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51화 (351/430)

# 351화

컬러즈는 모노크롬 멤버들이 개인전을 펼치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다.

<아이돌부 방학캠프>의 게임도 단체전이었고, 돌대회에서도 멤버들은 그룹의 대표로 출전했으며, 유아이TV의 작년 귀신의 집 컨텐츠도 다 같이 탈출하는 게 목적이었다.

처음 보는 이기적인 게임 진행에 컬러즈는 ‘하루하루가 새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해랑이가 벌점 5만 점을 받아서 현재 벌점 1위라는 사실도 알게 되면 좋아하겠지.’

원래 배신자도, 벌점 1위도 보통 한이의 포지션. 해랑과는 가장 먼 이야기였다.

벌점은 우형의 말을 안 듣고 장난스러운 행동을 많이 할수록 높았으니까.

그런 벌점 1위 자리를 해랑이 차지하다니. 컬러즈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해랑이 예능 면에서 성장한 것을 체감하며 크게 기뻐할 것이다.

하범 덕분에 해랑을 많이 접한 SPID의 팬덤, 스피디도 해랑의 이런 모습을 보고는 깨달음을 얻었다.

━━━━━━━━━━━━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역시 우리 하범이 스피드 정신!

└야 너 앞에 혼잣말처럼 너무 길게 써놨잖앜ㅋㅋㅋㅋㅋㅋ

└우리 애 혼자 튀는 거 아닌지 걱정했는데 다들 만만치 않아서 좋다!

└사실 하범이랑 친구분이랑 성격 많이 다른 것 같아서 어케 글케 친해졌지? 궁금했는데 이제 좀 알 것 같음 ^^

└ㄹㅇㅋㅋㅋㅋㅋㅋ

━━━━━━━━━━━━

‘그러고 보니 SPID는 <아이돌부 방학캠프>에서도 바로 포인트 탕진하고 여기저기 빌리러 다녔었지.’

SPID는 ‘한 번 살고 가는 인생 즐겁게 살자’ 타입이었다. 해랑은 멤버들을 굴려서라도 충실하게 포인트를 벌고자 하는 타입이었고.

그런 두 사람이 어쩌다 이번 컨텐츠에서는 마음이 잘 맞아 멋진 이기주의를 보여주었다.

컬러즈도 스피디도 좋아하는 것을 보니 나중에 공개될 피처링 곡의 반응도 괜찮을 듯했다.

좀비 컨텐츠에서 가장 크게 이미지 변신을 한 것은 해랑이었지만, 주인공은 또 따로 있었다.

━━━━━━━━━━━━

자기돌 좀비 돼서 좀비편 이겨라 하던 사람들 복실이 보더니 다 복실이 응원함 ㅁㅊㅋㅋㅋㅋㅋ

└아이돌 10명 쌈싸먹는 복실이 존재감;;

└갓아지는 킹쩔수가 없잖아요

└원래 명절마다 시골강아지들 사진 퍼져나가는 속도 보면 수요 아이돌 못지않음

━━━━━━━━━━━━

‘역시 사람들은 강아지를 좋아해.’

우리는 복실이를 데려다주면서 복실이가 애용하는 개구멍을 찾을 수 있었다.

이웃 할머님은 밤에는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 위험할 수 있으니 구멍을 막아놓겠다고 선언했다.

복실이의 일탈이 가로막힌 건 미안하지만…… 낮에는 보호자의 감시 아래 잘 돌아다닌다고 하니까 괜찮겠지.

‘나중에 강아지 간식이나 영양제라도 많이 선물해 줘야겠어.’

복실이 덕분에 각 그룹의 팬 외에도 영상을 보러 오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강아지가 사람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리 없으니, 이번 컨텐츠가 극본 없이 애드리브로 진행되었다는 점이 증명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다.

물론 강아지 배우들도 있지만 복실이는 몬클하우스 컨텐츠에서도 몇 번 언급된 적 있는 현실 이웃 강아지였다.

복실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재민에게 물어보니, 좀비들이 진을 치고 있는 길 사이로 복실이가 유유히 걸어 다니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가 번뜩였다고 한다.

‘예능신이 돕는 것도 예능 레벨의 영향인가?’

웃수저라는 말이 있잖아.

예능신의 축복을 받아 시선을 끌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고, 더 많은 활약을 하면서 예능 경험치가 오르는 선순환.

‘그럼 해랑이는 예능 면에서 성장하기 더 어려워지는 거 아닌가…….’

그러나 ‘얼굴이 유잼’이라면서 매력도만 주목받고 넘어가리라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좀비 서바이벌 영상이 올라간 직후 해랑의 예능 레벨이 올랐다.

