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26화 (326/430)

# 326화

[그런 자리가 있었으면 저도 불러주지 그러셨어요.]

“……PD님이 계셨으면 대화가 잘 됐을까요?”

[냉정하시기는. 아무튼 배명희 선생님은 주변 성화에 못 이겨서 나오실 줄 알았는데 그렇게 직접 저한테 연락하실 줄은 몰랐네요.]

배명희가 몬클하우스에 다녀가고 얼마 후, 그녀는 임주미 PD에게 출연하겠다고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어떻게 설득한 거예요? 저번엔 오히려 이사님이 선생님한테 설득당하시더니.]

임주미 PD는 정말 궁금하다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이 질문에는 대답해주기 어려웠다.

이것은 순전히 배명희의 호의였다.

우리가 배명희를 초대한 날, 그녀는 아마도 내게 딸의 모습을 투영하여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 듯했다.

자신이 발목을 잡고 싶지 않으니 어딘가에 매여 있지 말고 훨훨 날아가라고.

그리고 나나 후배들의 발목 또한 잡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말해 주면 이 사람은 악용할 것 같아…….’

임주미 PD라면 내 이야기를 듣고 본인이 유리한 방식으로 써먹을 듯해서 나는 자세한 내용은 꺼내지 않기로 했다.

“아마 후배들을 직접 만나니까 마음이 좀 바뀌신 모양이에요.”

내가 별 소득 없는 이야기로 얼버무리자 임주미 PD는 대답 듣기를 포기했는지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잘해주셨어요. 배명희 씨가 출연을 결심하셨으면 이제 일사천리죠.]

“이 방송, 정말 제대로 만들어 주셔야 해요.”

[화제성 높은 인물로 게스트 리스트 쫙 뽑아보는 중이니까 걱정 마세요.]

걱정 말라고 하는 게 더 걱정된단 말이야.

모노크롬을 은퇴에 가장 가까운 그룹이라면서 섭외하는 사람인데.

그녀가 화제성을 잡겠다고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대화할수록 괜한 걱정만 늘어나는 것 같아.’

길게 대화하지 않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나는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남기고 통화를 마쳤다.

임주미 PD의 대화방식은 이 기획이 끝날 때까지 익숙해질 것 같지가 않았다.

‘하아. 큰 고비를 넘긴 것 같은데 이제야 첫걸음이라니.’

배명희와의 대화가 내겐 큰 의미가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제는 또 앞으로가 문제였다.

좋은 사람이 주변에 생기는 건 고마운 일이지. 하지만 음악대상은 어떡할 거야.

우리를 이런 상황에 몰아넣은 안지택 PD의 카르텔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나는 나름대로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기 위해 그린과 긴밀한 연락을 나눴다.

***

<쉰셋돌>의 시즌2로 제작되는 <타임스테이지>는 1.5세대 걸그룹인 ‘판도라’의 멤버, ‘채나’를 메인으로 하는 방송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되돌리듯이, 무대 위에서 전성기로 돌아간다는 뜻의 <타임스테이지>.

<쉰셋돌>에서는 그룹명을 공모로 뽑았지만 이번엔 프로젝트 그룹의 이름 또한 방송 타이틀과 동일한 ‘타임스테이지’로 결정되었다.

이 방송의 출연진은 프로듀서인 박형주, 그리고 각 세대의 걸그룹 멤버 네 명이었다.

1.5세대 아이돌로 활동한 채나와 2세대 새민은 그나마 활동 시기가 가까워서 서로 아는 사이였고, 3세대 아이돌로 섭외된 그린은 걸그룹 덕후였기에 이 둘을 잘 알았다.

문제는 막내로 들어온 베터 엔터테인먼트의 차기 걸그룹 데뷔조 연습생, ‘에니’였다.

‘나는 아직 데뷔도 안 했는데…….’

소속사 선배인 러너스하이의 류현이 <쉰셋돌>에 출연하여 많은 팬을 얻은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이 방송에 출연하면 추후 데뷔할 자신의 그룹에 큰 도움이 되리라.

그런 생각으로 칼을 갈고 출연을 결심한 그녀였다. 함께 데뷔를 준비하는 멤버들도 응원을 해 줬다.

그러나 18세밖에 되지 않은 그녀의 칼은 금방 무뎌지고 말았다.

에니는 촬영장 구석에서 박형주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나는 챙겨주지도 않고오…….’

