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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46화 (346/430)

# 346화

길은 앞뒤로 뻥 뚫려 있는데 대피소로 향하는 루트 중간에 느닷없이 정체 구간이 생겼다.

“오늘 출연진의 반이나 모여 있네요? 어디 보자. 좀비가 되신 분이 둘……이었다가 두 명 더 추가?”

내 옆에 앉은 작가는 노트에 현황을 메모해 가며 출연진들의 좀비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파악했다.

그런 작가가 의문형으로 말끝을 올리기에 나도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말대로 다섯 명이 모인 정체 구간에 두 사람이 더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좀비 서바이벌에 돌입하기 전부터 힐링 컨텐츠 촬영 때 마이크를 달아놓은 덕분에 상황실에서는 그들의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너희도 좀비야?]

[이하범은 좀비 맞아.]

[준해는?]

하범이 좀비가 되는 바람에 해랑이 그를 버렸다고 했으니, 한 명은 좀비가 확실했다.

그리고 하범에게 붙잡혀 있는 준해는 두 손을 맞잡고 간절한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

[살려주세요…….]

[백해랑. 동생을 살리고 싶으면 총 버리고 네가 와.]

하범은 여전히 해랑만을 노리는 중이었다. 그가 준해의 티셔츠 목 뒷부분을 붙잡고 거래에 나섰다.

“준해는 그러니까…… 인질이네요.”

“네. 인질이네요.”

방금 하범과 준해가 마주친 것은 나도 상황실 모니터로 확인했다.

그러나 이내 둘이 구석으로 가서 작게 속닥이는 바람에 준해가 좀비가 되었는지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그래서 작가의 노트에도 준해의 이름 옆에는 물음표가 있었다.

이들의 대화를 들은 작가는 물음표 옆에 ‘인질’이라는 단어를 추가했다.

[무서워요. 살고 싶어요.]

[준해야……!]

인질로 붙잡힌 준해의 불쌍한 모습에 우형이 더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거래 당사자인 해랑은.

[총으로 쏴 보면…….]

[형 착한 줄 알았는데…….]

도한이 옆에서 컬러즈의 단골 주접 멘트 ‘모노크롬 착한 줄 알았는데.’를 내뱉었다. 그러나 이건 주접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좀비마저 경악하는 비인간적인 해결책.

피도 눈물도 없는 해랑의 말에 준해는 맥이 탁 풀린 것처럼 맞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내가 아까 그랬잖아. 이런 거 안 먹힐 것 같다니까.]

[백해랑…… 진짜 많이 변했구나.]

[너희 한패였어?!]

방금까지 준해를 안타까워하던 우형이 충격받은 표정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작가는 노트의 ‘인질’ 옆에 다시 ‘좀비’라는 글씨를 적어 넣었다.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배신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까.’

준해도 모노크롬의 겁쟁이 라인 중 한 명이었다.

인간으로 남아 있으면 다른 좀비들에게 쫓겨야 하니까, 그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범을 순순히 따른 모양이었다.

그래놓고 해랑을 꾀어내기 위해 인간인 척 연기까지.

옆에서 구경하던 한이는 준해의 인질 연기를 평가하고 있었는지 “다음엔 같이 연기 수업 들어.”라며 그의 연기 실력에 관해 논했다.

[준해도 한이도 결국 좀비인 거 맞지? 어떻게 믿을 애가 하나도 없냐.]

[그런데 그거 형도 마찬가지예요.]

방금까지 해랑의 평판이 훅 떨어졌는데, 해랑을 잡으러 온 하범과 준해 콤비가 가짜 인질극을 보여준 탓에 두 사람의 평판도 만만치 않게 떨어졌다.

종훈은 우형보고 그도 믿지 못하겠다고 했지만, 좀비 네 사람에 좀비보다 잔혹한 해랑에게 둘러싸인 두 사람의 거리는 아까보다는 가까워져 있었다.

이쯤 되니 한곳에 모인 출연진들도 누가 좀비인지, 사람인지는 대략 구분이 가능한 듯했다.

[그런데 형, 누가 더 잘못했는지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하범은 해랑의 잘못을 지적하려면 모노크롬의 리더인 우형을 공략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한탄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곧이어 ‘누가 제일 죄가 큰가’라는 주제로 임시 재판이 열렸다.

[이하범이 먼저 총 다 가져가자고 했어.]

[그런데 백해랑이 총 가져간 거 들킬 수도 있으니까 사람들 못 오게 가짜로 신호 보내자고 했다니까요?]

