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16화 (316/430)

# 316화

우형은 내 물음에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문 옆에 서 있는 두 사람을 잠시 응시하더니 고개를 작게 기울였다.

“어, 엇. 네. 아마……?”

“아마?”

그의 대답에는 확신이 없었다.

“실제로 뵌 적이 없어서요. 사진은 본 적이 있어서, 아마 맞는 것 같은데…….”

하긴 그동안 모노크롬의 활동에 부모님을 초대할 일이 없었지.

‘팬미팅 때는…… 못 오셨고.’

멤버들이 다른 멤버의 부모님 얼굴을 잘 모르는 것도 충분히 이해는 갔다.

집을 나오기 위해 아이돌 연습생이 됐다던 해랑이 부모님을 숙소로 모셔왔을 것 같지도 않았다.

가족들도 모여 있고 뒷정리하는 스태프들이 이리저리 오가느라 정신없는 현장 속에서 우형은 해랑을 찾아 그의 부모님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진 멤버들을 모았다.

“인사드리게 잠깐 와.”

“해랑 형 부모님이 오셨어?”

우형이 부르자 재민은 놀란 얼굴로 그에게 되물었다.

한이와 준해도 재민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연찬을 또라이라 부르던 준해는 조금 더 묘한 표정이었다.

‘부모님이 오신 게 특이한 일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예전 일들이 떠오를 수밖에 없으니…….’

해랑의 부모님이자 연찬의 부모님.

그들을 환영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멤버들로서는 해랑이 힘들어했던 일들이 먼저 떠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해랑이 부모님과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성향상 가족에게도 속마음을 다 털어놓지 않고 거리를 둘 뿐.

멤버들은 다른 가족들에게 그랬듯이 다 같이 다가가 해랑의 부모님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서로 초면이다 보니 해랑의 부모님도 멤버들에게 존댓말로 인사했다.

해랑은 어떤 표정을 할지 궁금했는데…… 그는 부모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주변인이 더 걱정이 많은 것 같아.’

해랑은 과거의 일을 어느 정도 털어낸 듯한데 괜히 옆에서 과보호하게 된단 말이지.

나도 불안한 눈으로 멤버들과 해랑의 부모님이 모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걱정을 조금 덜어내기로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얼굴에 긴장이 섞여 있던 멤버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표정을 풀었다.

“오늘 공연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 해랑 형이 작곡한 곡을 팬들이 엄청 좋아했는데-.”

이런 공간이 낯선지 얼굴에 긴장이 섞여 있던 것은 해랑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바로 멤버들이 사근사근 대화를 이어나가자 두 분의 표정도 한결 편안해졌다.

이런 효자의 모습 좋아. 준해 가출 사건으로 멤버들이 부모님과 잘 못 지낼까 봐 염려한 적이 있었는데 걱정이 무색해지는 훈훈한 광경이었다.

‘그나저나 해랑이는 어머니를 닮았나 봐.’

조금 전엔 갑자기 미인이 나타나서 당황했는데 해랑의 어머니라고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보니 해랑과 어머니의 인상이 많이 닮았다.

유전자는 대단해. 이렇게 인류는 진화를 이루고, 발전하고…….

내 사고가 옆으로 흘러가는 사이에, 해랑이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부모님께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사람들이랑 좋아하는 일 하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응.”

해랑의 어머니는 천천히 대답하며 아들을 바라봤다.

‘보여주고 싶었는데…… 저번엔 못 보여드렸지.’

그녀의 눈에는 그때 찾아오지 못해서 미안한 감정이 섞인 듯했다.

다들 사정이란 게 있는 법이고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지. 두 분도 오고 싶지 않아서 안 온 건 아닐 거 아니야.

‘두 분 발목을 묶은 게 연찬이였고…… 연찬이가 얼마나 영악해질 수 있는지 나도 아니까.’

부모님이라고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전부 알지는 못한다. 심리 전문가가 아니니까 설령 문제점을 인지했다 하더라도 마음대로 교정할 수도 없다.

그래도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고민하게 되는 것이 사람의 습성이다.

멤버들은 해랑의 부모님과 그렇게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인사할 사람이 해랑의 부모님만 있는 게 아니어서 이내 다시 다른 곳으로 우르르 이동했다.

‘오늘이 지나면 나는 아마 다시 만나기 어려운 분들일 텐데.’

나는 오지랖인가 하면서도 해랑의 부모님께 다가갔다.

