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43화 (343/430)

# 343화

좀비 서바이벌이 시작하기 약 두 시간 전. 몬클하우스의 제2기지는 상황실로 바뀌었다.

실내엔 스태프들이 자리했고 마당에는 오늘 컨텐츠에 쓰일 아이템 보급소가 차려졌다.

출연진들은 몬클하우스에서 이곳 보급소로 와 필요해 보이는 아이템을 고른 후, 세 가지 루트 중 하나를 정해 대피소로 향하게 된다.

출연자들 몰래 도착한 유아이TV 스태프들과 좀비 역할을 맡아줄 배우들은 촬영 준비에 한창이었다.

“분장은…… 여전히 리얼하네요.”

작년에도 귀신 분장을 보고 깜짝 놀란 기억이 있는데 오늘의 좀비 분장도 만만치 않았다.

멤버들 몰래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았던 유아이TV의 작가에게 말하자 그녀는 기대된다는 듯이 웃었다.

“저희도 공포 컨텐츠 제작이 벌써 2년째예요. 분장 실력이 더 늘었죠. 그래도 좀비는 처음이에요!”

“날씨가 아직 더운데 분장이 지워지지는 않을까요?”

“괜찮아요. 해가 지기 시작하면 잘 안 보이기도 할 테고, 저희 여름 컨텐츠의 피날레이니만큼 신경을 많이 썼거든요.”

“피날레…….”

“피날레라고 할 만하죠. 이 정도 출연진이면 거의 방송국 스케일이라니까요? 모노크롬 아니면 어느 채널에서 이런 컨텐츠를 만들 수 있겠어요.”

그녀는 내가 처음 좀비 서바이벌이라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매우 흥미를 보였다.

유아이TV에서 여름마다 제작하는 공포 방 탈출 컨텐츠를 야외 버전으로 디벨롭한 것이 바로 이번 컨텐츠였다.

‘그 공포 특집 첫 주인공이 바로 모노크롬이었지…….’

그때가 작년 봄이었는데, 벌써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여름을 떠나보내는 중이다.

유아이TV 측도 오늘 촬영으로 올해의 여름 컨텐츠는 종료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멤버분들이 그물 울타리 보고 이상하게 여기시진 않았나요?”

“안 그래도 궁금해하긴 하더라고요.”

지금은 길 주변으로 없던 그물 울타리가 생겨난 상태다.

주변이 허허벌판이라서 정해진 루트 외에 다른 곳으로 새지 않도록 임시로 막아둔 것이었다.

촬영 시간이 저녁이라 어두워지면 뱀이 나올 수도 있고. 정비된 길이 아닌 다른 곳을 뛰어다니다간 넘어질 수도 있고.

밭도 보호하고, 아이돌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생겨난 그물 울타리는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라니가 밭을 자꾸 밟아서 이웃분들이 쳐놨다고 했어요.”

임기응변이었으나 멤버들은 내 말을 의심하지 않고 바로 믿었다.

몬클하우스에 있으면 가끔 고라니 울음소리가 들린다나. 사람이 소리 지르는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알고 보니 고라니였다고 한다. 정말이지 자연 친화적인 아이돌이었다.

그리고 울타리나 촬영에 관해서는 근처 이웃분들께도 미리 양해를 구해두었다.

‘갑자기 동네에 좀비가 돌아다니면 놀라실 테니까.’

게다가 작년 공포 컨텐츠 촬영 때 지켜보지 않았던가. 한이가 멤버들을 놀리려고 비명을 지르는 것을.

게다가 오늘은 한이를 포함해 메인 보컬만 여섯 명.

남들보다 목청이 큰 이들이 좀비에 쫓겨 소리를 지르면 이웃집에 들릴지도 모른다.

‘아니, 의외로 고라니 울음소리인 줄 알고 별로 신경 안 쓰시는 거 아니야……?’

뭐지, 이 고라니로 통하는 세계관…….

아무튼, 가장 가까운 이웃집에는 촬영 소음이 계속 들릴 듯하여 과일과 음료를 사 들고 양해를 구하러 갔다.

그때 이웃집 할머니께 부탁을 하나 받았다.

“혹시 목걸이 한 강아지가 길에 돌아다니면 가만히 놔둬달라고 하셨어요. 알아서 집에 들어온다고.”

전에 개스트로 맥스가 놀러 왔을 때 간식을 나눠줬던 그 강아지들 이야기였다.

할머니가 말씀하시기로는 대문을 닫아놔도 어디로 나가는 건지 강아지가 혼자 산책을 다녀온다고 한다.

멤버들은 이웃 강아지들과 서로 아는 사이고, 게스트들은 좀비가 쫓아오는데 강아지를 신경 쓸 새는 없을 테니까 좀비 배우들에게만 이 사항을 전하면 되었다.

덕분에 오늘의 좀비는 사람만 해치고 강아지는 안 해친다는 동물애호가 설정이 생겨났다.

‘생존을 위한 ‘서바이벌’인데 위험하거나 주의해야 할 요소를 이렇게 열심히 제거하다니.’

그리고 시간이 되어서 좀비 서바이벌 기획을 개시했다.

