.”
“네. 알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긍정적이신 것 같아요.”
만일 배명희가 노래를 하고 싶어 한다면 라솔의 회사에서 돕기로 했다.
소속 아티스트로 계약을 하자는 게 아니라, 이번에 이터널이 따로 신곡을 낸 것처럼 단발성으로 도움을 준다는 뜻이었다.
곡 한 번 내는데 계약까지 고려해야 한다면 부담감이 차원이 다를 테니까.
“긍정적이셨다는 건, 노래를 부르실 마음이 전보다는 커졌다는 뜻이겠죠?”
“아마도요. 그리고 집에 있던 피아노를 손봐서 다시 치신다면서 저를 초대해주셨거든요.”
선택은 배명희의 몫이지만, 나는 그녀가 다시 노래 부르기를 바란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를 초대했다는 건 아마도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닐까 추측 중이다.
“만일 선배님이 가수로 컴백하시면 아마도 알고 지내던 분들을 통해서 소속사를 새로 찾으실 텐데.”
“네. 예란 씨도 필요하면 도와줄 수 있다고 계속 말씀하셨다나 봐요.”
“잘 보여서 저희 회사도 고려 대상에 들어갔으면 좋겠네요.”
“이터널 멤버들이 얘기하는 거 듣고 좋은 이미지로 보고 계신 것 같긴 했어요.”
라솔도 사심을 완전히 숨기지는 않았다.
배명희가 소속 아티스트가 된다면 회사에게는 무척이나 좋은 일이겠지.
나는 아이돌 기획사밖에 겪어보지 못해서 별생각이 없었지만 라솔은 그녀가 탐이 나는 듯했다.
회사 임원의 얼굴이던 라솔은 이내 다시 가수의 얼굴로 바뀌었다.
“뭐, 꼭 같이 일하지 못하더라도 괜찮아요. 선배님이 긴 고민 끝에 다시 노래를 택하신다면 ‘이게 가수의 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감동적일 것 같아요.”
물론 친밀도가 다르긴 하지만 그녀가 모노크롬을 보며 짓는 표정과 배명희를 생각하며 짓는 표정은 큰 차이가 있었다.
대선배를 존중하고 우러러보는 얼굴. 가수들에게 배명희는 그런 의미가 있었다.
배명희가 이번 음악대상 후보에 오르고, 결국 수상자로 무대 위에 오르는 상상을 해 봤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선생님이라면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녀가 가수로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어느 형태로든 보답받았으면 했다.
그러나 대상은 하나뿐. 다른 이가 음악대상을 받게 되면 모노크롬의 퀘스트는 실패로 끝난다.
가수 배명희를 응원하게 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퀘스트 목표와 상충한다는 사실이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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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크롬 머임?
이번엔 더클랜한테 곡 준다나봐
└더클랜이 이담네 그룹인가?
└그러고보니 다른 신셋 멤버들은 컴백하는 거 몇 번 본 것 같은데 걔넨 활동하는 걸 못 봤네
└모노크롬은 본업이 프로듀서냐 아이돌이냐
└합쳐서 프로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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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바꿀까 걱정되는 상대가 있다면 잘 먹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외부에 소문을 내서 빼도 박도 못 하게 만드는 거지.’
아우름 컴퍼니의 승낙을 받은 우리는 곧바로 모노크롬 프로듀싱 프로젝트를 당당하게 발동시켰다.
모노크롬이 이터널에 이어서 더클랜에게 곡을 준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가자, 더클랜의 팬덤인 클래니는 동아줄이라도 내려온 듯한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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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끝판왕 아우름한테서 벗어나는 거냐 ㅜㅜ
제발 이번에 반응 좋아서 아우름 정신 차렸으면 좋겠다
└제발제발료
└아우름 지들이 잘하는 줄 아는 게 제일 짜증난다고.. 그게 아니란 걸 이번에 깨달아야 할 텐데
└우리 애들 먼저 챙겨주는 거 선배님들밖에 없어ㅠㅠㅠㅠㅠ
└동영이 요리 가르쳐주고 곡 받아온거야?ㅠㅠ 좋은 교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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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클랜이 모노크롬의 전철을 밟았듯이 클래니도 컬러즈의 고통을 비슷하게 겪었다.
‘여기서 아우름 컴퍼니가 디지털 싱글이라도 냈으면 직원들 월급 사이버머니로 받으란 소리가 나왔겠지.’
그러나 팬 사인회 인원을 모집하기 위해서인지 아우름 컴퍼니는 구성이 단출하더라도 매번 실물 앨범을 내는 편이었다.
실물 앨범을 내서 팬 사인회로 뽑아먹는 아우름, 디지털 싱글만 발매하던 뉴마.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확실한 건 둘 다 좋은 소속사는 아니라는 사실뿐이다.
아이돌인 모노크롬에게 직접 말을 걸 순 없으니 컬러즈에게 대신 감사 인사를 전하러 오는 클래니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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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클랜 게시판에서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자컨 전멸이라 몬클하우스도 가뭄에 단비 같았는데 노래까지 엉어어융ㅠ엉ㅇㅠㅠ
정말 감사드립니다.. 번창하시고 돈 많이 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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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컬러즈는 불통 소속사를 겪어본 선배로서 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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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게 있으면 주인님한테 소원을 빌어보세요
└주인님이 누군가요?
└있어요 모노크롬판의 환상의 존재
└ㅠㅠ주인님 저흰 많은거 바라지 않습니다. 비트에 목소리 안 묻히는 노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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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돌은 두목님이라고 부르고 팬덤은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이상한 상황.
하지만 그들의 요구사항은 좋은 참고가 되었다.
‘곡에서도 멤버들 특징이나 매력이 안 나타나는 게 가장 불만이었나 보네.’
<쉰셋돌>이 방영할 때도 시청자들은 이담을 보고 그런 반응을 남겼었다.
저런 메인 보컬을 어디서 발굴해왔냐고, 더클랜 노래를 들으면 잘 모르겠다고.
클래니의 이런 의견은 멤버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목소리에 더 집중할 수 있게……. 이거 진짜 해랑이 형 전문이네.”
준해의 말에 이어서 우형도 ‘해랑의 목소리는 저음이라 베이스에 묻히기 쉬운데 밸런스를 잘 조절한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해랑이 메인 프로듀서로 올라서게 되면서 컨셉도 자연스레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다.
다크에도 종류가 있다. 그리고 해랑의 다크함과 아이돌력이 합쳐져서 시너지를 일으키는 장르가 있었다.
바로 다크 섹시.
“3년 차면 섹시 컨셉 할 만하지.”
“7년 차는요?”
재민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7년 차인 모노크롬은 어떠냐는 뜻이었다.
“7년 차는 뭐든 해도 되지.”
모노크롬이 못 할 컨셉은 악동뿐이다. 아니, 잘 만든 악동이라면 이제 괜찮지만.
내 말을 듣고 한이는 해랑을 보며 웃었다.
“형, 그럼 우리 것도 하나 더 만들어야겠는데?”
나는 ‘아니, 부담 가지는 마.’라고 하려다가 굳이 말릴 필요는 없겠다 싶어서 그냥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일이 많아진 해랑은 생각 또한 많아진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