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0화
다행히 사랑의 파르페 사건 이후로 별다른 사건은 터지지 않았다.
이 연애 기류를 어머니들에게도 보고해야 할지 매우 고민했으나…… 주원은 우리를 믿고 상담 상대로 골랐을 텐데 멋대로 밝히는 건 좋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이야기를 듣지 않고도 어느 정도 눈치챈 듯한 우형과 준해. 그저 해맑은 재민과 함께 나머지 활동을 이어나갔고, 저녁까지 꼼꼼히 챙겨 먹었다.
‘여기서 내가 연습생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해 주겠다거나 못 넣어주겠다고 단언하는 건 안 좋겠지……?’
주원에게 어떻게 잘 대답을 해 줘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금방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어머니들이 오기 전 잠시 빈 시간. 시연은 미래의 부사장 나윤과 함께 에메랄드 엔터테인먼트 사업 설명회를 열었다.
“직원이 어떻게 천 명이나 돼?”
“왜냐하면, 연예인도 엄청 많을 거니까!”
시연의 사업 계획서 파일은 저번에 나에게 보여줬던 것보다 더욱 발전해 있었다.
주원도 시연이 옆에 있어서인지 내게 대답을 듣는 것에는 크게 매달리지 않았다.
수민은 시연의 사업 계획이 재밌었는지 흥미를 보였다.
“연예인도 백 명 넘어?”
“응. 배우랑, 아이돌이랑…… 2백 명 뽑을 거야.”
“우리 회사는 배우 스무 명 있는데!”
“나중에 회사 찾아야 하면 우리 회사로 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할 나이에 벌써 미래의 재계약 이야기까지 나누다니.
시연은 에메랄드 엔터 부사장에 이어서 소속 배우를 얻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나는 시선을 주원에게로 돌렸다. 내 앞에 있던 해랑과 한이도 마찬가지였다.
주원이 순간 이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조언을 구하는 눈빛인가?
해랑이 고개를 끄덕이고 한이가 주먹을 쥐어 보이자 주원은 용기를 냈다.
“그러면 나도…….”
용기를 낸 것까지는 좋았으나 주원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좋지 않은 타이밍에 어머니들이 몬클하우스로 도착해 버린 탓이었다.
“엄마!”
“시연이, 시우. 재밌게 잘 놀았어?”
“응!”
시연이 벌떡 일어나 어머니를 반기고, 우형과 손장난을 치던 시우도 쪼르르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우형이 쓸쓸한 얼굴로 휑하니 자신을 떠나버린 시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역시 어머니한테는 안 되는구나…….”
“겨우 하루 같이 있어 놓고 뭘 바란 거야?”
준해가 웃긴다는 말투로 대꾸하고, 우형은 떠나간 시우 대신 준해를 붙잡았다.
우형과 같은 곳을 바라보던 주원도 본인의 어머니가 나타나자 반가웠는지 바로 시선을 빼앗겼다.
‘역시 어린이한테는 어머니가 제일…… 아니, 이렇게 넘어가도 괜찮은 거야?’
평소에 시연과 만날 기회가 없다가 오늘 만난 참에 해랑과 한이에게 조언을 구한 듯한데.
결국 ‘엄마가 제일 좋아!’라는 결말로 끝난다고?
주원이 돌아가기 전에 내게 모노크롬에 넣어주겠다는 확답을 받으려 할까 봐 계속 걱정하고 있었는데, 목적을 잃은 주원을 보니 이 또한 너무나도 신경 쓰였다.
“두목님. 그냥 이대로 ‘안녕~’ 하면 되는 건가요?”
“사실 모노크롬에 넣어달라고 하면 뭐라고 할지 좋은 대답을 못 찾긴 했는데…… 그냥 해산하려니 뭔가 찝찝하네.”
한이도 어깨를 긁적이며 허탈해했고 해랑도 개운치 않은 표정이 되었다.
“그럼 우리 하루 종일 고민한 건 뭐가 되는 거야?”
“글쎄…….”
하지만 아이들끼리 있는 것과 어머니들이 같이 있는 건 매우 다르다.
여기서 주원이 마음을 표현하면 ‘어머님, 따님과 교제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상황이 되어 버리잖아?
‘이렇게 된 이상 오늘은 그냥 해산하는 게 나으려나.’
……라고 생각했는데, 꽤나 자기주도적인 성격을 지닌 듯한 수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야아! 인사하고 가야지!”
“어, 어?”
