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2화
“한국에 계시면 출근하시지 않았을까?”
블루와 퍼플은 뉴레인이 분리되기 전의 뉴마를 떠올렸다.
아이리스가 결성되기 전부터 대표는 언제 쉬는지 모를 정도로 기계처럼 출근하던 사람이었다.
“맞아. 딱 한 번이었나? 잠깐 안 나오신 적 빼고는 계속 출근하셨잖아.”
대표가 아티스트와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었으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직원들이 하는 말을 들은 적은 있었다. 대표의 부재로 잠시 업무 공백이 생겼다고.
우연히도 그 시기에 맞춰 아이리스도 스케줄이 없었기에 그때 일은 멤버들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대표 한 사람이 없다고 세상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 수가 있을까.
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회사는 평상시대로 돌아갔다.
뉴레인이 분리된 후에도 대표는 출근하지 않았지만 회사는 멀쩡히 굴러갔으니, 그때의 기이한 감정도 아마 착각이리라 생각했다.
아무튼 대표의 결근이 기억에 특별하게 남아 있을 정도로 대표는 바지런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메시지 확인하시는 거 보면 시차가 없는 것 같아서.”
레드가 대표의 소재지를 추측한 이유는 이뿐만은 아니었다.
주인이 가끔 대표를 직접 만난 것처럼 이야기하던 것도 그렇고, 바쁘게 해외를 도는 사람이 사이비 종교에 빠질 새가 어디 있겠는가.
작년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올해는 한국에 있거나, 어딘가에 장기 체류를 하는 듯했다.
“그런데 한국에 계셔도 이유가 있으니까 회사에 안 나오시는 거 아냐?”
여전히 노트북에 시선을 두던 퍼플도 블루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워낙 안 쉬셨으니까 이참에 쉬시는 걸 수도 있지. 안식년 같은 거 있잖아.”
“그래도…… 이렇게 메시지나 메일로만 일하시면 불편하시지 않나?”
“불편하시면 대표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언니는 걱정도 많아.”
퍼플은 무슨 그런 걱정을 하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으나, 레드는 이 일에 계속 마음을 쓰는 이유가 있었다.
“그냥 혼자 생각한 거긴 한데, 정말 한국에 계시다면 혹시 몸이 안 좋으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예전엔 그렇게 회사에 잘 출근하던 사람이 갑자기 회사와 물리적 거리를 둔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레드의 머릿속에는 대표가 거동이 불편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중요하지 않은 화제라고 생각했던 블루와 퍼플도 이 말을 듣고 나니 레드와 같은 표정이 되었다.
“회사도 못 나올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셔서……?”
차원이라는 벽이 있었지만 대표에게 아이리스를 아껴 키운 기억이 있다면 아이리스 멤버들에게도 대표의 관심 어린 지원을 받은 기억이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회사와 대표의 태도에 실망하기도 했지만.
그것들이 몸과 마음이 불안정하고 약해져서였다면, 어쩐지 이해할 수도 있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주인이 사이비 종교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 이 가설에 신빙성을 더해주었다. 힘들면 어딘가에 기대고 싶어지는 법이니까.
“얼마 전까지는 묵묵부답이시다가 갑자기 회사를 재정비하시는 것도 그렇고, 마음의 변화를 크게 일으킬 만한 일이 있으셨던 건 확실한 것 같아.”
그가 생각하는 뉴레인과 아이리스의 전망은 어떠할까. 혹시 대표는 뉴레인을 떠날 생각인 걸까.
머릿속에 그런 질문들이 퐁퐁 솟아올랐으나 메신저로 물어본다고 해서 대표가 답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레드는 지금껏 한 번도 제대로 만나서 대화해본 적 없는 대표를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아이리스에게 중병 의혹을 받고 있는 대표는 오해와는 다르게 백수처럼 소파 위에 누워 있었다.
낮에는 메일로 대표의 업무를 처리하고, 저녁에는 유일하게 대면으로 대화할 수 있는 주인을 찾아가는 게 일과가 되었다.
“좋아. 이미 요리는 뒷전인 것 같지만 재미만 있으면 됐지.”
“대체 아이돌 채널에서 요리 수업은 왜 하는데?”
“요즘은 컨텐츠가 중요하다고. 걸그룹 시장도 자체 컨텐츠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봐. 끼 있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건 그렇다 치고. 네가 다른 팬덤 모니터링까지 할 필요 있어?”
표정을 보면 일 때문에 모니터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취미 활동인 것처럼 보였다.
쉬는 시간엔 저렇게 커뮤니티 글만 보며 사는 걸까.
“너 그거 심각한 커뮤니티 중독이야.”
“……너도 네가 기획한 컨텐츠나 앨범이 나오면 저절로 반응이 궁금해질걸.”
