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4화
“…….”
배명희의 대답을 듣고 가슴이 콱 막혔다.
<송투유>에서 무대에 올라선 그녀는 노래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 모습을 본 패널과 시청자들도 그녀에게 깊이 감정 이입을 했다.
오랜만에 무대에 선 감회와, 노래를 부르지 못했던 지난날들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있었으리라 생각하면서.
그런데 사실은 그보다 더욱 뼈에 사무치는 아픔이 숨겨져 있었다.
이렇게 말하기만 해도 속이 쓰린지 그녀는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병원에도 오래 입원했고 나보다 더 많이 아프다가 갔는데 내가 좀 괜찮아졌다고 노래를 부르기가. 도저히 부를 수가 없더라고요.”
“아…….”
딸을 잃은 어머니의 심정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오는 길에 임주미 PD에게 지나가듯이 들은 이야기로는 배명희는 이곳에 혼자 산다고 했다.
가까이에 사는 조카가 자주 찾아와 같이 밭을 가꾸고 시간을 보낸다고는 하는데, 그렇다고 딸의 빈자리가 채워지지는 않을 터였다.
나는 나와 그녀 앞에 놓인 짝 맞춘 컵으로 시선을 내렸다.
혹여나 딸을 생각하며 한 벌씩 맞춘 게 아닐까 생각하면 손을 대기가 어려웠다.
“저, 저는 그런 줄 모르고…….”
“모르는 게 당연하죠. 내가 처음 말했으니까.”
나는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어물어물하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배명희는 화제를 전환하듯이 상체를 쭉 펴며 말했다.
“예란이도 그렇고, PD님도 그렇고. 무슨 생각으로 나를 밖으로 끌어내려는지는 알겠는데 나는 그냥 지금이 마음에 들어요. 방송국도 주변에 차가 빼곡하고. 이제 매캐한 공기는 못 맡겠어.”
“도시 매연은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겠네요…….”
한이는 <송투유>에서 천상식의 소속사나 방송국 주변 등에서 준비 과정을 촬영했다.
그러나 배명희와 예란의 팀은 배명희의 자택이나 교외의 스튜디오에서 주로 만났고 완성된 무대만 방송국에서 촬영했다.
폐가 상한 적이 있어서 그런 부분에 더 민감한 듯했다. 이런 전원주택에 사는 것도 그렇고.
“저도 가수 생활을 몇십 년이나 했어요. 이사님이 담당하신다는 그 후배들도 그렇고, 요즘 가수들도 많은데 꼭 나까지 그 사이에 끼어야 하나.”
그녀는 작게 숨을 내쉬며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찬장 위에 예전 그녀의 모습이 담긴 레코드 앨범이 장식되어 있었다.
“노래는 할 만큼 했으니까 남은 삶은 그냥 이렇게 한적하게 지내고 싶네요.”
***
나는 들어왔을 때와는 정반대의 기분으로 대문을 나섰다.
스마트폰을 확인해 보니 임주미 PD에게서 마을 입구의 카페에 있으니 대화가 끝나면 연락하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대화가 끝났음을 알리고 그녀가 말하는 방향으로 조금 걷자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차가 보였다.
“타세요. 대화는 잘 나누셨어요?”
“PD님은 이걸 전부 알고……. 하아.”
그녀는 이 상황을 전부 예상하고 나를 여기로 데려온 거겠지.
배명희가 본인의 입으로 아픈 과거를 다시 꺼내놓는 것까지.
지금은 그녀와 동행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지만 여긴 택시가 오가는 곳이 아니었고 나 대신 회사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을 최 비서를 불러올 수도 없었기에 차에 올라탔다.
“아까 올 때 배명희 씨가 젊은 여자한테 약하다고 말씀하셨던 게…….”
정말 예상치도 못한 이유여서 나는 머리를 짚었다.
먼저 떠나보낸 딸 생각이 나서 그 나이대의 여성을 보면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다니.
배명희가 오늘 처음 만난 내게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의 일을 말한 것도, 내가 딸처럼 젊은 여성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임주미 PD도 젊은 여성이라 이 이야기를 먼저 들었겠지.
“무대에 서지 않으시겠다는 이유도 이해가 가고, 싫으신 것 같던데. 이렇게까지 해서 방송에 출연해 달라고 해야 할까요? 아까 말씀하신 대로 호스트는 따로 두고 게스트로 잠깐 초대하는 게 아니라면요.”
