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69화 (369/430)

# 369화

회의실에는 나와 우형만 남아 이담과 대화를 나눴다.

모노크롬에게 말하기에는 저어되는 부분이 있으니 몬클하우스에서도 전부 이야기를 안 한 거겠지.

하지만 한 기획사의 임원이라면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들어줄 것 같았는지, 이담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솔직하게 꺼내 주었다.

“실장님이 원래 거칠게 말하는 분이시긴 한데, 저희가 회사에서 뷰이라이브를 할 때 뒤에서 욕하시는…… 소리가 들어간 적이 있어서.”

“…….”

“그런 부분을 조금 신경 써 달라 부탁드렸는데 그것 때문에 기분이 많이 상하셨는지…….”

원래 뷰이라이브는 직원들이 있는 상황에서 많이 하는 편이다.

조금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보조하는 사람이 있으면 돌발 상황이 일어났을 때 해결하기가 편하다. 인터넷 연결 같은 사소한 문제도 말이지.

이건 아티스트와 팬, 양쪽을 위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돌발 상황을 직원이 만들다니.’

더클랜은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뷰이라이브를 주로 회사에서 해왔다고 한다.

컨텐츠가 없으면 소통이라도 많아야 하는데, 오히려 직원이 방해가 되는 상황.

‘더클랜의 뷰이라이브 영상이 적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어.’

그리고 이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비슷한 일들이 자잘하게 계속 누적되어왔다고 한다.

방청 현장이나 이벤트 현장에서 직원들이 막말을 한다거나, 표정이 안 좋거나.

팬들 앞에서도 그런데 공개된 곳이 아닐 때는 얼마나 태도가 나빴겠어.

“팬분들은 저희가 불쌍하다고 하시고, 저희는 눈치를 보고. 이게 아이돌의 모습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으음…….”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눈썹이 내려가던 우형은 무어라 반응하기가 어려웠는지 침음을 흘렸다.

연예계는 빛과 어둠이 확실한 업계였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무척이나 반짝이는데 내부가 썩어있는 경우가 있지. 사람이든, 회사든.

돈이 되는 곳에는 사람이 모이기 마련이고, 수입을 만들어내는 주체인 연예인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소속 연예인을 하대하는 회사가 있다고는 들었는데 바로 옆에 있었을 줄이야.’

과거 뉴마도 차별 대우가 심하긴 했지만 대놓고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폭력적인 언사를 구사하지는 않았다. 내 무관심이 이곳에서도 무시로 적용됐을 뿐이지.

그러나 더클랜의 소속사, 아우름 컴퍼니는 소속 아티스트를 험악하게 대했다.

‘따뜻한 회사명에 그렇지 못한 인성 뭐야.’

나도 이담이 오기 전에 더클랜의 팬덤 분위기를 잠깐 살펴봤다.

더클랜의 팬들이 말하기로는 회사명의 ‘아우름’이 ‘아우르다’에서 온 게 아니라 금이란 뜻의 ‘aurum’인 것 같다던데. 팬들 눈에 돈만 좇는 회사처럼 보였단 거지.

팬 사인회 기간이 활동 기간보다 부쩍 길거나, 이상한 확률형 굿즈를 내는 등 불만이 나올 만한 운영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팬덤 분위기도 평화롭지 못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더 중요한 건 더클랜 내부의 분위기.

나는 <쉰셋돌> 때의 이담이나 <아이돌부 방학캠프> 때 봤던 더클랜의 모습을 떠올렸다.

‘같이 일하는 직원을 대하는 것치고는 어려워하는 것 같았는데.’

아직 신인이라서 그런 줄 알았지. 사실 그게 전부 주눅이 든 모습이었을 줄이야.

“다른 멤버들은 숙소에 있는 거지?”

“네……. 다 같이 나오면 나중에 수습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

이담이 숙소를 뛰쳐나오고, 다른 멤버들이 남아서 중개하고 있는 상황.

마치 이담이 혼자 회사에 반기를 든 것 같은 그림이었지만 이건 이담 개인의 일탈이 아니었다.

멤버들끼리 미리 이야기를 나눠서 이렇게 역할 분담을 한 듯했다.

‘지금 이담이가 가장 인지도가 높으니까.’

연예인과 기획사는 갑을의 관계가 모호했다. 신인 때는 절대적 을이다가도 인기가 생기면 갑이 되기도 하는 곳이었다.

이런 이유로 이담이 대표로 나선 것이다. 회사로서는 없으면 가장 아쉬울 멤버니까.

이담이 나서야 그나마 더클랜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 테니.

‘그런데 얘도 그렇게 담이 큰 애가 아니라.’

나와놓고 보니 불안하고, 그렇다고 멤버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서 불안하게 만들 순 없고.