신주인으로서는 커뮤니티를 구경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대표가 이 세계에 온 후론 아이리스가 해외 활동을 더 많이 했으니 잘 모를 뿐이지.
대표는 이 집에서 주인과 처음으로 직접 만났을 때, 주인을 ‘실패한 신주인’이라고 칭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런데 저게 과연 실패한 사람의 얼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너 이거 먹을래?”
“이건 또 뭐야?”
주인은 가끔 모노크롬의 방송 촬영에 동행하고 온 날이면 해괴한 쿠키를 들고 왔다.
“재민이가 만들었는데 작가님이 방송에 내보내기엔 너무 무섭게 생겼다고 따로 빼둔 거 받아왔어.”
“그 말귀 못 알아듣는 명재민?”
“……재민이 귀 멀쩡하거든?”
청력은 잘 모르겠고 미각은 멀쩡한지 쿠키는 평범한 맛이었다.
신주인이 안정되게 남들과 교류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해외로 도피하지 않았다면 본인도 아이리스와 저런 관계가 되었을까.
주인을 보며 대표도 자연스레 아이리스를 생각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레드가 대표를 찾았다.
[대표님!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대표실 앞에 두면 될까요?]
본인은 해외에 있는 것으로 얘기가 되어 있을 텐데, 마치 대표가 서울에 있는 걸 아는 듯한 말투였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한국에 있는 티를 낸 걸까.
대표는 요즘 너무 실시간으로 대답했나 싶어 잠시 고민했으나 갑자기 답장을 늦게 하면 더욱 수상하게 여길 듯했다.
[신 이사한테 맡겨.]
[직접 전해 드리고 싶은데…]
[빠르게 받아야 하는 물건이야?]
대표가 직접 받아오지 않는 이상, 주인이 전해주는 것만큼 빠르게 받을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그걸 모를 테니 전할 물건이라는 게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소장용으로 만든 레이니데이 특별 제작 CD가 있는데요. 파트 다른 가이드 버전이랑 저희가 활동하면서 찍은 영상도 짧게 들어있어요.]
대표가 잠시 생각하다 [그냥 신 이사한ㅌ]까지 적는데 레드의 메시지는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시즌그리팅 촬영 때 B컷이 잘 나온 게 있어서 몇 장 출력했는데 그거랑…]
[해외 활동 하면서 찍은 사진으로 작게 사진 앨범도 만들었고, 그리고 또…]
마치 미끼를 던지듯 품목이 자꾸 늘어나는 것을 보고 대표는 타이핑을 멈췄다.
‘이거 다 무지개들이나 보고 싶어 할 만한 것들 아냐?’
그런데 대표도 궁금하긴 하다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직접 만나서 받아올 방법이 없었기에 다시 한번 주인에게 맡기라고 했으나 레드는 그러지 못하는 이유를 댔다.
[이사님은 요즘 특히 바쁘신 것 같아서 이런 일을 부탁드리기가 어려워서요.]
대답이 없는 대표에게 진득하게 연락하던 것도 그렇고, 레드는 상당히 고집이 셌다.
아마 본인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당분간은 계속 이 일로 연락할 듯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레드가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회사로 오는 큰길가에 마트가 있잖아요. 지하 주차장으로 통하는 길에 무인 보관함이 있는데 제가 저희 데뷔일로 비밀번호 설정해서 넣어놓을게요.]
대표가 유일하게 만나는 사람은 주인인데, 퀘스트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바쁜 주인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비서를 둔 것도 아니라 따로 보낼 사람도 없고.
퀵서비스처럼 대행해주는 사람을 부르기에는 연예인 개인 물품이라 불안했다.
‘무인 보관함이면 내가 가져오는 것도 괜찮……으려나?’
대표가 한국에 있다는 것을 레드가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보내서 가져오겠다고 하면 되니까.
뉴레인의 대표가 아닌 ‘신대표’라는 인물에게 말을 거는 건 레드뿐이었다.
주인도 대표를 ‘또 다른 신주인’으로 인식하고 있으니 신대표가 신대표로서 대화하는 것은 어쩌면 레드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었다.
정성을 봐서라도 그냥 그렇게 하라고 대답해줘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마음에 레드에게서 순순히 짐 보관 일자를 받은 대표는 참새가 포획 틀에 걸리듯이 허무하게 걸려버리고 말았다.
***
레드가 주인을 통하지 않고 대표에게 직접 물건을 전하려 한 것은 걱정 때문이었다.
넌지시 ‘대표님은 괜찮으시냐’ 하고 물으면 주인은 ‘괜찮다’라고만 대답했기에.
물론 주인이 그렇게 대답한 건 대표가 실제로도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하기 때문이었지만, 실상을 모르는 레드 입장에선 마음이 개운하지가 않았다.
