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18화 (318/430)

# 318화

“음악대상이…… 내정이요?”

[그냥 지나가는 소문이면 말씀드리지도 않았을 텐데 각기 다른 두 곳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더니 신경 쓰여서요.]

방금 안부를 물을 때만 해도 가벼웠던 라솔의 목소리도 이 이야기를 꺼내고 나서부턴 진지해졌다.

그녀의 말대로 라솔은 그냥 지나가다 들은 소문을 곧바로 옮길 스타일이 아니다.

내게 말할 정도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모양이었다.

‘내정이라니, 그게 가능한 거야?’

음악대상은 해의 마지막 날 진행되는 시상식. 그리고 지금은 한여름이다.

어느 정도 가능성 있는 후보들이 추려진 연말이라면 ‘한 명이 대상을 받을 확률이 월등히 높은가?’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는데, 한여름인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벌써 내정됐다면 하반기에는 국내 음악인들이 무슨 짓을 해도 절대 대상을 못 받는다는 거야?’

유례없을 정도로 음원 성적이 폭발해도, 음악계의 노벨상 같은 공신력 있는 상을 받아오더라도, 음악으로 우주 진출을 해도.

……아니, 그런 일이 생기면 내정 자리도 흔들리려나.

어쨌든 그 정도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미리 정한 사람에게 주겠다는 거잖아.

‘이런 이야기가 소문으로 도는 것 자체가 다른 시상식이나 이전 수상자들한테도 영향을 줄 텐데…….’

음악대상에 공신력이 없어지면 라솔도 피해를 보기는 마찬가지이다.

대상 심사 기준에 대한 의심이 한번 싹트고 나면 ‘그럼 이전 수상자들도?’라는 생각이 번지는 건 불 보듯 뻔하니까.

그래서 라솔도 이 소문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거겠지.

더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직 대대적으로 도는 소문은 아닌 듯했다.

[이 이야기를 저한테 해 주신 게 방송국 스태프분들이셨거든요. 소속은 각각 달랐고요. 관계자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이야기가 퍼진 모양이에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처럼 루머를 두고 시끄럽게 왈가왈부하는 장면이야 일상처럼 봐 왔다.

그런데 그런 종류의 소문이 아니라 아는 사람들끼리 조용히 언급하는 소문이라……. 신빙성 있게 들릴 수밖에 없겠는데.

그 사람들도 소문을 퍼트릴 심산이 아니라 음악대상 수상자인 라솔이기에 특별히 이야기해 준 듯했다.

“소문까지 돈다는 건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었다는 걸까요?”

아무 증거도 없는데 ‘설마 음악대상 다 짜고 치는 거 아니야?’라는 뜬구름 잡는 소리로 소문이 돌진 않을 테니까 말이야.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정보 출처가 방송국 내부인 듯한데…… 내부에서 진행하는 일이 의심스럽다는 말이 나왔나 봐요.]

음악대상과 연관 있는 방송국이라면…….

‘QBC잖아.’

뒤통수치기 잘하는 그 QBC.

예상치 못한 곳에서 허를 찔러오긴 해도 모노크롬에게 꽤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던지라 그리 나쁜 감정은 없었다.

하지만 음악대상에 수를 쓰는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만일 정말이라면 내정된 사람이 적어도 뜬금없는 사람은 아니겠네요. 후보로 거론될 만한 사람이라거나, 올해 활동이 많았다거나…….”

[그렇죠. 상도 줄 만한 근거가 있어야 주지, 아니라면 시청자들 반발이 거셀 테니까요.]

연말 시상식 중, 연예대상은 해당 방송국의 예능 프로그램, 연기대상은 해당 방송국의 드라마 작품에 기여한 사람에게 상을 준다.

그러나 음악대상은 성질이 좀 다르다.

‘QBC는 방송국이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이나 음악 협회가 아니니까.’

음악인들의 음악 활동은 주로 QBC의 외부에서 이뤄지고, QBC는 그해의 음악 활동들을 살펴보고 수상자를 뽑는다.

케이블 채널에서 트로트 열풍을 일으켰던 천상식이 QBC에서 음악대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아이돌이 컴백을 하면 여러 방송사의 음악 방송을 도는 것처럼, 가수는 한 방송국에만 나오지는 않는다.

