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8화
좀비 서바이벌이라는, 여름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컨텐츠 촬영을 끝내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평소처럼 작업실에 앉아 있는 우형을 보니 문득 예전에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프로듀싱 앨범은 잘 이야기 돼 가?”
분명 우형은 모노크롬 라인의 메보들이 몬클하우스에 모인 김에 프로듀싱 앨범을 설명하겠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그날 촬영이 끝나고 바로 서울로 돌아간 이들도 있었고 몬클하우스에서 묵고 간 이들도 있었다.
좀비 서바이벌을 펼치는 바람에 다 모아놓고 설명할 시간이 좀 줄어들지 않았나?
그런 걱정이 이제야 들어서 물어보니 우형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어, 네. 원래 관심 있어서 모인 애들이라 다들 좋다고는 하는데.”
“하는데?”
“자꾸 앨범 컨셉이 좀비나 세상의 종말이냐고…….”
“으음…….”
앨범 얘기를 하겠다고 불러와선 좀비에게 쫓기게 했으니.
좀비 컨셉을 위해 몸소 체험시켜준 것 같아졌잖아.
‘우형이도 좀비가 나올 줄은 예상 못 했을 텐데. 내가 미안해야 할 일인가…….’
그러기에는 공범이 너무 많았다.
우리는 일정 조율이 필요하다고 각 소속사 담당자의 연락처를 받아와서 아티스트들 모르게 좀비 서바이벌 촬영 허락을 받았다.
재밌겠다면서 아티스트를 기꺼이 좀비 세계관으로 밀어 넣은 이들이 있었기에 무사히 컨텐츠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어쨌든 다들 프로듀싱 앨범에는 긍정적이라고 한다.
앨범 설명 기회가 다른 좋은 기회로 바뀌었고 결국 둘 다 잘되었으니 좋은 게 좋은 거 아닐까. 그런 마음을 담아 우형에게 말했다.
“그런데 좀비 컨셉도 나쁘진 않다.”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스테디 소재가 된 거잖아?
매년 영화나 만화, 게임 등 좀비 소재의 창작물이 꾸준히 나올 정도로 마니아층이 단단하게 확립되어 있다.
하지만 우형은 생각이 조금 다른지 어깨를 떨었다.
“거기서 작곡의 영감을 받기에는…… 좀비 쫓아오는 게 너무 무서웠어요. 좀비 영화 볼 때마다 생각날 것 같아요.”
“그래? 하긴 사람들도 좀비에 쫓겨본 적이 있으면 영화를 영화로 제대로 못 즐기겠다.”
아이들이 공룡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공룡이 자신을 해치지 못할 것을 아니까 순수하게 공룡을 사랑할 수 있는 거지.
어쩌다가 좀비로 화제가 흘러갔는데, 우형이 뭔가 떠오른 것처럼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그날 류현이가 그랬는데. 뉴마에 공포 좋아하는 분이 계신 것 같다고…….”
“류현이?”
좀비 영화를 포함해서 모든 영화를 좋아하는 재민이라면 있는데.
‘뉴마’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모노크롬 멤버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듯했다.
우리 회사에 공포를 좋아할 만한 사람이라면…….
“윤희 씨인가?”
“…….”
사람이 죽거나 죽기 직전까지 가는 영화를 즐겨 본다고 했으니까, 이미 죽은 사람이 나오는 공포 영화도 꽤 즐겨 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서 대답했는데 우형은 어쩐지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사님은 공포 영화 안 좋아하세요……?”
“글쎄. 막 즐기진 않은데.”
아이리스의 싱글 컨셉을 연구할 때도 웬만하면 사람이 있는 회사에서 레퍼런스를 찾고는 했다.
혼자 있는 집에서 공포 영화를 검색하는 건 제법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공포 영화를 나서서 즐기는 타입은 절대 아니었다.
“이사님은 귀신이나 좀비에도 강하실 줄 알았어요.”
“그래?”
우형의 머릿속에선 내가 그런 캐릭터로 해석되고 있었나.
‘귀신에 강하진 않고…… 귀신 그 자체였던 적은 있는데.’
멤버들이 목격한 귀신이 알고 보니 플레이어 시절의 나였던 일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세계에서 가장 무섭게 느껴지는 건 과거의 나였다.
업보를 마주할 때마다 그 사실을 절절히 느껴왔다.
“역시 귀신보다는 사람이 무섭지.”
“그렇죠…….”
이전에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집에 모르는 귀신보다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게 더 무섭잖아?