그렇게 모노크롬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모노크롬 멤버들도 선배로서 도움을 주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이야기 들어주시는 것만 해도 많은 도움이 됐어요. 감사합니다…….”

이담이 차분차를 마시다가 할 이야기는 다 했다는 듯이 한숨을 섞어 말했다.

그는 더클랜의 이런 반항이 남들에게 이해받을 만한 행동인지 확인받고 싶었던 듯했다.

이담은 대화를 마무리할 요량인 듯했지만, 와서 이야기나 하고 가라고 그를 부른 건 아니었다.

“너희가 회사에서 무시당하지 않을 만한 위치가 되는 게 관건이네. 그렇지?”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단시간에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무시하지 못할 만한 사람들과 가까이 있으면? 조금은 눈치를 보지 않을까. 사람들도 더 주목하고, 많은 사람이 엮이면.”

이담은 그런 생각은 안 해봤다는 듯이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가 모노크롬에게 도움을 구한 것은 올바른 판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만이 가능한, 모노크롬식 해결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이담을 부르기 전, 모노크롬 멤버들과 잠깐 의논했던 것을 그에게 이야기했다.

“더클랜이 잠깐 모노크롬의 정식 후배가 되는 건 어때?”

“후배……요?”

이담이 컵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올려 입가를 긁었다.

지금도 후배는 후배인데, 라고 말하고 싶은 듯한 표정이었다.

“너희 회사가 받아들여만 준다면, 우리가 임시로 너희를 맡는 거야. 신셋 때처럼.”

“선배님들도 활동이 있으실 텐데…….”

그 점이 가장 문제긴 했다. 남들이 이런 방법을 떠올리지 않는 가장 큰 이유기도 했고.

하지만 모노크롬은 그간 쌓아온 특수한 활동이 있었다.

덕분에 모노크롬의 이미지를 같이 살릴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우리가 올해 한 일련의 활동들을 모노크롬 프로듀싱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묶는 거지. 너희가 그중 하나가 되는 거고.”

우리가 이 프로젝트명을 당당히 꺼내놓으면 사람들도 ‘아, 그래서 모노크롬이 계속 다른 그룹과 협업을 했구나.’ 하고 납득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은 이담이 혼자 결정할 사안은 아니었기에 우리는 다른 더클랜 멤버와도 만나보기로 했다.

***

더클랜의 소속사, 아우름 컴퍼니는 기회가 있을 때 굳이 마다하지는 않는 회사였다.

이담이나 더클랜을 몬클하우스에 초대할 때도 쉽게 받아들였었지.

‘이득을 따라 움직이느라 의외로 고집이 세지 않다고 해야 하나.’

그간 그렇게 강렬한 힙합 스타일을 고집해왔으면서 이담의 신셋 활동이 끝난 후에는 신셋과 비슷한 스타일로 더클랜을 컴백시키기까지 했다.

아우름 컴퍼니도 아이돌 그룹 결성은 더클랜이 처음이던데, 아마도 아이돌 운영에 아직 감을 못 잡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건 시행착오가 아니라 그냥 노선을 잘못 잡은 것 같아.’

감을 못 잡는 회사 대신 더클랜 멤버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이해가 빠르리라는 생각에 우리는 더클랜 멤버들을 다시 몬클하우스로 초대했다.

숙소를 가출한 이담이 다른 그룹의 숙소에서 더클랜 멤버들과 합류한다는 게 이상한 모양새였지만, 컨텐츠 촬영이라는 이유를 댔더니 아우름 컴퍼니는 별말 않고 멤버들을 보내주었다.

몬클하우스의 장점은 매니저가 아티스트를 데려다 놓고 자리를 뜬다는 점.

덕분에 우리는 비밀 회동을 가질 수 있었다.

“야, 이씨…….”

큰 임무를 맡은 이담을 며칠 만에 만난 더클랜의 한 멤버는 된소리로 반가움을 표현하려다가 다른 멤버에게 옆구리를 찔리고 합 하고 입을 다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전에도 더클랜 멤버 몇 명은 자기들끼리 대화할 때 된소리가 튀어나오곤 했던 것 같다. 선배인 모노크롬 앞에선 얌전했지만.

‘일상적으로 욕설을 내뱉는 직원이 가까이 있으면 말투가 옮았을 수도 있지.’

비속어로 센 척을 하는 사람 앞에서 착하게만 굴면 얕잡힐 뿐이니, 무의식적인 생존 전략으로 말투가 거칠어졌을 수도 있고.

더클랜이 무서워 보인다는 평을 듣던 것도, 경직된 표정이나 가끔 튀어나오려는 말투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좋지 않다는 걸 자각하고 바로 고치려고 하는 게 기특한 점이었다.

그런 더클랜 멤버들을 거실에 모아두고 우리의 계획을 설명하자 이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이담을 바라봤다.

