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1화
몬클하우스에 배명희가 처음 찾아왔던 날.
주인이 주변을 둘러보겠다던 배명희와 함께 밖으로 나가고, 멤버들은 아역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다시 이어나갔다.
재민의 생일 기획 때 받은 선물들을 전부 꺼내놓느라 여유 공간이 없어진 탓에 정리할 것들이 많았다.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마당 구석의 작은 창고로 옮기던 우형은 담장 밖에서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주제넘은 말 같지만 딸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어머니가 계속 슬퍼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주인의 목소리였다. 주인이 담장 너머에서 배명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몬클하우스에는 멤버들을 비롯하여 스태프들도 와 있었다.
두 사람은 단둘이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 집의 뒤편, 아무도 없는 곳에 멈춰 서서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엿들은 것처럼 되어 버렸네…….’
하필이면 우형이 향하던 창고도 앞마당 쪽이 아니라 집의 뒤편에 있었다.
담장이 가로막고 있어서 우형도 두 사람을 보지 못했고, 두 사람도 우형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우형이 대화를 방해하지 않도록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려던 차에 다시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랑 만나기 어려운 상황인데…… 생각보다 많이 길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창고 앞에서 벗어난 탓에 드문드문 들렸을 뿐이었지만 우형은 이 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음악대상…….’
작년에서 올해로 넘어오던 그 시각, 음악대상 현장에서 주인이 이 목표를 꺼냈던 것이 기억났다.
우형은 그 말을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침 그 전해에 자신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사람 없는 버스 정류장에 혼자 앉아 스마트폰으로 음악대상을 시청했을 때.
모노크롬이 저 시상식 무대 위에 올라선다면 어떤 기분일까. 잠시나마 그런 상상을 했다.
저 무대 위에 선 모노크롬은 더는 불안해하지 않겠지.
하지만 곧바로 우형은 그 상상을 비밀 내용을 적은 메모지처럼 고이 접어서 마음 한구석에 숨겨두었다.
‘그룹 자체도 위태로운데 시상식이라니.’
누군가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분수에 맞지 않는다고 비난할 것만 같았다.
더군다나 모노크롬에게는 소식이 끊긴 재민이라는 존재도 있었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 꼭꼭 숨겨놨던 비밀 메모는 주인의 말에 다시 펼쳐졌다.
‘그런데 역시 이사님도 불안하신 거야.’
주인은 음악대상이라는 성과를 이뤄야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역시나 그곳에 주인의 어머니가 있는 듯했다.
대표님을 포함하여 가족 이야기를 잘 하지 않던 주인이었기에 멤버들끼리 추측만 했던 것인데, 이 이야기로 확실해졌다.
그런데 그 어머니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니.
주인이 음악대상이란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상황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건 이사님이 우리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상황 때문이겠지…….’
안 그래도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인데 방송국에선 음악대상을 내정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힘이 세지 않은 아이돌 기획사로서는 현실적으로 그에 대항하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전 음악대상 수상자인 라솔이 적극적으로 주인을 도왔고, 방송국 내에서도 그를 저지하려는 PD가 있다고 했다. 이번에 배명희를 이곳에 데려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대응책은 될 수 있어도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포기는…… 못 하지.’
포기나 실패가 코앞으로 다가온 적은 몇 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버텨오지 않았는가.
재계약 후 초반에는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지만 지금은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우형은 심각한 얼굴로 다시 실내로 돌아왔다.
“형, 밖에 잠깐 나갔다 왔다고 그렇게 인상 쓸 일이야?”
“뭐가?”
생각에 빠져 있던 우형은 한이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완전 힘든 척하면서 들어왔구만. 형 가위바위보 실력이 그런 걸 어떡해.”
뜻하지 않게 주인의 이야기를 듣고 골몰하던 표정이 한이에게는 더운 날씨 탓에 짜증을 부리는 표정으로 비친 듯했다.
마침 가장 더울 여름방학 시즌. 실내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청소하던 멤버들은 더운 밖으로 나가기 싫다며 가위바위보로 짐을 창고로 옮길 사람을 정했다.
그 대결에서 지는 바람에 본인이 창고로 다녀오게 된 것을 떠올린 우형은 표정을 풀고 피식 웃었다.
“야. 창고 앞에 날벌레 엄청 많아. 웬만하면 그쪽으로 가지 마.”
주인이 그런 이야기를 멤버들에게 하지 않은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본인도 지금 들은 이야기를 동생들에게 전달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괜한 불안을 심어주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렇다고 아예 못 들은 것처럼 그냥 넘길 생각은 아니었다.
