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49화 (349/430)

# 349화

이 세계가 현실이 되고, 이곳의 신주인으로 사는 것이 대표의 보상.

‘이 세계가…… 다시 게임이 돼?’

의견 하나 내지 못하고 회사에 휘둘리는 아티스트. 윗선의 지시만 전적으로 따르는 직원들.

미친 보컬 장인 플레이어에게 걸려 40년 동안 보컬 트레이닝만 받은 아티스트도 회사를 고소하지 못하는 그 반인륜적인 게임 속 세계.

모노크롬 또한 그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계약 기간 만료 후에 독립하려는 계획도 불가능할지도 몰라.’

모노크롬의 재계약 기간은 1월 1일까지.

만일 그 전에 대표가 퀘스트를 포기해 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어쩌면 게임 시스템의 영향을 받아 모노크롬도 뉴마에 남게 될지도 모른다.

마이 엔터에서는 아티스트가 자발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없으니까.

‘내가 음악대상 퀘스트를 성공시키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서 다시 플레이어가 된다면 모노크롬을 해체시켜서 뉴마를 떠나게 할 수 있겠지만…….’

대표에 의한 강제 해체라는 게 좋은 그림은 아니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는 모노크롬에게 활동을 이어나가지 못할 문제가 생겨서 해체하는 식으로 반영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일 음악대상 퀘스트에 실패하면? 플레이어 신주인이 없으면 모노크롬은 영원히 뉴마에 갇히게 되는 거야?

마이 엔터의 퀘스트 창에는 성공 보상만 표시되고 실패 페널티는 따로 표시되지 않아서, 나쁜 경우의 수를 떠올려보자면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다.

‘어쨌든 이 세계가 게임으로 남는 게 절대 좋을 리가 없어.’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아도 이건 명백한 사실이다.

이 문제의 키는 대표가 쥐고 있다. 그러니 대표와 더 깊이 대화를 나눠볼 필요가 있었다.

“왜 포기할 생각을 해? 계약 파기 위약금을 못 받게 돼서? 어쨌든 다른 대비책도 세워놓으려고 신인을 키우는 거 아니었어?”

물론 내가 위약금 계획도 방해했고 신인 기획에도 멘토스를 던져 넣긴 했지만…… 그건 나쁜 짓을 생각한 대표가 잘못이잖아.

또한 내가 나서기 전에 아이리스가 먼저 해외 활동을 거부했다.

대표의 계획은 애초에 수월하게 이뤄질 수가 없었다는 뜻이다.

플레이어 입장에만 익숙한 대표는 그걸 몰랐던 모양이지만.

내가 이유를 묻자 대표는 퀘스트가 이미 끝나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쨌든 아이리스는 계약 기간이 끝나면 회사를 나갈 거잖아.”

“안 나갈 수도 있잖아?”

“아니. 나갈 거야.”

“왜 그렇게 단정을 지어?”

아이리스랑 직접 만나본 적도 없으면서.

내심 나가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대표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레드는 계속 회사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다. 그러니 대표에게 회사를 나가겠다고 협박을 하진 않았을 테고.

아이리스가 변한 게 아니라면 대표의 심정이 변화했다는 건데…….

“이제는 아이리스한테 미안한 행동을 한 걸 좀 알겠어?”

“…….”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찔리는 모양이었다.

레드에게 직접 연락을 받은 것이 큰 심경의 변화를 불러온 듯했다.

대표는 자신을 세뇌하듯이 아이리스를 게임 캐릭터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야 아티스트의 인권을 무시하고 회사를 운영해도 죄책감을 덜 수 있으니까.

그런 마음으로 아이리스를 회사의 돈벌이 도구로 굴리다가 계약을 파기하도록 종용하기까지 했는데.

‘이제야 그 장본인들이 단순한 게임 캐릭터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된 거겠지.’

굳게 믿어온 신념이 깨질 때만큼 사람이 불안해지는 순간은 없다.

그래서 대표는 앞으로 퀘스트를 제대로 진행할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에까지 도달한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티스트를 신경 쓰게 된 이상, 앞으로는 지금까지 고수해 왔던 운영 방식을 버리고 아예 다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할 테니까.

새로운 학문에 발을 들인 듯이 막막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니까 왜…….”

업보를 쌓았느냐고 탓하려다가 다시 목구멍 안으로 삼켜버렸다.

지금은 비난하지 말고 천천히 대화를 나누자.