***

해랑은 드디어 예능 레벨2의 오명을 벗게 되었다.

마이 엔터에서 레벨 2면 체감상 연습생이나 신인의 데뷔 최소 능력치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 단계를 넘은 것이다.

‘7년 차에 드디어……!’

연예대상 수상자인 원만호도 올리지 못한 예능 레벨.

그것을 해랑은 스스로 끌어 올렸다. 감격스러운 성장이었다.

좀비 컨텐츠 촬영 이후로 해랑은 멤버들에게 가끔 한이와 비슷한 취급을 받고는 했다.

“형. 나도 물 떠다 줘.”

“네가 떠 마시면 되잖아.”

“형 벌점 5만 점 청산해야지.”

“시끄러워. 4만 8천 점 유한이.”

벌점 1위 자리를 해랑에게 넘긴 한이가 빈 물병을 내밀었으나 해랑은 무시했다.

한이나 해랑이나 벌점은 비슷했기에 굳이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 않은 듯했다.

한이는 해랑에게 떼를 써도 통하지 않았지만, 준해라면 달랐다.

“좀비 때부터 해랑 형이 냉정해진 것 같아.”

“…….”

인질로 잡힌 준해에게 총을 겨눴던 것은 양심에 찔렸던 걸까. 해랑은 말이 없었다.

해랑몰이를 하던 한이와 준해는 시선을 느꼈는지 내 쪽을 흘끔거렸다.

“두목님이 형 쳐다보시는 것 같은데?”

“해랑 형이 당하는 게 재밌으신가 봐…….”

“그래. 형 지금까지 혼자 너무 안 당했어.”

저들끼리 무어라 속닥이는 듯했지만 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본인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면 훈훈한 장면이었다.

이제 능력치 중 예능 레벨이 가장 낮은 해랑이 아니다. 예능 레벨과 연기 레벨이 같이 낮은 해랑으로 진화했다.

‘……아니. 표현법이 이상했어.’

현재 해랑의 예능 레벨과 연기 레벨은 3.

11인 매력 레벨을 12로 올리는 것보다, 3을 4로 올리는 것이 훨씬 쉬울 것이다.

7년 차가 될 때까지 2로 유지될 정도면 변화가 거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희망이 생겼다.

해랑의 성장 속도라면 기대할 만했다.

“다음에도 서바이벌을 한번 해야 할까 봐.”

서바이벌 예능에서 해랑이 제대로 활약했고 멤버들의 캐릭터도 제법 재밌었으니 한 번 정도는 더 기획해 봐도 좋지 않을까?

내가 혼잣말하듯이 작게 내뱉자 재민이 그 말을 바로 캐치했다.

“서바이벌이면 무인도도 좋아요. 나무 주워서 불 피우고, 잠자리 만들고.”

“현실적인 서바이벌이네.”

예전에 팬미팅에서도 ‘무인도에서 가장 잘 살아남을 것 같은 멤버는?’이라는 주제로 앙케트를 받은 기억이 있었다.

컬러즈의 앙케트 결과가 맞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

목청 큰 한이의 ‘살려주세요!’ 기술이 있으니까 다들 구조대가 올 때까지 잘 살아남을 수 있겠지.

옆에서 서바이벌이라는 소리를 듣고 생각이 많아 보이던 우형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중얼거렸다.

“엄청 춥거나 더울 때가 아니라면 무인도 정도는 괜찮을지도…….”

바로 직전에 좀비 아포칼립스를 경험한 탓에 무인도는 비교적 괜찮게 느껴진 듯했다.

하지만 재민의 머릿속에는 다른 그림이 있었다.

“그리고 밤에는 살인마가 나타나요.”

우형은 질색하는 얼굴로 재민의 입을 막았다.

외부로 나갈 수 없는 폐쇄적인 환경에서 살인마와 숨바꼭질이라니.

좀비는 판타지 느낌이 강해서 괜찮은데, 살인마는 현실에 나타날 수도 있는 게 무섭잖아. 강아지 수법도 안 통할 것 같고.

“살인마가 나오면 연령 제한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것보다는 귀신이 낫겠어.”

“……이사님 정말 공포 영화 별로 안 좋아하세요?”

우형이 이전에 ‘뉴마에 공포 요소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라는 류현의 말을 전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게 설마 나였나?’

