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2화
한이는 눈치가 매우 빨랐다.
한이가 내 말을 듣고 의아한 마음에 뒤를 돌았다면 바로 권 실장과 눈이 마주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내 요청에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동자만 굴리더니 바로 눈물을 쥐어짜냈다.
“제가 연습을 소홀히 하려던 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아니, 대사까지 필요한 건 아니었는데.
한이는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왔다가 내게 칠렐레팔렐레 돌아다닌다고 혼난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되면 내가 연습실에 멤버들을 가둬놓고 키우는 사람이 된 것 같잖아.’
하지만 그의 리얼한 연기는 꽤나 효과가 있었다.
한이는 내게 꾸벅 인사하고 뒤돌아 권 실장과 눈을 마주치고는 뒤에 사람이 있을 줄 몰랐다는 듯이 어깨를 흠칫했다.
권 실장도 한이가 글썽이는 것을 보고 놀란 표정이었다.
‘권 실장도 회사에서 눈물 연기 하는 사람은 만난 적 없겠지.’
그래서인지 권 실장은 이게 꾸며진 상황이라고는 생각 못 한 듯했다.
권 실장은 분위기가 좋지 않음을 파악했는지 나와 눈이 마주치고도 다가오지 않고 고개를 작게 숙이고는 그냥 지나갔다.
한이는 권 실장에게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장난스레 손으로 눈물을 찍어내는 척했다.
‘휴우. 위험했다.’
기껏 쌓아온 히스테릭 두목님 이미지가 물거품이 될 뻔했잖아.
사장이나 권 실장이 내게 가져오는 이야기들은 전부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대할 땐 대개 표정이 좋지 않았고, 덕분에 그들은 나를 원래부터 까칠한 사람으로 알았다.
그게 이렇게 막판에 도움이 될 줄이야.
‘계속 방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어.’
회사를 뒤엎고 나가는 것은 좀 더 나중이다.
그때까지는 추진력을 얻기 위해 몸을 더 수그리고 있을 필요가 있음을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
“한이 씨.”
“네?”
즉석 눈물 연기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복도를 지나던 한이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돌았다.
뒤에선 권 실장이 아주 자상한 표정을 짓고 한이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차기작 상의하자고 했을 때 딱 저런 얼굴이었는데.’
한마디로 그에게 원하는 것이 있는 얼굴이었다.
한이는 연기를 배운 후로 종종 사람의 표정이나 행동을 분석하곤 했다.
특히 권 실장처럼 요주의 인물이라면 이런 분석이 도움이 되곤 했다.
권 실장의 의중을 판별한 한이는 곧바로 그와 같은 얼굴을 하고 대화에 응했다.
“하실 말씀 있으세요?”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듯한데 잠시 자리를 옮기죠.”
두 사람은 조금 더 편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고, 권 실장이 먼저 운을 뗐다.
“요즘 좀 어떻습니까?”
“어떠냐고 물으신다면…….”
“활동이나 회사 일이나, 전체적으로 어떤지 궁금해서요.”
“으음. 아시다시피 그룹 단체 스케줄이 잡혀서 얼마 후엔 그 촬영에 들어갈 거고요.”
“QBC 방송 말씀이시죠. 그건 촬영이 그리 길지 않을 거라고 들었는데…….”
권 실장은 좀 더 나중 일을 상의하고 싶은 듯했다.
한이는 권 실장이 예상한 화제로 이끌어가는 것을 보고 이야기를 빙빙 돌리지 않기로 했다.
“차기작…… 때문인가요?”
“생각이 있다면 같이 의논해 보고 싶어서요.”
“그런데 드라마든 뭐든 촬영을 하려면 기간이…… 그, 민감한 얘기지만 재계약 기간이랑 겹치게 될 것 같은데 그런 경우는 어떻게 되나요?”
“물론 융통성 있게 촬영이 끝날 때까지 임시로 계약 기간을 늘려서 배우팀에서 지원 가능합니다. 소속 배우 중에서도 그런 사례가 없던 것도 아니고요. 재계약 여부는 그 이후에 정하면 되니까 부담이 덜하시겠죠.”
권 실장은 그 정도야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술술 대답했다.
하지만 이는 한이가 그룹에 속하지 않은 솔로 가수거나 배우여야 고려할 만한 방법이었다.
한이가 드라마 촬영을 한다고 다른 멤버들의 계약 기간까지 같이 조절하진 않을 테니까.