수민이 주원의 옆구리를 찌르고, 어머니에게 정신이 팔렸던 주원의 시선이 다시 시연에게 닿았다.
사정을 모르는 주원의 어머니도 “그래. 친구들이랑 인사하자.”라며 주원의 등을 살며시 떠밀었다.
그리고 주원이 시연 앞에 섰다.
“저기…….”
“응?”
“나중에 전화해도 돼?”
시연의 어머니가 “어머.” 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무언가 다른 기류를 느낀 모양이었다. 주원의 어머니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주원은 한번 입을 열자 용기가 났는지 아까 하려던 말을 다시 꺼냈다.
“나도 네 회사 들어가고 싶어.”
……먼저 회사 이야기로 운을 떼고 전화 이야기로 넘어가는 게 더 낫지 않아?
이렇게 되면 시연보다는 회사에 관심이 있어서 연락처를 구한 것 같잖아.
지켜보던 나는 아리송한 기분이 되었으나, 시연은 에메랄드 엔터에 관심이 있다는 소리에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주원이는 팀장님 해.”
“그래도 돼?”
“응. 엄마! 나 가방에 핸드폰.”
시연과 주원은 어머니들의 도움을 받아 연락처를 교환했다.
이어서 번호가 없는 나머지 친구들도 연락처를 교환했기에 둘만 따로 연락망이 생긴 건 아니었지만.
‘이건 그냥 친구에서 조금 더 친한 친구로 업그레이드된 것뿐 아닌가……?’
그러나 주원은 아쉬운 기색 하나 없이 기쁜 표정이었다.
내가 너무 어른의 시선에서 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어.
‘하긴 중고등학생이나 어른들처럼 단둘이 만나서 데이트할 것도 아니고.’
주원이 바라던 것도 생각나면 연락하고 가끔 만나서 같이 노는 것 정도였겠지.
결국 아이들의 일은 아이들끼리 해결했고, 어른이었던 우리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이들은 멤버들과도 인사를 나눈 후에 돌아갔고, 우리 스태프들과 모노크롬만 남자 준해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와, 나 순간 마음 졸였어. 혹시라도 사이 틀어질까 봐.”
나도 긴장한 어깨에서 힘을 풀었다. 만일 주원이 거기서 ‘나랑 사귀자!’라고 고백했으면 시연이 어떻게 반응했을지 모른다.
한이도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는 척하며 뒤돌았다.
“휴우. 연애는 어렵네요.”
“응…….”
해랑도 오늘 일로 깨달은 게 많았는지 조금 피로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서 재민만이 “무슨 연애?”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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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니가 말하는 트윙클이 누구야?
아이돌?인 것 같던데.. 검색해도 안 나오는데 외국분들이셔..?
└ㄴㄴ한국인 맞는데 차원이 달라
└차원이 다르단 게 수준이 다르다는 게 아니고 진짜 디멘션이 다름
└아 설마 얘네 말하는 거?(이미지)
└ㅇㅇㅋㅋㅋㅋㅋㅋ
└아나 재미니가 되게 찬양하길래 대단하신 분들인가 했는데 투디였냐고ㅋㅋㅋㅋ
└트윙클 선생님들 무시하면 안된다 초등학교에서 인지도 최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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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민의 최대 관심거리는 ‘트윙클’이라는 아이돌 그룹이었다.
몬클하우스에서 시연, 나윤과 함께 <시크릿 히어로>라는 애니메이션을 감상한 것이 원인이었다.
‘어쩐지 그날 예정에 없던 댄스 교실이 열려 있더라니만.’
그날 이후로도 컴백이나 공연을 앞둔 것도 아닌데 연습실에서 뭔가를 계속 연습하기에 물어봤더니 재민은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꺼냈다.
“<시크릿 히어로>에 트윙클 무대가 세 개 나오는데요. 이 ‘트윙클 스타’에 가장 고난도 안무가 있어요.”
“으음. 그건 알겠는데 꼭 네가 트윙클을 따라잡을 필요가 있을까? 트윙클은 2D 세상 속 사람이고 너는 3D 인간인데.”
“저 메인 댄서잖아요.”
해랑이 ‘저 래퍼라서.’로 대답을 넘기는 것을 보고 배운 건가.
