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54화 (354/430)

# 354화

검색 결과로 뜬 해체 연도를 보니, 모노크롬이 데뷔할 때쯤인데.

이터널이라는 그룹은 모노크롬과 활동 시기가 겹친 적은 없었다.

“너희는 그분 잘 알아?”

“그럼요. 저희 연습생 때는 선배님들 노래로 안무 연습도 하고 그랬는데요.”

내가 묻자 우형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바로 대답했다.

아하. 활동 시기가 별로 겹치지 않는 신인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잘 모르겠지만 선배라면 빠삭하겠구나.

게다가 예전엔 아이돌이 조금 더 대중적인 경향이 있었으니.

멤버들이 아이돌 연습생이 아니었더라도 그들이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았던 것이 한몫했을 것이다.

“그럼 그분은 방송 활동은…….”

단편적인 검색 결과로는 그런 자세한 정보까지는 알기 어려웠다.

모르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추임새처럼 작게 말하자 임주미 PD가 바로 대답했다.

“공식 해체 이후로 방송엔 한 번도 안 나오셨죠. 그뿐만 아니라 매체에 아예 노출이 안 되셨을걸요? 그런데 저희가 딱 출연 허가를 받아낸 거죠.”

그런 사람을 섭외해 온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듯한 말투였다.

모노크롬이 데뷔할 때쯤 해체했고, 그 이후로 방송에 얼굴을 안 비쳤으면…… 거의 7년을 일반인으로 살았다는 거 아니야?

‘그런 사람을 다시 TV 예능 프로그램으로 부르다니.’

이 정도면 임주미 PD의 섭외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이터널이라는 그룹, 그리고 정이혁이란 사람에 관해 검색했다.

방송을 위한 사전 조사는 회사에 가서 하겠지만 한 보이그룹이 어쩌다 해체까지 가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작성된 이런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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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금 나왔어도 팬덤 쓸어모았을 것 같은 아이돌

(이미지)(이미지)

이터널ㅇㅇ

지금 들어도 노래가 세련됐다는 평이 많음(코디는 눈감아ㅎ)

무대 영상도 꾸준히 조회수 늘어날 정도

└안 그래도 요즘 알고리즘으로 추천떠서 추팔하고 왔는데 내 구오빠들.. 뭐하고 지내나ㅠㅠ

└인기에 비해서 너무 흐지부지 사라졌지 그렇게 된 거 아쉬움

└회사만 멀쩡했어도 그룹은 유지 가능했을거라 보는데 ㅅX 병크멤 실드치고 질질 끌더니 갑자기 공중분해

└도박도박박도박만 빼면 ㅇㅈ

└근데 박도박이 리즈 시절에 입덕문 역할 제대로 하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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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박이란 이터널의 그룹 활동에 크게 제동을 걸었던 멤버를 이르는 말이었다.

성씨가 박이고 일으킨 문제가 도박이었기에 박도박.

기존에 성실하고 착한 이미지로 대중의 호감을 샀는데, 갑자기 터진 상습도박죄에 돈 문제. 팬들은 하루아침에 환상이 깨지고 말았다.

당시에 파장이 얼마나 컸는지, 7년이 더 지난 지금도 그는 커뮤니티에서 아이스크림 메뉴명 같은 운율의 ‘도박도박 박도박’으로 불렸다.

‘그래도 회사가 무슨 생각으로 실드를 쳤는지는 예상이 가.’

내가 엔터사 일을 오래 한 것은 아니지만 짧은 시간 동안 굵직하게 지켜보다 보니 이제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이 펼쳐졌다.

한창 활동하는 현역 아이돌의 도박 문제가 터지는 것은 희귀한 케이스였지만, 연예계에 도박 문제를 일으키고도 활동을 이어나가는 연예인이 없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죄의 경중을 따지기는 좀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주는 종류의 범죄가 아니라면서 은근슬쩍 죄를 축소화할 여지가 남아 있다고 해야 할까.

팬들도 차마 한순간에 바로 돌아서지는 못하고 ‘자기 인생만 망치는 거지, 뭐.’ 하면서 흐린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었겠지.

‘아직도 종종 언급될 정도로 잘나가던 아이돌이었다면 회사도 욕심이 났을 거야.’

그래서 어떻게든 무마해 보려고 한 것 같은데…… 오히려 역효과가 난 듯했다.

이터널은 당시에 이미 재계약을 앞둘 정도로 연차가 찬 상태였다. 그래서 박도박 사건 이후로 그룹 활동 없이 멤버들의 개인 활동만 이어졌다.

