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42화 (342/430)

# 342화

이 조합으로는 처음 모인 것이었으나 분위기는 생각보다 좋았다.

모노크롬과 <아이돌부 방학캠프>에서 함께한 사람이 둘, <쉰셋돌>에서 함께한 사람이 둘. 그리고 그 교집합인 도한이 있어서 균형이 잘 맞은 덕분이었다.

재민의 생일 기획 선물 덕분에 특이한 물건이 잡화점처럼 쌓여 있는 것도 분위기 완화에 도움을 주었다. 자연스레 집을 구경하는 분위기로 흐르니 어색할 새가 없었다.

모노크롬이 이들을 위해 준비한 것은 웰컴 드링크와 웰컴 토마토 외에도 더 있었다.

“우리 요즘 신메뉴 개발 중인데 시음해 볼래?”

우형이 손님들을 거실에 앉혀두고 주방으로 향했다.

윙윙거리는 믹서기 소리가 나더니 그가 들고 나온 것은 비트, 사과, 케일을 따로 갈아 기다란 컵에 3단으로 쌓은 건강 스무디.

아직 날이 더우니까 상상 카페의 메뉴판에 커피와 차 외에도 오늘의 주스나 스무디를 추가하는 게 좋겠다는 말이 나와 개발된 음료였다.

초록, 노랑, 빨강이 층층이 쌓인 알록달록한 비주얼은 요리에 한해 미적 감각이 좋은 우형의 작품이었다.

“우와. 예쁘다.”

“마실 땐 이렇게 섞어서 마시면 돼.”

“어우, 이게 뭐야.”

분명 섞기 전에는 예뻤으나 긴 머들러로 섞으니 건강에만 좋아 보이는 색의 스무디가 되었다.

예쁘다고 감탄하던 엔피버의 종훈은 칙칙하고 불그죽죽한 완성품을 보고 바로 태도를 바꿨다.

준해는 이 음료에 ‘여우형의 이중성이 담긴 스무디’라는 이름을 붙였다.

“역시 빨강이랑 초록이 섞이면 이상한가 봐.”

“케일 말고 블루베리가 낫겠다.”

이들의 반응을 보며 모노크롬 멤버들은 머릿속으로 메뉴의 디테일을 수정해나갔다.

웰컴 드링크와 웰컴 토마토, 거기에 모노크롬 특제 음료까지.

환영치고는 조금 과한 라인업이었지만 20대 젊은이들의 위장은 튼튼했다.

우형이 말했던 것처럼 오늘은 아이들이 했던 체험을 아이돌끼리 하자는 것이 컨셉.

똑같은 포맷이지만 사람이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아예 다른 기획처럼 변모했다.

“이만한 컵에 이만한 스쿱으로 담아 먹어요?”

“그냥 통째로 퍼먹자.”

아역들이 방문했을 때 야외조가 했던 ‘식물 이름 찾기’ 체험 대신 자연 배경의 VR 게임을 한판 한 이들은 스무디를 전부 소화시키고 파르페로 간식을 즐겼다.

당시와 같은 사랑의 파르페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아이들이 조금만 먹고 간 탓에 많이 남은 채로 냉동실에 보관됐던 아이스크림이 젊은이 10명에 의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열심히 놀고먹고, 이제 널브러져서 휴식을 취하려는데 아직도 체력이 넘치는지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춤 바보 재민과 이 중에 가장 막내인 류현이었다.

우형 다음으로 가장 먼저 드러누웠던 하범이 의아한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두 사람은 왜 또 일어서?”

“트윙클 챌린지 특별 강습.”

재민의 대답에 하범이 혀를 내둘렀다.

“아. 나 김윤규가 그거 하는 거 옆에서 봤어…….”

모노크롬 다음으로 트윙클 챌린지를 시작한 것이 바로 SPID의 메인 댄서, 윤규였다.

트윙클 챌린지는 이제 유행이 아니라 스테디로 정착되어가는 중이었다.

‘트윙클 챌린지 성공’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면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기에 진정한 메인 댄서로 인정받고 싶은 이들의 관문이었다.

류현은 메인 보컬이었으나 재민에게 물든 지 오래였고, 우형의 프로듀싱 앨범 이야기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재민이 트윙클 챌린지 특별 강습을 해 준다고 해서 소속사까지 설득하여 찾아온 것이었다.

재민의 트레이닝을 겪어본 이담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이게 평범한 반응이지.”

