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7화
스페셜 앨범 준비부터 음악 방송 활동, 앨범과 이어진 콘서트까지.
이라는 장기 프로젝트가 끝나고 멤버들은 휴가, 컬러즈는 콘서트의 여운을 즐기는 중이다.
하지만 콘서트가 끝났다고 회사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기에 나는 오늘도 출근했다.
주말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일상으로 돌아오다니.
‘컬러즈가 콘서트를 보고 난 다음 날 출근하려고 하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던데.’
방학 시즌이라 학생 컬러즈는 밤새 콘서트의 기억을 되새기며 벅차오를 수 있었지만, 직장인 컬러즈는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출근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몸서리를 쳤다.
나는 회사에 있으나 집에 있으나 별로 큰 차이가 없어서 그리 괴롭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콘서트 준비로 바빠서 잠시 미뤄뒀던 일들을 다시 꺼내서 처리하다 보니 콘서트의 기억이 다 사라져가는 기분이었다.
‘이래서 컬러즈가 침울해했나 봐. 여운을 즐길 새도 없네.’
회사 일을 처리하다 보니 오전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모노크롬 전담 직원들은 지금이 휴가 가기 좋은 타이밍. 미리 휴가 신청을 한 이들이 있어서 오늘 아티스트팀은 평소보다 많이 한산했다.
그래서인지 이 와중에 자리를 지키는 최 비서의 모습이 평소보다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니 최 비서는…… 휴가 안 가?”
엔터사는 사람을 갈아서 운영하고는 해서 기본급 외의 수당을 안 주려고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다지만, 다행히 뉴마는 연차수당을 챙겨주는 회사였다.
안 그래도 연예인 스케줄에 맞추려면 근무 시간조차 제대로 지키기 어려운데 이런 거라도 챙겨줘야 버티면서 다니지. 사람을 새로 뽑는 것도 상당한 노동력이 들어간단 말이야.
연차수당이라는 선택지가 있으니 나도 직원들의 연차 사용을 딱히 재촉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최 비서는 지금까지 내게 휴가계를 낸 적이 없었다.
‘의외로 근검절약하는 스타일인가? 연차수당이 필요하다거나.’
회사에서 일하는 단편적인 모습만 보니까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 등에 최 비서와 대화할 때면 회사 얘기, 시류 얘기들을 주로 나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같은 회사 사람으로서 너무 정 없이 지내온 게 아닌가 싶지만…….
우리가 평범하게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났다기에는 여러모로 첫 단추가 많이 어긋났단 말이지.
최 비서는 대표가 그에게 보인 반응 탓에 처음엔 열심히 나를 모르는 척했고, 나도 그를 반쯤 튜토리얼 캐릭터처럼 받아들였다.
‘거기에 내가 먼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최 비서에게만 사적인 일을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게 지내오는 게 당연했는데, 마음을 조금 터놓고 난 지금에서야 그의 행동에 무언가 인간적인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내 질문에 최 비서는 딱히 이유가 없는지 덤덤하게 대답했다.
“제 자리를 비워둘 수 없으니까요.”
“으음?”
최 비서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해서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루 이틀 정도라면 비워도 괜찮지 않나……?’
최 비서는 내 비서. 즉, 내 일을 대신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조하는 사람이다.
물론 예전엔 내가 갑자기 이사로 부임해서 일을 잘 몰랐으니 최 비서가 많은 일을 대신 처리해야 했지만…… 이제는 나도 업무에 상당히 익숙해졌다.
특히 아티스트팀 업무는 내가 여기저기 간섭하긴 하지만 실무자들이 다 따로 있고, 필요하다면 내가 그들과 바로 소통하면 된다.
빠른 일 처리를 위해 불필요한 중간 관리자를 안 두기에 가능한 방식이었다.
‘나는 플레이어가 아니니까 꼭 최 비서를 통해서 업무를 볼 필요는 없는데……. 있으면 정말 많이 도움이 되긴 하지만.’
사고가 여기까지 미치고, 문득 뇌리에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대표 옆에서 일할 때부터 그래와서 익숙해진 거야?”
내가 다른 질문을 하자 최 비서는 나를 응시한 채로 눈만 깜빡였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봤다는 표정이었다.
