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58화 (358/430)

# 358화

막내가 하고 싶었던 게 있었다는 이야기에 다른 멤버들은 귀를 기울였다.

준해는 혼자 생각해왔던 것을 쑥스럽다는 듯이 꺼냈다.

“저 지금까지 계속 막내로만 지내왔으니까, 막내 말고 다른 포지션을 해 보고 싶어요.”

막내가 아닌 체험이라니. 정말 막내라서 할 수 있는 기획이잖아.

재민이 호기심을 보이며 손을 들었다.

“그럼 우리가 준해를 형이라고 불러?”

“아니. 그건 징그러워서 싫어.”

7년 차가 될 때까지 막내로 살아왔으니 한 번쯤 형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을까 했는데, 준해는 고민도 않고 바로 거부했다.

“귀여운 동생들 생기면 좋을 것 같은데.”

“형들이 귀엽다는 거야?”

“컬러즈가 귀엽다고 한 말을 부정하는 거야, 지금?!”

재민이 컬러즈를 들고나오자 준해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 옆에서 한이가 “혀엉-.” 하고 애교를 섞어 부르자 준해가 질색했다. 그 옆의 해랑도 같이 얼굴을 찌푸렸다.

준해는 예전에 엔피버 멤버가 형이라고 부를 땐 좋아하던데.

동생들이 형이라고 부를 때나 귀엽지, 형들이 형이라고 부르는 건 싫은 건가.

‘그러고 보면 준해가 우형이를 가끔 놀렸었지…….’

우형이 고등학생일 때 자신은 초등학생이었다는 등 세대 차이가 난다는 식의 장난을 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처럼 준해에게는 그룹 내에서 가장 어린 멤버라는 메리트가 있었다. 그걸 포기하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준해는 한이의 애교를 털어내듯이 손으로 귀를 쓸어내리고는 한이의 반대편에 앉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형 호칭은 됐고…… 제가 리더를 맡아보고 싶어서요.”

“리더?”

그 말에 나를 포함한 멤버들의 시선이 현 리더인 우형에게 몰렸고, 갑자기 리더 자리를 내놓게 된 우형은 눈을 깜빡거렸다.

‘그렇지. 권력욕이 있었지.’

회사원 컨셉이면 팀장을 하고 싶어 했고, 학생 컨셉이면 반장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다른 멤버들도 권력을 바라는 건 마찬가지라 매번 리더 자리를 쟁취하지 못하던 준해였다.

딱 한 번, <세대공감 아이+돌>에서 시연의 편애를 받아 잠깐 반장 역할을 한 것이 끝.

이번엔 준해 생일 기획이니까 준해의 소원을 들어주는 게 가장 좋겠지? ‘준해가 리더인 모노크롬’이라는 새로운 그림도 볼 수 있을 것 같고.

“임시 리더 정도야 어렵지 않지. 준해가 주인공이니까 준해가 하고 싶은 거로 하자.”

매니저도 체험해 보고, 리더도 체험해 보고. 준해는 바쁜 막내였다.

준해가 원하는 것을 얻어서 만족스럽게 헤헤 웃자 멤버들은 그런 막내를 귀여워했다.

“준해 말 잘 들어주자. 막내가 형들 보면서 얼마나 해 보고 싶었겠어.”

리더 자리를 잠시 내주게 된 우형도 기꺼이 이 기획을 받아들였다.

다른 멤버들도 ‘준해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얼굴로 준해의 리더 도전을 응원했다.

그러나 멤버들은 그게 안일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

“해랑 형, 리더 말을 안 들으니까 벌점 2천 점이야.”

“……준해는 리더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거 아니야?”

준해가 임시 리더 자리를 얻게 되고, 우형이 가지고 있던 벌점 부여 권한까지 준해에게 넘어갔다.

권력을 얻은 준해는 작은 폭군이었다.

우형 집권 시절, 좀비 서바이벌 촬영 전까지는 벌점 최저점을 유지하던 해랑.

그런 그가 준해가 리더를 맡고 나서 벌써 벌점 3만 점을 돌파한 것만 봐도 알 만했다.

‘우형이도 처음엔 3점, 5점처럼 한 자릿수로 벌점을 주다가 단위가 점점 올라갔는데…… 준해는 처음부터 백, 천 단위로 시작하네.’