물론 함께 온 회사 스태프들이 자신을 내버려 둔 건 아니었지만, 아직 연습생 신분인 자신보다는 박형주를 더 챙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박형주가 이 방송에 자신을 출연시키겠다고 해서 베터 엔터의 차기 걸그룹을 밀어주려는 심산인 줄 알았는데.

촬영은 박형주와 채나를 중심으로 돌아갔고, 박형주와 안지택 PD는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은지 내내 붙어 다녀서 에니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각자도생해야 하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연습생은 연습생. 그녀는 혼자 살아남기 어려운 햇병아리였다.

에니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그린을 발견하고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언니이-.”

“응?”

“저랑 같이 있어요.”

채나와 새민은 대선배인 데다가 세대 차이가 나서 자신을 같은 출연자가 아니라 조카를 보듯 했다.

선배라고 부르면 분위기가 너무 딱딱해진다는 이유로 호칭은 이름 혹은 언니로 통일하기로 했지만, 에니가 마음 편하게 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그린뿐이었다.

그린에게 의지해야겠다는 에니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그린은 걸그룹 덕후로서 걸그룹 떡잎도 무시하지 못했다.

‘연습생 때 낯가리던 네이비 보는 것 같아서 그냥 놔두지를 못하겠어.’

촬영장 분위기를 알려달라는 주인의 부탁이 있어서 그린은 시간이 나면 현장을 전체적으로 살펴보고는 했다.

에니가 잘 섞이지 못하고 다소 동떨어져 있는 것도 진작 알아보았다. 그래서 더더욱 그녀를 혼자 두지 못했다.

그린은 이 문제를 고민하다가 안지택 PD에 관해 잘 아는 듯한 주인에게 상담해 보기로 했다.

주인도 음악대상 카르텔 때문에 이 방송에 관심이 많았기에 그린의 상담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세대 차이가 문제야?”

[네. 그것도 있고…… 지금까지는 무대를 어떻게 만들지에만 집중했고 출연자들이 개인적으로 친해질 기회가 얼마 없긴 했어요.]

주인은 이야기만 전해 듣고도 이 상황에 기시감을 느꼈다.

‘안지택 PD 그 사람, <쉰셋돌> 때도 신셋 멤버들 사이는 안중에도 없었지.’

자기가 불화가 생길 만한 인원을 모아두고는 ‘이유는 모르겠는데 생각보다 친해지질 않네요?’라는 식의 태도만 보였다.

프로듀서로 참여한 라솔과 모노크롬이 대신 멤버들의 사이를 신경 쓰자 그 부분은 아예 마음 놓고 맡길 정도였다.

안 PD가 주인의 아이디어를 계속 경청하던 것도 그 일환이었다.

임주미 PD는 이를 ‘아이디어를 갖다 바쳤다’라고 표현했지만, 주인은 지금이 그것을 활용할 때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린이 네가 걸그룹에 관해서는 빠삭하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1세대부터 지금까지 걸그룹 계보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때? 그 에니라는 애가 선배들에 관해서 잘 모르듯이 선배들도 요즘 신곡이나 신인들은 잘 모를 테니까.”

[제가요? 오프일 때 선배님들이랑 에니를 따로 모아서요?]

“아니, 방송에서.”

그린은 기획에 없는 일을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느냐며 의아해했지만 주인에게는 반쯤 확신이 있었다.

“안지택 PD님이 귀가 상당히 얇…… 아니, 아이디어라면 꽤 잘 들어주시거든.”

주인은 안지택 PD가 컨텐츠 거리를 던져주는 사람에게 귀가 열려있고, 좋아 보이는 기획이라면 방송에 얼마든지 끼워 넣는 사람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라솔과 만호가 있는 <쉰셋돌>에서도 그렇게 융통성 있게 방송을 제작해나갔는데, 아직 대상을 받지 않은 박형주 앞이라고 태도가 다르겠는가.

‘그리고 박형주 씨는 이 기획을 성공시켜서 자기가 뜨는 게 목적이지, 정말 이번 프로젝트 그룹을 띄우고 싶은 건 아닐 거야.’

그래서 안지택 PD와 박형주 둘 다 멤버들의 사이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듯했다.

그런데 마침 여기에 윗세대와 아랫세대를 중간에서 이을 수 있는 걸그룹 덕후 그린이 있었다.

이건 박형주의 영향력을 조금씩 깎아 먹을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덤으로 그린이 주목받을 기회이기도 하고.

