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0화
“그래도 괜찮겠어?”
“PD님도 그렇고, 외부에서는 저희가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니까 해체…… 얘기를 하시는 것 같은데.”
우형은 별로 입에 담고 싶지는 않은지 ‘해체’라는 단어를 꺼낼 땐 눈동자를 빙 굴리며 말했다.
그래도 그의 말에는 강단이 있었다.
“저희는 괜찮잖아요.”
다섯이서 이어나가기로 이미 결정했으니까 걱정할 것 없다는 이야기였다.
여느 아이돌 팬들이 그러하듯이 재계약 이야기에는 컬러즈도 상당히 불안해할 텐데, 모노크롬이 이 정도로 확신을 보이면 컬러즈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겠지.
망설임 없이 말하는 그의 눈을 보니 나도 고민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전전긍긍하면서 고민한 것과 달리 우형은 의외로 쉽게 결단을 내렸다.
‘내 생각보다 모노크롬이 많이 성장했나 봐.’
소속 아티스트를 보호하는 게 회사의 의무이지만, 내가 모노크롬을 바람 불면 날아가는 솜털 병아리처럼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꾸 효도 소리를 들었더니 부모의 마음이 되어버린 걸까.
리더의 판단이 그렇다면 모노크롬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멤버들한테는…….”
“제가 전달할게요.”
“응. 부탁할게.”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내가 직접 전달하는 것과 리더가 전달하는 것은 다르다.
저번에 아이리스에게 재계약 이야기를 할 때 레드와 오렌지만 먼저 불러서 이야기했던 게 바로 그 때문이었다.
지금은 나보다 우형이 더 확신을 지닌 것 같으니 멤버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건 그에게 맡기도록 하자.
“그리고 하나 더 부탁할 게 있는데.”
임주미 PD가 거짓말을 하는 기색은 없었지만 혹시 모르니 교차검증은 해야지.
이 위험한 사회에서 아무나 무턱대고 믿을 수는 없으니까.
“신셋 타이틀곡 투표할 때, 너랑 성운 씨가 만든 데모곡이랑 비슷한 곡이 있었잖아.”
“네. 그래서 그 곡이 타이틀곡이 되면 저희 데모곡은 못 쓸 거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방금까지 임주미 PD가 얘기한 기획에 관해 얘기하다가 갑자기 다른 화제로 전환되자 우형은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라솔에게 음악대상이 내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그리고 PD에게서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은 말했는데, 그 일에 연관된 게 누구인지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꺼냈다.
“박형주 씨 알지? 러너스하이 소속사에 있는. 혹시 그 곡이 박형주 씨 작곡 스타일이랑 비슷한지 알아볼 수 있어?”
나는 노래를 들어도 무슨 악기가 들어갔는지, 곡의 구성이 어떤지 분석할 수 없지만 우형은 가능하니까.
송 피디에게 먼저 문의해볼 생각도 했으나 이건 데모곡을 만든 우형이 가장 잘 알 것 같았다.
방금까지 믿음직한 리더의 표정이던 우형은 박형주라는 이름에 놀라 잠시 말을 더듬었다.
“어, 그, 혹시 아까 얘기하신 음악대상 내정자가…….”
“정황상 확률이 높긴 한데 확실하지는 않아. 의심만 갈 뿐이지, 증거가 딱히 없거든. 아닐 수도 있어.”
어쩌면 임주미 PD가 물증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협력 관계가 된 게 아니라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섣부르게 단정 짓지 말자는 것에는 우형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성운이랑 같이 이야기해 봐도 될까요?”
“응. 성운 씨도 작곡가니까 알고는 있어야지.”
음악대상 문제를 제쳐두고라도 표절은 작곡가에게 민감한 사항이다.
그리고 성운은 완전히 외부인도 아니고 라솔과 협업하는 회사 직속 후배.
나도 라솔에게 오늘 들은 이야기를 전달할 생각이었으니 성운이 알게 되는 것은 문제없다.
임주미 PD는 내게 생각할 시간을 줬으니 그때까진 최대한 사정을 알아봐야지. 섣부르게 움직였다간 괜한 적만 만들지도 모르니까.