나머지 다섯 사람은 초반에 몬클하우스에서 확인했던 빨간색 신호의 진상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너희 둘 다 벌점 5만 점짜리다.]

[별점이요?]

[아니, 리뷰 남길 때 그 별점 말고.]

모노크롬의 벌점 시스템을 모르는 종훈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는 내 옆에 있던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벌점이 뭐죠?”

“우형이가 멤버들 관리하겠다고 시작한 제도인데……. 벌점을 받으면 점수만큼 노예…… 아니, 하인이 돼서 갚는 거예요.”

100점에 노예 하루였던 것 같은데, 5만 점이면 며칠이야…….

그리고 재판대에 오른 것은 해랑과 하범뿐만이 아니었다. 우형은 좀비가 아닌 척 연기한 한이와 준해에게도 벌점 4천 점을 부여했다.

코너 속의 코너처럼 시작된 잘잘못 따지기 임시 재판은 전부 도긴개긴이라는 결말로 종료되었다.

그리고 다시 인간 대 좀비로 돌아가 추격전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신경 쓰이는 점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좀비 배우분들은 다들 어디 가신 거죠?”

“이쪽은 알아서 재밌게 잘하고 있으니까 방해 안 하려고 다른 쪽으로 가셨나 봐요. 아마 몬클하우스 쪽으로 많이 이동하신 것 같네요.”

이쪽은 피지컬 좋은 좀비들이 많아졌으니 다른 쪽을 공략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듯했다.

임시 재판장에 정신이 팔렸던 우리는 몬클하우스를 비추는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쟤넨 뭐 하는 거지?’

몬클하우스에 남은 세 명은 어째서인지 실내에 있지 않고 마당에 모여 있었다.

***

밖에 나간 사람들에게선 이제 신호도 안 왔고,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결국 전부 좀비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요……?”

“이럴 수가. 인류는 이렇게 허무하게 지고 마는 것인가.”

이 상황에 과몰입한 재민이 내레이션과도 같은 대사를 읊었다.

몬클하우스에 남은 세 사람은 험난한 바깥 상황을 상상하며 더욱 긴장했다.

그러다 갑자기 재민이 ‘복실이’라는 이름을 외치더니 빠르게 마당으로 나갔다.

몬클하우스에 남은 인원 중에서는 이곳에 가장 익숙하고 연장자인 재민이 리더 격이었다. 이담과 류현도 재민을 바로 따라갔다.

“복실아, 이리 와.”

“아는 강아지예요?”

“응. 이웃 강아지.”

복실이는 한 팔로 안을 수 있을 만한 작은 시골 강아지였다.

이전에도 몬클하우스 앞에서 자주 마주쳤기에 재민과 강아지는 서로 아는 사이였다.

좀비는 못 들어오고 강아지는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대문을 살짝 열자, 아는 목소리에 반응한 강아지가 바로 다가왔다.

“아이, 귀여워.”

마당에 들어오더니 누워서 애교를 부리는 복실이에 세 사람은 잠시 정신이 팔렸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관 속. 귀여운 강아지로 힐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집에 데려다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밖에 좀비도 있는데.”

이담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재민에게 물었다.

하지만 재민이 복실이를 불러온 이유가 있었다.

“재난 영화에는 법칙이 있어.”

“영화요?”

재민이 갑자기 영화 이야기를 꺼내는 의도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이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말일 듯하여 이담과 류현은 귀를 기울였다.

“재난 상황에서도 강아지, 고양이는 해치면 안 돼. 관객들이 싫어하거든.”

영화 관객들은 그 어떤 등장인물보다 동물에게 더 쉽게 이입하곤 한다.

따라서 영화의 결말이 해피엔딩일지라도 그 과정에서 동물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면 관객들은 마음에 찝찝함이 남아 버린다.

그래서 영화 속 동물들은 사람과 같이 대피하거나, 사람과 헤어지지만 결국 살아남아 다시 만나는 등 함께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재민의 의도를 이해한 두 사람이 강아지에게서 재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

“그래. 항체 보유자는 강아지랑 같이 대피소로 가면 생존 확률이 높아져.”

그때 세 사람의 스마트폰이 울렸고, 재민이 항체 미보유자로 확인되었다.

재민은 마치 영화나 만화에서 중요한 순간에 주인공을 살리고 희생하는 스승님처럼 인자하게 웃었다.

“인류의 미래는 너희에게 맡길게. 내가 아는 건 모두 전수해 줬으니 잘할 수 있을 거야.”