나도 모르는 사람은 아니지만 집에 예상치 못한 사람이 있었던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근 몇 년간 그렇게 소스라치게 놀란 기억은 없었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과거의 망령이 앞을 얼쩡거리니. 나한테는 이 세계 자체가 공포 세계관이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과거의 망령이 예상치 못하게 또 집에 들어와 있는 일이 생겼다.
***
“너 뭐야. 대체?”
불도 안 켜고. 어둠의 자식이야?
어두운 거실에 커다란 형체가 움직여서 저번보다 더 깜짝 놀랐다.
아마 밝을 때 들어왔다가 해가 서서히 저무니까 눈이 익숙해져서 불을 켤 생각을 못 한 모양이었다.
내가 거실 전등을 켜자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대표가 할 말이 있는지 입을 어물어물했다.
“너…… 알고 있었어?”
“뭐를?”
“퀘스트 말이야.”
퀘스트?
현재 나도, 대표도 퀘스트를 수행 중이다.
서로가 무슨 퀘스트를 진행하는지 알고 있으니 지금 와서 새롭게 대화할 거리는 없었다.
그러나 대표는 우리의 퀘스트에 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퀘스트가, 아무래도, 아이리스가 하고 싶은 게 나타나는 것 같은데.”
“아이리스 퀘스트를 받았어?”
모노크롬은 음악대상 퀘스트 이후로 퀘스트를 발생시킨 적이 없어서 나도 퀘스트 시스템의 존재를 종종 잊고는 한다.
‘그런데 대표는 이 세계에 와서도 계속 아이리스의 퀘스트를 받아왔던 건가?’
생각해 보면 내가 게임을 플레이할 때도 아이리스의 퀘스트는 종종 받아왔지. 다르게 말하자면 아이리스가 계속 퀘스트를 발생시켰다는 이야기다.
대표와 내가 이 세계에 들어왔다고 그 사실이 변할 이유는 없었다. 멀쩡히 퀘스트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고.
‘얼마 전에는 아이리스의 퀘스트가 내게 뜬 적이 있었지만…….’
그건 아이리스가 당시에 벼랑 끝에 몰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표가 아니라도 좋으니 누구든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나에게까지 닿은 거지. 나도 아이리스의 소원을 들어주던 대표였으니까.
만일 대표가 아이리스의 퀘스트를 계속 받고 있었다면, 퀘스트를 성심성의껏 수행해왔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데 하는 말을 들어보니 퀘스트가 아이돌의 소원이라는 걸 바로 얼마 전에야 깨달은 모양이었다.
“예전부터 자꾸 음반 제작 퀘스트 같은 게 와서.”
“무시했어?”
“…….”
나는 여기 와서 끝없이 업보를 청산하고 있는데, 대표는 왜 반대로 업보를 새로 쌓고 있는 거니.
게임 할 때 아이리스는 잘 챙겨주는 편이었으니 처음엔 업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을 텐데.
대표도 이제는 좀 잘못을 아는지 대답을 안 하고 자기 할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이번엔 갑자기 뮤직비디오 일정 조회 수 달성 퀘스트가 온 거야.”
가장 최근에 나온 뮤직비디오일까.
조회 수 꾸준히 잘 오르고 있지. 아이리스에게는 의미 깊은 활동이었고.
지표가 잘 나오니 아이리스도 조회 수가 더 올랐으면 하는 목표가 생긴 모양이었다.
‘그런데 퀘스트 내용만 보고 퀘스트가 아이돌의 소원이라는 걸 알아챘다고?’
그것도 대표가 이 세계에 온 지도 꽤 시간이 지난 이 애매한 타이밍에?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대표가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걔……가 계속 뮤직비디오를 봐 달라고 메시지를 보냈었어.”
“걔라면, 레드?”
“응.”
아. 레드가 대표에게 영상 링크를 보내면 봐줄까 내게 물어본 적이 있었지.
레드는 다른 사람들이 봐주는 것도 좋지만 대표가 직접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큰 듯했다.
“나한테 홍보해서 조회 수를 올리려는 건가 해서 무시했는데.”
“…….”
설마 너 한 명이 몇 번 본다고 조회 수가 유의미하게 오르겠냐고.
팬들도 그 많은 인원이 모여서 로그인도 풀고 일정 시간마다 쿠키도 삭제하고 시크릿모드로 접속해 가면서 하루 종일 스트리밍하는데.
대표는 지시만 해서 그런지 이런 실무에는 정말 무지한 듯했다.