“뭐, 뭘 잡아 온 거야?”

“먼저 제안해주셔서 그렇게 됐어. 너희가 괜찮으면 회사랑 얘기해 봐야지.”

“우리야 물론…….”

이담에게 향했던 더클랜 멤버들의 시선은 다시 모노크롬에게로 돌아왔다.

‘이런 기회를 저희한테 주신다고요?’라는 표정.

그러다가 더클랜의 리더가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이담에게 말했다.

“네가 나 대신 리더 해도 되겠다. 아니, 그랬어야 하는 것 같아.”

한번 정해진 리더를 쉽게 바꿀 순 없는 노릇이지만, 이담이 가장 많은 책임을 졌다는 것은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미안함과 여러 감정이 섞여 분위기가 가라앉으려던 그때, 한이가 재빠르게 끼어들었다.

“너는…… 요리를 잘하잖아.”

더클랜의 리더, 동영은 <아이돌부 방학캠프> 리더 요리 대결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건 매우 중요한 점이었다.

프로듀싱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우리가 대뜸 많은 것을 맡겠다고 하면 아우름 컴퍼니 입장에선 ‘뭔데 참견이지?’ 하고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단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어.’

우선은 친해졌다는 빌미로 곡을 주는 것부터.

이미 이담이 우형과 성운의 프로듀싱 앨범에 참여한 데다가 최근엔 선배인 이터널도 곡을 받았으니, 더클랜이 곡을 받는 게 크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곡을 만들다 보니 댄스곡이 어울릴 것 같네? 안무도 필요하겠네? 하면서 참여도를 늘리는 거지.

은근슬쩍 모노크롬과 더클랜의 콜라보로 추진하면서 컨셉도 내밀고.

그러려면 두 그룹이 자주 만나야 하는데 이 점도 생각해 둔 게 있었다.

“일단 네가 모노크롬한테 요리를 가르쳐주는 컨텐츠를 꾸며볼까 해. 자주 만날 이유가 필요하기도 하고 모노크롬 요리 실력이…….”

“저희 요리 실력이 아니라 우형이 형 실력 말씀하시는 거 아니에요?”

내가 모노크롬 멤버들을 둘러보며 말하자 준해가 자세하게 정정했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도…… 요리 실력이 독특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레시피를 정석대로 따르면 괜찮은데, 자꾸 누군가가 특이한 시도를 하고는 했다.

요리 실력의 평균치를 낮추는 주범이 딱 잘라 누구라고 특정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못 들은 척, 동영을 보며 계속 말했다.

“그러니까 다른 멤버들은 다른 일정이 있으면 번갈아 나와도 되는데 너는 꼭 있어야 해. 시작은 네가 메인이야.”

“네, 네.”

동영도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자 조금은 표정이 편해 보였다.

재민은 여기에 “그리고 오늘도 밥 해줘야 돼.”라는 말을 덧붙였다.

다른 의도가 있긴 했지만 몬클하우스의 손님으로 초대한 거니까. 손님은 모노크롬에게 밥을 해줘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더클랜 멤버들은 이야기를 전부 듣고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했다. 모노크롬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르겠다는 태도였다.

“이다음은 이제 회사끼리 이야기해볼 일이고, 너희는 일단 몬클하우스의 이념대로 힐링을 즐기고 가줘야겠어.”

잠시 후, 더클랜 멤버들은 마당에 모여 복실이를 쓰다듬었다.

탈출구가 막힌 탓에 나 홀로 산책을 못 하게 된 복실이는 나가고 싶은지 자주 대문 앞에 앉아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도 운동을 시켜줄 겸 같이 놀아도 되냐 물어보고 허락을 받아 몬클하우스에 데려올 수 있었다.

이담과 친해진 복실이는 덩치가 큰 편인 더클랜 멤버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발라당 애교를 펼쳤다.

“와씨, 존, 아니, 진짜 귀엽다.”

멤버 한 명이 강아지 앞에서도 거친 말은 안 좋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하다가 몇 번 더듬거렸다.

방송이나 라이브를 자주 하면 계속 신경을 쓸 테니 거친 말투도 고쳐질 텐데, 이들에겐 그럴 기회가 얼마 없었다.

‘애들이 무슨 잘못이겠어. 회사가 잘못이지.’

세상에 나쁜 강아지는 없다고, 강아지도 문제 행동을 보이면 주로 환경에 원인이 있던데.

그러다 다른 환경에서 바뀐 강아지의 모습을 보고 보호자는 ‘아! 우리가 문제였구나!’ 하고 깨닫는 거지.

더클랜의 경우를 봐도 확실히 환경과 그 환경을 만든 주체가 문제였다.

나는 복실이에게 힐링 받는 더클랜 멤버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이 프로젝트에 ‘세상에 나쁜 아이돌은 없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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