그런 생각에 주인은 그린을 적극 서포트하기로 했다.

‘안지택 PD님이나 박형주 씨나 둘 다 1위에 뭔가 맺힌 게 많은 것 같으니 1위 곡 위주로 정리해가면 솔깃하겠지?’

그리고 이는 방송에도 필요한 정보였다.

<쉰셋돌>은 원만호가 신인 아이돌로 데뷔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다른 멤버들도 신인으로만 모았다.

그러나 <타임스테이지>는 신인 컨셉이 아니라, 각 세대를 아우르는 컨셉이었다.

“옛날 감성에 맞출지, 요즘 감성에 맞출지 고민 중이라고 했잖아. 세대별 걸그룹 히트곡을 살펴보다 보면 공통된 감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을 어필하면 안 PD님도 잘 들어주실 것 같아.”

그린은 주인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디어가 번뜩였는지, 아이리스의 뮤직비디오 회의 때처럼 말이 빨라졌다.

[그러면 말이에요. 방송 제목도 타임머신을 따서 만들었으니까 정말 타임머신을 타고 거슬러 올라간 것처럼 꾸미면 재밌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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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네 지금 달리고 있는 게 타임스테야?

재밌어? qbc가 쉰셋돌로 재미보고 뇌절하는 것 같아서 안 봤는데

└초반에 노잼이더니 요즘 세대차이 극복 특집 중인데 재밌엉

└요즘 세기말 걸그룹 컨셉 잡고 상황극 중인데 진짜 그때 예능 스타일ㅋㅋㅋㅋ

└처음엔 멤버들 사이 어색해서 약간 노잼이긴 했는데 지금 걸그룹 시조새랑 병아리 캐릭터로 잘 잡혀서 귀엽더랔ㅋ

└그린이 ㅈㄴ덕후 마음 잘 알아 나도 걸그룹 꽤 오래 팠는데 위기감 느낌

└근데 솔까 박형주 너무 많이 나옴ㅎ 박형주 나오는 분량을 줄이고 멤버들을 더 보여주는 게 나을듯

└ㅇ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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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스테이지>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따라서 음악과 예능 파트의 비중이 비등했는데, 갑자기 예능 파트의 분량이 많아지는 바람에 박형주는 당황했다.

자신은 예능인이 아니라 음악인. 예능 파트에서는 크게 활약할 수 없었다.

안지택 PD에게 물어보니 “저희도 방송이다 보니 시청률을 신경 써야 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뭐야. 시청률은 다른 쪽에서 끌어와야 한다 이 소리야?’

방송의 시청률이 높아지면 박형주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박형주는 자신이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그림을 원했지, 자신이 방송에 묻어가는 그림은 원하지 않았다.

<쉰셋돌>은 팬덤이 몰릴 수밖에 없는 라이징 보이그룹 멤버들을 모았기에 프로듀서 역할인 라솔과 모노크롬의 비중은 비교적 크지 않았다.

박형주는 <타임스테이지>에서 그들보다 많은 주목을 가져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기획된 방송이었다.

그런데 출연진 중에 변수가 섞여 있었던 모양이다.

‘아이리스…… 레이블이 분리되기 전까지 모노크롬이랑 같은 소속사였잖아?’

박형주는 뉴마가 자신을 방해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신이 베터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을 꽂아 넣었더니 마치 따라 하듯이 아이리스의 멤버를 꽂아 넣은 것 하며.

그린은 정당한 방법으로 섭외된 것이었으나 박형주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린이 안지택 PD에게 건의사항을 말하는 것 같더니 방송의 포맷이 이상하게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판단을 마친 박형주는 류현을 불렀다. 류현은 <쉰셋돌>을 촬영하며 뉴마를 자주 오갔으니 무언가 목격한 게 있을지도 모른다.

“뉴마 엔터테인먼트요……?”

“그래. 거기 혹시 어디 PD님이랑 연결된 사람이 있나? 혹시 뭐, 친인척 관계라거나.”

“저는 잘 모르겠…… 아!”

순간 류현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뉴마 이사님이…… 뭔가 있는 것 같았어요.”

“이사? 그 사람이 어쨌길래.”

“뉴마 이사님이 되게 젊은 분이신데요. 저희 A&R 팀장님 정도……?”

젊은 사람이 이사직에 오를 정도라면 뒷배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박형주는 류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언젠가부터…… 안지택 PD님을 조종한다고 해야 하나. PD님이 그분 말을 다 듣고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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