전수했다는 것은 트윙클 챌린지의 공중회전 기술과 강아지는 해치면 안 된다는 영화의 국룰 정도였지만, 마치 이 순간만을 위해 오랫동안 주인공을 훈련시켜 온 듯한 말투였다.

두 사람과 복실이를 두고 홀로 나가려던 재민을, 류현이 붙잡았다.

“저희도 같이 가요, 선배!”

재민이 뒤돌자, 이담과 류현은 확고함이 담긴 눈으로 재민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기분 탓인지, 이담의 품에 안긴 복실이 또한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정말 기분 탓이었지만 재민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너희들……!”

바깥에선 생존자들이 누가 총알이 떨어진 총을 줬다느니, 방금 밀쳤다느니 하면서 서로 비난하고 배신이 판을 치는 중이었지만 이곳만큼은 의리로 넘쳤다.

아직 항체 보유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세 사람은 동시에 몬클하우스를 나왔다.

본가에서 강아지를 키워서 강아지를 많이 안아 봤다는 이담이 복실이를 안고 뛰었다.

그는 위기의 순간에는 품 안의 복실이를 보여주며 이렇게 외쳤다.

“강아지 있어요, 강아지……!”

동물을 해치지 않는 것이 재난 영화의 불문율이라는 말이 맞았는지, 좀비들은 강아지를 보고 흠칫하며 위협적으로 따라오지 않았다.

실은 이웃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우연히도 정말 재난 영화의 법칙이 이곳에도 적용되고 있었다.

세 사람은 최강 방어 아이템 복실이 덕분에 꽤나 선전할 수 있었다.

강아지에 관한 주의 사항을 모르는 아이돌 좀비들은 한 루트에만 몰려 있었고, 그들이 없는 루트를 택한 덕분이기도 했다.

“저기 앞에서 길 끊기는 거 보니까 저기가 대피소인 것 같은데?”

“여기가 마지막 미션 장소인가 봐요!”

사람의 평균 IQ는 약 100. 세 사람은 도합 IQ 300의 지능을 발휘하여 미션을 수행해나갔고, 드디어 골인 지점인 대피소를 앞뒀다.

하지만 대피소와 가까워질수록 미션의 난도는 점점 높아졌고, 미션이 완료되기 직전에 미션 수행 시간이 지나 이들을 따라온 좀비 배우들이 들이닥치고 말았다.

몸을 날려 좀비들을 막으려는 재민의 모습이 류현의 눈에 들어왔다.

“안 돼!”

세 사람은 재민이 항체 미보유자인 것을 확인하고 나왔다.

여기까지 같이 왔는데. 바로 앞이 대피소인데. 여기서 재민이 결국 좀비가 되어 버린다면…….

그 생각에 류현은 생각보다 몸이 먼저 튀어 나갔다.

“류현아……!”

재민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아선 류현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류현의 옆구리에는 빨간색 스티커가 붙고 말았다. 류현도 항체가 없으면서 재민을 지키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선배는 꼭…… 대피소로……!”

“크흡……. 꼭 치료제 만들어서 금방 구하러 올게! 그때까지 더 다치지 말고 있어!”

그렇게 영화의 클라이맥스 같은 장면을 연출하고, 재민은 항체 보유자인 이담과 함께 대피소로 향했다.

대피소 앞에서는 총을 하나씩 든 생존자 세 명이 소란을 듣고 달려오는 중이었다.

해랑이 두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 질문했다.

“너희 좀비야, 사람이야?”

“총으로 쏴 볼까?”

이미 해랑의 좀비 구별 방식에 물든 우형이 빈 총을 겨누다가 이담의 품에 안긴 강아지를 발견했다.

“복실이 아니야?”

우형의 뒤에선 종훈이 “복실이가 누구 별명이에요?”라며 편견 없는 질문을 했다가 곧바로 강아지의 이름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강아지! 재난 영화에서 강아지는 안 죽어!”

재민이 알 수 없는 주문 같은 걸 외면서 달려왔다. 강아지가 있으니 지켜달라는 뜻인 듯했다.

사람들에게 무섭다는 말을 들어서 슬퍼하던 이담이지만 강아지를 안고 있으니 사람이 매우 선량해 보이긴 했다.

재민과 이담이 인간이라고 판단한 세 사람은 이들을 엄호하며 다시 대피소로 달려 나갔다.

좀비 서바이벌의 최종 생존자는 다섯 명,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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