우형은 가끔 벌점을 깎아주기도 했는데 준해는 그런 자비가 없었다.

벌점 부여 권한은 ‘준해 리더 체험 기획’을 촬영할 때 한정. 권력이 손에 있는 시간이 길지 않으니 그만큼 짧고 굵게 권력을 활용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이 벌점의 활용처 또한 생일의 주인공인 준해가 기획했다.

[상상 카페에서 상상 값을 앞으로의 활동으로 갚잖아요. 그런 것처럼 벌점을 받은 만큼 저한테 잘하는 거로 갚는 거죠.]

[지금도 벌점 받으면 노예 돼서 갚잖아? 그거랑 뭐가 다른 거야?]

[지금 벌점은 아무도 갚을 생각을 안 하니까…… 10월 말까지로 기한을 둬서요.]

10월 내로 벌점을 다 갚지 못하면 벌점을 돈으로 치환하여 해당 금액 상당의 생일 선물로 갚는다는, 귀엽기도 하고 무시무시하기도 한 벌칙이 기다리고 있었다.

리더를 맡는 것도 어떻게 보면 멤버들을 통솔하는 일이니 노동이다.

그래서 ‘생일 기획으로 알맞나?’ 하는 생각도 조금 들었는데, 이런 규칙이 있으니 확실히 생일 기획다웠다.

‘벌점이 높아지면 갚아야겠다는 마음이 들긴 하겠네.’

갚을 생각이 없어도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돈으로 갚게 될 테니.

평소에 우형이 주는 벌점은 기한도 없는 데다가 우형의 기분에 따라 자주 오르락내리락해서 다들 무시하는 편이다.

그러나 기획력이 있는 준해가 손을 대니 역시 달랐다. 자기 위주의 기획을 촬영할 날만 기다린 사람처럼 아주 철저했다.

멤버들도 처음엔 기존의 벌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언제 막내한테 벌점을 받겠냐.”

벌점을 뿌리던 우형은 자신을 따라 행동하는 막내가 기특하다는 반응이었다.

해랑도 원래 벌점을 잘 받지 않았으니 별생각 없이 따랐고.

“벌점으로 나중에 준해한테 생일 선물 줄 수 있으니까 좋은 거 아니야?”

재민은 이런 따뜻한 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그 말을 들은 한이는 “난 준해한테 선물 주고 싶으니까 계속 놀려야겠다~.”라며 준해를 더욱 도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탓에 벌점이 생각보다 빠르게 올라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한이는,

“형을 빚쟁이로 만들 셈이야?”

라며 태도를 바꿨다.

준해에게 잘해줘서 갚으면 된다지만 벌점이 쌓이는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벌점이 이 정도로 모였으면 나중에 선물로 차 한 대 뽑겠다.”

“준해 면허 없잖아.”

“해랑 형, 그것도 벌점 2천 점이야.”

“…….”

준해의 면허 문제에 항상 말을 얹는 해랑은 이번에도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해랑의 면허 공격을 받은 준해는 또 벌점을 뿌렸다.

“모노크롬 거지 됐다.”

막내에게 선물을 줄 수 있다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재민은 지금 탈탈 털린 표정이었다.

재민은 ‘이게 왜 벌점이야?’라면서 계속 ‘왜?’ 공격을 시전하다가 벌써 벌점 10만 점을 달성한 참이었다.

벌점 12만 점으로 1위를 달리고 있는 한이는 리더가 아닌 우형을 아련하게 바라봤다.

“형이 벌점 처음 시작했을 땐 뭐 저런 걸 다 하나 했는데, 지금 보니까 형이 되게 관대한 거였네.”

“그걸 지금 알았어?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하란 소리가 있잖아.”

멤버들은 준해의 생일을 기념하여 리더 우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아니지. 준해가 형 보고 배운 거잖아.”

“맞아.”

그 소중함은 오래가지 못하고 곧바로 책임을 우형에게 돌렸지만.

좀비 서바이벌 때의 배신 사건으로 벌점 1위가 되었던 해랑도 우형 몰이에 동참했다.

“형은 형이고, 지금은 내가 리더니까 내 식대로 해!”

“으아, 폭정이다!”

기획 단계에서 모두의 동의를 얻은 탓에 무를 수도 없었다.

