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3화
커뮤니티의 이런 ‘모노크롬 차기 음악대상설’은 컬러즈의 서동요 기법과는 조금 달랐다.
1군을 넘어선 0군 아이돌 밈도 컬러즈가 아니라 다른 커뮤니티 유저들이 먼저 시작했지.
‘처음엔 반쯤 장난으로 시작한 것 같은데.’
하지만 모노크롬은 그만큼의 성장세를 보여줬고, 이제는 다들 반어법의 농담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밈으로 받아들였다.
재미든 진심이든 사실 크게 상관은 없다. 사람들이 열심히 차기 음악대상설을 퍼 날라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렇게 모노크롬이 음악대상 후보로 서서히 스며드는 거야!’
모노크롬과 대상을 연관 지어본 적 없던 사람들도 이런 이야기를 접하면 한 번쯤은 ‘어? 그런가?’ 하고 생각해 볼 기회가 생길 터.
거기서 ‘에이, 그건 아니지.’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고, ‘정말 받았으면 좋겠다.’ 혹은 ‘받으면 재밌겠다.’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실제로도 시상식의 후보들이나 수상자를 두고 ‘이 사람이면 이 상을 받을 만하다, 아니다’로 논쟁이 일어나곤 하잖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장난으로라도 음악대상 후보로 고려되는 게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지.’
그리고 <상상 카페> 방영 이후로 사람들에게 차기 음악대상으로 거론되는 것은 모노크롬뿐만이 아니었다.
배명희의 음악대상설도 함께 나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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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희쌤은 다시 가수 활동 시작하면 리얼로 대상 가능하지 않음?
바로 작년에 대상 받은 천상식이 저정도로 깍듯한데ㅋㅋ
사실 세대가 달라서 난 잘 몰랐는데 방송 보고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바로 체감함ㅇㅇ
└방송 나오는 거 보면 곧 음반내실 것 같지 않아?
└그런데 방송에서 은퇴도 고려한다는 느낌으로 얘기를 해서..
└그게 대본이 아니라면 음..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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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도 <상상 카페>의 방송 성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상상 카페>는 올해 안에 마무리될 테고, 배명희 선생님이 그사이에 만일 은퇴를 고른다면 음악대상 후보로 거론될 일은 없겠지.’
그녀가 정말 후보 자리에 오른다면 박형주는 견제할 수 있겠지만 음악대상을 받아야 하는 우리와도 경쟁 구도가 되고, 그녀가 후보가 되지 않으면 박형주를 견제할 세력이 적어지고.
어느 쪽이든 딜레마에 빠지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배명희는 방송에 나온 것만으로도 큰 결심을 해준 것이니 시상식과 관련된 짐까지 지우고 싶지는 않다.
‘판을 흔드는 게 목적이었고, 실제로도 판이 조금씩 흔들리고는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라솔 씨도 우리 작전에 동참한 상태니까.’
아무튼 상상 카페는 출연진, 게스트, 방송 내용 등 다양한 방향으로 주목을 받았다.
천상식도 잡고 화제성도 잡고.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시작이 좋았던 <상상 카페>의 다음 촬영 날.
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이 방송에서 출연자인 모노크롬은 무엇을 하고 있냐면…… 평화롭게 벤치를 디자인하는 중이다.
멤버들의 디자인을 언뜻 살핀 준해는 “이게 벤치라고……?”라며 고개를 갸웃하더니 제작진을 향해 물었다.
“일단 사람이 앉을 수는 있게 만들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죠?”
“앉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굳이 앉는 용도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대신 그만큼 특색 있게 만들어주셔야죠. 여기가 아니면 어디서도 못 볼 디자인으로요.”
임주미 PD가 또 부담 주는 말로 ‘특색 있는 벤치’를 주문했다.
상상 카페는 가정집을 리모델링한 카페라 마당이 있는데, 그곳에 벤치를 하나 둘 거라나.
작가는 벤치의 필요성에 관해 내게 이렇게 설명했다.
“관광지마다 포토존이 하나씩 있잖아요? 앉아서 사진 찍으라고 만들어놓은.”
“SNS에 올리기 좋은 사진 배경 같은 게 필요하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공식 SNS 계정 있으신 연예인분들은 방송 나갈 때마다 인증샷 찍어 올리시죠. 그런데 대기실 사진만 계속 올리면 좀 심심하잖아요.”
모노크롬은 사진 하나하나가 중요한 아이돌이라 나도 잘 안다.