주인의 목표이자 모노크롬의 목표. 멤버이자 리더로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우형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떠올렸다.
***
올해 안에 모노크롬의 앨범을 하나 정도는 더 낼 생각이었다.
작년의 1년 4컴백에 이어서 올해는 1년 3컴백.
7년 차치고 빡빡한 컴백 일정이지만 퀘스트 기간이 올해까지였으니 승부수를 있는 대로 다 던져야 했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앨범이 될 테니 곡이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게 낫겠지.
‘우형이가 바쁠 테니까 수록곡은 웬만하면 다른 작곡가한테 받아야겠어.’
모노크롬 앨범의 타이틀곡은 현재 우형이 전부 맡고 있지만 수록곡은 다른 작곡가의 곡도 많이 받고 있다.
가장 부담이 큰 타이틀곡을 맡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고민을 하고 구상을 해야 할 터.
이렇게 우형의 일을 줄여줄 궁리를 하고 있는데 우형은 반대로 본인의 일거리를 가져왔다.
“이번에 작곡팀 프로듀싱 앨범에서 그런 걸 시도해 볼까 해요. 같이 작업해 본 적 없는 가수들끼리 조합해서 곡을 내는 거예요.”
“피처링곡이나 유닛곡처럼?”
“네. 이런 곡들을 모아서 하나의 앨범 컨셉을 만들고요. 저희가 앨범에 세계관을 담듯이요.”
모노크롬의 가장 최근 앨범인 <궤도>를 떠올리면 이해가 빨랐다.
곡마다 내용과 분위기가 다른 데다가, 멤버들의 솔로곡이 들어 있으니 가창자도 각기 다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곡이 우주라는 앨범 컨셉으로 통한다.
드라마 한 작품에 맞춰서 만드는 OST 앨범으로 비유해도 좋을 듯했다.
“하범이가 전부터 곡 달라는 얘기는 종종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해랑이랑 작업하고 싶다고 해서 생각났어요. 다양하게 작업해보는 게 경험도 되고 꽤 괜찮을 것 같아서요.”
“그렇지.”
모노크롬 외의 타 아티스트와 작업해본 것은 해랑뿐이지만 그에겐 좋은 경험이 된 듯했다.
다른 멤버들도, 그리고 다른 가수들도 이런 기회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가수들은 어떤 기준으로 모으게?”
“우선은 친한 아이돌 애들을 모아보면 어떨까 하는데, 이건 각 소속사에 물어봐야 할 일이라서, 제안해봐도 될지 먼저 허락받으려고 여쭤봤어요.”
아이돌은 그룹 내에서 유닛을 결성하거나 다른 아티스트의 곡에 특별 참여하는 경우는 있지만 다른 현역 아이돌과 같이 곡을 낼 기회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같은 소속사 선후배끼리 특별히 내거나, 광고로 콜라보하는 등의 드문 경우가 아니면.
‘그런데 이것도 모노크롬은 예외려나……?’
임주미 PD가 말한 ‘모노크롬 라인’이라는 것이 형성된 상태였다.
우형의 기획대로 프로듀싱 앨범을 낼 수 있다면 모노크롬의 섭외력이 엄청나다는 것이 증명되겠지.
만일 다른 작곡가가 이런 프로듀싱 앨범을 기획했고, 모노크롬 멤버를 섭외하고 싶어 한다면…… 나는 적극 수락하지 않을까?
특이한 형식의 앨범이다 보니 제법 화제성이 생길 테고, 팬들은 색다른 조합의 노래를 들을 수 있고, 팬들 외의 다른 리스너에게도 멤버의 목소리를 들려줄 기회니까 홍보하기에도 좋고.
‘팬들끼리 누가 실력이 더 낫다느니 비교하면서 싸우지만 않으면 장점은 많아.’
사람들의 반응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지만, 가창자들에게 어울리는 곡을 만든다면 악평은 줄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형과 성운이 해내야 할 일이다.
만일 앨범이 성공적으로 제작된다면 두 사람의 작곡 경험치도 크게 오를 듯했다.
“기획은 굉장히 좋은데. 네가 너무 바빠지지 않겠어?”
“꼭 하고 싶어서요.”
우형은 ‘내가 갈 길은 이 길뿐!’이라는 결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렇게까지 당당하게 말하는 걸 보면 본인도 많이 생각해보고 나한테 기획을 들고 온 거겠지.