유아이TV의 스태프가 몬클하우스에 대피 안내서와 카메라를 전달하고, 출연진들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줬다.

그 사이에 상황실에선 회의가 열렸다. 작가는 예상과 달라진 점이 있는지 잠시 생각에 빠졌다.

“보통 첫 타자가 오래 살아남아야 좀 감이 잡히니까, 체력 좋은 분이 나와주시는 게 좋거든요? 그래서 재민 씨를 생각했는데…….”

“재민이는 방금 춤 가르쳐주느라 체력이 떨어졌을 거예요.”

좀비 서바이벌이 시작하기 전, 놀고먹는 코너 위주로 준비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체력을 비축해 놔야 좀비를 피해 열심히 도망 다니지.

그러나 재민과 류현이 갑자기 트윙클 챌린지 수업을 시작해서 체력이 소진되고 말았다.

재민을 제외하고 또 체력이 좋은 사람은…….

“아, 올해 <아이돌 대운동회>에서 해랑이랑 하범이 100m 달리기에서 나란히 2, 3등이었거든요?”

“오! 달리기 빠르신 분도 좋죠.”

당시 1위는 이담이 속한 더클랜의 멤버였으나 이담은 아니었다.

내 정보가 유용했는지 항체 미보유자로 해랑과 하범의 이름부터 발표되었다.

‘작년엔 한이가 배신했는데…… 이번엔 다들 의리 루트로 가려나, 예능 루트로 가려나?’

어느 쪽이든 재미있을 듯했다. 달리는 출연진들은 힘들겠지만.

그리고 우리는 모니터를 주시하며 예상대로 해랑과 하범이 먼저 나올지를 지켜봤다.

***

좀비 분장을 한 배우들이 몬클하우스 주변에도 배치되고, 출연진들은 고립되고 말았다.

“그…… 선배님들 회사에 공포 특집을 좋아하는 분이 계신 것 같아요…….”

류현이 모노크롬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오늘 컨텐츠가 사실 좀비 서바이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류현은 이 생각부터 들었다.

‘또 당했구나!’

<쉰셋돌>을 촬영하며 계절에 안 맞는 공포 체험을 하게 되었을 때, 안지택 PD가 뭐라고 했던가. 아이디어를 뉴마 엔터가 제공했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아직 여름의 기운이 완전히 물러나지 않았다. 아직 납량 특집의 계절이라는 뜻이다. 몬클하우스에 초대받았을 때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류현만큼 주인을 경계하지는 않았지만 <쉰셋돌>에 출연했던 다른 게스트들도 이 말에는 어느 정도 공감했다.

모노크롬 또한 부정하지는 못했다.

“우리 저번 뮤직비디오에도 모르는 그림자 들어가고 그랬지…….”

게다가 주인이 맡았던 아이리스 싱글도 공포 컨셉이었고.

우형은 당시 주인이 폐건물 사진이 담긴 파일을 들고 다녔던 것을 떠올렸다.

‘원래 공포 영화를 좋아하셨나……?’

작년에 <이리> 컨셉 회의를 할 때도 공포나 좀비 영화 이야기가 잠시 나왔었는데, 그때 주인은 그리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올해 여름엔 계속 납량을 도입했다. 올해 여름 기온이 예년보다 높았던 것이 문제였을까.

우형이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도한이 아직 밝은 창밖을 보며 말했다.

“공포 특집이면 보통 어두울 때 촬영하는데 생각보다 일찍 시작하네요. 귀신이 아니라 좀비라 그런가?”

“여기 밤 되면 너무 깜깜해. 뱀 나올지도 몰라.”

“정말 현실적인 공포다…….”

한이의 대답에 다들 오싹해졌는지 표정이 한층 심각해졌다.

사실 그것 때문에 길에 그물 울타리를 쳐놓은 것이었으나 모노크롬은 아직 그것을 고라니 방지책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슬슬 노을 지려는 거 보면 어두워질 것 같은데…… 집에 손전등 있어요?”

“당연히 있지.”

하지만 손전등이 있어야 할 곳에 없었다. 좀비 서바이벌을 대비하여 스태프가 미리 치워놓은 탓이었다.

대신 재민이 방에 들어가서 뭔가를 들고 나왔다.

“미러볼은 두 개 있어.”

“대체…….”

건전지로 작동하는 타입이라 휴대는 가능했으나 좀비들과 춤판을 벌일 것도 아니고.

게다가 공 모양이라 들고 다니기에는 불편했다.

다들 ‘반짝거리면서 생존하기’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미러볼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 설마!”

“왜? 가방에 손전등 있어?”

이번엔 종훈이 뭔가 떠오른 듯이 본인의 가방을 뒤적였다.

그러나 그의 가방에서 나온 것은…… 엔피버 공식 응원봉이었다.

“저 아까 가방에 응원봉이 있길래 매니저 형한테 뭐냐고 했더니 다른 컨텐츠 때문에 챙겨놓고 깜빡했다고, 일단 가지고 있으라 그랬거든요?”

“헉, 나도.”

“저도…….”

오늘 모인 게스트들의 가방에는 똑같은 이유로 응원봉이 들어 있었다.