어쨌든 대표의 이런 생각들이 죄책감에서 기인했다면 나쁜 징조는 아니다.

지금이나마 인간성을 되찾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늦은 건 아니니까.

그렇다고 빠른 것도 아니지만…… 이제라도 깨달은 게 어디야.

그러나 대표는 멘탈이 불안정해진 탓에 좋은 판단을 할 수가 없는지 이전과 똑같은 소리를 했다.

“뉴레인에 모노크롬 데려오면 안 돼?”

저번엔 반협박에 가까웠는데, 이번엔 확실한 부탁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수없이 많았다.

“일단, 모노크롬이 뉴레인에서 새로 계약한다고 해도 퀘스트 기간이 연장될지는 불확실하잖아.”

“…….”

“그리고 만일 모노크롬을 새로 계약시켜서 퀘스트 기간이 연장됐다고 쳐. 그러고도 달성이 어려울 것 같으면, 그때도 또 계약 기간을 늘려? 대상이 확실해질 때까지 계속?”

대표가 이전에 한 말이 있었다. 가식은 한 번 버리면 그다음부턴 쉽다고.

만일 내가 한 번이라도 이 방법을 쓴다면, 다음엔 더 쉽게 같은 방법을 택하게 되겠지.

성공할 때까지 내 마음대로 1년, 2년 퀘스트 기간을 계속 늘린다면 그게 게임 플레이어와 뭐가 다를까.

‘내 마음이 언제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고.’

기회가 한 번뿐인 시험과, 앞으로도 몇 번이나 다시 칠 수 있는 시험이 있으면, 당연히 사람들은 기회가 한 번뿐인 시험을 더 열과 성을 다해서 준비하겠지.

‘이번이 힘들면 다음에 하지, 뭐.’라는 마음으로 음악대상을 노린다면 지금과 같은 절실함은 없어질 것이다.

결국 마지막은 모노크롬이나 나나 음악대상을 바라는 마음이 희석되어서, 퀘스트까지 흐지부지되는 결말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너는 잘 모르겠지만 모노크롬이 예전에 뉴마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때 뉴마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뉴레인으로 옮겨 갔잖아? 다시 그 환경에 몰아넣는 건 못 할 짓이지.”

“그래도 뉴레인 직원들 말 잘 들어…….”

“그건 대표한테나 그런 거고.”

뉴레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얼마나 속을 썩였는데, 대표한테는 그냥 ‘말 잘 듣는 애들’이었냐고.

아무도 말을 들어주지 않는 상황에 트라우마가 있었으니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들에게 더 마음이 열린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표와 나의 인식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을 체감할 줄은 몰랐다.

‘이래서 회사 윗사람들이 일 잘하는 사람보다 아첨 잘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쏠리곤 하는 건가.’

아무튼, 아티스트를 위해 일하는 사람 관점에서 뉴레인은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네가 아이리스를 해외로 돌리던 것도, 신인 데뷔조를 조작하려 한 것도 전부 그 직원들이 동의하고 앞서서 처리했던 일인데?”

아이리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면, 뉴레인이 아티스트에게 얼마나 좋지 않은 회사인지는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이 맞았는지 대표는 입을 다물었다.

대표의 말대로 모노크롬을 뉴레인과 계약시키려면 이렇게 문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쨌든 내 말은 잘 들으니까 내가 좀 다르게 일을 시키면…….”

“뉴레인을 바꿀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아이리스를 키워. 아이리스가 바라는 게 바로 그거야.”

소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는다고 하던가.

모노크롬을 데려오겠다고 꺼낸 미끼였겠지만 그게 바로 돌파구였다.

“아이리스 착한 애들이야. 너를 그렇게 싫어하지 않아.”

대표의 마음은 내가 가장 잘 공감해줄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모노크롬을 뉴레인에 넘기는 것보다 더 확실한 해결법이 있다.

바로, 대표가 포기하지 않게 설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추측이지만 퀘스트라는 건 과정도 중요한 것 같으니까.’

모노크롬이 인지도를 쌓아가고, 아이리스의 마음이 단단해져서 해체 위기를 벗어난 것처럼.

대표에게 맞는 루트는 아마 이곳을 현실로 생각하고, 이곳의 사람으로서 충실히 사는 게 아닐까.

언젠가 대표의 신분과 책임은 버리고 새 삶을 살게 될 거라면서 막 나가는 게 아니라 말이다.