뭔가 촬영하러 나가면 항상 사진 찍어서 방영일에 ‘본방 사수!’ 같은 멘트를 달아서 올리곤 하지.
그리고 작가의 말대로 방송국에선 스타일링을 마친 상태로 촬영 인증샷을 찍을 수 있는 배경이 한정적이다. 대기실 안, 혹은 대기실 앞.
“그래도 여긴 카페라서 안쪽에도 촬영 스폿이 꽤 많은데요.”
모노크롬도 촬영하러 오면 햇살이 잘 드는 창문 앞이나 바 안쪽 주방에서 매번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안쪽은 넓지가 않아서 제작진들까지 들어가면 사람 안 걸리게 사진 찍기가 좀 힘든 것 같아서요. 그리고 여기 뒤쪽 나무가 단풍이 들면 예쁘대요. 이제 가을이잖아요.”
여름의 기운이 남은 푸릇한 느낌도 좋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가을에 단풍이 들면 벽돌담과 어우러져 더 분위기가 있을 듯했다.
작가는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그리고 나중에 방송을 보신 시청자분들도 찾아와서 사진을 찍으실 수도 있고. 여기에 진짜 카페가 오픈하면 그런 분들 덕분에 매출도 오를 테고. 그런 거죠.”
작가는 전부터 이 상상 카페가 관광지로 바뀌는 미래를 그렸다.
‘……혹시 퇴사하고 이 카페 인수하려고 눈독 들이고 있는 거 아니야?’
방송국 생활이 녹록지 않은 건가.
하긴 이 방송을 담당하는 임주미 PD, 그리고 음악대상 조작에 앞장선 안지택 PD가 있는 방송국이다.
게다가 PD 혼자서 대상을 조작할 수는 없지. 안지택 PD 외에도 눈감아주거나 가담한 사람이 더 있을 터.
거기에 손영식 PD도 가끔 괴랄한 기획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것 같던데…….
‘이런 콩가루 방송국이면 탈출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가.’
그리고 이 벤치 제작에는 관광지 개발 의도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상상 카페>는 한 게스트와의 토크로만 한 회차의 분량을 채우기에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여러 게스트의 촬영 분량을 한 회차에 몰아넣기에는 비효율적이었다.
‘첫 게스트가 천상식 씨였는데, 초반의 화제성을 유지하려면 또 그만큼 다른 방송에선 보기 힘든 사람들을 불러와야 할 테니까.’
임주미 PD의 말로는 ‘흔한 토크쇼로는 안 된다’라나.
처음부터 <상상 카페>는 길지 않게 제작될 예정이었다. 임주미 PD는 이 짧은 시기에 최대한의 결과물을 내겠다는 듯이 게스트 한 명 한 명 섭외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
그래서 부족한 분량을 메뉴 선정이나 재료 준비, 인테리어 등 소소한 카페 운영기로 채웠다.
요즘 현대인들은 살기 바빠서 취미 생활을 하지 못하니 이런 간단하고 다양한 활동들을 보여주며 대리만족을 선사하자는 의도라고 한다.
덕분에 상상 카페는 배명희와 모노크롬의 손을 거쳐서 조금씩 더 완성되어가는 중이다.
“너희 다섯 명이 디자인을 하고, 가장 많은 표를 받은 디자인으로 제작하는 거로 하자.”
“선배님은 디자인 안 하세요……?”
우형이 조심스레 묻자 배명희는 “일은 알바생이 해야지.”라면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셨다.
‘그, 그렇지. 아르바이트생은 사장님이 일을 덜 하려고 고용하는 거지.’
사실 이 규모에 아르바이트생이 다섯 명이나 있을 필요는 없었다.
여기가 진짜 카페였다면 비효율적이지 않을까 생각도 했었는데, 사장 배명희는 그런 생각을 부정하듯이 멤버들을 알뜰살뜰 써먹었다.
상상 카페의 완성도처럼 모노크롬의 생활력도 조금씩 올라가는 듯했다.
“재민이는 디자인 더 안 하나?”
배명희 사장님의 레이더에 은근슬쩍 펜을 놓고 다른 멤버들의 디자인 그림을 구경 중인 재민이 포착되었다.
하지만 재민이 이런 재밌는 작업에 태만해질 리는 없을 터.
재민이 다른 멤버의 디자인을 유심히 지켜본 이유가 있었다.
“하나만 하기 아쉬운데, 디자인 다섯 개를 다 섞으면 안 돼요?”
요리할 때도 항상 준비된 재료를 전부 넣고 싶어 하는 재민은 디자인까지 섞어버리려 했다.