‘그런데 특정인을 음악대상으로 밀어준다면 QBC 내에서 뭔가 움직임이 있을 거야.’

QBC가 특정 가수의 음원 순위를 높여주거나 다른 음악 시상식에 로비를 펼쳐서 화려한 수상 경력을 만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게다가 동 시간대 시청률 등으로 매일, 매시간 경쟁하는 사이인 타 방송국까지 영향력을 뻗치기도 어렵고.

하지만 QBC의 프로그램에 출연시켜서 많은 사람에게 ‘훌륭한 음악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비교적 쉽게 가능하지.

요즘 사람들이 TV를 잘 안 본다고 해도 방송은 아직도 영향력이 매우 크니까.

“그럼 말이 나오는 사람은 올해 방송에 많이 나온 사람 중 한 명일 수도 있겠네요.”

[아직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저도 음악대상을 받은 해에 매체 노출이 많긴 했거든요. 사람들에게 인상을 남기는 것도 심사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어요.]

만일 이 소문이 사실이고 QBC가 방송 출연으로 대상 수상자를 밀어주려 한다면, 모노크롬의 음악대상 퀘스트도 방송 활동이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건가.

모노크롬도 올해 QBC 방송에 여러 번 출연하긴 했지만 <쉰셋돌>도 <아이돌부 방학캠프>도 작년의 연장선이라 올해 활동이라고 보기에는 모호했다.

‘근데 내정이고 지름길이고 작년에 알았어야 했는데 지금 알면 무슨 소용이야.’

가장 좋은 건 이게 헛소문이고 아무 일 없이 넘어가는 것이지만, 헛소문이 아니라면?

머리가 지끈거리려는데 라솔의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씀드릴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후배들이 혹시 피해를 받을까 봐요. 이사님도 대상에 관심이 있어 보이셨고. 알고 계셔야 무슨 일이 있어도 대처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받을 사람이 정해져 있는데 같은 상을 노리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들에겐 방해일 뿐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모르고 덤볐다간 불이익이 올 수도 있겠지.

‘라솔 씨도 혹시 비슷한 일을 겪어봤거나 목격한 적이 있었던 걸까.’

은퇴도 생각한 적 있는 그녀이니까 가수 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렇게 꺼내기 쉽지 않은 충고를 해주는 것을 보면 진심으로 우리를 걱정하는 듯했다.

“말씀 전해주셔서 감사해요…….”

내 음악대상 이야기를 문외한의 패기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신경 써 주다니.

라솔은 다른 정보를 듣게 되면 또 연락해 주겠다는 말과 함께 통화를 종료했다.

통화 내내 내게 말해도 좋은 이야기인지 고민하는 기색이 보였는데, 내게는 정말 중요한 정보였다.

‘모르고 있었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했을지도 몰라.’

미리 알게 된 이상 소문이 사실일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음악대상이 내정된 게 사실이라면, 그걸 타파할 방법은 정황을 찾아내서 막아내는 것뿐.

우리가 뉴레인의 데뷔조 조작을 막아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려면 QBC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겠지.’

라솔도 이 일에 관심이 있는 듯하고 정보를 얻으면 내게 알려준다고 했으니 우리도 적극적으로 알아보자.

정확한 증거도 없는데 여기저기 물어보다가 오히려 소문을 더 부추겨서 괜한 피해자를 낼 수는 없고…….

‘요즘 그린이 <쉰셋돌> 시즌2 때문에 QBC에 자주 오가지.’

아이리스라면 믿을 만하니까 그쪽으로 정보를 모아봐야겠어.

그런데 <쉰셋돌> 시즌2라고 하면…… 전부터 조금씩 신경 쓰였던 사람이 있다.

싱어송라이터이자 러너스하이의 프로듀서. <쉰셋돌> 뒤풀이 자리에 나타났던 사람.

박형주가 바로 <쉰셋돌> 시즌2의 프로듀서를 맡는다고 했다.

뒤풀이에 나타난 게 우연일까? 아니면 그 전부터 시즌2 제작과 출연 이야기가 오갔던 걸까?

함부로 의심할 수는 없지만 찜찜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와중에, 자세한 이야기를 해 줄 정보원이 나를 직접 찾았다.

***

“안녕하세요. 뉴마 엔터테인먼트 신주인 이사님?”