한이는 오랜만에 정상인의 반응을 보는 기분이 들어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

자진해서 재민에게 굴림을 당하던 류현 외에는 다들 평화로운 휴식을 즐겼다.

류현도 이내 체력이 소진되어 드러눕게 되었지만.

한적한 시골 한가운데서 가만히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쉬는 것도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바쁜 아이돌에겐 크나큰 힐링이었다.

더군다나 오늘은 컨텐츠 촬영을 하러 모인 것이었으니 ‘이렇게 쉬는 것도 일’이라는 명분이 있어서 더욱 마음이 편했다.

평화로운 분위기 속, 도한이 문득 밥부터 챙기는 한국인다운 질문을 꺼냈다.

“저희 고기는 언제 먹어요?”

“아직 다섯 시밖에 안 됐는데?”

우형이 오늘 멤버들을 섭외하면서 꺼낸 미끼 중에는 바비큐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말 고기 때문에 온 것은 아니지만 기왕 얘기를 들었으니 기대하고 오기는 했다.

준해가 도한의 질문에 시계를 확인했다. 시침은 마침 다섯 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꿀 같은 휴식을 취하던 이들이 “벌써 다섯 시야?” 하며 시간의 흐름을 아쉬워하던 그때, 쿵쿵 하고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모두 고개를 들었다.

“카메라 배터리 때문에 오셨나 봐. 내가 나갔다 올게.”

스태프가 찾아왔다고 생각한 해랑이 바로 나가서 대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다르게 대문 앞에 서 있는 것은 모노크롬 측 스태프가 아니었다.

군인과 비슷한 차림을 한 남성이었다.

“대피소로 피하셔야 합니다.”

“네?”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부족하니 내용물 확인하시고 빠르게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의문의 방문객은 해랑에게 박스를 하나 전달하고는 급한 일이 있다는 듯이 바로 자리를 떴다.

박스 안에는 뭔가가 적힌 종이와 셀프카메라 열 개가 담겨 있었다.

낯선 얼굴을 보고 경계할 뻔했으나 카메라를 보고 스태프임을 알게 된 해랑은 박스를 들고 다시 실내로 들어왔다.

“뭐야, 그건?”

“고기예요?”

방금까지 저녁에 먹을 고기 얘기를 하던 중이었기에 다들 자연스레 고기가 배달 왔다고 추측했으나, 그렇다기에는 해랑의 표정이 묘했다.

“아니. 우리 모르게 뭔가 다른 걸 준비하신 것 같은데…….”

그 말에 모두가 호기심이 생긴 표정으로 박스 근처에 모여들었다.

하범은 셀프카메라와 함께 들어있던 종이를 꺼내 내용을 읽었다.

“좀비 바이러스 유행으로 인한 대피 안내서……?”

“헉.”

재민이 뭔가 떠오른 듯이 손으로 입을 막았다.

“나 전에 좀비 서바이벌 하고 싶다고 얘기한 적 있었는데.”

좀비 서바이벌.

그 단어에 게스트들의 시선은 오늘 컨텐츠의 섭외를 주도한 우형에게 모여들었다.

“아니, 형! 곡 준다고 하면서 불러왔잖아요!”

“고기 구워준다고 하셨잖아요!”

곡이 목적인 듯한 종훈과 고기가 목적인 듯한 도한.

이 재밌는 상황을 지켜보던 한이가 “너희 목적이 곡이야, 고기야?”라고 물었으나 ‘곡이요’라는 건지 ‘고기요’라는 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게스트들이 우형에게 책임을 돌리자 준해도 경악한 표정으로 우형을 바라봤다.

“형은 알고 있었어?!”

“아, 아니?!”

하지만 이건 우형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형도 바로 기억이 났다. <아이돌 대운동회> 때, 팬석에서 컬러즈와 좀비 서바이벌 이야기를 했던 것을.

회사에 말하지 말라고 재민의 입을 막았던 것과, 주인이 컴백 준비 시기가 아닐 때도 유아이TV와 연락을 취하던 것도.

‘이사님……!’

오늘 모인 게스트들에게는 프로듀싱 앨범에 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의견도 받을 예정이었다.

이건 주인도 아는 이야기였다. 우형이 이 이야기를 했을 때 그녀는 “응. 좋은 생각이네.”라고만 대답했다.

당시 주인은 ‘좀비 서바이벌 기획에 아이돌을 섭외해와야 한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던 탓에 이렇게 우형이 거짓말쟁이로 몰리는 상황은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우형은 의도치 않게 곡과 고기를 준다고 동생들을 꾀어내서 좀비 서바이벌에 몰아넣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우형은 주인이 그때 흡족한 웃음을 지었던 진짜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일단 안내문 읽어보자.”