재민은 그날 트윙클의 무대, 그러니까 실제 무대도 아니고 애니메이션 속 무대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내게는 2D 캐릭터였던 모노크롬이 3D가 되어서 또 다른 2D 캐릭터에게 경쟁심을 느끼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혹시라도 2D로 회귀 본능 같은 걸 느끼는 건 아니겠지……?’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냥 춤밖에 모르는 바보 상태에 가까운 것 같지만.
재민의 열정에 덩달아 희생된 것은 바로 준해였다.
“꼭 내가 같이 해야 해?”
“트윙클이 2인조잖아. 너 마리 해. 내가 루이 할게.”
“전엔 나보고 루이 닮았다며.”
“마리는 히어로인데?”
나는 애니메이션을 안 봐서 무슨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더 좋은 역할을 준해에게 양보하겠다는 뜻인 듯했다.
“댄스 포지션이 필요한 거면 해랑 형도 있는데…….”
준해가 그렇게 말하며 해랑을 힐끔대자, 해랑은 시선을 피하고 싶었는지 못 들은 척 반대쪽으로 돌아섰다.
갑자기 벽을 보고 선 해랑을 본 재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냐. 이건 피지컬을 맞추는 게 중요하단 말이야. 가벼운 사람이 필요해.”
재민 다음으로 가벼운 멤버가 준해였다. 아무리 가벼워도 초등학생만큼 가볍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재민은 무언가에 꽂히면 옆에서 누가 뭐라 해도 고집을 잘 꺾지 않았다.
그 성격을 아는 준해는 이번엔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제가 보기엔 애니메이션이라 가능한 동작 같은데……. 전에도 계속 시도했는데 잘 안 됐거든요.”
“주인 님은 이거 별로예요……?”
재민까지 원하는 장난감이 있는 아이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 이렇게 동시에 나한테 물어보면…….’
내가 한쪽 편을 들어줘야 하잖아.
준해는 ‘불가능한 동작으로 보인다.’파. 재민은 ‘그래서 더 하고 싶다.’파였다.
각기 다른 마음이 담긴 두 사람의 시선을 마주한 나는…….
“팀 미로에 가능한지 물어보면 어떨까?”
-라고, 댄스 전문가들에게 책임을 미뤘다.
곧바로 재민이 나서서 팀 미로에게 트윙클 무대 분석을 의뢰했고, 단원들 사이에서도 한바탕 토론이 펼쳐졌다고 한다.
어느 날은 댄스 트레이닝을 맡은 단장 민후 외에도 다른 단원 몇몇까지 뉴마로 와서 모노크롬과 함께 대면 토론을 벌였다.
“여기서 점프를 하려면 준비 동작이 들어가는 게 맞아.”
“그런데 없잖아요.”
“화면 전환 때문에 안 보이는 거라면 이 앵글에서…….”
어른들이 아동 애니메이션 클립 영상을 두고 이렇게 심각하게 회의하다니.
재밌는 광경이었으나 프로 의식만큼은 인정할 만했다.
그리고 팀 미로가 낸 결론은 이러했다.
“이건 선택받은 자들만 출 수 있는 안무야!”
완벽하게 따라 하려면 몸이 가벼워야 하고 어느 정도의 점프력,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 준해야. 넌 할 수 있어!”
“결국 나야?”
재민의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검증을 받아 ‘준해는 나와 함께 해야 한다.’로 돌아왔다.
벗어나지 못할 운명을 느끼고 체념하던 준해도 ‘선택받은 자’ 타이틀은 나쁘지 않은지 저번보다는 승부욕이 생긴 얼굴이었다.
‘젊은 애들이란…….’
옆을 보니 우형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한 얼굴로 제이제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준해도 처음엔 의욕 없는 티를 냈는데 어쩔 수 없이 다른 멤버들을 닮아간다니까.
어쨌든 멤버 둘이 나선다면 내가 할 일이야 정해져 있었다.
“그럼 기왕 하는 거, 이걸 컨텐츠로 만들자.”
우형이 제이제이를 바라보던 얼굴로 이번엔 나를 바라봤다.
‘컨텐츠 중독자란…….’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게 맞아서 할 말은 없지만.
“제목은 트윙클 댄스 챌린지로 하면 되겠다.”
보통 댄스 챌린지란 주요 안무를 짧게 따라 한 영상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참여를 유도해서 노래를 홍보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제이제이가 도전하게 될 것은 실패의 가능성도 있는 진정한 의미의 댄스 챌린지였다.
‘정말 제이제이나 할 법한 챌린지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다르게, 이 트윙클 댄스 챌린지가 입소문을 탔는지 제이제이 외에도 도전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