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59화 (359/430)

# 359화

“리더 다시 바꿔주세요-.”

“내가 리더로 부족하다는 거야?”

재민이 투정을 부리다가 준해가 성을 내자 바로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준해가 원하는 대로 멤버들이 그를 리더로서 잘 대해줬으면 이렇게 벌점이 높아질 일은 없었다.

그러나 준해를 놀리고, 벌점 받고, 항의하고, 또 벌점을 받는 과정의 반복.

다들 스스로 수렁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사실은 정말로 준해에게 비싼 선물을 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렇다기에는 평소에 준해를 가장 동생처럼 아끼던 해랑은 준해의 간신 역할로 빠르게 전환하여 벌점 상승세가 낮은 편이었다.

컨텐츠로 멤버들을 파산시킬 수는 없으니 갚을 방도를 잘 마련해줘야겠어.

안무 연습을 마친 후, 준해 리더가 지휘하는 회식은 소소했다.

“와. 진짜 우형이 형과 가장 먼 식단이다.”

“이게 바로 세대교체지.”

준해가 당당하게 테이블의 상석에 가서 앉았다.

테이블에 깔린 음식은 우형이 멤버들에게 가장 안 먹일 법한 인스턴트 음식과 패스트푸드 파티.

우형이 멤버들의 식단을 일일이 감시하거나 특정 음식을 완전 금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극적인 음식만 이 정도로 모아두면 우형을 향한 도발이라고 봐도 되었다.

준해는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도 눈치를 안 주는 리더였다.

“난 준해 리더 좋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리더를 바꿔 달라고 요구하던 재민은 이 특별 회식이 마음에 드는지 밝은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매운 것을 잘 안 먹는다는 우형은 매운 컵라면은 동생들에게 밀어주고 햄버거 세트의 포장지를 뜯었다.

“반장 당선돼서 햄버거 쏘는 애 같아.”

“제가 쏘는 거니까 많이 드세요.”

준해의 말에 멤버들이 사실 확인을 하듯이 카메라 뒤에 있는 나를 바라봤고 나는 법인카드를 가리켰다.

거짓말이 발각되건 말건, 준해는 자비로운 리더의 얼굴로 멤버들에게 말했다.

“아직 제 리더 권한이 몇 번 더 남아 있으니까 의견이 있으면 들어드릴게요.”

“아직 더 남아 있다는 게 두렵다…….”

준해 천하는 하루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상황에서 몇 번 더 촬영을 하고 생일 당일에 뷰이라이브를 하는 것까지가 이 기획의 일정이었다.

한이와 재민이 개선이 필요한 사항이 있다면서 손을 들었다가 벌점만 얻는 소소한 일이 있었지만 회식은 평화롭게 지나갔다.

오늘의 리더 체험을 마친 준해는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현 매니저보다 이게 훨씬 재밌어요.”

“아, 그러고 보니 현 매니저는 한 학기 내내 했었지?”

다르게 말하자면 몇 달 동안이나 수시로 멤버들의 귀찮은 애정을 받아야 했다는 뜻이다.

‘그때부터 형들의 머리 꼭대기 위에 서는 상상을 해왔던 걸지도 몰라.’

하고 싶은 게 있다고 바로 이야기하길래 언제 이런 기획을 생각했나 했더니. 그때의 복선 회수를 지금 하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리더 체험기는 짧은 편이었다. 멤버들은 아직도 더 남았냐고 성화지만.

준해가 우형을 따라 작곡 공부를 시작하거나 재민과 함께 연습하며 댄스 경험치가 오르는 등 평소에도 형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뒤끝이 강한 점도 우형을 닮은 것 같아서 왠지 웃음이 나왔다.

***

[저희 정규 앨범 준비 들어갈 것 같아요. 레이니데이랑 컨셉이 이어질 거래요.]

[잘됐다. 회사에서 누가 방해하거나 눈치 주면 말해 줘.]

[네!]

레드가 귀여운 이모티콘을 보내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드디어 아이리스도 인식할 정도로 대표가 뉴레인의 일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다.

나는 정규 앨범 준비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레드에게 전해 듣고, 대표에게 또 전해 들었다.

“그래서 앨범 발매 시기는 언제쯤으로 생각 중인데?”

나는 레드와의 메시지창을 닫고 오늘도 내 집에 와 있는 대표에게 물었다.