이제는 좀 이야기를 들어줄 용의가 생겼는지 대표는 ‘그럴 리 없어!’라며 내 이야기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아이리스가 착하다는 것도 너한테만 그런 거 아니야?”

뉴레인의 직원들이 대표에게만 잘하듯이 아이리스 멤버들도 그런 게 아니냐며 의심하기는 했지만.

하지만 아이리스가 대표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계속 느끼고 있었다.

“너보다는 내가 아이리스랑 대화를 많이 해봤잖아. 오히려 널 걱정했어.”

그 걱정이 사이비에 빠져서 어떡하냐는 걱정이지만…… 그 이야기는 지금 할 필요 없겠지.

예전엔 아이리스를 잘 챙겨주던 대표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을 아이리스에게 설명하려다가 사이비 종교 이야기로 얼버무렸는데 마침 잘되었다.

덕분에 아이리스는 대표가 아이리스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나쁜 지인에게 휘둘린다고 생각했다. 갱생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늦은 건 없어. 포기하는 것도 선택지 중 하나일 수는 있지만, 열심히 해보고 나서 포기해.”

나는 과거에 사로잡힌 신주인에게 그렇게 말했다.

***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나니, 나의 현실 복귀 보상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퀘스트 보상이 퀘스트 수행 중에 이뤄가는 것이라면, 나는 이 세계에 정을 붙이지 않고 미련 없이 돌아가는 걸 목표로 삼았어야 했던 걸까?

‘그랬다면 아마 모노크롬을 게임처럼 마구 돌렸겠지.’

대표가 아이리스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 세계에 남아야 하는 대표는 플레이어 입장을 고수하고, 이 세계를 떠나려 하는 나는 이 세계에 몰입하고.

이렇게 되면 대표와 내가 서로 바뀐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대표와 나는 같은 사람이니까 바뀌었다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이야기는 파고들수록 머리가 엉망진창이 되는 것 같아.’

어쨌든 나는 이 세계에 대표, 아니, 신주인을 남겨두고 가는 것을 목표로 삼기로 했다.

내 존재가 한순간에 홀랑 사라지는 것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엔딩이다.

그렇긴 한데 마지막을 생각하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게 얼굴에 드러났는지 출근길, 최 비서가 내 표정을 살폈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응? 무슨 일이 있긴 했는데 나쁜 일은 아니고…… 따지자면 좋은 일이긴 한데.”

우리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자꾸 나타나서 힘들었는데 가장 근처에서 방해하던 대표가 갱생할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으니 좋은 일이지.

대표가 마음을 바로잡는다고 해서 음악대상 퀘스트에 큰 도움까지는 안 되겠지만, 방해를 안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했다.

그리고 최 비서 앞에서 대표 생각을 하다 보니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대표가 최 비서 보고 처음에 기분 나쁘다고 한 거 있잖아……. 최 비서가 기분 나쁘다는 소리가 아니라 그냥 누가 자기한테 먼저 아는 척하면서 다가오는 게 싫었던 거래. 최 비서가 잘못한 게 아니라, 직전에 그거랑 관련해서 좀 안 좋은 일이 있었거든.”

오해는 풀어야지.

나도 대표를 사이비 종교 신봉자로 오해받게 만들긴 했지만 그건 필요에 의한 거였고, 이건 다르다. 최 비서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테니까.

내가 느닷없이 대표의 이야기를 꺼내자 최 비서가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대표님이…… 또 찾아오셨습니까?”

“응. 찾아와서 대화를 좀 나눴어. 이번엔 이야기가 좀 잘 풀릴 것 같아.”

단순히 찾아온 것뿐만 아니라 돌아가지를 않았다. 원래 자기 집이었으니까 자기가 있어도 된다면서.

물론 지금 집주인은 나니까, 침대는 양보해주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에도 대표는 소파에서 출근하는 나를 지켜봤다.

‘원치 않게 집에 고양이가 한 마리 생긴 기분이야.’

집주인 행세를 한다는 게 문제지만…… 고양이가 주인이고 사람이 집사라고도 하잖아?

어차피 나의 분신이기에 귀엽게 느낄 구석은 없지만, 사람치고 말을 잘 듣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사람보다는 동물을 집에 들인 기분이 들었다.

회사에 도착한 나는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마침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배우팀의 권 실장과 마주쳤다.

‘이 사람…….’

그의 얼굴을 보니 배우팀에 관해 대표와 대화한 내용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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