그러나 그나마 대화를 좀 이어나가려는데 내가 지금 대표를 탓하면 입을 다물어버릴 것 같아서 나는 가만히 대표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조회 수 달성 퀘스트가 왔어. 그걸 달성하면 날 덜 귀찮게 할 것 같아서, 마케팅부에 시켜서 뮤직비디오에 프로모션을 걸었거든.”
“잘했네.”
아이리스의 팬덤, 무지개들은 ‘활동 시기도 아닌데 왜 갑자기?’라고 생각했으려나.
아니, 뉴레인이 이제야 좀 조회 수를 신경 쓰는구나 싶었으려나.
어쨌든 돈을 들이는 건 좋은 일이고, 조회 수 상승 추이가 좋으니 프로모션으로 노를 저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시기나 규모는 작아지겠지만 팬 개인이 특정 영상에 프로모션을 걸기도 하는데, 회사가 그러는 게 이상하진 않지.
“그러고 나니까 또 음반 제작 퀘스트가 왔어.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걔가 하는 말이랑 퀘스트 내용이랑 비슷한 거야.”
“음…….”
그렇게 된 거군.
그러니까 내가 레드에게 대표의 연락처를 넘겼고 그 탓이라고 해야 할지,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대표는 레드와 직접 소통하게 되었다.
그래서 대표도 이제야 아이리스의 마음이 어떤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게 퀘스트 내용과 연결된다는 것도.
‘그러고 보니 레드가 최근에 내게 연락하는 빈도가 줄어들었지.’
내게 너무 상담만 하는 것 같다며 미안해하기는 했다. 나는 아이리스의 일에는 지대한 관심이 있으니 괜찮다고 했고.
그나마 요즘은 대표가 반쯤 손을 놓은 탓에 아이리스도 자율권을 조금 얻게 되었다.
그래서 레드가 뭔가 스스로 해보겠다며 의욕을 불태우던 게 바로 얼마 전이었는데.
그사이에 대표를 열심히 압박하고, 대표가 퀘스트를 수행하게 만드는 성과를 낸 모양이었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네.’
나도 조금 안심하려는데, 대표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퀘스트에 기한이 없다고 영원히 남아 있는 건 아니잖아. 너도 플레이해서 알겠지만.”
“그렇지.”
퀘스트 창에는 그룹이 데뷔할 때부터 발생한 퀘스트 목록이 무한히 쌓여가는 게 아니었다.
데뷔 때 소원을 5년 차일 때 이뤄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래서인지 퀘스트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달성할 수 없게 사라지고는 했다.
마이 엔터의 유저들은 달성 가능성이 남아 있으면 조금 더 오래 남고, 달성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되면 사라지는 것 같다고 했지만 기준이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다.
‘나도 대표처럼 퀘스트가 아이돌의 소원이란 것만 알아냈지. 더 자세히는 모르는데.’
모노크롬은 퀘스트를 발생시키지 않아서 더 연구할 거리가 없었다.
퀘스트의 정체도 아이리스의 퀘스트를 수행하다가 알게 되었으니.
그런데 퀘스트가 아이돌의 소원이라면…… 퀘스트가 없어졌다는 건 소원이 사라졌다는 뜻이잖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해서 마음을 접었다는 뜻이다.
“그럼 내 퀘스트는?”
“네 퀘스트?”
그러고 보니 대표는 내 스마트폰으로 퀘스트 보상까지 확인했겠지만, 나는 대표에게 전해 들은 퀘스트 내용밖에 알지 못한다.
대표의 퀘스트에는 기한이 없나?
하긴 음악대상 퀘스트에 2년이라는 기한이 있는 게 특이 케이스에 가까웠지.
대표는 참담해진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포기해서 퀘스트가 실패로 끝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건데.”
비인륜적인 방식으로 무리해서 퀘스트를 달성하려고 하기에 마음이 조급한 줄은 알았는데.
설마 포기할 생각까지 할 정도로 멘탈이 위태로운 줄은 몰랐다.
‘대표의 퀘스트가 실패로 끝나는 상황…….’
대화를 이어나가려면 더 자세히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네 퀘스트는 보상이 뭔데?”
대표는 체념한 듯도 하고 지친 듯도 한,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얼굴이 되었다.
2년 전, 거울을 볼 때마다 마주했던 얼굴과 비슷한 표정이었다.
“……이 세계가 현실이 되는 거.”
아직 대표는 신주인이 아니라 대표로 살아가는 중이다.
대표에게는 이곳이 여전히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세계였겠지.
‘그런데 현실이 되는 게 보상이라면.’
이 세계는 아직 완전한 현실이 아니고, 다시 게임이 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