이제 대표는 반쯤 이 집에 살고 있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여기가 이제 1.5 신주인의 집이 되어 버린 거지.’

기묘한 기분이었으나 자꾸 보니 원래 이 집에 사는 애 같았다.

내가 거울로 비춰보던 내 모습이 거울 밖에도 있는 기분?

나보다 머리카락은 훨씬 길지만 원래 나도 단발보다 장발로 지냈던 시기가 더 길었으니 어색할 일은 없었다.

아무튼 내가 대표에게 발매 예정 시기부터 물어본 것은 이유가 있었다.

‘저번에 뉴레인이 모노크롬의 컴백 일정을 빼앗아가려고 했었단 말이지.’

모노크롬도 11월 중에 미니 앨범을 발매하려고 생각 중이다. 혹시라도 또 겹치면 안 되니까.

정규 앨범이면 준비하는 데 더 오래 걸릴 테니까, 11월 발매는 너무 이르겠지?

내 예상대로 대표는 11월보다 더 뒤를 생각하고 있었다.

“으음……. 지금부터 준비하면 12월?”

“정말 별생각이 없구나.”

“12월이 왜?”

“12월엔 음악 방송이 많이 결방한단 말야. 정규 앨범인데 음악 방송은 돌 만큼 돌아야지.”

“그래?”

“아마 네가 12월에 발매하자고 해도 직원들이 미루자고 했을걸.”

대표가 12월의 특수성을 모르는 것도 이해는 간다.

마이 엔터를 플레이할 땐 ‘몇 월이니 무슨 계절이겠구나.’ 하는 정도로만 시기를 고려했으니까.

그 영향인지 아이리스는 내가 이 세계로 오기 며칠 전 연말 무대에서 신곡을 처음 선보이며 특이하게 컴백했다.

그다음 해 12월은 아이리스가 해외를 돌던 시기였으니 대표가 국내 음악 방송 상황을 고려할 일이 없었을 테고.

“그럼 1월……?”

“1월도 조금 애매하긴 한데.”

“1월은 또 왜?”

“연초에 아이돌들이 나갈 시상식이 남아 있어서 다들 바쁘기도 하고, 음악 방송 주목도가 낮아.”

올해는 신셋이라는 생태계 파괴 그룹이 1월에 정식 데뷔했기에 조금 상황이 달랐지만.

내가 설명하자 대표는 ‘왜 이렇게 안 되는 게 많아?’라는 듯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 늦어지면 좀 그런데. 2월은…… 재계약 시기랑 너무 가깝잖아.”

“으음……. 그렇지.”

모노크롬은 내가 마이 엔터를 시작하고 처음 만든 그룹이라 게임 속 초기 날짜인 1월 1일 직후에 계약했고, 따라서 내년 1월 1일이 계약 만료일이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모노크롬을 키우던 중간에 만든 그룹이라 3월에 계약이 만료된다.

그때까지 계약 조율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 민감한 시기에 컴백 일정을 잡기는 좀 그렇긴 하지.

“생각해 보면 1월 컴백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때 컴백하는 가수가 많이 없어서 서브곡까지 시간을 여유롭게 확보할 수도 있거든.”

그리고 1월이면 겨울방학이니까 <아이돌부 방학캠프> 걸그룹 편이 또 방영할 것이다.

손영식 PD에게 아이리스 어필을 확실히 해놨으니 얼마 후에 뉴레인에 섭외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

그럼 방송과 활동이 시너지를 낼 수도 있지. 작년에 모노크롬이 그랬던 것처럼.

“뭐가 이렇게 복잡해? 앨범 하나 내는데.”

“복잡하지. 여긴 게임이 아니니까.”

다시 게임 속 세계로 돌아가게 할 수도 없고.

대표는 플레이어가 아니라 한 회사의 대표로서 일하자니 새로 습득할 것이 많아 막막한 표정이었다.

나는 대표가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가려 할까 봐 안심할 만한 말도 꺼냈다.

“지금 내가 말한 건 뉴레인 직원들도 알고 있을 거야.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도 있을 테고. 잘 모르겠으면 직원들이랑 얘기해보고 정하면 돼.”

대표는 “으응.”인지 “으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자꾸 나한테 찾아와서 묻는 것을 보면 아직은 직원들과 내외하는 모양이었다.

맨날 기획실만 찾다가 갑자기 기획실을 통하지 않고 소통하려면 어렵긴 하겠지.