‘전에 최 비서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대표를 혼자 놔두지 않았던 것 같은데.’
대표가 틀어박혀서 출근을 안 한 적은 있었다지만 그렇다고 최 비서가 덩달아 쉬진 않았을 테고.
최 비서는 자신만 대표를 알아보니까, 대표의 비서 자리는 자기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렇다면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고 다른 비서팀 직원에게 인수인계한 적도 없을 것 같은데…….
“혹시…… 최 비서는 입사하고 한 번도 휴가를 안 갔어?”
“……당연히 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최 비서의 대답에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내 업보는 대체 어디까지 뻗친 거야?’
콘서트 잘 마치고 와서, 지금 여기서 새로운 업보가 나타난다고?
대표는 독불장군인 주제에 모든 일을 최 비서를 통해서 진행했다. 그래서 최 비서는 더욱 대표를 혼자 두지 못했다.
그것도 5년이나!
최 비서는 대표에 익숙했고 처음부터 나를 대표로 생각했던 탓에 자신이 자리를 비우고 내가 혼자 업무를 보는 상황 자체를 생각해 본 적 없는 듯했다.
이 회사 전체가 대표의 뜻대로 휩쓸려 왔지만 대표 바로 옆에 있던 최 비서는 특히 직접적인 피해자였다.
‘설마 업보가 더 남아 있진 않겠지, 이게 끝이겠지.’라면서 방심하고 있으면 어느 날 업보가 ‘아니!’ 하면서 뒤통수를 쳐 왔다. 그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포기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 업보에 끝은 없을지도 몰라.
“그…… 지금은 회사 내부에서 처리할 일도 많이 없으니까 연차 써도 돼. 당장 내일이라도…… 아니, 휴가는 계획을 세우고 가는 게 낫나? 날짜를 생각해서 말해주면 최우선으로 처리해 줄 테니까.”
“그렇게 신경 써 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맡기기에는 내 일 처리가 불안해서 그래……?”
“아뇨. 저도 재미없는 사람이라 휴가를 내도 할 일이 없어서요.”
“으음…….”
나는 잠시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먹는 것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쉬는 것도 체험을 해 봐야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겠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이론만 가르쳐 주고 당장 실무 현장에 나가라고 등을 떠밀면 뭐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잖아?
내가 지금 휴가를 가라고 재촉하는 게 그와 비슷한 행동이었다.
“그러면 오늘은 외근이라고 하고 일찍 퇴근하자.”
내가 집으로 가면 최 비서도 집으로 가겠지.
어차피 오늘 아티스트팀에서 처리할 일은 거의 없을 테고, 다른 일은 꼭 사무실에서 하지 않아도 된다.
내 조기 퇴근 제안에 최 비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사님도 주말 내내 일하셨으니 더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니, 내가 피곤해서 그런 게 아니라…….”
나는 부정하려다가 최 비서의 표정을 보고 말을 멈췄다.
최 비서를 위해서라고 말하면 괜찮다면서 손을 가로저을 것 같았다.
“으응. 피곤한 거 맞아. 좀 가서 쉬어야겠어.”
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기 퇴근 하는 그림이라도 만들어야 마음 편히 쉬겠지.
쓰러진 전적이 있어서인지 최 비서는 내가 피곤하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바로 퇴근 준비를 시작했다.
***
집에 와도 내가 할 일은 회사에 있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일 할 일을 미리 좀 정리하다가, 컬러즈의 콘서트 회상을 구경하면서 비하인드 영상에 필수적으로 넣을 장면을 골라보고. 컨텐츠에 쓸 미니크롬 패션쇼 사진도 살펴보고.
회사 일 외의 다른 것들은 꼭 내가 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냥 취미 겸 딴짓이었다.
일 때문에 나를 찾는 사람도 없으니 느긋한 마음으로 빈둥빈둥 일하고 있는데, 저녁에 가까워지자 재민에게서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주인!님 어디 있어요?]
메시지를 보낼 때 ‘주인 님’을 붙여 쓰지 말라고 했더니 재민은 저렇게 기호를 하나씩 붙여서 보냈다.
기호는 그때그때 재민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듯했다.