결국 불안정한 상태로 재계약 시기가 다가오는 바람에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그룹은 공식 해체되었다.

‘팬들도 충격이었겠지만, 그룹 생활을 몇 년이나 함께 해왔던 멤버들이 가장 타격이 컸겠지.’

이번에 게스트로 나온다는 정이혁이라는 사람도 그래서 해체를 기점으로 은퇴한 게 아닐까.

이터널의 팬이었던 사람들은 지금도 가끔 과거 영상을 보며 연예계를 떠난 이터널의 멤버들이 어떻게 지낼까 궁금해하는 듯했다.

이터널이 활동할 당시엔 SNS가 지금처럼 활발했던 것도 아니었고, 일반인이 된 그는 소식이 끊겨 버렸으니.

‘그러고 보니 재민이가 딱 그랬네…….’

모노크롬도 만일 해체의 길을 걸었다면 팬들의 추억 속에만 남게 되었을까.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서로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는 건 굉장히 잔혹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멤버들이 상상 카페에 도착한 정이혁을 보고는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동기, 후배들과 자주 만나는 모노크롬이 후배로서 아이돌 선배를 대하는 모습은 볼 때마다 새롭게 느껴졌다.

‘음악 방송에선 활동 시기가 겹친 선배랑 가끔 마주치기도 하지만.’

그 외의 방송에서 보이그룹 선배를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여러 아이돌 그룹의 멤버를 부르는 방송이 애초에 얼마 없으니까.

아이돌 집합소인 돌대회에서도 모노크롬은 출연자 중 가장 선배에 가까웠다. 선배 아이돌이 출연하더라도 주로 출전 선수가 아니라 MC 역할을 맡고는 했다.

정이혁은 모노크롬의 인사를 받고 같이 꾸벅 인사하더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불편한 게 아니라 이런 촬영이 너무 오랜만이라서……. 길 가다가 연예인이 촬영하는 장면 보고 구경 온 기분이에요.”

“저희야말로 연예인 보는 기분인데요……!”

“이제는 가수를 그만둔 기간이 예전에 활동했던 기간이랑 비슷해져서, 이제 연예인 같지도 않아요.”

멤버들이 눈을 반짝이며 그를 바라보자 정이혁이 손을 내둘렀다.

그렇지 않아도 멤버들은 샵에서 메이크업을 받으며 이터널에 관한 이야기를 꽃피웠다.

[우리 연습생 때, 이터널 선배님들 곡 연습한다고 하면 다 긴장했잖아.]

[아-, 맞아. 안무도 그렇고 중간에 엄청 어려운 고음 나올 때 있어서 음 이탈 나기 십상이었지.]

멤버들의 연습생 시절을 알지 못하는 내게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멤버들에게 정이혁이 어떤 선배로 기억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연습생 땐 이미 활동하는 선배들이 다 위대해 보이고 멀게만 느껴졌다던데.’

그런 사람이 오히려 자신들을 연예인 보듯이 바라보다니.

인생사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배명희 선배님도 엄청난 대선배님이신데, 이렇게 일반인이 되어서 만나 뵙게 될 줄은 몰랐어요. 와. 순수하게 신기하고 기쁘네요.”

“나도 얼마 전까지는 그냥 동네 사람들이랑 오가며 안부 나누는 게 일상이었던 사람인데요, 뭐. 나보다는 후배들이 훨씬 더 연예인답지.”

해체할 뻔한 아이돌 그룹, 반쯤 은퇴 상태였던 원로가수, 이제 일반인의 생활에 적응한 전 아이돌까지.

서로가 서로를 연예인 보듯이 하는 이상한 구도였다.

정이혁은 오랜만의 방송 출연이 긴장되는지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물병을 들었다 놨다 하며 깡 생수를 계속 마셨다.

그런 그에게 재민이 알맞은 처방을 들고 나타났다.

“상상 카페 메뉴인데 향을 음미하면서 마셔 보세요.”

“오. 허브차네요?”

“네. 차분차예요.”

“차분차……?”

따뜻한 차라 생수처럼 벌컥벌컥 마실 수는 없었기에 정이혁은 천천히 향을 맡으며 홀짝였다.

다른 집중할 거리가 생겨서인지 초조한 기색이 조금 옅어진 듯도 했다.

그리고 재민이 준비한 처방은 차분차뿐만이 아니었다.

“저도 팀을 나갔다가, 몇 년 만에 팬들이랑 인사한 적이 있었는데요.”