“성운 씨도 괜찮대?”
“네. 그런데 뉴마에 와서 같이 작업해도 되냐고 묻더라고요. 예전엔 나오기 싫어하더니…….”
밖으로 나오기 싫어하는 그가 자진해서 이곳으로 오겠다고 하다니.
사람은 역시 발전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저번에 라솔의 회사에서 본 성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 전에 보니까 성운 씨가 회사에서 누나들한테 많이 시달리나 보더라. 그래서 여기로 대피하고 싶은가 봐.”
“아하…….”
우형은 서림의 디스전을 떠올렸는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솔과 그녀의 회사 후배인 한은아는 원래부터 성운을 동생처럼 대했다. 그런데 거기에 기존쎄 서림까지 늘어났으니.
성운이 가끔 비즈니스를 위해 회사를 탈출하게 만들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성운 씨 오기 전에 미리 말해주면 임시 출입증 준비해둘게.”
“네! 감사합니다.”
우형이 하고 싶다는데 내가 막을 수야 없지.
우형이 프로듀서로서 두각을 보이면 당연히 모노크롬에게도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그런데 역시 사람 모으는 게 가장 어렵겠지……?’
이건 멤버들의 친분과 각 소속사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니 나는 그냥 기다려보기로 했다.
***
“방울토마토 먹을래?”
“이번엔 웰컴 토마토예요?”
재민이 온실에서 딴 방울토마토를 손님들에게 나눠줬다.
음료 협찬 덕분에 몬클하우스에는 웰컴 드링크 서비스가 있었는데 오늘은 티푸드처럼 방울토마토가 추가되었다.
이 방울토마토도 오늘 아침에 재민이 딴 것이었다.
여름이 되자 온실에서 무한 생성되는 방울토마토를 보며 준해가 뒤늦은 의문을 꺼냈다.
“방울토마토는 언제까지 나는 거야?”
“몰라.”
밀림처럼 키울 줄만 알지, 정확한 생태를 모르는 재민은 토마토 아빠치고 무책임한 대답을 내놓았다.
이미 재민의 방울토마토를 많이 대접받은 멤버들은 기꺼이 방울토마토를 손님들에게 양보했다.
방울토마토가 담긴 접시를 받은 류현이 신기하다는 눈으로 방울토마토를 바라봤다.
‘SNS에서 보던 그 방울토마토…….’
오늘 몬클하우스에 모인 손님, 게스트들은 특이한 조합이었다.
이른바 모노크롬 라인 그룹의 메인 보컬 모임.
여러 아이돌을 같이 초대하여 모노크롬 라인의 시너지를 강화하자는 목적으로 기획된 컨텐츠였다.
해랑의 절친인 하범과 엔피버의 리더인 종훈, <쉰셋돌>에서 함께했던 도한과 이담. 거기에 류현이 추가되었다.
류현이 재민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러너스하이는 모노크롬과 친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불러올 메인 보컬이 한정적이어서 모노크롬은 류현에게도 초대장을 보냈고, 류현은 소속사를 열심히 설득하여 이렇게 몬클하우스에 첫 입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생소함을 느끼는 것은 류현뿐만이 아니었다.
몬클하우스에 놀러 온 적 있는 도한도 처음 놀러 온 사람처럼 실내를 이리저리 둘러봤다.
“뭐지? 저번이랑 달라진 것 같은데. 뭐랄까 되게, 아이 있는 가정집 같아요.”
“맞아. 오늘 너희가 아이들 역할이거든.”
“네? 아이돌이요?”
“아니. 아이들.”
현재 몬클하우스는 아역들을 환영하고자 꾸민 상태 그대로 유지 중이었다.
오늘 할 것은 아이들과 했던 체험을 어른인 아이돌과도 해보는 것.
아역 게스트 컨텐츠가 반응이 좋아서 그 연장선으로 기획된 것이었다.
팬들 눈에는 아이돌이 언제나 ‘우리 애’니까 아이와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우형은 오늘 모인 손님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따가 저녁 먹고 나서 애들한테 프로듀싱 앨범 자세히 설명해줘야지.’
원래 이번 컨텐츠에 초대할 사람들을 구해야 했는데, 우형은 이것을 프로듀싱 앨범의 포석으로 다지기로 하였다.
따라서 오늘 초대한 멤버들은 모두 프로듀싱 앨범에 관심을 보인 메인 보컬들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우형의 이런 목적은 의외의 상황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주인을 너무 믿은 탓에 일어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