QBC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 카페.

약속 장소로 나가자 반갑다는 듯이 웃는 얼굴로 날 맞이하는 이가 있었다.

“연락드렸던 임주미 PD입니다.”

자신을 소개하며 악수를 청하는 그녀는 QBC 소속 PD였다.

라솔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직후. 게다가 조금 특이하게 연락을 해 와서 나는 의아한 마음을 품고 이곳으로 나왔다.

“모노크롬 담당자와 만나고 싶다고 하셨다고요.”

모노크롬을 섭외한다는 것도 아니고 왜 담당자인 나를 먼저 만나고 싶어 하는 거지?

소문 때문에 찜찜하긴 했지만, 내가 여기 나오기로 한 것도 바로 그 소문 때문이었다.

방송 출연이 음악대상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데 마침 만나고 싶다는 PD가 있잖아.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기도 했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

“제가 좀 재밌는 기획을 하려는데 도움을 구하고 싶어서요.”

“재밌는 기획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웃고 있지만 그 속에는 위험한 생각이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나는 경계를 담아 조심스레 물었다.

모노크롬과의 미팅이 아니라 나와의 만남을 요청한 것은 혹시 모노크롬이 듣기에는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닐까.

나는 긴장하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직설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번에 천상식 씨를 ZBS에 빼앗겨서 예능국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그가 QBC 소속도 아닌데 빼앗겼다는 건…… 음악대상을 주고도 QBC 프로그램에 섭외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인가.

‘천상식 씨가 예능 방송에 잘 안 나간다는 이야기는 나도 여러 번 들었어.’

QBC는 대상을 계기로 함께 시너지를 일으키며 잘 해나가자는 그림을 그렸던 모양이다.

<쉰셋돌>이 QBC 연말 시상식 대상 수상자인 만호와 라솔의 이름을 활용해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것처럼.

그런데 천상식은 ZBS의 <송투유>에 먼저 출연했고, QBC 예능국은 그 점이 불만이라고 한다.

대상과 관련된 이야기가 바로 나와서 머리를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데 임주미 PD는 상체를 숙이고 속삭였다.

“그것 때문에 허튼 생각을 하는 사람이 생기더라고요?”

“……대상을 입맛에 맞춰 만들기라도 한대요?”

지금은 빙빙 돌려 말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나는 바로 궁금한 것을 물었다.

임주미 PD는 본인이 꺼내려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었다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혹시 요즘 도는 소문 들으셨어요?”

QBC에게는 좋지 않은 소문인데 왜 이렇게 흥미롭다는 표정이야?

라솔도 방송국 내부에서 이야기가 흘러나온 것 같다고 했는데…….

“소문에 관해서 잘 아시는 것 같네요…….”

“후후. 어떨까요? 그렇게 보이세요?”

이 사람이 소문낸 거 아니야……?

지금 그녀의 표정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서 뿌듯하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소문의 근원지보다는 진위가 더 궁금했다.

“정말 그런 일을 벌이는 사람이 있다고요?”

“그런데 말이죠. 하필 제가 그 선배를 별로 안 좋아해요. 말이 좀 돌면 경각심을 가질 줄 알았는데 아랑곳도 안 하더라고요.”

임주미 PD는 ‘그렇다’, 혹은 ‘아니다’로 대답하지 않고 자기 할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말하는 걸 들어보면…… 이 사람이 소문낸 거 맞잖아!’

손영식 PD가 시청자들에게 또라이라는 소리를 듣곤 하던데.

이 사람은 어떤 느낌이냐 하면…… 광기. 광기에 차 있었다.

QBC 괜찮은 거야? 내부에서도 서로 뒤통수치면서 경쟁하는 거 아니야? 잘 굴러가는 거 맞아?

내가 무어라 말을 못 하고 있자 임주미 PD는 또 은밀한 이야기를 하듯이 상체를 숙여 내게 가까이 왔다.

“더 재밌는 걸 알려드릴까요?”

이 사람이 ‘재밌는 것’이라고 말하면 불안해지는데…….

지금까지의 대화방식을 생각해 보면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알아서 말할 듯해서 나는 가만히 그녀의 얼굴만 바라봤다.

“<쉰셋돌>에서 모노크롬이 만든 곡. 그거랑 비슷한 곡이 투표에 나오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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