“생각보다 마음이 약하시네요.”
내가 마음이 약한 건가?
이 말을 한 게 임주미 PD여서일까. 내가 이상한 건지, 그녀가 이상한 건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나도 지금 이것저것 가릴 상황이 아니지만 이건 정말 마음이 불편해.’
그녀가 젊은 여성인 나를 보고 딸을 떠올렸다면, 나는 딸이 없이 혼자 지내는 그녀를 보고 엄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데에 마음이 약해지는 건 이상한 게 아니잖아.
그나마 이런 한적한 곳에서 평온한 삶을 추구하는 것 같은데, 그 평화로운 일상을 깨트리면서 하기 싫다는 일을 강요해야 한다니.
“이유를 알고 나니까 너무 저희 의견만 밀어붙이는 기분이 들어요. 그렇게 오래 노래를 안 하셨다는 건 아직도 그때 일이 마음에 남으셨다는 건데…….”
“큰 결정을 하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아무 변화도 없으면 그냥 제자리에 안주하기만 할 뿐이에요.”
지금 배명희의 상황을 제자리에 안주한다고 해야 하나.
오랜 경주를 마치고 이제 쉴 자리를 찾아 휴식하는 상황에 더 가깝지 않을까.
“그리고 방송하느라 도시로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싫다고 하시던데요. 숨이 가빠오는 것 같다고.”
“아! 그것도 생각해 뒀죠. 도심으로 오실 것 없이, 교외에 식당을 차렸다는 컨셉을 그려봤는데 말이에요.”
나는 기분이 침울해졌는데, 임주미 PD는 신나게 본인의 기획안을 설명했다.
“전에 한번 찾아왔을 때가 마침 저녁 시간이어서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는데 요리를 참 잘하시더라고요.”
“……식사도 대접받으셨어요?”
아까 여기 도착했을 때, 배명희가 임주미 PD를 보며 지긋지긋하다며 진저리를 치기에 조금 성미가 있으신 분인가 했는데 대화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밥도 대접했다면 배명희도 처음엔 임주미 PD에게 상냥한 태도를 보인 듯한데.
임주미 PD는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이렇게 문전박대당하는 신세가 된 거야?
궁금하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내가 배명희와 대화하고 무슨 성과를 가져오기를 바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임주미 PD는 내 미적지근해진 태도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건 제가 방송하자고 막무가내로 나가는 게 아니고, 배명희 씨와 오래 알아 온 예란 씨도 부탁하신 일이에요.”
그분도 이렇게까지 들러붙기를 바라지는 않으셨을 것 같은데…….
이렇게 되면 그 예란이라는 분도 무슨 마음인지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오래 알아 온 후배라면 당연히 나보다 과거 일에 관해 잘 알 터였다.
방송에서는 ‘다시 노래하는 선배의 모습이 보고 싶다.’라면서 그녀를 설득하는 모습이 나왔지만, 시청자들에게는 밝혀지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이사님은 이제 제 기획에 참여한 게 내키지 않으세요?”
이 방송을 하고 싶냐, 아니냐를 물어보면…… 하고 싶지.
PD의 이런 질문은 나를 을의 입장으로 만든다. 하지만 지금은 지레 겁먹어서 소심하게 수긍만 하고 싶지는 않았다.
“PD님도 여러 번 오셨으니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배명희 씨 마음이 확고한 게 가장 큰 문제잖아요. 결국 출연 거부로 끝날 수도 있고.”
“그렇죠. 어쨌든 선택은 배명희 씨가 하는 건데.”
“만일 마음을 안 바꾸신다면…… 제가 그냥 아픈 부분만 후벼 파고 지나간 사람이 될까 봐 마음이 편치 않네요.”
임주미 PD도 이 말에는 딱히 반박할 생각이 없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하면서 눈썹을 올리는 것을 보면 고개를 끄덕인 게 내 말에 동의한다는 건지, ‘너는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라는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방송 일 하면서 별별 사람을 다 보는데 이사님 같은 분은 또 신선하네요.”
“……저는 일반적이지 않나요?”
“이사 자리에 계시니까, 세간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 방송계 기준으로 일반적인 분이실 줄 알았죠. 다르게 말하자면 이사님 같은 분이 이사로 계신 게 신선하다고 해야 하나.”
……이건 칭찬은 아니겠지?