‘이제 정말 한 치 앞도 모르겠다…….’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을 차근차근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희뿌연 안개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이제 이판사판밖에 안 남은 기분. 가만히 서 있을 게 아니라면 어디로든 일단 나아가야 했다.
***
콘서트 이후로 휴가를 다녀올 사람은 다녀오고, 아티스트팀은 정상 운행 상태로 돌아왔다.
멤버들도 평소처럼 회사에 나와 있는데 오늘은 조금 특이한 조합이 눈에 띄었다.
한이와 배우팀 직원, 그리고 한이와 웹드라마를 함께 촬영했던 윤도아가 함께 모여 있었다.
‘배우팀 일 때문에 찾아온 건가?’
배우팀에서 한이와 배우 활동 이야기를 하려면 아티스트팀에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내가 배우팀에게 따로 전달받은 사항은 없었다.
아티스트팀이 주로 사용하는 층까지 찾아온 것을 보면 우연히 마주친 것도 아닌 듯했다.
궁금한 마음에 다가가 보니까 세 사람의 대화는 마무리되어가는 참이었다.
“아, 이사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도아 씨. 한이 찾아오신 거예요?”
“제 차기작이 결정됐는데, 상대역이 저번에 <기로>에서 한이 씨랑 연기했던 남상현 선배님이어서요.”
그런 인연이. 남상현은 <기로>의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였다.
한창 활동하는 배우들은 이렇게 돌고 돌아 만나기도 하는구나.
이어서 한이가 여기에 세 사람이 모여 있던 이유를 설명했다.
“제가 또 그 형을 잘 아니까. 연기 스타일이 어떤지, 그런 것들이 궁금하다고 하셔서요.”
언제 또 형, 동생 사이가 된 거야?
한이의 <기로> 촬영 지원은 배우팀에 맡겨서 잘 몰랐는데 드라마 촬영장에서도 열심히 인싸 기질을 발휘한 모양이었다.
같은 회사 소속 연예인끼리 돕고 지내는 건 바람직한 일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기작이 로맨스 작품인가 봐요.”
그녀는 원래 스릴러 작품에 자주 출연했고, 한이와 웹드라마를 촬영한 후에 또 로맨스 작품을 찍었다.
그리고 남상현 배우를 상대역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이번에 들어간다는 작품도 로맨스라는 뜻이겠지?
로맨스로 주력 연기 장르를 전향한 걸까?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로맨스릴러예요.”
“정말…… 도아 씨한테 맞춘 듯한 장르네요.”
“안 그래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도아가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왔을 때 이미 할 말은 다 마친 상황이라 도아와 배우팀 직원은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두목님은 무슨 일로 내려오셨어요?”
“몬클하우스 촬영 날 너희가 할 것들 때문에 물어볼 게 있어서.”
“아-, 시연 선배님 오시죠. 콘서트 때 봤더니 금방 또 만나는 기분이네요.”
“우리 콘서트 끝난 시기랑 여름방학이랑 마침 겹치니까.”
2학기가 시작되면 시연도 주말에 시간을 빼야 할 테니 좀 더 일정 조정이 자유로운 여름방학에 시연을 몬클하우스에 초대하기로 했다.
웹드라마 촬영 당시 시연은 도아와 더 많이 붙어 있었을 텐데 그 이후엔 우리가 더 많이 만나게 되었다.
그날 촬영을 위해 멤버들과 확인할 사항을 마치고 다시 이사실로 올라가려는데,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저기, 이사님.”
“네?”
뒤를 돌아보니 방금 만났다가 헤어진 도아가 서 있었다.
“잠깐 드릴 말씀이 있는데…….”
배우팀에서 볼일을 마치고 따로 할 말이 있어서 날 기다린 듯했다.
대놓고 할 이야기는 아닌지 도아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를 확인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의미심장한 태도에 나는 긴장하며 그녀와 함께 인적 없는 복도 끝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슨 일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아가 나를 개인적으로 불러낼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혹시 우리가 요새 시연과 잘 지내니까 도아도 시연과 더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건 아니려나.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도아가 꺼낸 것은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배우팀에서 도는 소문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셨으면 해요.”
“……네?”
“요즘 배우팀에서 아티스트팀이 어떻다 하면서 수군대는 것 같은데, 보니까 다들 정확히 모르고 말만 옮기는 것 같더라고요.”