‘실장이랑 팀장 중 한 명이라도 아티스트 편에 서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뉴레인 개혁도 훨씬 쉬웠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서 아이리스에게 친화적인 직원들을 따로 모아야 했잖아.

“그러고 보니 이번 앨범부턴 아이리스 전담팀 꾸려서 하는 거야? 회사 안에선 무슨 잡음 없어?”

“글쎄? 내가 전담팀 만드는 쪽으로 진행하라고 얘기한 지가 얼마 안 돼서.”

기획실에서 아이리스에 관한 권한을 빼앗아가는 일인데 불만이 터져 나오진 않을까.

해외 활동 거부로 회사와 갈등이 있긴 했지만, 아이리스는 여전히 뉴레인의 가장 큰 축이다.

아이리스의 일에서 빠지라고 하면 분명 회사 내 입지가 불안해진다고 느낄 거란 말이지.

‘기획실의 허용석 실장이야말로 권력욕이 있는 것 같던데.’

준해의 귀여운 권력욕과는 아예 다른, 위로 올라가려는 실제 욕망이었다.

그런 욕망을 지닌 사람이 과연 기획실의 범위를 벗어나는 팀이 생기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까?

‘……큰일이다. 지금 너무 플래그를 세우는 생각을 해 버렸어.’

그리고 내 불안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

레드는 뉴레인의 직원이 아니므로 회사의 모든 상황을 파악해서 내게 알려주기 어렵고, 대표는 보고받지 않은 회사 내부 사정에는 무지하다.

그래서 나는 실무자 입장에서 내게 정보를 전해줄 사람을 찾았다.

‘마침 최 비서가 아이리스 매니저의 연락처를 알고 있지.’

저번에 보니 일 때문에 연락도 하던 것 같고.

아이리스의 매니저 중 한 명인 공다혜는 아이리스가 언니처럼 따르는 이였다.

나도 싱글 제작 프로젝트로 뉴레인을 들락거리며 그녀와 아이리스의 관계를 지켜봤다. 아이리스 전담팀을 만든다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믿을 수 있는 정보원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최 비서를 통해 뉴레인의 상황을 빠르고 정확하게 보고받을 수 있었다.

“대표님 지시에 따라 전담팀을 구성 중이었는데, 내부에서 마찰이 조금 생겼다고 합니다.”

“무슨 마찰?”

“전담팀의 수장을 누가 맡느냐 하는 문제로…….”

기획실에서도 전담팀에 껴 보려고 욕심을 냈나 보네.

일반적인 회사라면 이미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을 새로운 팀의 관리자로 발탁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라서 대표가 따로 지시를 내린 거잖아?

“아이리스 방치하고 신인 기획을 우선할 땐 별말 없더니. 아이리스가 따로 움직이는 건 못 보겠다는 거야?”

“이번 일을 대표님이 직접 지휘하려고 하시니까요. 우선순위가 높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아이리스가 대표에게 버림받은 패인 줄로만 알고 신인에 집중하다가, 그게 아니란 걸 알고 급선회한 모양이었다.

‘대표가 아직 회사 내부 사정엔 밝지가 않아서 전담팀 구성을 알아서 하라고 맡긴 것도 한몫했겠지.’

대표는 특정 직원을 직접 뽑는 게 아니라 ‘너희들끼리 잘 얘기해서 팀을 꾸려봐라’라고만 했다.

이 말을 기획실이 아니라 아이리스 쪽에 전달한 것만으로도 ‘아이리스에게 유리한 쪽으로 팀을 꾸려라’라는 의도가 담겨 있었지만.

‘아무래도 뉴레인 직원들은 기획실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니까.’

회사에 나오지 않는 대표와 회사에 상주하는 기획실장. 자주 보는 사람의 눈치를 더 볼 수밖에.

허용석 실장이 자기가 대표에게 보고하겠다면서 막무가내로 일부 권한을 가져가려 하면 막기가 쉽지 않을 터였다.

대표가 직접 모습을 안 드러내고 간접적으로만 지시를 내리니 이런 일이 생겼다.

나는 골치가 아파서 관자놀이를 짚으려다가, 번뜩이는 생각에 상체를 바로 했다.

‘……이건 혹시 기회가 아닐까?’

마음 한구석에 조금 찝찝하게 남았던 뉴레인의 고일 대로 고여버린 시스템을 걷어낼 기회.

적절한 타이밍이 있다면, 바로 지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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