준해의 생일 기획은 막내의 리더 체험 겸 준해의 심기 거스르지 않기 게임이 되었다.

***

“이사님.”

“응?”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려보니 우형이 있었다.

그는 준해에게 들키지 않도록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이거…… 언제까지 하나요?”

“그만하고 싶어?”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언제까지 하나 해서.”

내 물음에 우형이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대답했다.

‘막내 생일 기획인데 당연히 그만하고 싶다고는 못하겠지.’

소심하게 물어보는 모습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가 다 드러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형은 연장자 겸 리더라서 멤버들을 통솔하기에 아주 좋은 위치에 있었는데, 연장자 위에 리더 역할이 따로 생기자 준해 눈치 보기가 만만치 않은 듯했다.

다른 생일 기획은 세트를 빌려 한 번 딱 촬영하고 깔끔하게 끝나는데, 준해의 생일 기획 촬영은 뉴마 안에서 이뤄졌다.

특별히 준비된 상황이 아닌, 평소와 같은 환경에서 리더를 체험해보고 싶다는 준해의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준해가 하고 싶은 걸 적어줬거든.”

이것도 현 매니저 기획처럼 컨텐츠였다. 휴식 없이 하루 종일 이어지면 피로도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멤버들도 쉼 없이 준해를 의식해야 하고, 준해도 쉬지 않고 멤버들을 감시해야 하니까.

그래서 몇몇 시추에이션을 정해 그 상황에만 준해가 임시 리더직을 맡기로 했다. 카메라가 돌아갈 때만 준해가 리더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상황들은 준해가 미리 지정해뒀다.

“멤버들이랑 같이 안무 연습하기, 회식하기, 뷰이라이브랑…….”

“뭐가 많이 남았네요.”

“그만큼 멤버들과 같이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거지.”

우형의 표정은 그야말로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둔 것만 보면 훈훈한 투두리스트였지만, 이 안에는 ‘멤버들 부려먹기, 벌점으로 빚 만들기’라는 다른 의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은 준해 리더와 함께 안무를 연습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이었다.

‘마침 음악 방송 나갈 일이 있어서 준해가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겠네.’

역시 리더는 무대에서 구호도 한번 선창해 봐야지.

마침 얼마 후 음악 방송 특집이 있어서 안무 연습할 일도 있고 무대도 올라간다. 덕분에 준해는 활동기의 리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준해 리더의 관리 아래 놓인 멤버들은 조금 괴로운 듯했지만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사랑이 넘치는 현장이었다.

준해의 폭정을 참다못한 한이는 연습실 바닥에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섰다.

“이건, 그걸 해야 할 때다.”

“그게 뭐야?”

한이의 배를 베고 누워 있던 재민도 베개가 없어지자 상체를 일으켜 앉아 그를 올려다봤다.

“준해에게 사랑 편지로 내 진실한 마음을 전하는 거지. 감동해서 벌점 10만 점은 깎아줄걸?”

“보통 죄 저지른 가해자가 그런 편지 많이 쓰던데.”

목적이 탄원서나 반성문과 다름없는데 사랑 편지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준해는 리더의 관용을 보여주겠다며 몸소 멤버들이 마실 음료수를 사러 가서 이 자리에 없었다.

그사이에 연습실에서는 한이, 그리고 그에게 설득된 재민이 그들만의 백일장을 펼쳤다.

옆에서 해랑이 “그 편지 주면 벌점 2만 점…….”이라며 중얼거렸지만 두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준해가 돌아왔을 때 해랑의 예상은 멋지게 적중했다.

“이게 뭐야! ‘형의 잘생긴 얼굴을 보고 마음을 풀길 바랍니다’? 날 놀리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그런 말은 쓰지 말자고 그랬잖아.”

“방금 너도 편지 같이 써놓고 왜 숨겨? 네 편지도 준해한테 줘!”

해랑은 그 옆에서 자기는 계속 말렸다며 준해의 편을 들었다.

“해랑이 되게 간신 같지 않나요? 원래 저런 애가 아니었는데. 혼자 쏙 빠져나가려고.”

혼자 쏙 빠져서 내 옆에 서 있던 우형이 내게 동의를 구했다.

“예능 레벨…… 아니, 예능 실력이 늘어서 그런가 봐.”

좋은 현상이지.

나는 배신과 사랑이 넘치는 현장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