“소문이요……?”
회사 내에 소문이 돈다는 건 처음 듣는 소리였다.
내가 눈만 깜빡거리자 도아도 같이 눈을 깜빡이더니 주저하면서 입을 열었다.
“……혹시 제가 괜한 소리를 했나요?”
“아, 아니요. 얼마 전까지 콘서트로 바빴던 데다가 제가 요즘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서 회사 분위기를 살펴볼 생각을 못 하긴 했는데. 그 소문이란 게……?”
***
도아가 말해준 소문의 내용은 이러했다.
대표와 내 사이가 틀어져서 내게 회사 지분은 하나도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
그리고 내가 담당하여 유지되던 뉴마 아티스트팀은 해체하고 뉴레인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뭐야. 서동요 기법이야?’
내가 회사 지분을 안 받는 거야 당연한 일이니까 넘어가고.
모노크롬이 뉴레인으로 옮겨가는 건 대표가 원하는 일이잖아.
몰라도 되는 일인데 괜히 말을 옮긴 게 아니냐며 미안해하는 도아에게 나는 손을 가로저었다.
모르고 있다가 이런 소문을 들었으면 신경 쓰였을 텐데, 미리 알려준 덕분에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최근 차기작 때문에 최근 회사에 올 일이 많았던 그녀는 직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 어쩌다 소문이 돌았는지 나름대로 알아봐 준 모양이었다. 이건 내가 감사할 일이었다.
‘그나저나 이 타이밍에 소문이라니…… 누구 생각인지는 뻔하지.’
누구나 남이 자기 이야기로 수군거리면 신경 쓰이겠지만 나는 몸서리를 칠 정도로 수군거림을 싫어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있다.
나, 그리고 대표 본인이 소문의 피해자였으니까 잘 알 수밖에 없지.
그러나 대표는 시기를 잘못 잡았다. 훨씬 더 신경 쓰이는 일이 생긴 탓에 소문에 대해서는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 소문이 아주 영향이 없는 건 아니야.’
나에 관한 소문이 도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회사 사람들이 대표 딸인 내 눈치를 봤는데 앞으로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 더 문제였다.
‘그런데…… 애초에 대표 빽이 없었는데 있는 척하면서 마음대로 일하긴 했지.’
나름대로 꿀은 많이 빨아온 게 아닐까.
어차피 본격적으로 탈뉴마를 개시하면 다른 사람들도 우리가 회사에 마음 뜬 걸 알게 될 텐데 그 시기가 좀 당겨진 거지.
이것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기에 크게 달라질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다 치고, 치졸하게 아티스트팀 전체를 건드리다니.’
프로듀스팀 직원들은 전부 아티스트팀에 속해 있어서 배우팀과 큰 교류가 없지만, 매니지먼트팀에 있는 윤희나 민형은 이 소문을 직접 듣지 않았을까.
마침 컨텐츠 촬영 일정 때문에 모일 일이 있어서 나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그런 소문이 돈다던데, 혹시 누가 눈치 주거나 무시하진 않아요?”
“글쎄요? 전 매니지먼트팀에 있기보다는 애들이랑 있는 시간이 훨씬 길어서.”
뉴마에 입사했다기보다는 모노크롬을 돌보러 들어온 민형은 회사 상황엔 크게 관심이 없는 듯했다.
마이웨이여서 소문에 휩쓸리지 않는다면야 다행이고.
나는 이번엔 그의 옆에 있는 윤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윤희는 오래 일해와서 배우팀 매니저들과도 더 많이 교류해 왔을 텐데…….
“저랑 친하게 지내는 직원들은 사실 모이면 회사 욕만 하는데요.”
“그,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그렇지. 직원들한텐 회사가 공공의 적이지.
회사에 불만이 많았던 윤희여서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많이 있었던 모양이다.
‘……혹시 소문은 이전부터 계속 돌았는데 우리가 콘서트 때문에 바빠서 모르고 있었던 거 아냐?’
도아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소문을 파헤쳐본 듯하니…… 우리가 뒤늦게 알았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나와 같은 자아를 지닌 대표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혼자서 헛짓거리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