“어떻게 섞어? 등받이 높이가 다 다른데.”
해랑이 자신과 양옆의 다른 멤버들의 디자인을 보며 물었다. 해랑은 키가 커서 그런지 벤치치고 등받이가 높은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각자의 성격과 성향이 다르듯이 디자인도 제각기.
그러나 재민에게는 이 중구난방 디자인들을 하나로 모을 아이디어가 있었다.
“벤치를 길게 만들어서, 등받이를 5분의 1씩 각자 디자인대로 만드는 거야.”
“조각 케이크로 홀 케이크 만드는 것처럼?”
“맞아!”
한이가 먹는 것으로 비유하자 재민은 정확하다며 손뼉을 쳤다.
이 비유를 적극 반영해서 벤치의 이름을 ‘조각 모음’으로 하자는 아이디어까지 나왔다.
‘은근히 서정적이네.’
컴퓨터 용어 같기도 하고…….
“선배님 생각은 어떠세요?”
“너희 마음이 잘 맞으면 멋지게 완성될 수 있지 않으려나.”
배명희도 어떻게 완성될지 궁금하다는 듯 재민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녀의 말대로 사이좋은 모노크롬이라면 의외로 조화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그러나 우형은 생각이 다른지 동생들을 잠시 둘러보더니 혼잣말처럼 말했다.
“저희 팀에 배신자들이 많아서…….”
좀비 서바이벌 이후로 우형의 뒤끝이 시작되고 말았다.
다른 배신으로 좀비 서바이벌 때의 기억을 덮지 않는 이상 언제까지고 마음에 담아 둘 듯했다.
결국 멤버들은 디자인을 취합하여 벤치의 기본적인 틀을 만들기 시작했고, 배명희는 그 옆에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지시를 내렸다.
몰랐는데 목공에도 지식이 있는 걸까.
“선생님은 어떻게 이렇게 잘 아세요?”
“도시에서야 매번 사람 불러서 시키지. 시골에서 생활하다 보면 간단한 건 자연스레 익히게 돼요.”
한이가 “우리는 아직 경험치가 부족한가 보다.” 하며 은근슬쩍 배명희의 옆에 서서 같이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사소한 면에서 몬클하우스는 겉핥기 귀촌 생활이었다는 것을 체감했다.
시골 생활의 달인이 되기에는 너무 짧았지. 몬클하우스의 목적이 전문 자연인이 되는 건 아니지만.
멤버들이 어설프게나마 틀을 잡은 벤치는 전문 목수가 다리를 달고 튼튼하게 보강하여 앉을 수 있는 벤치로 만들어준다고 한다.
오늘의 공예 시간을 마치고 임주미 PD는 다음 촬영 일정에 관해 설명했다.
“정이혁 씨가 나와주시기로 했거든요. 멤버분들이라면 잘 아실 것 같은데…….”
멤버들은 다음 게스트의 이름을 듣고 잠시 기억을 되짚는 시간을 두더니 눈을 크게 떴다.
“혹시, 이터널의 이혁 선배요?”
우형이 동명이인인지, 혹은 자신들이 아는 인물인지를 물었다.
자신들이 아는 인물이라면 굉장히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터널……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아이돌 그룹명인가?’
지금 활동하는 아이돌의 그룹명은 대개 알고 있다.
그중에 ‘이터널’이라는 그룹이 있었던가? 언뜻 들어본 듯도 하고, 아닌 것도 같고…….
‘이터널’이라는 영단어가 있기에 내가 일을 하면서 들어본 건지, 그냥 영어를 들은 건지 기억이 애매했다.
임주미 PD가 애써 섭외해 온 데다가 멤버들이 바로 떠올릴 정도라면 인지도가 없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왜 나만 잘 모르지?
“정말 선배님이 방송에 나오신다고 하셨어요……?”
“그럼요. 납치해서 데려오는 거 아닙니다.”
임주미 PD는 말버릇인지 천상식을 섭외해 왔을 때와 똑같은 대답을 했다.
이런 말을 버릇처럼 할 정도면 무슨 삶을 살아온 거야……?
‘여기서 내가 모르는 티를 내기는 좀 그렇겠지.’
나는 몰래 스마트폰을 들어 검색했다가, 게스트의 이름이 내게만 낯설었던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몇 년 전에 해체한 보이그룹……?’
그는 해체의 위기를 겪었던 모노크롬 멤버들이 몰입할 수밖에 없는 상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