그나저나 원래라면 내가 회사에 있을 시간이니 어디에 있냐고 물을 이유가 없을 텐데.
[왜?]
[집 다녀왔다가 들렀는데 안 계셔서요.]
누가 나도 모르게 회사에 꿀이라도 발라놨나, 아니면 보물 상자라도 숨겨놨나.
쉬라고 휴가를 보냈더니 회사는 왜 또 간 거야?
무슨 일로 들렀냐고 물었더니 재민은 회사에 간 연유를 상세하게 적어 보냈다.
[집 앞에 맛있는 디저트집 있는데 어제 부모님이 멤버들, 직원들 주려고 사오려다가 깜빡하셨대요. 그래서 오늘 집에 들렀다 오는 길에 사왔는데 회사에 아무도 없어요.]
보답으로 이쁜 낙엽을 물어오는 길고양이가 또 찾아왔네.
평소에 이것저것 많이 먹였더니 자기도 뭔가 베풀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마음은 예뻤으나 아쉽게도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내가 상사의 권한을 휘두르는 바람에…….’
나만 조기 퇴근 하기에도 좀 그래서 아티스트팀은 일이 없으면 일찍 들어가도록 했다.
그 탓에 재민이 회사에 도착했을 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름이라 오늘 안 먹을 거면 냉동보관 하랬는데 둘 데가 없어요.]
탕비실엔 음료용으로 둔 냉장고만 있고 냉동고가 없었다.
그렇다고 숙소에 보관해 뒀다가 직원들이 있을 때 다시 가져오라고 할 수도 없고.
[휴가 간 사람이 많아서 오늘내일은 좀 한산할 거야. 멤버들이랑 많이 먹어.]
[한이 형 돼지 돼요.]
직원들에게 주려고 했던 몫을 한이한테 다 주는 거야……?
재민은 동물 캐릭터가 엎드려 있는 의미 모를 이모티콘을 보내며 대화를 종료했다.
그럴 목적은 아니었는데 기껏 좋은 마음으로 온 재민을 헛걸음하게 만들어 버렸다.
‘나도 그렇고 멤버들도 그렇고 다 같이 회사에 있는 게 익숙해져 있다 보니 자리 비우기도 어렵네.’
안 하던 짓을 하려니 그새 이렇게 문제가 생길 줄이야.
안타깝게도 재민의 디저트 나눔이 불발되어 버렸으니 대신 나라도 직원들을 챙겨야겠어.
마침 오늘 할 일을 다 한 나는 예약 주문이 가능한 디저트 가게를 검색했다.
***
밤이 되자 이번에는 라솔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전할 이야기가 있는데 시간이 되면 통화로 대화하자는 내용이었다.
내가 전화를 걸자 라솔은 바로 받았다.
[후배들 활동이랑 콘서트 때문에 바쁘실 것 같아서 기다렸는데. 지금은 통화 괜찮으세요?]
“네! 오늘 퇴근도 일찍 해서 쉬던 중이었어요.”
[저번에 <쉰셋돌> 시즌2 관련해서 연락받은 적 있는지 물어보셨잖아요.]
“맞아요. 이번에 아이리스 멤버가 나가게 됐거든요.”
[그건 저한테 따로 연락이 온 건 없었고 대신 조금 이상한 얘기를 들었는데, 이사님 생각이 나서요.]
“이상한 얘기요?”
[처음 뵀을 때 이사님이 저한테 물어보셨었죠? 음악대상은 어떻게 받느냐고.]
“아! 그때 제가 그런 질문을 했었죠.”
음악대상 수상자는 더 상세한 정보를 알지 않을까 해서 물어봤는데, 당시 초면이었던 라솔은 내게 좋은 말을 많이 해 주었다.
꽤 시일이 지난 일이라 기억 속에 묻혀 있었는데 다시 그때 일을 꺼내다니.
‘정말로 음악대상 수상자여야 알 수 있는 정보가 있었나?’
뭔가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어서 알려주려는 걸까.
나는 통화에 집중하며 라솔의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라솔이 꺼낸 것은 음악대상에 관한 이야기는 맞았으나, 정보라기보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정확한 얘기는 아닌데…… 이번 음악대상이 내정됐다는 소문이 도는 것 같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