그러나 임주미 PD는 방송계에서 벌어지는 비도덕적인 상황을 떠올리며 이 말을 하는 듯했다. 그러면 그리 나쁜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으니 임주미 PD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시다면 예란 씨랑 한번 만나보세요. 제가 연락처를 드릴게요. 아니, 제가 이사님 연락처를 예란 씨한테 드려도 되나요? 이사님도 저희 쪽에 붙으신 걸 알면 환영하고 나오실걸요.”
“네. 부탁드릴게요.”
나도 배명희를 설득하려 한다는 그녀가 무슨 생각일지 궁금하니 좋은 기회였다.
환영하리라는 말이 정말이었는지 임주미 PD와 헤어진 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예란에게 연락이 왔고, 마치 급한 일이라도 처리하듯이 곧바로 약속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
예란은 활동 연차가 20년이 넘는 50대 발라드 가수였다. 본명은 오예란. 그중 이름만을 활동명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녀는 본인이 뉴마로 찾아오겠다고 했지만, 라솔을 회사에 초대하지 못한 것과 같은 이유로 내가 그녀를 찾아가기로 했다.
약속 자리인 그녀의 소속사 1층에 있는 카페로 가니 업무 미팅용인지 프라이빗하게 나뉜 공간이 몇 군데 있었다.
그중 한 곳에서 우아하게 웨이브 진 중단발을 한 그녀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선배가 저한테 전화해서 말씀하시더라고요. 임 PD님이 또 다른 사람을 데려왔다고.”
“네. 임주미 PD님이 같이 가자고 해서 동행했는데…… 괜히 제가 민폐만 끼치고 온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아니에요. 선배가 은근히 사람이 찾아오는 걸 좋아해요. 임 PD님만 빼고.”
대체 임주미 PD는 뭘 한 거야…….
하지만 지금 궁금해할 것은 이게 아니었다.
“저한테 해 주고 싶으시다는 말씀이란 건……?”
“이사님도 들으셨죠. 선배 따님 얘기.”
“네. 자세히 들은 건 아니지만요.”
제삼자가 들어도 너무나 마음 아픈 일이라 그 화제가 나오자 다시 기분이 가라앉았다.
“선배 따님이 저보다 대여섯 살이 어렸나. 저도 가끔 선배랑 같이 만나기도 했는데 모녀 사이가 정말 좋았죠. 그래서 더 사무치신 거예요, 선배는.”
예란은 자신이 직접 겪은 일처럼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며 슬픈 얼굴로 말했다.
“저도 얘기를 듣고, 방송에 출연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배명희 선생님의 아픈 기억을 꺼내는 게 아닌가 해서 조심스러워졌거든요.”
“방송은 됐다고 하시죠? 노래는 더 안 불러도 될 것 같다고.”
“네.”
역시 예란도 배명희가 어떤 마음인지 전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계속하여 그녀를 설득하려는 이유가 궁금했기에 나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배명희의 딸은 어릴 때부터 엄마가 가수라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배명희는 가수 활동을 하느라 딸이 학생일 적 많이 챙겨주지 못한 점을 미안해했지만, 딸의 응원을 받아 가수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선배가 사고 후에 입원해 있을 때 저도 병문안을 자주 갔었는데, 연기를 많이 마셔서 선배가 계속 목이 쉬어 있었거든요.”
예란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울컥하는지 테이블에 비치된 티슈를 한 장 집어 들었다.
“그런데 선배 따님이 본인도 아파서 숨을 색색거리는 와중에, 엄마가 더는 노래를 못 부르는 거냐면서 더 슬퍼하는 거예요.”
“…….”
지금 내 표정은 알 수 없지만 배명희에게서 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의 그 표정이 아닐까.
예란은 감정을 추스르는지 크게 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선배는 그때 생각이 나서 노래를 못 하겠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 이건 좋은 방향이 아닌 것 같아요.”
“따님은 선생님이 계속 노래를 부르기를 원했다는 거네요…….”
“네. 따님이 엄마 노래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선배는 또 얼마나 멋진 가수였는데요. 그런데 선배는 그날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니까.”
그래서 예란은 그녀를 끊임없이 설득해왔다.
<송투유>에서 겨우 한 번 마음을 먹었으니, 그다음은 조금 더 쉬우리라 생각하여 임주미 PD와도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나도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우유부단했던 내 태도를 확실히 정할 수 있었다.
임주미 PD에게 선배 타도라는 다른 목적이 있는 건 별개였다.
이건 딸이 옆에 없어도 괜찮은, 본인의 삶을 살 수 있는 어머니를 위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