‘내가 걱정하느라 다른 일에 집중을 못 할까 봐 일부러 괜찮다고 대답하셨을 수도 있고…….’
그러나 대표의 개인사까지 아는 사람은 주인 한 명뿐이었기에 달리 더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레드는 미끼를 던진 것이었다. 간접적으로라도 아이리스를 아껴주던 대표라면 레드의 선물을 받아줄 것 같았다.
누군가 대표 대신 물건을 찾으러 나온다면 대표의 측근일 테니 그에게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저기……!”
무인 보관함 앞에서 레드는 본인이 맡긴 물건을 찾아가는 누군가를 붙잡았다.
돌아보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낯익은 얼굴의 젊은 여성. 그러나 주인이 아니었다.
젊은 여성이란 점에서 당연히 대표도 아니었다. 그렇긴 한데…….
“……대표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레드의 입에선 이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오렌지는 항상 레드에게 눈썰미가 좋다는 말을 해 왔다.
멤버들의 헤어나 메이크업 스타일이 미묘하게 달라진 것도 눈치채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렌지는 얼마 전에도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너는 사람을 보는 눈만큼은 정확하다고.
주인을 처음 만났을 때, 레드는 주인의 시선이 대표의 시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그때의 느낌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로, 레드는 강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상하게도 기억에 흐릿하게만 남았던 대표의 인상에 앞에 있는 여성의 모습이 덧씌워지는 것 같았다.
“아.”
여성은 짧게 놀란 소리를 내더니 황급히 입을 다물어버렸다. 레드가 갑자기 나타나 당황한 듯했다.
“대표님?”
레드가 다시 한번 그녀를 불렀다.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 보내신 분이신가요?”
여성은 이 말에는 시차를 조금 두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주인을 빼닮았다는 점에서 대표와 관련 있는 사람인 것은 분명했다.
레드도 무척이나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주인도 아니고 대표도 아니지만 그 둘과 느낌이 매우 비슷한 사람을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어…….”
레드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붙잡고 있던 팔을 놓자 여성이 곧바로 한 발짝 거리를 벌렸다.
금방이라도 도망칠 것만 같은 태도에 레드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대표님께…… 들려드리고 보여드리고 싶었던 거거든요.”
상대가 움직임을 멈춘 것을 보니 레드의 이야기를 들어줄 의향이 있는 듯했다.
조금 전까지는 ‘대표님은 괜찮으시냐, 상태가 정확히 어떠하냐’ 하는 것을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레드는 지금 해야 할 말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저희는 아이리스 일곱 명이 모인 건 일생일대의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데뷔하고 활동한 것도, 가끔 힘들기도 했지만 정말 즐거웠고요. 대표님 덕분이라 생각하고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어요. 그래서 대표님께 보여드리고 싶었던 거예요. 저희가 즐거워하는 모습들.”
감사를 이렇게 급하게 전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레드는 서둘러 진심을 전했다.
그러나 자신과의 대화가 편치 않은지 눈앞의 여성은 혼란스러워하는 눈이었다.
“……그렇게 대표님께 전해주세요.”
레드는 그렇게 말하며 본인도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여성은 여전히 입을 다문 채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빠르게 자리를 떴다.
***
‘미쳤나 봐!’
무슨 생각으로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을까. 최근 과하게 긴장이 풀렸던 게 틀림없었다.
대표를 아는 사람을 만난 건 최 비서와 신주인 이후로 처음이었다.
레드는 대표가 보낸 사람이냐고 물었지만 뭔가 눈치챈 것만 같았다.
쿵쿵 뛰는 가슴을 다스리던 대표는 자신이 아직도 품에 쇼핑백을 안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두꺼운 재질의 쇼핑백 안에는 레드가 손수 포장한 듯한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곧이어 레드가 자신에게, 대표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어떻게…… 나한테 감사하다고 할 수가 있지?’
대표는 스마트폰을 꺼내 마이 엔터 속 아이리스의 멤버 관리창을 열었다.
이 캐릭터 일러스트를 닮은 레드가 바로 앞에서 움직이고, 목소리를 내고, 심지어 접촉까지 했다.
아이리스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는 봐왔지만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이 마이 엔터의 세계가 현실이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똑똑히 실감할 수 있었다.
‘현실화…….’
대표는 손가락을 움직여 이번에는 퀘스트창을 열었다.
대표는 주인의 퀘스트창을 봤지만, 주인은 대표의 퀘스트창을 보지 못했다.
실은, 주인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대표의 퀘스트 보상에는 선택지가 하나 더 있었다.
[신주인]의 현실 복귀.
대표는 화면 속의 이 짧은 텍스트를 천천히, 곱씹듯이 눈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