아들을 바라보는 눈빛을 보니, 해랑이 본인의 자리에서 얼마나 묵묵하게 열심히 해왔는지 알려드리고 싶었다.

부모님에게 자식 칭찬이란 아무리 들어도 부족한 것이니까.

“안녕하세요. 뉴마 엔터테인먼트 이사 신주인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젊으신 분이란 얘기는 들었는데 이렇게 뵙네요.”

혹시 연찬도 내 이야기를 했을까 싶어 긴장했는데 그건 아닌 듯했다.

연찬에게 전해 들었다면 나를 굉장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니까.

두 분의 눈빛은 평범한 사람을 보는 눈빛이었다.

연찬과 관련된 걱정은 그만하기로 하고, 해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공연 잘 보셨어요? 아까 멤버들도 말했지만, 이번 앨범이랑 콘서트에서 해랑이가 음악적으로 성장한 부분이 보여서 저는 좋았거든요. 중심이 잘 잡혀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을 굉장히 많이 해요.”

“다른 모습…….”

해랑의 어머니는 오늘 공연을 지켜보면서 뭔가 느낀 바가 있었는지 잠시 뜸을 들이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저도 관객석에 앉아 있으면서 해랑이한테 이런 모습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팬들도 해랑이는 알면 알수록 새롭다고 많이 이야기하곤 해요.”

나는 혹시 그녀가 아들에게 무관심해서 그런 모습을 처음 봤다고 생각해 죄책감을 느낄까 봐 서둘러 이어 붙였다.

그녀는 내 반응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살포시 웃었다.

“해랑이가 아주 어릴 땐 눈물이 많았거든요.”

어릴 때 잘 울면 속눈썹이 길어진다는 속설이 있었는데. 혹시 그래서 해랑의 속눈썹이……?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눈물이 많은 해랑이라……. 지금 모습을 보면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해랑의 어머니도 오늘 엔딩 멘트를 하며 해랑이 글썽거리는 것을 보고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 듯했다.

“오늘 팬분들한테 인사하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해랑이가 우는 걸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는 먼 과거를 떠올리는 듯이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생각해 보니까, 해랑이는 동생이 생긴 이후로 운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 말에 나는 무어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녀 옆에 서 있는 해랑의 아버지가 나와 비슷한 표정일 듯했다.

‘해랑이는 나한테 어릴 적 이야기를 해줬을 때 외엔 항상 무덤덤했는데…….’

팬미팅에 부모님이 오지 않으셨다는 이야기를 할 때도 무덤덤한 얼굴이던 해랑이 떠올랐다.

혹시 해랑은 어릴 적부터 자신이 포기하면 빠르다는 걸 학습해버린 건 아닐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하는 게, 정말 아무렇지 않아서인지 가족 일엔 포기가 빨라서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잖아.

그녀의 시선은 멤버들이 모여 있는 곳에 머물렀다.

“너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왜 그렇게 해?!”

“왜 그렇게 했냐니, 그게 사실이라 말한 건데…….”

“진정하세요, 누님!”

“야, 유한이! 네가 말 안 했으면 됐잖아?”

“여우형 네가 시작을 안 했으면 됐잖아.”

다행히도 우형의 누나는 어제 우형의 멘트를 전해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한이가 이르기 전까지는.

우형의 누나는 동생이 자신의 이야기를 팔아먹었다는 사실에 저절로 손이 올라갔고, 그 옆에서 해랑이 한마디를 얹었다.

“제가 어제 대신 때렸는데…….”

“그래? 잘했어.”

우형의 누나는 든든하다는 표정으로 해랑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넌 동생보다 철이 덜 들었어.”라면서 우형의 팔을 찰싹 때렸다.

호적상 형제보다 더 형제 같은 멤버들의 모습을 해랑의 어머니는 말없이 바라봤다.

마음이 복잡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에 나도 더 말을 얹지 않고 그 옆에서 조용히 멤버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

우형과 재민이 숙소 룸메이트인 게 영향을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우형의 어머님과 재민의 부모님은 평소에 연락을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아온 듯했다.

친동생에게는 차가운 우형의 누나도 준해의 동생에게는 살가운 언니가 되었다. 마치 명절에 반가운 사촌 동생을 만난 듯한 얼굴이었다.

이렇게 다섯 명이 작년 팬미팅에도 왔던 멤버의 가족들.

‘오늘은 딱 그 두 배가 됐네.’