해랑의 정리 덕분에 우형은 모두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책임 소재를 묻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된다. 이미 뭔가가 시작된 듯하니 상황을 파악하는 게 먼저였다.

[좀비 바이러스 창궐. 좀비에 물린 사람은 몸에 바이러스가 퍼져나가 하루가 지나면 완전히 좀비화가 되어 인지능력을 잃음.]

이 정도는 일반적인 좀비물 설정이었기에 다들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아래 내용부터는 독창적인 설정이 추가되었다.

[감염되자마자 내장부터 괴사하기 때문에 내장과 가장 가까운 옆구리 피부에 빨간 표식이 생기는 것으로 감염 여부 확인 가능.]

“옆구리에 표식이 생기는 게 감염 징후래.”

“옆구리?”

“누구 이미 감염된 거 아니야?”

마침 여름이라 다들 옷이 얇았다.

다들 별생각 없이 본인의 옆구리를 확인하려다가.

“어, 복근…….”

이담의 목소리에 흠칫하며 옷을 들치던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방금까지는 거치 카메라가 있든 말든 상관도 안 하고 드러누워서 쉬던 이들이 갑자기 카메라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아, 나 갑자기 운동하고 싶은데.”

“갑자기 운동을 왜 해!”

한이가 벽에 대고 팔굽혀펴기를 하자 준해가 웃긴다는 듯이 배를 부여잡았다. 반쯤은 배를 감추려는 목적이었다.

신호라도 되듯이 몇 명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스트레칭하기 시작했다.

와중에 멀뚱멀뚱 서 있는 해랑의 티셔츠 자락을 장난스레 들친 하범이 “백해랑이 승리자다…….”라며 다시 손을 내렸다.

아무튼 각자 확인했으나 벌써부터 좀비가 된 이는 없었다.

찰나의 복근 소란이 지나고, 다들 진정하고 안내서를 마저 읽어나갔다.

“그리고 항체 보유자가 있는데 이 사람은 좀비한테 물려도 안전하대.”

“으, 난 안전해도 물리기 싫어…….”

준해가 좀비가 들이닥치는 상상을 했는지 몸서리를 치며 손으로 팔을 쓸었다.

물려서 감염되는 것과, 물려서 아프고 무서운 것은 별개였다.

[항체 보유자가 정해진 시간 내에 대피소에 도착할 경우, 바로 치료제를 만들어서 좀비화 진행 중인 인간을 치료 가능.]

“그럼 항체 보유자는 물려도 괜찮으니까 좀비 무시하고 대피소로 밀고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니에요?”

트윙클 챌린지 특별 강습으로 체력이 소진된 상태인 류현은 서바이벌을 펼치고 싶지 않았는지 낙관적인 전망을 그렸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런 상황을 많이 봐 온 재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좀비들이 그렇게 안 두겠지. 좀비 두세 명만 달라붙어서 막아도 못 움직일걸?”

치료제를 만들면 다 같이 살고, 못 만들면 다 같이 죽는 양자택일 엔딩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항체 보유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문제였다.

“저 독감 예방 접종 맞았어요.”

종훈이 나름의 항체 어필을 했으나 이 중에 예방 접종을 안 맞은 사람이 없었다.

각자 감기도 하루 만에 낫는다느니, 모기에 잘 안 물리는 타입이라느니 하며 건강함을 과시하고 있을 때 열 명의 스마트폰이 동시에 울렸다.

확인해 보니 스태프가 포함된 단체 대화방이 생성되어 있었다.

[여러분 중 항체 보유자 한 명이 포함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현재 검사 중이니 결과가 나오는 대로 통지하겠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하범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활동해 오며 웬만한 예능 게임을 다 거쳐본 그는 이것만 보고도 곧이어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바로 예상할 수 있었다.

“항체 없는 사람부터 미끼로 써보면 되겠다.”

“그런 잔인한…….”

우형은 미끼가 되고 싶지 않다는 듯이 그에게서 한 발짝 물러났다.

곧이어 모두의 스마트폰이 다시 울렸다. 대화방에는 첫 번째 검사 결과가 도착했다.

[해랑, 하범: 항체 없음]

“너…….”

“……아니, 제가 실언했습니다. 버리지 말아 주세요.”

미끼로 쓰라는 말은 부메랑이 되어서 해랑이라는 피해자까지 발생시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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