모노크롬의 응원봉 또한 이전에 다른 촬영을 하며 몬클하우스에 가져다 둔 것이 있었다.

이로써 출연진들은 모두의 소속사가 한통속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SPID의 공식 응원봉을 꺼내든 하범은 배터리가 들어있는지 확인하고자 스위치를 켰다가 표정이 흐려졌다.

“아, 발광력…….”

스피디가 에이펙트 엔터에 응원봉 발광력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어두운 콘서트장에서 보면 은은하게 반짝거려 보기 좋았기에 잘 와닿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팬들의 마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돌아가면 회사에 발광력 좀 높여달라고 얘기해야지.”

“그 말은 하면 안 되는데……!”

재민이 깜짝 놀라 하범을 바라봤다.

‘무사히 돌아가면 청혼하겠다’와 같은 플래그 대사를 내뱉으면 결국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재난 영화의 클리셰였다. ‘무사히 돌아가면 발광력 좀 높여달라고 해야지.’는 뉘앙스가 많이 다르긴 하지만.

각 그룹의 응원봉 발광력은 천차만별이었고, SPID의 응원봉처럼 손전등으로 쓰기엔 어려운 것도 있었다.

마음 약한 이담은 좌절하는 하범을 위로하고 싶었는지 말을 꺼냈다.

“다른 용도도 있지 않을까요?”

“마법봉처럼 휘두르나……?”

그 말에 가장 마법봉처럼 생긴 엔피버의 응원봉에 시선이 모여들었다.

종훈은 엔피버의 응원봉을 들고 나가서 담장 너머에 있던 좀비 앞에서 휘둘렀다가 소득 없이 도발만 하고 돌아왔다.

“일단 저 보급소라는 데에 가야 쓸 만한 게 있을 것 같아.”

준해가 말하자 이번엔 해랑과 하범에게 시선이 몰렸다.

일단 집 밖으로 나가야 무언가가 진행될 듯했다.

“결국 미끼인가…….”

“미끼가 아니라 선봉장이라고 하자.”

우형이 긍정적인 표현을 붙였으나 등을 떠밀리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먼저 떠날 두 사람을 위해 다들 뭔가 도움 될 만한 게 없는지 몬클하우스를 뒤지기 시작했다.

재민은 상어 침낭을 가져와 해랑에게 내밀었다.

“이걸로 몸을 가리고 가면 어때? 폭신하니까 안 물리겠다.”

“뒤집어쓰면 앞이 안 보이잖아.”

“그럼 반대로 머리만 나오게 들어가서 이렇게 통통 튀어서 가면…….”

인어와 어인 중 하나를 고르라는 제안이었으나 해랑은 그 어느 것도 되고 싶지 않았기에 정중히 거절했다.

결국 두 사람은 일단 응원봉과 셀프카메라만 들고 몬클하우스를 나섰다.

스마트폰은 달리다가 떨어트릴 수도 있고 외부에선 통신할 수 없다는 조건이 붙어있었기에 두고 가기로 했다.

오늘 출연진 중 달리기가 가장 빠른 두 사람은 길목에 있는 좀비들을 제치고 무사히 몬클하우스 제2기지 앞 보급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해랑에게 박스를 전달해주었던 군인 복장의 유아이TV 측 스태프가 서 있었다.

“이 중에 아이템 두 가지만 골라서 이 가방에 담아 가져가시면 됩니다.”

테이블에 놓인 많은 아이템 중, 두 사람의 시선을 이끄는 아이템이 있었다.

“오. 이 총은 뭐예요?”

“좀비에게 쏘면 5초간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스무 발 한정입니다.”

테이블 위에는 유용해 보이는 아이템과 어디에 쓰는 건지 의아한 아이템이 여럿 섞여 있었다.

그 와중에 총은 누가 봐도 최강 느낌이 물씬 풍겼다. 다만 준비된 총은 단 세 개뿐.

아마 대피소로 향하는 루트 하나당 총 하나씩은 필요하리라 생각해서 세 개가 준비된 듯했다.

“야, 백해랑.”

하범이 해랑을 보며 씨익 웃었다.

“너 의리 챙길래, 아니면 뒷사람들 생각 안 하고 일단 우리부터 살고 볼래?”

찬찬히 아이템을 살피던 해랑은 눈썹 사이를 좁히고 대답했다.

“총 다 가져가자고?”

“우리 가장 먼저 미끼로 나왔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

같이 움직인다면 총은 딱 하나만 가져가도 충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범은 벌써부터 탈선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

해랑은 ‘뭐 이런 애가 다 있어?’ 하는 표정으로 그를 보려다가, 생각을 고쳤다.

‘제작진 입장이라면…….’

그는 작년에 공포 방 탈출 컨텐츠를 촬영할 때, 스태프들과 주인이 한이의 배신에 동참하여 규칙을 변경했던 것이 떠올랐다.

능숙하게 예능을 생각할 줄 알게 된 해랑은 판단을 마쳤다.

“집어.”

두 사람은 세 개뿐인 총을 바로 싹쓸이해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좀비 서바이벌은 초장부터 빠르게 예능 루트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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