공연 전에 먼저 인사하러 왔던 한이의 형, 해랑의 부모님, 그리고 준해의 부모님.

오늘은 총 열 명의 가족이 찾아왔다.

공연 뒤 대기실에 처음 온 것은 해랑의 부모님뿐만이 아니었다.

준해의 부모님도 여기 와 있다는 사실이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딸에게 언제 집에 갈지 묻고 있었다.

“밖에 사람들 좀 빠지고 나서 가자.”

“내일 1교시 수업이라 일찍 자야 한다고 구시렁대더니?”

가족들과 함께 회식 자리를 잡을 수도 있었지만 멤버들이 앨범 준비부터 이번 주말 이틀 공연까지 쉴 새 없이 달려온 탓에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쉬게 할 생각이었다.

뷰이라이브도 해야 하니 완전히 해산할 때까지 기다리려면 오래 걸리기도 하고.

준해의 부모님도 그걸 알아서 적당히 귀가할 예정이었던 것 같은데, 준해의 동생이 부모님을 붙잡았다.

“나 아까 앞에서 인형 구경하다가 우연히 동기 만났단 말이야. 주차장 가다가 또 만나면 어떡해.”

“그게 왜? 또 만나면 인사하면 되지.”

“부모님이랑 같이 공연 봤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티켓을 어떻게 그렇게 많이 구했냐고.”

“오빠한테 받았다고 하면 되지?”

준해의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하며 딸의 말에 반박했다.

그러자 준해의 동생이 입술을 살짝 내밀며 대답했다.

“아까 걔가 나한테 ‘너도 컬러즈야?’라고 물어서 얼결에 그렇다고 했단 말야.”

옆에서 그 대화를 듣고 있던 준해는 입을 떡 벌렸다.

“네가 왜 컬러즈야?!”

“아니, 내가 컬러즈란 소리가 아니고. 오빠가 여기 멤버라고 어떻게 말해.”

“왜 말을 못 해?”

말을 못 할 수도 있지.

오빠가 아이돌인 것은 자랑거리가 되면 됐지, 흠이 될 일은 아니지만 ‘쟤가 아이돌 누구누구 동생이라며?’라는 수군거림을 듣고 싶지 않을 수는 있다.

그렇게 되면 다른 목적으로 다가오거나 모노크롬에 관한 소문을 일부러 묻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그리고 그건 준해가 가장 잘 알지 않을까…….’

4년간 학교에서 자신이 아이돌임을 숨겨왔던 준해라면 말이야.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우형이 준해의 어깨에 손을 짚고 말했다.

“준해야, 네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다른 멤버들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나저나 역시 준해 동생이야.’

준해처럼 만화 주인공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준해가 ‘낮에는 평범한 대학생인 내가 사실은 아이돌?’이었다면, 준해 동생은 ‘오빠가 인기 아이돌인 걸 숨김’ 정도가 아닐까.

그리고 재민이 꺼낸 말 덕분에 준해의 동생이 오빠의 정체를 숨긴 이유를 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준해 동생도 단군대 입학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면 더더욱 말 못 할 수도 있지. 친오빠가 학교에 한차례 파란을 일으키고 졸업한 전설의 졸업생이라면.

거기에 준해와 같은 현 씨. 변명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당사자가 싫다면 싫은 거니까, 멤버들도 그녀가 준해의 동생이라는 비밀을 지켜주기로 했다.

이런 재밌는 에피소드가 생긴 후, 멤버들은 콘서트를 무사히 마친 기념으로 뷰이라이브를 시작했다.

“여보세요?”

컬러즈는 [??화면이 안 나와요ㅠㅠ]라면서 자신의 스마트폰에 이상이 있는지를 걱정했으나 이는 우형이 손으로 카메라를 가리고 있는 탓이었다.

새까매진 화면. 마치 음성 통화를 하듯이 목소리만 흘러나왔다.

“지금 통화할 수 있어?”

이번엔 우형의 목소리였다.

컬러즈는 지금 멤버들이 우형의 솔로곡 의 도입부를 재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컬러즈는 통화는 얼마든지 환영이라며 채팅창에 [네네ㅔ네ㅔㅔ네]를 올려 나가고, 곧이어 준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

목소리의 주인 공개와 함께 화면이 밝아지고, 멤버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짜잔-.”

“다들 정답은 맞히셨나요?”

멤버들은 컬러즈에게 내준 숙제를 채점하며 첫 단독 콘서트 마무리 기념 뷰이라이브를 시작했다.

0