한마디로 회사에서 바라는 것은 모노크롬이 뉴마를 나가서 뉴레인과 계약하든가, 한이만 뉴마의 배우팀과 계약하든가. 둘 중 하나라는 소리였다.
‘이거 상황이 좀 재밌네.’
그렇지 않아도 재계약 기간이 다가오자 멤버들에게 접근하는 회사가 있다고 들은 참이었다.
그런데 뉴마가 그런 회사 중 하나가 될 줄이야.
여전히 그룹은 뒷전으로 보는 것은 별로였지만, 자기들을 무시하던 회사가 이렇게 나오는 게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에이. 이 회사에서 겪은 게 있는데.’
물론 모노크롬을 소홀히 대했던 것은 배우팀이 아니라 과거의 아티스트팀이었지만, 그 이후에 배우팀과도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기에는 너무 다른 길을 걸어와 버렸다.
“한이 씨는 더 좋은 배우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더 괜찮은 토대나 환경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제가 상의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전에 한이가 주인의 앞에서 눈물을 보인 일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아티스트팀보다 배우팀이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소리니까.
한이는 더 좋은 배우로 성장할 수 있는 이런 생활 연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저번에 그나마 괜찮은 반응을 얻은 건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직 연기 경력이 부족하다 보니까…….”
“아니요. 그건 운이 아니라 한이 씨 실력이죠. 경력 있는 배우들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을 만한 실력이 있는데요.”
“음.”
“행동 표현이 섬세해서 정말 극에 녹아드는 듯한 연기가 가능하고-.”
“네.”
“또 특유의 분위기가 충분한 강점으로…….”
“아하.”
계약을 원한다면야 이것들이 영 마음에 없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말하는 사람이 누가 됐든 칭찬은 듣기 좋은 법.
“요즘 자신감이 조금 떨어졌는데 마침 지금 저한테 필요했던 말을 권 실장님이 해 주신 것 같아요.”
가련한 얼굴로 권 실장을 칭찬 자판기로 활용한 한이는 좋은 분위기로 권 실장과의 대화를 종료했다.
‘또 고자질하러 가야겠다.’
적당히 눈치를 봐서 이사실로 찾아간 한이는 배우팀이 자신을 꾀려 했다며 권 실장의 이야기를 줄줄 읊었다.
“뭐? 정말 염치가 없는 사람들이네.”
“그러니까요.”
“그런데 네 연기가 리얼하긴 한가 봐. 이상한 낌새를 전혀 못 느끼는 걸 보면.”
“컬러즈가 저한테 그랬거든요. 저는 다재다능해서 어디에 떨어져도 잘 살 거라고.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농담처럼 꺼낸 소리였지만 어느 정도 진심은 담겨 있었다.
권 실장 앞에서는 자신감이 떨어진 척했지만 어딜 가든 망하지 않으리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한이는 재계약을 앞두고도 불안해하지 않고 권 실장의 말들도 훌훌 털어낼 수 있었다.
***
“인간 승리다!”
준해가 인간 승리를 외치며 연습실 바닥에 뻗었다.
제이제이의 연습 장면은 비하인드용 카메라로 계속 촬영 중이었다.
커버 댄스가 슬슬 완성에 가까워지자 두 사람은 제대로 각을 잡고 촬영에 임했다.
그리고 드디어 카메라에 트윙클 댄스 챌린지 성공의 장면이 잡혔다.
“아까도 완벽에 가까웠는데 이번엔 정말로 완벽했어.”
카메라 옆에 앉아 구경하던 우형이 박수를 짝짝 쳤다.
처음엔 남들처럼 ‘애니메이션이라서 가능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했던 우형도 이 정도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댄스 챌린지 상급자용 무대, ‘트윙클 스타’의 안무는 도움닫기를 최소한으로 하여 피겨 스케이팅처럼 빙그르르 돌아 일정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것이 최대 난관.
공중회전이 특기인 재민, 그리고 재민에게서 직접 공중회전 기술을 전수받은 준해는 결국 트윙클 댄스 챌린지를 성공시켰다.
“와. 나 이거 아무도 성공 못 시키면 챌린지가 무슨 소용이냐는 소리 들을까 봐 걱정했는데. 우리가 시작했잖아.”
“준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니까.”
재민이 보여주는 신뢰에 준해는 크게 감동했다.
며칠에 걸친 연습 끝에 큰 성과를 낸 두 사람은 끈끈한 동료애를 느끼며 청춘 영화처럼 서로를 끌어안았다.
“이것도 같이 편집해서 올려달라고 해야겠다.”