생각해 보면 그렇게 오해받을 만한 일들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난 공포보다는 힐링 컨텐츠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가끔 공포나 스릴처럼 긴장되는 컨텐츠를 조미료처럼 추가해야 힐링이 더 아늑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내가 웃음으로 얼버무리자 우형은 반쯤은 포기한 듯한, 반쯤은 간절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

요즘 대표는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내 집을 들락날락했다.

매일 이어지는 안일한 일상에 스릴을 선물해 주고 싶었던 걸까.

‘가끔 긴장되는 컨텐츠가 있어야 힐링이 더 돋보이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내 일상이 그러기를 바란 건 아니었어.’

그러나 집에 들어왔을 때 불이 켜져 있는 경험을 몇 번 했더니 이제 나도 매번 깜짝 놀라지는 않았다.

퇴근했을 때 누군가 있으면 와 있구나, 없으면 없구나 생각하면 되었다.

“여긴 체크인, 체크아웃하면서 원하는 대로 숙박하는 호텔이 아니야.”

“내가 해외로 안 나갔으면 여긴 그냥 내 집으로 쓰였을 텐데 뭐 어때.”

들어올 때는 ‘내 집’이고, 나가면서 분리수거 좀 하라고 하면 ‘네 집’이었다.

이곳을 관리인이 상주하는 작업실 정도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대표가 해외로 떠나지 않았으면 난 이 집에 오자마자 대표를 마주쳤으려나?’

그랬다면 나는 이곳이 저승이라고 생각했겠지. 내 육신과 영혼이 분리되어서 눈앞에 내가 보이는 줄 알고.

아니면…… 애초에 내가 이 세계에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표가 해외로 나간 것에는 아마도 도피하려는 의도가 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표가 도피하지 않고 상황을 직시하고자 했다면, 모노크롬의 음악대상 퀘스트를 대표가 받았을 수도 있겠지.

‘아니, 그 세계관에선 모노크롬이 해체까지 몰리지 않았을 테니 음악대상 퀘스트가 아니었을 수도 있어.’

어쨌든 이곳이 내 집이 되었고 내가 모노크롬의 퀘스트를 수행하게 된 이상 이런 상상은 그냥 상상일 뿐이었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바꾼 복수를 지금 하면 좋겠지만, 그랬다가는 대표가 ‘사람에게 거부당했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대표의 멘탈을 자극하면 안 되는 지금은 키우기 어려운 식물처럼 섬세한 관리가 필요했다.

“할 말이 있으면 전화로 해도 되는데. 심심해서 오는 거야?”

대표는 뉴레인을 관리하기는 해도 회사로 출근하지는 않으니까 아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을 테고.

대표 신분으로는 따로 만날 사람이 없으니 자꾸 이곳에 출몰하는 걸까.

그러나 대표도 나름대로 찾아온 이유가 있었다.

“걔, 레드가…….”

“레드?”

“아이리스 정규 앨범을 내고 싶대.”

대표에게 원하는 게 있으면 지금 말하라고 했는데 잘 전달했나 보네.

레드는 아마 이전에는 내게 왔던 아이리스의 퀘스트처럼 앨범이든 싱글이든 상관없이 음반 제작을 원했을 것이다.

그게 정규 앨범이라는 뚜렷한 목표로 바뀌어 있었다.

리더답게 승부수를 던지는 모습에 흐뭇함을 느끼며 나는 대표와 마저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럼 내주면 되잖아? 정규 앨범.”

“기획실에 제작 진행해 보라고 말해두겠다고 하니까 그건 싫다잖아.”

그래서 나한테 고민을 상담하러 찾아왔다는 말이었다.

나와 대표와 레드 사이에는 읽씹의 트라이앵글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마음이 열린 대표가 드디어 레드에게 답장까지 해 준 모양이었다.

거기서 레드는 대표의 답장을 겨우 받아내고도 ‘싫다’라고 말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이번이야말로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확실히 주장을 관철할 생각인 듯했다.

“정확히 뭐라고 말했는데?”

“기획실에 권한을 넘겨둘 테니까 기획실이랑 말해보라고 했어. 그랬더니 예전처럼 아이리스한테 맞는 앨범을 내고 싶대.”

대표도 이 세계에 와서 아이리스의 음반을 낸 적이 있다. 모노크롬과 컴백 시기가 겹칠 뻔했던 그 앨범.

해외 스케줄을 돌리기 위한 포석이었는지 해외에서 인지도를 쌓았다는 프로듀서 등 인력도 빵빵하게 섭외해서 만든 앨범이었다.

‘덕분에 송 피디님을 뉴마로 데려올 수 있었지.’

그런데 레드는 그런 방식은 싫다고 했다.

“그건, 네가 직접 맡아줬으면 하는 거야.”

“내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