“아…….”

정이혁은 재민의 이야기를 듣고 놀라지 않았다.

우리가 그에 관해 알아봤듯이 그도 모노크롬에 관해 알아본 모양이었다.

“되게 긴장됐어요. 저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이 있을까 봐. 환영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

“그런데 정작 만나니까 좋더라고요. 엄청 친했던 옛날 친구랑 다시 만난 기분? 오랜만에 보니까 안 좋은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이 더 많이 떠올랐어요. 팬들도 반겨주고.”

정이혁도 비슷한 생각으로 긴장하고 있었는지 재민의 말을 경청했다.

말하는 사람이 재민이기에 더욱 진심으로 와닿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사람들도 선배님이 다시 보고 싶어서 TV 앞에 앉을 거예요. 저도 선배님 뵌다고 되게 기대하고 왔거든요.”

“……허브차보다 그 말에 더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네요.”

“그게 차분차의 효능일걸요?”

“정말 그럴 수도 있고.”

정이혁은 아까보다 확실히 편해진 표정이었다.

조금 전에는 서로 연예인 보는 기분이라며 거리감이 있었던 이들이 이제는 편안한 선후배 사이처럼 보였다.

그리고 정이혁이 찻잔을 거의 비웠을 때, <상상 카페>의 촬영이 시작했다.

***

“내가 젊은 후배들은 잘 못 외우는데, 이터널은 들어봤지. 그때 유명했잖아요. 무슨 상 받은 것도 봤던 것 같은데.”

“들어봐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 기억까지 해주시니까 영광입니다.”

“내가 TV에 안 나왔지, TV를 안 보고 산 건 아니니까.”

“그건 그러네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세대와 활동 시기는 다르지만 가수를 그만두고 일반인처럼 살아왔다는 동질감이 있어서인지 정이혁은 배명희의 앞에서 더욱 긴장을 풀었다.

촬영 초반은 정이혁의 근황 토크 중심이었다.

준해가 미리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방송에 나오는 건 다른 멤버분들도 알고 계신가요?”

“네. 저희 단체 메시지방이 있거든요.”

이터널의 팬이었다면 마음이 훈훈해질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내용은 그리 훈훈하지만은 않은, 약간 씁쓸한 이야기였다.

“평소에도 가끔 안부 인사 나누고, 만나자는 이야기도 하긴 하는데 아무래도 각자 사는 세계가 많이 달라지다 보니까……. 이터널에 관한 대화도 정말 오랜만에 나눈 것 같아요.”

“아무래도, 24시간 붙어있을 때랑은 다르죠.”

우형도 어느 정도는 안다는 듯이 씁쓸하게 웃었다.

죽고 못 사는 친구, 연인, 심지어 가족도 한번 사이가 멀어지면 금방 어색해지기 마련인데.

해체한 아이돌의 생생한 경험담을 듣고 있으니 나도 그렇고, 모노크롬 멤버들도 생각이 많아진 듯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방송에 나온다고 하니까 멤버분들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해체한 그룹에 관해 계속 화제를 이어나가는 것은 조심스러운지 한이도 한결 신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일단 처음엔 놀랐죠. 그리고 ‘너도 이터널 멤버인데 우리 허락 받을 필요가 있나? 우리도 방송으로 볼게.’라고요.”

주제가 주제다 보니 긴장과 안도가 반복되는 기분이었는데, 다행히 다른 멤버들에 관한 이야기는 아련하고 훈훈한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그래서 가장 궁금했던 걸 여쭤보자면, 선배님은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저희도 그렇고,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아, 사실은…… 제가 ‘이제 가수를 그만두자!’ 하고 그만둔 건 아니었어요. 잠깐 쉴 겸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도와드렸는데, 부모님도 역시 아들이 도와주는 게 안심이 된다고 하시고…….”

연예계로 돌아올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다시 복귀하기에는 늦은 게 아닌가?’ 해서 결국 한쪽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까, 아이돌 정이혁의 마무리는 항상 그랬더라고요. 나중에서야 ‘아, 그때가 마지막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그룹 활동도, 연예인으로서의 커리어도. 더 이어나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면 이미 끝난 상태였다고.

모노크롬 멤버들도, 배명희도 그의 상황에 이입한 듯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제가 이번에 방송에 나온 건…….”

계속 생각해왔던 것인지, 정이혁은 확고한 목소리로 끊김 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때 저희를 응원해주셨던 팬분들에게 제대로 인사를 하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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