동생들의 귀여운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기기 좋아하는 우형은 그 장면 또한 착실히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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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트윙클 챌린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잠깐 유행하고 말 줄 알았는데 이걸 진짜 해내네ㅋㅋㅋㅋ
└가능하단 거 알게됐으니까 이제부턴 근성 싸움이다
└아이돌 그룹이 댄스멤을 자랑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ts
└트윙클 게섯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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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님……. 로아 선생님이 무서워요.]
제이제이의 트윙클 댄스 챌린지 성공으로 로아도 박차를 가한 모양이었다.
옐로가 다시 한번 내게 구조 요청을 보냈고 나는 또 [너희도 곧 할 수 있을 거야!]라는 격려를 보냈다.
제이제이가 들고 온 트윙클 댄스 챌린지 영상은 빠른 편집을 거쳐 곧바로 모노크롬의 채널에 업로드되었다.
재민의 요청에 따라 트윙클의 무대에 나오는 반짝이 효과도 넣었는데, 퍼포먼스가 꽤나 강렬하여 귀여운 효과가 묻히는 감이 있었다.
‘2D가 3D로 현실화하면 이렇게 느낌이 다르구나.’
제이제이의 커버 댄스는 트윙클의 무대를 보이그룹식으로 해석한 느낌이었다.
준해가 말하기로 ‘인간의 근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낸 점프’라던데. 그런 무대를 웃으면서 해내는 트윙클이 위대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걸 또 해내는 제이제이도 만만치 않지.’
트윙클 댄스 챌린지가 많은 관심을 끈 덕분에 챌린지 창시자이자 첫 성공자 제이제이 또한 큰 주목을 받았다.
나는 마이 엔터를 통해 많은 이들이 제이제이의 댄스 실력을 인정한다는 것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재민의 댄스 레벨은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11로 유지되었지만, 준해의 댄스 레벨이 영상 업로드 직후 8로 올랐다.
전 메인 댄서였던 해랑과 같은 수치로 오르면서 준해는 명실상부 모노크롬의 댄스 라인 반열에 당당히 올라섰다.
‘역시 일을 크게 벌인 게 정답이었어!’
많은 사람이 보기를 바라서 댄스 챌린지의 형태로 진화시킨 것이었는데 덕분에 빠른 레벨업을 이룰 수 있었다.
나도 기뻤지만, 역시나 가장 기뻐하는 것은 우리의 컬러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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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제이ㅠㅠㅠㅠ 자랑스러운 내새꾸들
해낼줄 알았지 움쪽쪽쫙
└믿고있었다고~!
└제이제이 이걸로 거의 데뷔급 인지도 쌓은 거 아니냐곸ㅋㅋ
└이제 우리 애들 춤으로는 아무도 뭐라고 못함ㅋㅋㅋㅋ 챌린지 영상 보여주면 됨
└트윙클도?
└트윙클은.. 차원이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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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무를 음악 방송에서 선보이는 트윙클 선생님들은 차원이 다르긴 하지…….’
차원의 벽은 높다는 것을 이 기회로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성공하면 알려달라는 <시크릿 히어로> 제작사에 영상 링크를 붙여 보내자 그들에게선 바로 답장이 왔다.
[성공 못 하셨더라도 챌린지가 저희한테 큰 도움이 돼서 감사 인사를 드리려던 참이었는데. 챌린지가 아이들에게도 호평이더라고요.]
댄스 챌린지는 초급자용부터 상급자용까지 3단계로 나뉘어 있었다.
덕분에 아이돌 댄서들뿐만 아니라 어린이집 원아나 초등학생이 있는 가정들에서 초급자용 챌린지가 유행이라고 한다.
너무 어른들의 기준대로 아이들의 즐길 거리를 침범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었는데 어른만의 재미로 끝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런 연락을 받고 얼마 후, 높디높은 차원의 벽은 모노크롬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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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시크릿 히어로 본 컬러즈 있냐?!?!??
트윙클 선생님들 대기실 모니터에 모노크롬 나옴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몬클 언제 투디로 들어간 거야ㅠㅠㅠㅠ나도 데려가
└무대 앞에 응원봉 흔드는거 우리임? 엄마 나 티비나왔어
└이건 만찢남도 아니고 뭐라고 해야 하냐 화면을 찢고 들어간 남자들?ㅠㅋㅋㅋㅋㅋㅋㅋ
└내 아이돌이 차원이 달라짐 ㄴㅇㄱ
└우리 그럼 이제 투디 오타쿠 되는 거임?
└컬러즈 바쁘다 바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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